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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1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예상 못한 사명?! 아니, 제자라면 진짜 사명 3가지!
본문 : 마태복음 16장 24절, 누가복음 6장 38절, 요한복음 13장 14절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새번역>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6장 38절, 새번역>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요한복음 13장 14절, 새번역>
샬롬! 복된 추석, 즐거운 한가위 보내셨습니까? 지난 2년간 코로나 때문에 잘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이번에는 많이 만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습니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교류하고, 만남이 자유로웠던 일상으로 잘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 태풍으로 인하여 피해를 겪은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있기를 마음 다해 기도합니다. 같이 위해 기도해 주시고, 마음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9월의 두 번째 주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히 세 군데의 본문으로 마태복음 16장 24절, 누가복음 6장 38절, 요한복음 13장 14절을 본문으로 하여 ‘예상 못한 사명?! 아니, 제자라면 진짜 사명 3가지!’라는 제목으로 함께 듣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문 열고 제자라면 행해야 할 진짜 사명 3가지가 무엇인지 함께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새번역으로 준비된 본문을 하나씩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새번역>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6장 38절, 새번역>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요한복음 13장 14절, 새번역>
뜻밖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정형돈씨의 사진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과 글이, 뜻밖의 상황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상황이 일어날 때는 당황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순리대로, 예상한 대로 흘러갈 때 안정감을 느끼는데 뜻밖의 상황이 나타나면 불안해지고, 답답해지고, 도무지 전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받아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뜻밖의 상황이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기에 당시에 12명의 제자들이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접받을 자리라고 생각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는 위치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뜻밖의 푸대접을 마주하고, 오히려 멸시당하고 고통당하며 핍박받는 예상 못한 위치에 서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명'부터 '뜻밖의 사명'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알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기억해 두고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뜻밖의 상황에서 뜻밖의 사명에 대해서 인지하기도 합니다.
보통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하면, 대부분 '전도'나 '복음 전파'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제자들의 주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전도와 복음 전파에 대한 명령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새번역>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 새번역>
맞습니다. 전도와 복음 전파는 너무도 중요한 사명입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하나님의 사명이 전도나 복음전파만이라고 오해하는 제자들 때문에 오히려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대표되는 이기적인 기독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도와 복음 전파라는 이름 아래에서 '사랑'없이 행해지는 모든 이기적인 태도들은 이미 많은 이들의 등을 돌렸고, 손가락질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실 제자들에게 주어진 진짜 사명은 전도와 복음 전파라는 궁극적 목표 이전에 생각지도 못한 전혀 뜻밖의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 뜻밖의 사명, 기준과 가치를 역전시키는 사명!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4~25절, 새번역>
'자기 부인과 십자가' 이 두 가지는 오히려 제자가 되려하는 이들의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누구나 자기애와 편안한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이런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표현되어지는 기준과 가치를 역전시키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변해야 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마태복음 16장 26절, 새번역>
온 세상을 얻고자 무던히도 노력하는 이 세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더 중요한 기준과 가치인 '생명'을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제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얻고자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따라가던 우리의 발걸음을 역전시켜 '하늘'의 것을 얻고자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완전히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뜻밖의 사명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준과 가치가 더 중요하십니까? 세상의 기준과 가치입니까?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입니까? 당연히 제자라면!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로 역전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인생 최고의 가치 있는 결정을 우리 모두 함께 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진짜 사명입니다. 기준과 가치를 바꾸어야 제자로 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뜻밖의 사명, 주라! 그래야 채울 수 있다! 주는 자가 되는 사명!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6장 38절, 새번역>
누가복음 6장에는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주옥같은 말씀들이 가득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도저히 읽기를 두려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읽고 나면, 알고 나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도무지 감당 못할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라!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 너를 모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한 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뺨도 내밀기!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속옷도 주기! 그리고 불물율인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남을 심판하지 않기! 남을 정죄하기 않기! 등등'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누가복음 6장에 등장하는 이 말씀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구절이 바로 6장 38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라! 남에게 주어라!” 그런데 이 놀랍도록 위대한 말씀을 여기까지만 읽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앞부분만 읽으면 오히려 '주는' 삶에 더 인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이어 나오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에 대해서는 자꾸 외면하고 눈길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주어라!” 이 말씀 뒤에 나오는 '채우심의 약속'을 믿어내는 이들이, 오히려 이 약속을 붙들고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이 바로 ‘제자’입니다. 주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진짜 사명입니다!
제자들은 '주는'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 '주어야 채워지는' 삶을 가진 존재입니다. 흔히들 일단 먼저 채워야, 제법 많이 채워져야 그 후에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무던히도 채우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만족을 모르기에 결국 채우기만 하지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내 안에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라도 꺼내서 주면 부족을 느낄까봐 전전긍긍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그 무엇이든,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면, 주기만 한다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도 없도록,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다시 채우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정말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뜻밖의 비법'입니다. 세상 논리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 뜻밖의 비법을 전수받은 이가 바로 제자입니다. 제자는 다른 이의 부족함을 보고 ‘주는’ 존재라면, 하나님은 그 제자들의 부족함을 ‘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사명과 채움의 비결, ‘뜻밖의 사명’입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새번역>
너의 손에 선을 행할 힘이 있거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주저하지 말고 선을 행하여라. <잠언 3장 27절, 새번역>
매해 연말이 되면 이런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 사진에 있는 편지를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런 분들이 진짜 드러나지는 않지만 진짜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실로 이 땅의 'Unsung Hero'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몇 년간 계속해서 끊임없이 기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기부할 수 있는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부하고 나서도 또 기부할 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 분의 주머니를 하나님이 채우셨다고 믿습니다. 이 익명의 기부천사는 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은 그 익명의 기부천사를 채우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 해 연말에도 이런 익명의 기부천사의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가 줄 때, 하나님은 채우십니다.
세 번째 뜻밖의 사명, 훗날 선생의 위치가 되더라도 스스로 종(보냄을 받은 자)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사명!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요한복음 13장 12절, 새번역>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저는 예수님이 이런 행동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충격입니다. 너무도 감격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약한 종이나 어린 종들이 하던 행동을 예수님이 직접 하시다니! 그것도 직접 겉옷을 벗으시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 앞에 앉으셔서!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언제나 저를 생각의 바다로 초대한 후에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목사가 뭐라고, 대접받는 것에만 익숙해졌고, 교만해졌는지 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당시 제자들 역시 이런 예수님의 행동에 당황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황한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예,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마음속으로 주저주저 답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계속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3~15절, 새번역>
진짜 제자라면, 사명을 부여받은 제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앞으로 많은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면, 무엇이든 말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어떤 행동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바로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는 종이 되는 행동까지 이어지는 것이라는 ‘뜻밖의 사명’까지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위 이 '겸손'의 사명을 허락하시면서 먼저 '서로'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서로’라는 말을 듣고 있던 이들은 바로 그 자리에 있던 12명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 서로부터, 아직 하나가 되지 못한 제자들 서로에게, 먼저 이런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한 종이 되기 이 전에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명을 부여받은 제자는 가정을 소홀히 한다거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등한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길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부터,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지 않는 제자의 사명은 결코 퍼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곧 예수님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포함한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발을 씻겨주며, 서로를 섬기며, 먼저 서로를 향한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번역>
이렇게 함으로,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종'이 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신분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종이 되어 수많은 이들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생이라는 존칭을 받더라도, 우리 스스로는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선생이 되더라도, 우린 그저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요한복음 13장 16~17절, 새번역>
예수님을 주인으로, 선생으로 모시는 우리의 신분은 이미 '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가르치고 전해야 할 그 누군가를 만나게 되더라도 결코 나의 신분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에게 내가 선생이라 불릴지라도 여전히 나의 신분은 종이다'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 것이 ‘3번째 뜻밖의 사명’입니다. 내가 부모가 되더라도 나의 부모님에게는 여전히 내가 '자녀'인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뜻밖의 사명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을 누리는 제자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은 진짜 제자라면 행해야 하는 '뜻밖의 사명 3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뜻밖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은 너무도 핵심이 되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들 위에 전도나 복음전파의 사명이 더해진다면 정말 '금상첨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모든 말씀을 더 깊게 묵상하게 만드는 한 구절을 나누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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