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 최고의 안동와룡산 일조경과 운무
꿈과 희망의 염원을 가슴에 담은 이곳 안동 와룡산에
가슴 뜨거운 불덩어리가 2009년도 새해의 새기운으로 빗장을 엽니다.
떠오르는 태양의 햇살속에 우리들의 희망찬 북소리를
울리며 사랑과 용서, 화해와 기다림을 어둠속에 태양처럼
밝혀두고 대망의 새아침을 맞이하는 그 감동의 시간이
영남 최고의 일출지 와룡산에서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민초들이 시민들의 삶에 질을 높이기 위하여 일출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안동 와룡산 새해 일출맞이 축제
※ (새해 복을 의미하는 적색글 사용합니다.)
■ 안동 와룡산 해뜨는 시간
날짜 |
1.1 |
2.1 |
3.1 |
4.1 |
5.1 |
6.1 |
7.1 |
8.1 |
9.1 |
10.1 |
11.1 |
12.1 |
일출
시간 |
7:38 |
7:28 |
6:56 |
6:11 |
5:30 |
5:05 |
5:06 |
5:27 |
5:53 |
6:18 |
6:47 |
7:19 |
※ 일출시간은 약2~5분간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와룡산 일출은 승용차 함께타기 운동으로 유류를 절약합시다.
(기축년 일출은 가까운 곳으로~~)
일시 : 기축년 1월 1일
주관 : 안동시 와룡면과 민초들
협찬 : 와룡산 유하사, 와룡면 부녀회, 와룡면 청년회
내용 : 새벽 장작 불꽃놀이와 소망빌기, 일출참관, 풍물놀이, 떡국 시식회 및 안동
곡주, 전통차와 컵피 지원 등
주차 : 주계리 용두고을내 간이 주차공간 확보(약 4000평)
장소 : 안동시청에서 요촌방향으로 와룡산 하늘공원 및 와룡산 주차장
축복의 땅 자연문화의 산실
거석문화 꽃피운 안동 동쪽의 진산

이것이 울 안동와룡산 주변 일대의 옛 민초들에 정서지요.~~~지극정성을 다하는 울 어머니들의 자식의 대한 사랑과 가정에 안녕을 기원하는 큰 바위 돌을 숭배한 와룡산 민중들의 거석문화의 참 모습입니다.
하여 영산인 와룡산의 거석 신앙은 토속적이면서 토착화된 우리 선인들의 삶과 밀접하였으며 옛날 와룡산 민초들은 와룡산에 신령스러운 큰 바위돌을 신체로 하여 마음만은 영화로운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안동와룡산 정상에서 영덕쪽으로 본 영남 최고의 일조경
'산의 형세가 천하를 평정하고 돌아온 용이 편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하여 조선조 중기 문신학자 백담 구봉령이 처음으로 수다산(水多山)에서 용산(龍山)이라 칭한 이후, 까투리봉 일대가 와룡산(臥龍山)으로 불렸다. 또한 와룡산에서 용틀임하는 황룡이 안동호의 물을 만나 천하를 평정하니 와룡은 황룡도강지(黃龍渡江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와룡산의 유래다.
하지만 용두골에서 마주한 와룡산의 첫 느낌은 전혀 용이란 거창한 신물이 등장하는 산답지 않다. 기껏 461미터에도 못미처 보이는 펑퍼짐하게 누운 구릉같은 작은 산으로 보일뿐이다. 산은 채 위로도 솟지 못하고 남북으로만 길게 퍼져있다. 여느 마을 뒷산도 이보다 모양새가 낫지 않을까 싶다. 안동호를 만나 천하를 평정했다는 황룡의 위세를 실제 느껴보기 위해 산행을 재촉한다.
"3시간이면 떡을 칩니다."

안동에서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산맥산악회의 이영직(52세) 회장, 김대한(51세), 송현숙(52세)씨, 유수기(48세) 대장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친다.
산행들머리는 용두골이다. 마을 뒤쪽에 커다란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등산로 또한 안동시에서 정비를 해 놨다. 시에서 거금을 들여 길을 닦고 주차장을 놓고 등산로를 정비해 놨다면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산일 게다.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석양이 안동에서 비할 데가 없어요."
예로부터 와룡산은 영험하고 좋은 기(氣)가 서려있는 기우단과 사직단이 있어, 고을에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면 관리들과 고을민들이 천제를 올렸던 곳이다. 또한 와룡산 일대는 산세와 토질이 좋고 물이 맑으며 학행 높은 선비들이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안동 동쪽의 진산(鎭山)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용두골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선비길, 일출길, 신선길이 나 있다. 수직으로 정상을 올라치면 30여분이면 오를 작은 산인지라, 길게 누운 용의 가슴팍(주차장)에서 꼬리까지 사면을 횡단하여 오른 다음 산등성이(까투리봉)를 타고 머리(용두봉)까지 오르게끔 길이 나 있다.
선비길로 가기 위해 주차장 왼쪽 끄트머리(북쪽)로 간다. 산길 초입의 작은 연못에는 살얼음이 얼었다. 지난 밤 전국 대부분의 산에 첫눈이 내린 한파의 흔적이다. 마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목덜미가 서늘하다. 둘레 2.5미터인 350년 수령의 소나무 보호수를 지나 지릉에 접어든다.
길은 뒷짐 지고 올라도 될 만큼 완만한 소나무 숲길이다. '선비길' 이란 호칭을 붙인 이유를 알만하다. 산길은 결코 급히 오르는 법이 없다. 오히려 내려서기도 한다. 용두골 마을이 훤히 보이는 밭의 고랑을 지나기도 하면서 북으로 비탈을 가로지른다. 한참을 횡단하고서야 오름짓을 하는 듯 싶었던 산길은 이내 용의 꼬리부분에 해당되는 와룡산 맨 북쪽 능선 끝에 도달한다. 펑퍼짐한 능선에는 백발이 성성한 10여 명의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햇살을 쬐고 있다. 산세가 완만해 남녀노소 다들 쉬이 찾는 산인가보다.
벤치가 놓인 능선 아래쪽에 묘지 1기가 있다. 참으로 명당이다. 그 산자락 밑으로 드넓은 자리를 차지한 안동호의 물줄기가 북동쪽에서 남서쪽까지 시퍼렇다. 용이 천하를 호령하고 돌아와 쉴만한 자리임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다. 호수 너머로는 나지막한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저기, 학가산이죠?"
홍일점 송현숙씨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님이라도 발견한 듯 환호성을 지른다. 안동 사람치고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을 모르는 이 없을 터다. 그만큼 소중하고 친숙한 대상이다.
뾰족하고 도드라지게 솟은 학가산과 머리에 하얀 눈을 인 소백산, 암봉들이 정상부를 차지한 청량산, 각종 시설물을 머리에 얹은 일월산이 한 눈에 두루 보인다. 특히 소백산을 중심으로 병풍을 이룬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가 참으로 일품이다.
용두봉을 향해 능선을 오른다. 걸음마도 채 떼기 전 서너 개의 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선비바위가 나온다. 이곳은 옛날 선비들이 유서 깊은 현사사에서 학문을 논하며 교우를 맺었는데,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로 도중에 기암괴석에 앉아 피로를 풀면서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 까투리바위가 있다. 보라매들이 까투리를 사냥하게 되면 반드시 이 바위로 가져온다고 하여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한 처녀가 뒷산에 나물을 캐러 올라갔다가 바위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신기루에 의해 그만 발을 헛디뎌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전한다.
까투리봉을 내려선다. 직녀와 견우가 사랑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산천을 노닐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직녀암, 견우암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안동호의 아름다운 물안개와 운해는 직녀가 짜놓은 비단이라고 구전되고 있다.
와룡산 능선길은 옛날 이곳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곰이나 나무 혹은 돌이나 태양, 달 같은 모든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애니미즘의 현장이다. 당시 선돌은 원시인들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기능과 한 집단의 영역을 표시하는 표지석의 역할도 했다. 주릉을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세워진 선돌들의 모습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소나무가 숲을 이룬 능선은 주변으로 시야가 좋지 않다. 선돌이 나타나는 곳마다 다소나마 조망이 트일 뿐이다. 예로부터 영물과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던 거북바위에 다다른다. 거북의 머리가 마을을 향하고 있어 주민들이 마을에 풍요와 안녕을 가져준다고 한다.
"마을 조망은 이곳이 제일 좋아요."
유수기씨가 바위 위에 선다. 용두골 마을이 발밑에 펼쳐진다. 마을 너머로는 또다시 학가산에서 소백산에 이르는 조망이 탁 트인다. 용두봉을 오르는 능선상에는 옹두라지라도 삐져나온 듯한 희한한 모양의 부처바위와 한 쌍의 두꺼비가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모습을 한 두꺼비바위가 솟아 있다. 그 위치나 형태로 보아 태양숭배사상의 산물로 보인다.

1분여 거리의 개구리바위는 막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대지 위로 얼굴을 내미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뭄이 극심할 때 기우단에서 물굿과 기우제를 올리면 청개구리의 청원과 고을민들의 지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많은 비를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와룡산이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물이 많은 산이라는 수다산(水多山)으로 불려졌다.
옥황상제가 앉는 의자와 흡사하다는 옥좌바위와 곰이 자기의 커다란 거시기를 자랑하는 모습이라는 곰남근바위를 지나자 용두봉 정상인 헬기장이다.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용두봉은 역시 정상다운 위용을 자랑한다. 사방팔방으로 조망이 거침없다. 헬기장 한쪽을 차지한 하늘거리는 억새 너머로 안동호가 빛을 발한다.
해돋이로 유명한 용두봉은 안동호 물안개와 운해가 8부 능선까지 차면 천지가 잔잔한 수평으로 변한다. 그 찰나에 일출을 맞이하면 자욱한 안개와 운해 위로 드러난 봉우리에 선 등산인은 신선이 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저녁노을 해넘이는 등산 하산길에 장엄하고 엄숙한 감동을 선사하고 자연의 아름다운 위용을 보여준다고 한다.
신선길로 내려선다. 선비길과 달리 등산로는 가파르다. 산 중턱까지 내려오고서야 사면을 우회하며 경사가 주춤해진다. 하지만 산이 워낙 낮은 터라 능선에서의 감동이 채 가기도 전에 주차장에 내려선다.

*산행길잡이
용두골주차장-(30분)-안동호전망대-(8분)-까투리봉-(10분)-거북바위-(12분)-용두봉-(20분)-용두골주차장
낙동강지역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역사시대 청동기 및 철기문화의 꽃을 피운 지역이다. 특히 안동 와룡산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거석문화(巨石文化)가 발달하여 구전자원이 관광자원화된 곳이다. 선조들이 돌에 생명을 심어놓은 유적지로서 능선을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세워진 선돌들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산의 형세는 '천하를 호령하고 용이 편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와룡산의 유래처럼 펑퍼짐하고 길게 누운 형태다.
산행기점은 용의 가슴팍인 용두골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산행코스는 두 군데다. 1코스는 용두골~신선길~용두봉~곰남근바위~개구리바위~금광굴~두꺼비바위~거북바위~까투리봉~선비길~주차장 코스(3시간 소요), 2코스는 용ㄷ우골~두꺼비바위~개구리바위~곰남근바위~용두봉 코스(1시간 소요)다.
어느 코스든 길이 가파른 일출길이나 신선길로 용두봉을 오른 다음 까투리봉을 거쳐 길이 완만한 선비길로 하산하는 게 좋다. 용두봉과 안동호전망대에서의 조망이 천하일품이다. 특히 용두봉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가히 신선이 되는 경지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산은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소나무 침엽수림으로 형성되어 있어 등산인들은 음이온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고대 선사시대 체험장으로서 역사기행과 더불어 색다른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가족산행지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교통
서울동서울터미널(ARS 02-446-8000)에서 안동행 버스가 하루 34회(06:00~20:30) 다닌다. 요금 15,400원. 2시간50분 소요. 안동시외버스터미널 옆 교보생명 앞에서 59번 시내버스를 이용, 용두골에서 내린다.
중앙고속국도 서안동나들목을 빠져나온 다음,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 방면 35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와룡삼거리에서 예안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주계리로 들어선다.
*잘 데와 먹을 데
안동시내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안동파크관광호텔(054-895-1500), LA모텔(854-8886), 강변장여관(856-4193), 국제장여관(854-3520) 등이 있다. 안동에서는 먹을거리는 간고등어 정식과 안동찜닭 등이 향토음식으로 유명하다.

*볼거리
유하사 경북 안동군 와룡면 와룡산에 있는 고찰이다. 산이름이 암시하듯 이 산은 용이 누운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용과 관련된 전설도 많다. 유하사란 절의 이름도 여름에 용이 내려와 사람과 더불어 노닐었다는 얘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미륵을 주존으로 모시는 당우인 용화전이 있다. 1903년 창건했다.
안동댐 낙동강 수계에 처음 등장한 이 댐은 하류 지역의 연례적인 홍수 피해를 줄이고 농,공업용수 및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1971년 4월에 착공, 1976년 10월에 준공됐다. 연간 9억2600만톤에 달하는 각종 용수를 구미, 대구, 마산, 창원, 울산, 부산 등지에 공급한다. 또한 이 다목적댐은 9만킬로와트 용량의 수력발전소를 설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안동댐으로 조성된 인공호의 하나인 안동호는 와룡면, 도산면, 예안면, 임동면에 걸쳐져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안동댐관리단 054-850-4204.
봉정사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국보 15호인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는 고려시대의 건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