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얼마나 더웠는지요. 언제쯤 이 더위가 가실까 했는데, 요즘 갑자기 아침 저녁,추워져 오히려 얇은 이불이 원망스러울 정도가 되어버렸어요. 채비도 하기 전에 벌써 가을이 되어버려 많이 당황스럽더군요. 여름내 훌쩍 커버린 큰 애 바지가 마땅하지 않은 것 같고, 둘째도 항상 주위에서 얻어온 것만 입히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어차피 셋째가 물려받아 입기도 할 거니까 이 참에 괜찮은 점퍼 하나 사줘야겠다 싶어 큰 맘 먹고 서귀포 신시가지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가게 되었어요.
대형 할인점은 갈 때마다 미리 메모한 목록은 필요 없게 만들어버리지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꼭 필요한 물건(?)‘이 왜 그렇게 많이 눈에 띄는지, 또 왜 그렇게 집 근처 마트보다 싸고 양도 많고 덤도 많아 ’내가 지금 안사면 반드시 후회할 물건(?)‘이 많은지요. 셋째가 아직 어려 자꾸 나서지도 못하는데 이왕 온 김에 사두자는 생각으로 카트 한 가득 담게 되었어요.
그렇게 전쟁(?)같은 쇼핑도 다 마무리되어갈 무렵 우연히 둘러본 유아용품 매장이 화근이었어요. 유모차에서 손 빨며 얌전히 자고 있는 셋째, 지원이의 머리가 허전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짙은 빨강색의 주먹만한 크기의 모자에 손이 갔고 값을 보고는 다시 놓았다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여태까지 셋째인 지원이한테는 제대로 사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이 모자 하나면 아무 옷을 입혀도 그럴듯하게 보이겠다 싶어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꽉찬 카트 위로 올려놓았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지출로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가 싶더니 ‘엄마, 이 옷 이쁘다.’하며 좋아라할 아들, 딸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가 하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때 맞춰 다섯 살 아들과, 네 살 박이 딸이 어린이집 차에서 내렸고, 같이 낑낑 대며 우리 집 올 가을을 책임질 그 박스(?)들을 옮기고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죠. 멋있다고 이쁘다고 난리였죠. 정말 반응 이상이었어요. 누구보다 흡족해한 건 바로 저 였구요.
지원이의 두건이 없어진 걸 안 것은 애들 아빠가 퇴근하고 난 후였어요. 알고 보니 정말 셋째 지원이의 모자가 없는 거예요. 짐 정리할 때부터 없었던 것 같은 기억도 났지만 우리는 자동차안과 트렁크, 들고 왔던 모든 박스들 샅샅이 뒤지고 또 뒤졌지요. 없더군요. 감쪽같이.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우리 다섯 식구는 급하게 그 대형 마트로 향했고 급기야 CCTV까지 확인한 결과, 제가 분명 계산하고 다시 직접 카트에 담은 것이 확실했어요. 그렇다면 제 잘못으로 어딘가에 떨어뜨린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이 났구요.
(그 바쁜 저녁 시간에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신 그 마트 직원한테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요)
그 일을 계기로 요 며칠 저는 짬날 때마다 일부러 지원이를 자꾸 안고 부벼대고 쓰다듬고 귀에다 ‘사랑해지원아’ 속삭이고 그래요. 그간 제가 셋째한테 너무 많이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셋째라고 알게 모르게 너무 소홀히 대했던 게 사실이거든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다는 핑계로요.
첫째 둘째는 백일 사진도 제때에 잘 찍어줬는데, 지원이는 백일을 훌쩍 넘겨서 겨우 찍으러 갔는데, 너무 울 길래 나중에 다시 찍기로 하고는 여지껏 못 가고 있어요. 또 셋째 낳고 여기저기서 들어온 선물들 중 특히 작은 내의들을 큰 사이즈로 바꿔야 하는데, 지금껏 바꾸러 가지 못했구요. 지금 가면 바꿔줄려나 모르겠어요.
특히, 첫째, 둘째는 6개월까지 전적으로 모유수유를 했는데, 셋째한테는 처음부터 혼합 수유를 해야 했어요. 모유 수유는 적어도 20분 충분하게 해줘야 하는데, 저는 진득하게 앉아 수유할 입장이 아니었거든요. 둘째가 기저귀 뗄려고 할 즈음이어서. 가만히 누워 있는 셋째보다 둘째한테 손이 더 많이 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모유와 분유를 같이 먹여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껏 혼합수유를 했구요.
또 아침에 부랴부랴 오빠, 언니 챙겨 어린이 집 보내고 나서 한가한 낮 시간에는 안아주고 놀아주고 데리고 나가고 하면 좋을텐데, 웬 걸요, 그 시간에는 빨래하랴, 청소하랴, 여기저기 정리하랴, 4시되어 올 아이들 맞을 준비하랴 특별히 지원이가 징징거리지 않으면 그냥 혼자 놀게 내버려두게 되거든요.
그래요. 제가 지원이한테 좀 더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었더라면 그 모자도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좀 더 소중하게 생각했었더라면. 큰 애 옷, 둘째 옷에 신경 쓰는 것 조금만 나눠서 신경 썼더라면..
오늘 지원이 데리고 예쁜 모자 사러 가기로 했어요. 오직 셋째를 위한 외출을 하기로 한 거예요. 내의도 바꿔오고, 6개월 기념 사진(?)도 찍어주고요.. 또 가능하면 유모차에 태우지 않고 안거나 업어주기로 했어요. 이제부터라도 정말 세심하게 챙겨줄려구요.
“지원아,
앞으로는 네게 더 이상 미안해 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사랑할게..
힘내라, 우리 셋째!!”
첫댓글 엄마는 대단합니다..아침부터 잠들기까지 시간이 항상 모자라지요.. 품에 있는 시간이 그리울때도 있으니 힘내세요..지원이도 이해하고 있을겁니다 .홧~팅 지원이 엄마의 하루가 눈에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