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철 시인의 시집 이름은 언제나 특이하다. <터무니 있다> <누구라 종일 흘리나> <개닦이> 등의 이색적인 시집 이름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가 제주에서 날아 왔다.
시집 이름인 <오키나와의 화살표>를 포함하여 5편을 소개한다.
오키나와의 화살표
오키나와 바다엔 아리랑이 부서진다
칠십 여년 잠 못 든 반도
그 섬에는
조선의 학도병들과 떼창하는 후지키 쇼겐
마지막 격전의 땅 가을 끝물 쑥부쟁이
"풀을 먹든 흙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그때 그 전우애마저 다 묻힌 마부니언덕
그러나 못다 묻힌 아리랑은 남아서
굽이 굽이 끌려온 길,
갈 길 또한 아리랑 길
잠 깨면 그 길 모를까 그려놓은 화살표
어느 과녁으로 날아가는 중일까
나를 뺏긴 반도라도
동강난 반도라도
물 건너 고국의 산하, 그 품에 꽂히고 싶다
주석에 '후지키 쇼겐'은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조선학도병 740인의 위령탑 건립과 유골 봉환사업에 일생을 바쳤다고 했다.
오키나와 바다 속에 젊은 아리랑 혼들이 파도에 부서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가야할 곳이 있다. 구천에서 헤메는 그들은 화살표 따라 화살이 되어 과녁을 찾아 날아가고 있다. 화살표, 화살, 과녁이 삼위일체가 되어 아직도 날아 가고 있다. 칠십 여년이 지난 오늘도 '물 건너 고국의 산하, 그 품에 꽂히고 싶어' 진혼곡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낙장불입 2
가을날 감이파리 감빛으로 깊어지면
나무는 그 잎들과 허공에서 헤어진다
정선 땅 홍씨 할머니
그렇게 흘러든 연변
왜 왔냐 묻지 마라
왜 남았냐 묻지 마라
팔랑팔랑 예닐곱 살 할아버지 따라온 길
아리랑, 정선아리랑 내 걸음 묻지 마라
강아,
두 아들도 국경 넘어 보낸 강아
타관객리 한 생애 일송정 돌아들면
비암산 한 자락 끌고 혼자 가는 해란강아
일반적으로 시어(詩語)라는 말이 있다. 단어 자체가 부드럽고 여운과 운치가 있고 감미로워서 시적인 요소를 지녔다고 해서 시어라고 한다.
그런데 오승철 시인에게는 이러한 시어를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 투박하고 때에 따라서는 냉소적인(?)) 의미의 단어들도 등장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화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섰다'라든지 '낙장불입'도 화투에서 나온 단어이다.
고난의 여정 속에 정선 땅 홍 씨 할머니는 연변까지 갔는데, '가을 날 감이파리 감빛으로 깊어지면/ 나무는 그 잎들과 헤어진다/ 왜 왔냐 묻지 마라/ 왜 남았냐 묻지 마라/ 팔랑팔랑 예닐곱 살 할아버지 따라온 길/ 그 먼 고난의 길을 팔랑팔랑 낙엽처럼 흩날리면서 흘러왔다고 한다. 홍씨 할머니의 연변행을 가볍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벼움과 솔직한 투박성 속에 들어있는 본질적인 의미에 가슴 찡한 애수와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이것은 이 시만이 아니고 오승철 시 전편이 그렇다. 오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상(詩想)이다.
위미리
바다가 끌고 가다 놓쳐버린 곤냇골
드문드믄 물웅덩이
잠자리 몇 마리가
엎치락 뒤치락하며 접을 붙고 있었다
그는 보제기였다
구순의 홀아방 안 씨
바다에서 빠져 죽거나 술애서 빠져 죽거나
배조차 다 떠난 포구
낮술이 쿨럭인다
바다에서 퇴역해도 바다만 바라본다
울랑개 할망당엔
신이 아직 남았는지
위미리 시도 마찬가지이다. 보제기였던 인생의 뒤안길의 홀아방 안 씨의 생활은 처량하다. 안 씨만이 싸구리 인생처럼 처량한 것이 아니고 '바다가 끌고 가다 놓쳐버린 곤냇골/ 드문드문 물웅덩이/ 잠자리 몇 마리가 엎치락 뒤치락하며 접을 붙고 있다/는 위미리 마을 풍경도 올랑개 할망당과 더불어 을씨년스럽다. 은퇴한 어부 안 씨의 일상과 위미리 마을 풍경이 애잔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걸명
우리집 명절은 섬 한 바퀴 돌며 쇤다
제주시는 형님집
위미리는 종손집
중문의 처갓집까지 세뱃돈 뿌리고 간다
삼태성같이 흩어진 자식, 다멀처럼 모다나 들라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 펼친 멀구슬나무
한겨울은 온갖 잡새들 먹다가도 남을 열매
맷밥에 숟가락 걸듯
걸어놓은 마을 한 켠
배고품도 그리움도 이승만의 일이랴
문 밖의 걸신들 마저
동백처럼 취하겠다
주석에 걸명은 '고수레'의 제주어이며, 다멀은 제주민요에서 차용했는데 '좀생이별'이라고 한다.
맷밥에 숟가락 걸듯/ 걸어놓은 마을 한 켠/ 배고품도 그리움도 이승 만의 일이랴/ 문 밖의 걸신들 마저/ 동백처럼 취하겠다/ ,맷밥에 숟가락 걸듯'이는 돌아가신 조상 제사를 치르는데 불경한 묘사이지만, 그 묘사가 독자들에게 그러한 불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다음 행을 이어가면서, 문 밖의 걸신들마저/ 동백처럼 취하겠다/의 끝맺음은 일품이다.
가랑잎 성당
1
쉬사사사사삭
쉬사사사사악
얼결에 준비도 없이 뛰어내린 가랑잎들
2
더러는 떠밀리고 더러는 제가 굴러
몇 년 새 서너 차례 간판 바꿔 달지만
끝끝내 닭내장 같은 골목길 온기는 식어
3
가랑잎, 나부끼다가 혼자 타는 가랑잎
4
비로소 땅에 내려야 그리움은 끝나는 거다
저렇게 끼리끼리 훌러덩 훌러덩 까뒤집기도 하듯
저렇게 우리도 훗날 홀홀털고 만날까나
5
아내 성화 못 이겨 교회 문턱 한 번 들면
세상이여, 젊은 날 몇 번 벌레 물린 세상이여, 성가도
노신부 강론도 오락가락 싸락눈도 그게 그것만 같은
사스라 사스라 가랑잎 성당
그 성당 어느 귀퉁이 알이나 슬고 싶다
'가랑잎 성당'이라는 제목부터가 불손하지만 아기자기한 '올레'로 승화되어 각광을 받는 골목길도 '끝끝내 닭내장 같은 골목길 온기는 식어'로 비하되고, '아내 성화 못 이겨 교회 문턱 한 번 들면'은 성스러운 교회까지 야유가 섞인 비하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시어가 존재하지 않은 오승철 시인의 투박한 사투리를 연상케 하는 그만의 시어 속의 그 투박함과는 정반대인 맑은 시냇물 같은 흐름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에는 55편의 시가 4부로 나눠져서 게재되었다.
오승철 시인은 제주 위미리 출생으로서, '한국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오늘의 시조문학상' '한국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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