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반에 눈이 떨어졌다..
낯설은 상황에서도 숙면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요 며칠 한국에서
잠못이루는 밤이 지속되어 목이 붓고 열이나는 몸살,감기증세가 보였었다.
오늘은 일행과 헤어지는 날이다.
짧지만 이국에서 같이 보낸 일행들과 헤어지는 기분은 어떨가?
혼자서 나머지 여정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흥분되는 느낌이다.
욕조에 물을 한가득 채웠다.
어쩌면 이번여행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호사였다.
일행들과 아침을 먹고 차를 타고 타이페이 역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간단하게 이별인사를 하고 내렸다.
냉정하게 내려주고 가는 차뒷꽁무니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혼자 남은 것이지만 혼자 남겨진 느낌,
내가 보낸것이지만 내가 버려진느낌 묘한 감정들이 엇갈렸다.
어차피 인생사는 이별이고 만남이지 않던가.
나는 씩씩하게 타이페이 역사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만에도 고속철도가 있어서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두시간이면 가능하다고하는데
차비가 비싸서 오늘 가려 하는 타이쭝까지
일반열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타이페이역사 안에서 선거유세하는듯 >
우리나라로 치면 새마을쯤 되는 모양이다.
화련갈때 타봤던 기차로 낯설지않았고
언듯언듯 대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기차내 풍경은 편한 느낌이었다.
대만은 가장 북쪽에 타이페이(臺北),타이쭝(臺中) 타이난(臺南),타이똥(臺東),
그리고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까오슝(高雄) 으로 크게 나누는데
이름에서 처럼 위치에서 파생된 이름이란 것을 쉽게 알수있다.
내가 가려하는 타이쭝은 대만의 중앙부쯤에 위치한 도시로 3번째 크다고 한다.
마침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르위에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듣고 타이쭝역에 내렸다.
두시간정도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인데 타이페이보다 후덥지근하다.
<타이쭝역>
내리자 마자 보이는 국광커윈짠에 르위에탄 간다고하니
오른쪽으로 가면 난토우(南投)커윈짠으로 가라며 알려준다.
5분여를 걸어 도착했다.
르위에탄으로가는 몇대 없기에 일단 푸리라는 도시로 가서 갈아타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은 사전에 파악된것이어서 결정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푸리에 도착했다.
1시간여가 걸렸는데 푸리읍내에서 아무데나 버스를 정차시키기에
르위에탄에 간다고하니 다음에 내리라고 일러준다.
푸리에서 르위에탄으로 가는 버스는 종종있었다.
14:00에 르위에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종착역이 쉐이리(水里)인듯하다.
40여분이 걸릴줄알았는데 25분만에 르위에탄에 도착했다.
르위에탄은 어쩌면 경주보문단지와 아주 흡사하다.
수력발전을 위해 물을 가둔 것이 윈래 르위에탄이 좀더 넓어졌고
섬나라인 대만에 보기힘든 호수라서 관광산업으로 발전하고등등……
장개석이 생전에 자주왔다는 르위에탄(日月潭)은
호수의 한쪽 부분이 해를 담고 한쪽부분이 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광사라는 절 가까운곳의 호수부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장개석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기위해서 세운 자은탑이 있는데
호수를 한눈에 볼수있다고 한다.
일단 오늘 목표는 자은탑이다.
순환버스 일일권을 사서 버스에 올랐다.
승객이 나를 포함하여 달랑세명이다.
문무묘에서 내렸다.
.
< 스모그가 가득한 르위에탄_자은탑이 왼편산위에 육안으로 보였으나 판정불가>
<문무묘 전경>
<관우상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 조각인줄 알았는데 포즈를 취해주고 돈을 받더라는 ㅋㅋ>
<중국에서는 관우가 재물신으로 여겨지는듯>
<문무묘>
르위에탄이 한 눈에보이는 전망좋은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내리는 순간 기대는 일순간에 무너졌다.
안개인지, 아니면 스모그인지, 시계가 0.5km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다.
사진으로 찍으면 판독이 힘들정도로 좋지않다.
문무묘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우를 모셔놓은 사당인데
아무래도 섬나라 대만이지만 역시 중국인의 기질은 못속이는듯
건물의 크기와 조형물의 크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
길을 몰라 묻는 이방인에게 대만인들은 너무나 친절하다.
다시 순환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렸는데
생각했던 현광사로 갈 방법이 없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눈꼽이 낀것처럼 시야도 흐리고,
여러모로 여행객을 힘빠지게 했다.
사실 이런날에 자은탑에 오른다해도 올바른 경치를 보기 힘들다,
더구나 르위에탄의 가장 뛰어난 풍광은 일몰시간에 호수에 비치는 석양인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라는 최면을 스스로 걸고나니 내일 일정을 당기고 싶어졌다.
혼자 여행의 최대 이점이 일정수정이다
일단 르위에탄의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순환하는 유람선도 있지만 한지점에서 다른지점까지 태워주는 편도도 있어서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기로했다.
배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귓가에 이는 바람소리가 너무좋다.
출렁이는 느낌도 좋고 무엇보다 꽁무니로 부터나오는 물보라가 너무 좋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다 .
다른 사람들은 호수를 유람하는 중인가 보다.
선착장은 보문호수의 선착장처럼 호텔들로 즐비한 곳에 위치하여 있었고
소수민족공연등 이벤트가 진행중이었다.
주위민박하는 곳에 들러 가격을 알아보니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4만원정도면 싱글룸이 가능한 것 같았다.
<쉐이스하이_인터넷에서 르위에탄숙소검색하면 나오는 민박집_깨끗했음)
터미널로 향했다. 어차피 오늘일정은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여행안내센터에서 길을물어보니
르위에탄에서 아리산으로 바로가는 차편도 있고
쉐이리에 가서 지지선을 타고 얼쉐이로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지아이로 가면
버스로 아리산으로 갈수 있다고 알려준다.
지아이에서부터 아리산은 원래부터 있던 계획이었다..
원래 타이쭝으로 다시 나가서 지지선을 타던지 아니면
지아이로 가서 아리산으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었는데
지름길인듯 하여 하루 정도 계획보다 시간을 벌수 있을 것 같았다.
지지선(集集線) 은
원래 대만의 중부 내륙에 있는 얼쉐이(二水)역과 츠청(車埕)역을 잇는 기차길인데
꼬마열차가 운행되고 있고
1시간여의 기차여행중 내내 열대우림속을 달리는 관계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기차길이다.
중간역인 지지(集集)역 가까운곳에 우창궁이라는 사찰이 유명하다.
우창궁은 달리 유명한것이 아니라
1999년에 발생한 지진에 우창궁이 폭삭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알맞게 무너져 내렸는데
무너진 우창궁을 교육소재로 삼기위해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많은 여행객을 찾게 만든다고 한다.
일단 일정을 하루 당겨 지지선의 종착역인 츠청으로 가기로 했다.
허름한 식당을 골라 들어가 저녁을 먹고 차에 올랐다.
<1600원짜리 밥상>
저녁무렵이라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려한다.
삥랑나무숲을 달리는 차안에는
막 하교하는 까까머리 초등학생들로 하여 발디딜팀이 없이 복잡다.
외지에서 온듯한 여행객을 힐끔힐끔 보는 눈초리가
어릴적 코흘리면서 서울내기을 보는 나자신을 보는듯하다.
그렇게 삥랑숲을 30여분을 달려 쉐이리를 거쳐 츠청에 도착했다.
버스기사와 여행안내센터에서 쉐이리에 가면 숙소를 찾을수 있고.
츠청은 작은 마을이라 찾기가 쉽지 않을것이다 라고 했지만
나는 종착역을 가고 싶었다.
머리속에는 인적이 드문 간이역에 대한 영상이 아련히 떠오르고 있었고
번잡하고 바쁜일정의 여행중에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망중한이라 했던가?
어쨌던 나는 혼자이고 싶었다.
가슴 애리도록 져며오는 고독감을 느끼고 싶었다.
더구나 가을이지 않은가?
버스에서 내린 츠청은 주위풍광이 나를 놀라게 했다.
가구수는 50~60호 정도 될듯하고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역처럼 작고 아담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위풍경과 어울리게 아담한 기념품점과 식료품점이 있는것으로 보아
적지않은 관광객들이 지지선을 타고 오는 모양이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시간이었고
하나 둘 빛나기 시작하는 별빛과 함께 계곡의 물소리가 분위기를 한껏 북돋우고 있었다.
바로위에 수력발전용 댐이 있어서 계곡의 물소리는 폭포소리를 연상케 했다.
조그만 연못에는 예쁜 조명을 비춰 물에 비친 반영이 쟁반같았고
사람들이 북적거렸을 법한 거리는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한산하고
날씨도 선선하여 귓가에 이는 바람은 가을임을 느끼게 하였다.
피곤함을 잊은채 한참을 배회(?)하였다.
<손각대로 찍은호수반영>
< 멋진 글씨체..이모집 간식(?)>
<츠청_ 10월인데도 날씨가 전혀 춥지 않다. >
< 손님 한사람만 떨구고 쉬고 있는 꼬마열차>
마치 우리나라 산골의 인적없는 간이역을 온듯하고
조금멀리 조금만식당 앞에서
남정네 서넛과 젓가락좀 두들겼을법한 아낙네가 기울이는 술잔 소리마저
형용하지못할 황홀함을 주었다.
불현듯 고독함이 엄습해온다.
내가 원하던 것,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일까?
나는 외로움을,고독함을 즐기고 있었다.
역에 막차인듯한 꼬마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들어왔다.
알록달록 색칠을 한 꼬마열차는 승객을 달랑 한명만 내리고
기나긴 여정을 쉬려하는 모양이다.
음력 보름이 사나흘이나 지난듯한 밝은 달이
역사와 꼬마열차를 비추는 풍경은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 멀리서 들려오던 기적소리를 내는 기차와 닮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하게 했다.
떠나 있으면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작은 동네에 잘 어울리는 듯한 민박집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하고 허리가 조금은 굽은듯한 어르신 한분이 잘거냐고 묻는다.
부르는 가격을 깍지 않고 들어갔다.
그 넓은 민박집은 철 지난 피서지마냥 음산한 기운이 돌았고
어르신 내외분과 인도에서 돈벌기 위해 왔다는 종업원 한명 만이
그 넓은 민박집을 지키고 있었다.
짐을 풀고 저녁풍경을 즐기기위해 다시 숙소를 나왔다.
좀전보다 더 밝은 달이 나를 맞는다.
개짖는 소리,
계곡의 물소리,
어린시절 하염없이 바라봤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볼에 닿는 선선한 가을바람,
가로등에 비춰진 버려진 의자의 긴 그림자는 할말을 잃게 만든다
<숙소_허름하지만 폭포소리가 기가 막혔다는 ㅋㅋ>
아무래도 오늘밤은 잠을 이루기 힘들 것 같다.
그렇게 4일째 밤도 깊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