진(秦)의 태자(太子) 정(政)이 즉위(卽位)하여 진시황(秦始皇)이 되자
여불위(呂不韋)는 활살자재(活殺自在)
(살리고 죽이는 것이 자기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즉 권력을 쥐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의 권세(權勢)를 누렸다.
그 당시 위나라(魏--) 신릉군(信陵君)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 식객(食客)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여불위(呂不韋)는 강한 진나라(秦--)가 그들에게 못미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재주있는 선비들을 불러 모아 견문(見聞)을 쓰게 하여
팔람(八覽)과 육론(六論), 십이기(十二紀) 등의 책으로 편집(編輯)하고
천지만물(天地萬物)과 고금(古今)의 일 등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여씨춘추(呂氏春秋)≫라 하고,
함양(咸陽) 시문에 널리 알려서 그 위에 천금(千金)을 걸어두고
제후(諸侯) 유사 빈객(賓客)들을 끌어 들여
「한 글자라도 첨삭(添削)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천금(千金)을 주겠다.」고 했다
첫댓글 그러나...
권력에 맞서는 者는 없었다.
「한 글자의 값어치가 천금(千金)이다.」는 뜻으로,
a.
지극(至極)히 가치(價値) 있는 문장(文章)을 말함.
b.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俗談)과 맥(脈)이 통(通)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