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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王 여불위 41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3
“여름무지개는 음순이 잘 발달하여 감각이 아주 예민합니다. 또 옥문이 비교적 넓고 옥근 깊이가 매우 얕지만 어찌나 예민한지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자지러집니다. 다소 성질이 급한 남자라도 여름무지개하고 하룻밤을 지내면 기운이 솟고 희열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몸이 허약하거나 병든 자라도 치유는 물론이요, 가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름무지개가 과연 그러한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그래도 아직은 흔쾌히 당기지 않는다. 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소나기도 있으니 말이다.
“소나기는 어떻소? 그 아이도 독특할 텐데?”
취한선은 또 고개를 저었다.
“소나기는 특별히 암기로 만들었으니 이제는 상대를 죽이고 싶을 때나 쓰도록 하십시오. 소나기와 열흘만 같이 지내면 어떤 남자라도 병을 얻고, 한 달만 지내면 죽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소나기의 옥근은 활짝 벌어진 꽃처럼 넓지만 정작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이 좁아들면서 그 깊이가 한 자는 될 만큼 깊습니다. 한 칸 한 칸 들어갈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남성들은 더 깊이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양기는 쇠진해질 것입니다. 마침내 용을 써 깊숙이 밀어 넣어야만 거기서 폭포수 같은 음액이 솟구치는데, 그때쯤이면 남성은 대개 실신하고 맙니다.”
“내가 그 아이를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급적 접하지 마십시오. 굳이 접해야 한다면 미리 운동을 많이 하셔서 땀을 충분히 흘린 뒤에 만나십시오. 하루 전쯤 보약으로 정기를 돋워놓지 않으면 심장과 신장이 상할 우려가 있습니다.”
“푸른물결은 어떤가?”
“푸른물결은 기교가 매우 뛰어납니다. 몸이 유연해서 어떤 체위라도 치러낼 수 있을 만큼 좋은 체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푸른물결은 당장의 욕정을 풀기 위해서 만나서는 안되고 오랜 시간 즐기는 상대로 적합합니다. 음순은 두툼하게 솟아나 어느 체위에서도 남성을 받아들일 수 있고, 옥근이 좁고 길어서 하루 종일이라도 교합 상태로 있을 만큼 지구력이 좋습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취한선이 제법 솜씨가 있는 듯했다.
“푸른물결은 고민이 많을 때 만나면 좋겠군. 취한선, 당신은 언젠가는 함양궁에 들어가야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우리 아이들을 잘 지도해주게나.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 미인계를 쓸 일이 많아질 것이고, 상대에 따라, 사안에 따라 적합한 미인을 투입해야만 한다네. 말하자면 진나라 소양왕 같은 늙은이를 회춘시킬 수 있는 여인도 길러내고, 왕자들을 사로잡을 여인도 필요할 걸세. 그러니 필요하면 눈에 드는 여자를 더 구해서 장기별로 잘 깎고 다듬어주게. 각지에 있는 우리 집사들에게 전해서 좋은 여인이 있으면 먼저 자네의 감별을 받으라고 할 것이니 특별히 관심을 가져주게. 한 백여 명까지는 거둬주게.”
“태부님, 그러자면 사내들도 길러야만 합니다.”
“사내는 무슨? 내가 이따금 손질할 건데?”
미인을 구한다면 몰라도 사내를 구한다는 건 여불위의 머릿속에는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취한선의 생각은 달랐다.
“미인계에 쓸 만큼 재주 있는 여인으로 만들자면 한 달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미인들에게 태부께서 일일이 양기를 뿌리시기에는 건강이 우려됩니다. 몇몇 주요 미인을 제외하고는 방술이 뛰어난 사내를 두어 훈련도 시키고, 때때로 양기를 듬뿍 뿌려주어야 얼굴이 뽀얗게 되고 몸매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별소리 다하네.”
사내를 붙여야 미인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여불위로서도 처음 듣는 말이다.
商王 여불위 42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4
“아닙니다. 제가 낙양궁에 있을 때 모시던 난왕은 회갑이 넘은 늙은이라서 왕비며 첩들을 돌볼 새가 없었습니다. 일년에 두어 번 찾기는 찾는데, 그때쯤이면 열댓살에서 겨우 스무살 안팎의 미녀들은 시든 꽃처럼 축 늘어져 얼굴까지 누렇게 뜨기 일쑤였지요. 또 오랫동안 양기를 접해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왕을 만나면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몰래 건장한 사내 다섯명을 환관으로 꾸며 적어도 한달에 한번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후궁에 들여보내 왕의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취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후궁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안에서는 뚝 그쳤던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적막하던 곳에 화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비빈들 얼굴빛도 발그레해지고요.”
“허 그런가?”
취한선의 말도 그럴 듯했다. 용불용(用不用)이니, 여불위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받아들였다.
“아직 태부님의 여인들에게는 써보지 못했지만, 제가 어떤 여자든 무너뜨릴 수 있는 훌륭한 인재 한 명을 찾았습니다. 제가 왕의 침소를 맡아 일한 지 오래 되다 보니 저 자신 기녀들 못지 않은 재주를 지녀 마땅히 상대할 만한 사내가 없었지요. 그런데 태부님 식객 중에 노애라는 자가 있어 그 재주가 비상하다기에 얼마 전 시험삼아 사통했는데 그이가 천하 명물이었습니다.”
“노애? 그놈 얼마 전에 들어온 내 시위무사잖아? 덩치는 큰놈인데 그런 재주까지 있었어?”
“태부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일없이 한가한 날에는 여기저기서 노애를 만나려는 부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답니다. 한번 노애를 맛본 부인들은 남편의 지위가 높고 낮고를 떠나 그 맛을 잊지 못하여 허둥댄답니다. 제가 직접 체험해보니 과연 노애는 천하에 둘도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비록 석녀라도 단박에 감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노애 그놈이 무슨 재주가 있기에?”
“노애의 양근은 수레를 끌 만큼 힘이 좋고, 그걸 세우고 담벼락을 치면 담이 뚫어질 만큼 강합니다. 그러니 그 속이 깊고 오묘해서 여간해서는 희열을 맛보지 못하는 옹녀들까지 평생 맛보지 못한 묘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 아닙니까. 늙은 남편 하나 믿고 평생을 수절하는 부인들이야 노애란 이름만 들어도 미쳐 난리지요.”
“그래?”
여불위는 그 말을 듣고 옳거니 하고 손뼉을 쳤다.
‘왜 미인계라고 하면 아리따운 미인을 바치는 것으로만 생각했을까. 노애 같은 놈만 있으면 왕후며 태자비, 경대부의 부인 등 권세가의 안방을 공략할 수 있잖은가. 이 또한 이문이 크게 남는 장사라.’
여불위는 취한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좋은 사내도 몇 구해보게. 한 열은 구해서 그놈들도 장기를 갖게 하게. 안방 부인들이 좋아할 만한 재주를 몇 가지씩 익히게 하게. 그리고 놈들을 선발할 때는 기왕이면 자네가 직접 감별해보게나. 눈으로만 보지 말고 직접 몸으로 느끼라 이 말일세.”
“예, 그렇게 하지요.”
“뭐, 다 알아서 하겠지만 불덩이하고 소나기만은 절대 건드리지 말게. 아무리 바빠도 그애들은 내가 거둘 테니. 흠, 그럼 오늘은….”
취한선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물러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름무지개를 비단에 돌돌 말아 여불위의 침소로 데리고 들어왔다.
“원래는 환관들이 메고 오는 법인데, 얇은 비단을 여러 겹 감아 걸려 왔습니다.”
그러면서 취한선은 여름무지개를 겹겹이 싼 비단을 풀어냈다. 옷이 아닌 옷감 자체로 두르다보니 훌훌 쉽게 벗어졌다. 그러고나니 하얀 알몸덩어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商王 여불위 43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5)
“어르신, 잘 다녀오셨는지요?”
“오냐. 오늘은 너하고 밤을 보내련다. 취한선한테서 배운 걸 다 내놓으렴.”
“예, 어르신.”
취한선은 침대를 매만지고 향을 피우고 차를 끓여 다구와 함께 늘어놓고, 방문 쪽에 향기로운 꽃을 몇 분 내려놓고는 곧 물러갔다.
여름무지개는 차를 가득 담은 잔을 이마까지 올렸다가 여불위에게 바쳤다. 그러고보니 손놀림이 예전같지 않게 세련되어 있었다. 취한선을 얻은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여름무지개는 재잘재잘 얘기를 시작하면서 여불위를 공격해왔다. 목소리가 특별히 아름다운 걸 보니 감미로운 방중 대사를 많이 쓰는 훈련을 한 모양이었다. 귀가 먼저 달아오를 만큼 여름무지개가 토해놓는 말은 마디마디가 매혹적이었다.
여불위가 차를 다 마시자 여름무지개는 부드러운 젖살로 가볍게 도인술을 해주기 시작했다.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듯 아늑했다. 이따금 여름무지개의 다복한 음모가 가슴팍을 쓸듯이 지나가면 혈류가 더 급히 달리는 듯했고, 길게 늘어진 음순이 입술 언저리를 훑고 지나가면 양기가 불뚝 솟아올라 여독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과연 여름무지개하고 하룻밤을 지내면 기운이 솟는다더니 정말로 그랬다.
뜨거운 정열은 느낄 수 없어도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낯익은 집안에 들어설 때의 기분처럼 평화롭고 상쾌했다. 음양 교접이란 늘 급하고 격하고 열기를 발산하는 것이려니 여겼는데 취한선이 길들여 놓은 여름무지개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취한선은 작은 손놀림에도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좋은 악기를 연주하는 듯, 천상의 천녀가 속삭이는 듯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귀에 녹아들었다. 여름무지개는 음순 놀리기를 마치 입속의 혀를 놀리듯 자유자재로 하면서 갖은 희롱을 놓았다. 공자가 늘 악(樂)을 강조했는데, 악 중의 악은 이렇게 사람의 악이 더욱 신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여름무지개와 두어 시진을 지내고 나니 몸이 가뿐해지고 원기가 돌아오는 듯했다. 여름무지개를 처음 구했을 때 느꼈던 감흥과는 사뭇 달랐다.
이 정도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취한선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다. 큰 장사를 앞둔 만큼 여불위 자신도 이제는 건강을 챙길 때가 됐고, 더 이상 설기(泄氣)하지 말고 축기(縮氣)에 나서야 한다.
하룻밤 고향집에서 노독을 푼 여불위는 대업을 위한 장정에 돌입했다.
전에 함양으로 떠나기 전에 식객들에게 말해두었던 것이 몇 가지는 계획대로 갖춰지고 있었다. 그때 쓸 만한 장수들을 구하라고 일러두었는데, 이사와 호달이 그새 다섯명을 구해 후원에서 말타기와 창검술을 훈련시키는 중이었다.
덩치를 보니 보리밥 한 말은 너끈히 해치울 만한 거구들이었다. 창검이란 힘센 놈이 장사이니 우선 체구가 커야 하고, 그러면서도 날렵하기만 하면 일당백의 장수가 될 수 있다.
“자네들도 나와 함께 한단에 가세. 할 일이 있네.”
총대궁에 둬 왕손을 지키게 할 셈이었다. 조나라 군사들이 총대궁을 지켜주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질을 붙잡아두려는 목적이고, 진정으로 왕손의 목숨과 안전을 지키려는 건 아니다. 언제고 조나라 왕의 명령이 떨어지면 두 손을 묶어 끌고갈 수 있도록 대기시키는 것뿐이다. 그래서 여불위는 이들 장수를 왕손 영이인의 식객처럼 위장시켜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물건이 상하면 안된다.’
여불위는 이런저런 준비를 모두 마친 뒤에 지금까지 꾸려본 중에서 가장 큰 상단(商團)을 꾸려 조나라 서울 한단으로 떠났다.
商王 여불위 44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6
한단에 이르자마자 지점으로 파견나와 있던 이사가 상단을 맞이했다.
“태부 어르신, 어서 오십시오. 그간 왕손은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춘추학을 두루 훑고 있었습니다.”
“수고 많았네. 요진은 어떻게 지내는가?”
“환관 요진도 왕손에게 왕실 예법을 가르치느라고 바쁩니다. 다만 총대궁을 지키는 대부 공손건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 틈틈이 할 뿐 더 깊이 익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우리가 천하에서 가장 비싼 기화를 가지고 있다는 걸 누구한테도 들켜서는 안되지. 이사, 자네는 말이야. 호달과 함께 시위무사로 위장하여 따라온 장수들을 총대궁에 밀어넣어 자나깨나 왕손을 지키도록 해주게. 여기 500금을 따로 줄 테니 다른 나라에서 사절로 찾아오는 열국의 선비들을 총대궁으로 초청해 교유를 트도록 하게나. 그중에서 인물이 될 만하다 싶으면 우리 식객으로 뽑도록 하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해 바닷가에서 명성이 자자한 요리사 한 명을 뽑았는데 그 자의 요리가 기막힙니다.”
“요리사는 쓸모가 많으니 더 뽑아야 할 거야. 진나라 요리사는 함양궁에 넘칠 테니 그만두고 초나라 출신 요리사를 더 찾아보게. 요리가 발달한 초나라는 자네 고국이기도 하니 손닿기도 쉬울 것 아닌가. 그리고 기왕이면 음양가(陰陽家), 유가(儒家), 묵가(墨家), 명가(名家), 법가(法家), 도가(道家), 농가(農家), 병가(兵家)에서 훌륭한 선비가 있으면 꼭 식객으로 모셔주게나. 왕손 교육도 중요하지만 왕손의 태부인 나 자신이 공부를 해야겠네. 천하를 읽어야 할 사람은 왕손이 아닌 나 여불위라네.”
여불위는 한단 지점을 본점으로 바꾸는 만큼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 다음 이사와 장수들, 의원 화독 등을 이끌고 총대궁으로 갔다.
여불위는 먼저 대부 공손건을 찾아가 예물을 올렸다. 말이 예물이지 돈으로 쳐 50금은 나가는 물건 중 환금성이 뛰어난 것으로 골랐다. 팔아 쓰라는 뜻이다.
“대부, 뵙지 못한 사이 저는 천하를 떠돌며 장사를 잘 하고 돌아왔습니다. 제 바둑 친구는 잘 있는지요?”
“여 대인, 늘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저는 장사꾼이라서 가진 건 돈밖에 없습니다. 돈 아니면 제가 무슨 수로 장군 같이 귀한 어른을 사귈 것이며, 진나라 왕손과 마주앉아 바둑을 둘 수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제 인질 친구는 잘 있겠지요?”
“그러믄요. 안에 들어가 마음껏 만나십시오.”
여불위는 공손건의 허락을 받고 총대궁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뇌물을 쳐도 총대궁에 들어가려면 공손건의 허락은 꼭 받아야만 된다. 뇌물을 쳐서 부드럽게 할 수는 있어도 자물쇠는 늘 공손건 손에 들려 있다. 사람의 본성이 문제가 아니라 입장이 피아를 만드는 것이다.
여불위는 쓰고 싶지는 않으나 꼭 필요한 뇌물을 쓰고 난 다음 총대궁으로 들어가 진나라 인질 영이인을 만날 수 있었다. 영이인은 여불위를 보자마자 얼른 달려나와 일행을 맞아들였다. 그는 이제 여불위가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꾀죄죄한 거렁뱅이가 아니었다.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얼굴에 자신감이 붙으니 과연 왕손은 왕손이구나 싶은 기품이 느껴졌다. 그 기품이 더 살아나기 전에 확실히 못을 박아둘 게 있다.
“왕손, 제가 장사꾼인 건 잘 알고 계시지요?”
“그럼요.”
“그럼 장사 좀 합시다. 저는 제 전 재산을 털어 왕손께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왕손께서는 저를 위해 무엇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商王 여불위 45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7
“저는 불우하게 태어나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고독한 처지에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진나라 인질로서 적국인 조나라의 푸대접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나마도 여 대인께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해진 옷을 입고 거친 보리밥이나 먹으면서 저잣거리를 헤매야 할 신세입니다. 가진 거라곤 5년 전 진나라를 떠나올 때 갖고 온 옥피리 하나가 다입니다.”
누가 그까짓 옥피리를 달래나.
“왕손, 왕손은 그렇게 가난하신 분이 아닙니다. 왕손께서는 누구도 갖지 못한 값비싼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미래를 제게 파십시오.”
“오지도 않은 미래를 팔라고요?”
“그렇습니다. 아직 소식을 자세히 듣지 못하셨겠지만 저는 얼마 전 왕손을 위해 함양에 다녀왔습니다. 제 재산을 털어 두루 노력한 결과 왕손께서는 태자비 화양부인의 적자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안국군의 적자가 되신 것입니다. 또한 저는 태자 안국군에 의해 왕손의 태부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한심한 인질이 아니라 장차 최강대국 진나라의 태자가 되고 왕이 되실 분입니다.”
“그러면 뭐하오. 전쟁이라도 터지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래서 제가 있습니다. 그 미래를 파십시오. 거절하시면 저는 양책으로 돌아가 장사나 하며 이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더러 한단에 들러 저잣거리를 배회하는 왕손을 만나게 되면 용돈쯤은 드리고 가야겠지요. 하지만 그나마도 조나라 왕이 잡아가 목이라도 날려버리면 할 수 없는 일이고요.”
여불위의 흥정에 영이인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미래를 사겠다니, 자신에게 과연 팔 만한 미래가 있기나 한지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여불위의 말대로 자신의 운명은 풍전등화 신세다. 그런데도 양책의 거상 여불위가 전 재산을 털어 자신의 미래를 비싼 값에 사겠다고 한다. 여불위의 재산은 수십만금이 넘는다. 아니, 백만금이 넘을지도 모른다. 여불위의 제안대로라면 적국의 인질 신세를 벗어나기만 하면 탄탄대로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또한 여불위가 나서면 인질로 매인 몸이 풀려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지금은 혼자로는 이 역경을 극복해나가기가 어렵다.
“여 대인, 좋습니다. 제 미래를 대인께 팔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각부터 저는 왕손의 태부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잠시 몇 말씀 여쭙겠습니다. 왕손, 저를 진정 태부로 따르시렵니까?”
“물론이지요.”
“왕손께서 태자가 되셔도 저는 계속 태부로 있나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왕손께서 장차 왕이 되시면 저를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재상으로 임명하겠소.”
여불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재상 말고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으신지요?”
“재상은 기본이지요. 그러지 말고 진나라의 반을 나눠 주십시오.”
“예? 나라를 갈라 달라고요?”
당돌한 요구다. 전국(戰國) 시대의 최강국 진나라의 절반을 떼 달라니, 그것을 가치로 환산하자면 도무지 계산조차 나오지 않는 어마어마한 물건이다. 영이인은 입을 떡 벌린 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는 전 재산을 겁니다. 진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왕손을 무사히 모시고 돌아갈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신은 파산하고 맙니다.”
그래도 영이인은 나라의 절반을 떼 달라는 여불위의 요구에 속시원히 대답하지 않았다.
商王 여불위 46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8
‘허, 이놈봐라. 거렁뱅이 새끼를 구해주었더니 이제는 보따리 찾는 격이군. 그렇다면….’
여불위는 이미 이러고저런 경우에 어떤 수를 쓸지 다 계산해두었다. 영이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운명의 수레바퀴는 저희들끼리 따로 굴러간다.
“허허허, 왕손을 잠시 놀렸습니다. 신은 재상만 시켜줘도 감읍하고 말고요. 놀라셨지요?”
영이인은 여불위가 먼저 큰소리로 웃자 그제야 굳은 얼굴을 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태부 때문에 간이 떨어질 뻔했습니다. 아무려면 나라 절반이야 떼줄 수 있겠습니까? 재상만 해도 호의호식하는 높은 자린데 말입니다. 나라를 반으로 쪼개 드리지는 못해도 권력은 절반을 떼어 드리는 것입니다.”
“병권(兵權)을 가진 재상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왕손을 받들어 모시고 전국을 통일할까 합니다.”
“꼭 그래 주시오. 천지신명 앞에 태부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리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 여기 모인 제 가신들도 들었고, 귀신들도 들었을 것입니다만, 기왕이시면 그 말씀을 하늘에도 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불위가 손짓을 하자 무장 호달이 흰 양 한 마리를 앞으로 끌고 나왔다. 그러고는 즉석에서 자그마한 칼을 꺼내 양의 심장께를 찌르더니 금세 피 한 그릇을 받아냈다. 호달은 양의 붉은 피가 담긴 그릇을 여불위에게 올렸다.
“왕손 저하, 삽혈하시고 맹세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삽혈 의식은 주나라 왕실이 제후들로부터 충성을 서약받을 때 쓰는 방법으로 희생의 피를 나누어 마시며 맹세와 저주를 하는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 왕손 이인은 여불위가 건네는 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느새 입술에 붉은 피가 묻었다. 그런 상태로 왕손 이인은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진나라 왕손 이인은 천지신명께 맹세합니다. 제가 왕이 되면 태부 여불위를 재상으로 모시고, 병권을 주어 천하를 통일케 하겠습니다. 제가 만일 이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하늘이시여, 저를 파멸시키고 저의 자손들을 절멸시키소서.”
여불위도 자초로부터 피가 담긴 그릇을 이어 받아 한 모금 들이마셨다.
“진나라 왕손 이인의 태부 여불위는 천지신명께 맹세합니다. 이인이 태자가 되고 왕이 될 때까지 전재산을 바치고, 온 정성을 다하여 보필하겠습니다. 제가 만일 이 맹세를 어기면 하늘이시여, 저를 파멸시키고 저의 자손들을 절멸시키소서.”
삽혈 맹세까지 하고나서야 여불위는 약간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삽혈 맹세를 하고도 천자국인 주나라를 침공하기도 하고, 전쟁을 벌여 다른 나라 제후를 죽이기도 하는 게 춘추전국 시대의 의리였으니, 맹세를 꼭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미래를 논하겠습니다. 우리 가인 이사가 이미 말씀드렸겠지만 천자국인 주나라 왕실에서 환관 일을 하던 요진을 통해 왕실의 법도를 익혀 두십시오. 왕손께서는 오래도록 궁궐을 떠나 있어 왕실의 법도를 배우실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는 태자의 적자로서 장차 태자가 되실 품위와 격조를 갖추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훌륭한 요리사를 구했으니 산해진미를 고루 들면서 건강하시고, 천하의 선비들을 초청하여 요리를 대접하고, 그들을 휘하로 거두시기 바랍니다. 또한 왕손께서 비록 이 태부를 비롯하여 많은 가인을 거느리고는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조나라의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의의 사태를 막기 위해 전쟁터를 누비던 경험 많은 장수 다섯 분을 초청했습니다. 이 분들이 가까이서 멀리서 늘 왕손을 지킬 것이니 안심하소서. 왕손께서도 이제는 태자의 적자가 되셨으니 앞으로는 저잣거리를 나다니시는 것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전에야 누구도 돌보지 않는 거렁뱅이 신세셨지만 이제는 언젠가는 진나라의 왕이 되실 귀한 몸이십니다. 늘 조심하소서.”
商王 여불위 47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9
“그러지요.”
‘그러지요’라니. 여불위는 지금 호위를 구실로 영이인을 완전히 구속하려는 것이다.
장수 다섯 명이 영이인을 지킨다지만 무엇을 지킬지는 알 수 없다. 바깥사람이 영이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지, 아니면 영이인이 바깥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을지 그건 여불위가 정하는 것이다.
여불위는 자신의 식객으로 영이인을 포위시켜 옴짝달싹 못하게 할 참이었다. 그래 놓고 나라를 반으로 갈라먹는 것은 시간을 두고 차차 흥정해도 늦지는 않다. 장사는 때가 오도록 기다리는 예술이다.
“태자 전하의 지엄하신 분부에 따라 신은 이틀에 한번씩 친히 강의를 할 것입니다. 또한 매일 학자들을 보내어 학문을 연마하시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쯤 되자 영이인은 정말로 자신이 태자의 적자가 되긴 되었나 보다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럴수록 이 기화(奇貨)의 값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여불위의 이익도 올라간다.
“왕손, 그나저나 참 궁금했는데 이름이 왜 이인(異人)입니까? 무슨 뜻이 있으십니까?”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질도 가꿔야지만 상표도 그만큼 중요하다. 영이인의 이름은 ‘기이한 사람’이란 뜻이다. 하긴 여불위가 그를 기화로 찍었으니 이인은 이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일을 미리 알고 이름을 지었을 리는 없고, 여불위는 장차 왕이 될 사람의 이름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예, 실은 저도 커서야 그 의미를 알았는데 아버님께서 제 용모를 보시고 그렇게 지어주셨답니다.”
“용모가 어때서요?”
“잘 보십시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미간이 아주 넓습니다. 그래서 미간이 한 자나 된다고 과장하여 미간척(眉間尺)이라고 부르는 궁인들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미간에 검은 사마귀가 여기 이렇게 있잖습니까? 이 사마귀를 호사가들은 용 두 마리가 서로 다투는 여의주라고 하여 이룡창주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제 눈썹은 용 두 마리이고, 사마귀는 여의주란 말이지요.”
그러고보니 영이인의 미간은 퍽 넓기도 넓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 중간에 자리잡은 좁쌀만 한 사마귀였다. 여불위는 화독에게 눈짓을 하여 자세히 보라고 주문했다. 지난번에 한단에서 초빙한 관상가는 영이인의 관상을 보고 왕상이라고 평했었다.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로 볼 때 그 관상가도 제법 앞날을 본 셈이다.
그렇지만 넓은 미간과 그 사마귀 때문에 이름까지 이인이라고 지은 것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애들 때나 부르는 아호라면 몰라도 장차 왕이 될 이름으로는 부족하다. 여불위는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상상은 엉뚱한 데로 미쳤다.
‘지금 왕손을 함양궁으로 복귀시키려면 태자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 태자를 움직일 사람은 태자비 화양부인이다. 태자비를 감동시키자면 태자비의 고국을 기려 초(楚)로 짓자. 그러면 영이인은 왕손이니 자초(子楚)라고 부르면 된다.’
자(子)는 성 뒤에 붙어 학식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공자, 맹자, 노자 따위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성 앞에 붙는 경우도 있는데, 왕의 아들이나 손자의 경우다. 어느 시대나 그런 건 아니고 전국시대에 있던 풍습이다. 그러므로 영이인의 이름을 초라고 지으면 정식 이름은 영자초가 되는 것이다.
“왕손, 이 태부가 첫 작품으로 이름을 바꿔드릴까 합니다. 태자비이신 어머니를 간절히 그리워한다는 의미로 초(楚)라고 개명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시면 어머니께서는 왕손의 효성에 감복하실 것입니다.”
商王 여불위 48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10
“그럴까요? 그렇다면 태부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요.”
‘그렇다면’ 따를 게 아니라 무조건 따라야 한다. 왕손의 대답이 이처럼 무심한 것은 그가 진심으로 태자비를 위해 효성을 바치고 절하고 그리워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모두 여불위가 태자와 태자비의 마음을 격동시키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일 뿐이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지도 않은 태자비를 위해 이름을 짓는다니 그로서는 얼떨떨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눈치는 누구보다 빨라 대략 의미를 알아챘다.
“이제부터라도 태자비를 어머니로 모시고 극진히 사모하겠습니다.”
“그래야지요. 오늘 초나라 물품을 많이 구해왔으니 초나라 복식을 입으시고, 초나라 음식을 드시고 초나라 풍속을 익히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중에 함양궁으로 돌아가실 때는 초나라 복식을 입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태자비를 그리워하시고, 매일매일 부모님을 위해 축원하십시오. 그래야 왕손의 미래가 열리고, 저의 미래가 아울러 열리는 것입니다. 전 재산을 투자해 왕손을 구출하려는 이 태부의 심정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자나깨나 자신의 은혜를 왕손 자초의 머리와 심장에 깊이 각인시켜야 한다. 다행히 동행했던 의원 화독은 영이인이 심지가 굳고 배신을 그리 쉽게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그런다고 경계심을 풀 수는 없다. 거래가 끝나기 전까지 장사꾼과 구매자는 쉴 새 없이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해야 한다.
이날 총대궁에 가신을 두루 포진시킨 여불위는 한단의 저택으로 돌아와 이사와 함께 큰 그림을 그렸다. 그런 중에 하나가 그 자신이 학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 유가나 도가, 법가 문하에 들어가 한가하게 공부할 수는 없고, 일을 하는 틈틈이 선비들을 저택으로 불러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영이인이 무사히 함양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자신은 명실상부한 태부로서 권력을 누릴 수 있고, 그러자면 장사하느라고 바빠 못했던 공부를 미리 해두어야 한다. 영이인같이 특출한 기화를 팔아치우려면 장사꾼도 그에 버금가는 수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사가 물러간 뒤 여불위는 큰 방에 홀로 앉아 고민했다. 지금 매기가 떠오른 이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왕손 자초를 보기 좋게 세공하는 일이다. 값이 나가게 만들려면 그만한 공을 들여야 한다. 주나라 왕실의 환관을 붙여 예법을 익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 ‘물건’을 살 사람은 진나라 태자 안국군과 태자비 화양부인이다. 그 두 사람 눈에 들어야 한다. 왕손 자초야 무슨 생각을 하든 일단 구매자의 구미대로 물건을 맞춰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불위는 함양에 머무는 동안 화양부인의 언니 목양부인을 통해 태자 부부의 생활 습관이며 기호까지 다 파악해 두었다. 자초를 그들 두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 것은 이제 환관 요진이 알아서 가르쳐줄 것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물건’은 ‘물건’으로 끝나야 한다. 그러니 제자백가의 학자들까지 붙여 자초를 똑똑하게 만들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저 흥정이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는 정도의 세공이 필요하지 그 이상은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겁이 나는 건 왕손이 장차 태자가 되고 왕이 된 다음에 과연 맹세를 지켜줄까 하는 것이다. 진나라를 오늘날의 강국으로 만들어준 상앙은 결국 진나라에서 참담하게 죽었고, 초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어준 오기 역시 다른 나라가 아닌 초나라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또한 조그만 변방의 야만족 오나라를 패자로 만들어준 오원도 필경에는 그가 충성을 바쳤던 왕 부차에게 목을 내놓아야만 했다.
‘자초가 내 목을 내놓으라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민이다. 이게 고민이다. 보석이나 청동검, 값비싼 모피를 팔면 그것으로 거래가 끝이지만 살아 있는 걸 팔면 뒤탈이 걱정이다. 명마라고 판 것이 한 달도 안돼 병으로 죽거나 미인이라고 붙여준 여인이 시기질투로 분란이나 일으키면 판 사람도 온전치 못하다. 하물며 살아 있는 권력을 사고파는 문제가 왜 아니 복잡하겠는가.
商王 여불위 <49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11)
여불위는 상앙, 오기, 오원처럼 평생 충성을 바친 왕으로부터 목을 내놓으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찜한 ‘상품’이 왕이 되든 태자가 되든 뒷덜미를 낚아채어 좌지우지하고 싶었다. 아니, 상대가 배신할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병권을 잡는 것이다. 해서, 사병도 길러야 한다. 왕명이 아닌 자신의 명령만 받드는 충성스러운 장수들도 길러야 한다. 거래를 안전하게 성사시킬 능력이 없다면 그건 장사꾼도 아니다.
“대인, 저 불덩이입니다.”
여불위가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불덩이가 문을 두드렸다.
“네가 웬일이냐? 취한선이 들어가라고 허락하더냐?”
“예, 그러합니다.”
“그러면 어서 들어오너라.”
곧 불덩이를 앞세워 취한선이 들어왔다.
함양일을 끝내고 돌아온 이래 여불위는 아직 불덩이를 품어보지 못했다. 취한선의 권유대로 양기를 보충하는 의미로 여름무지개와 푸른물결만 서너 차례 안아 보았을 뿐이다. 이따금 정열적인 소나기도 부르고 싶었지만 취한선이 한사코 반대하는 바람에 체면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전 같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취했겠지만 이제 천하사를 앞두고 자기 자신부터 절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른 것도 아닌 왕직(王職)을 개발해 파는 큰 장사 아닌가.
“태부 어른, 오늘 큰 거래를 하고 오신 줄 아옵니다. 원기 회복이 필요할 것 같아 오늘은 특별히 불덩이를 취하는 게 좋을 듯싶어 준비했습니다. 또한 불덩이를 혼자서 너무 오래 있게 두면 그 불씨가 꺼질까 걱정되기도 하구요. 어르신의 분부가 아니었다면 이 아이의 미모와 심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내라도 시켜 양기를 흠뻑 뿌려주었을 것입니다.”
“예끼, 이 사람아. 불덩이만은 그 누구도 손끝 하나 대선 안되네.”
취한선이 물러가자 불덩이는 여불위에게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전에는 저만 사랑해주시더니 왜 이젠 저를 멀리 하시나요? 너무 외로웠어요.”
“나도 외로웠다. 하지만 우리 서로 참을 일이 있다. 너도 더 아름다워져야 하지만 나 역시 더 멋있어져야 할 것 아니냐. 십만금짜리 장사꾼인 것하고, 백만금짜리 장사꾼인 것하고 네 욕정이 다르게 요동치지 않겠느냐?”
“호, 그건 사실이지요. 산같이 쌓아놓은 돈 앞에서 욕정을 불태우지 않을 여인도 있을까요? 사내의 손길이 없어도 저절로 절정에 오를걸요.”
십만금짜리 사내하고 백만금짜리 사내는 생물학적으로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뇌가 다르게 반응하니 문제다. 성감대 중의 성감대는 다름아닌 뇌다.
“내가 아니라 다른 놈이라도 돈만 많으면 그럴 거란 말이지?”
“뭐,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지요. 같은 인물이라도 왕이나 제후라면 좀더 흥분이 빨라지지 않을까요?”
여불위는 불덩이의 엉덩이를 철썩 두드리며 웃어주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진나라 왕손의 태부가 되니 이 옥경이 탐스럽게 보이는 모양이구나.”
“그러믄요.”
“나중에 태자의 태부가 되면?”
“바라보기만 해도 온몸이 뜨거워지겠지요?”
“왕의 재상이 되면? 진나라 재상 말이야.”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애액이 흘러나오지 않을까요?”
商王 여불위 50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12
“허, 요것 말하는 게 아주 예쁘구나.”
더 기다릴 것없이 여불위는 불덩이를 끌어당겨 힘차게 입을 맞추었다.
“태, 태부 어른, 잠시만요. 저도 당장 무너지고 싶지만 먼저 할 일이 있어요.”
불덩이는 여불위의 가슴을 밀쳐 겨우 떨어지더니 허리춤에 달려 있던 비단주머니를 풀었다. 거기서 빨간 대추 열 알이 나왔다.
“취한선 님이 이걸 씹어 드리라고 했어요.”
“왜?”
“그러지 않으면 몸이 상하신대요.”
“전에는 그냥 해도 좋기만 했다.”
“제가 좀 달라졌거든요. 옛날의 저하고 지금의 저하고 완전히 다른 여자랍니다. 그러니 이걸 잡수셔야지요.”
불덩이는 대추 두 알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서 쑥 자라오르는 여불위의 옥경을 가볍게 주물렀다. 그러다가 혀로 씨를 빼어 잘게 씹은 대추 두 알을 입을 맞춘 상태에서 여불위의 입속으로 밀어넣어주었다. 그러기를 준비한 대추 열 알을 다 씹어 여불위가 삼킬 때까지 계속했다.
“이젠 되었느냐? 이거, 기다리기가 너무 힘이 드는구나.”
“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시험해 보실까요?”
“어떻게?”
“옥문에 손을 넣어보세요. 그럼 아실 거예요.”
여불위는 불덩이가 시키는 대로 옥문에 손가락 하나를 스윽 들이밀었다.
“앗, 뜨거!”
여불위는 마치 불에 덴 듯 소스라치며 손가락을 도로 빼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뽑히질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조화냐? 환술이라도 부리는 거냐?”
“제 몸속은 화로처럼 뜨거워졌답니다. 그러고도 한번 물면 내놓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태부님은 마치 뻘을 걷는 기분일 겁니다. 그러고도 저는 그 안에서 옥경을 주물러 양생도인하는 기술도 가지고 있답니다.”
여불위가 눈을 감고 가만히 느껴 보니 과연 누군가 일부러 만져주는 듯 부드러운 근육이 손가락을 쓸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아닌가.
“태부 어른, 취한선 님이 말씀하시기를 제가 환생한 달기 같답니다. 주왕이 달기의 옥문에 한 번 뿌리를 내렸다가 그 후 다시는 뽑아내질 못했답니다. 그러고도 달기는 주왕의 기운을 올리고 내리기를 자유자재로 하여 사정을 막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여 즐거움을 백배 천배로 올렸답니다.”
“그래서 우리 상나라가 망했다는 말이더냐? 하하하. 그렇다면 넌 어떤 나라를 망치려 하느냐? 이 여불위의 나라를 망치려느냐?”
“나라가 있다면야 저는 경국지색이겠지만, 일가(一家)쯤 희롱하는 거야 경가지색이라고 하겠지요?”
“저런, 우리 집안이 망하기 전에 널 어디 멀리 보내야겠구나.”
“하하하. 그러셔요. 기왕 보내주시려면 왕이나 제후에게 보내주세요. 그 사람들 옥경은 금인지 옥인지 한번 실컷 구경이나 하게요.”
“나도 그러고 싶구나. 왕후며 비빈들 옥문에 봉황문이 그려졌는지 용문이 그려졌는지 보고싶구나. 그러기 전에 우선 나부터 쓰러뜨려 보렴.”
그러자 불덩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여불위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