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른들은 밥을 드셨나고 인사할 때 진지 잡수셨습니까?라고 표현한다.
이때의 진자는 참 진(眞)자를 쓰고, 지자는 지혜로울 지(智)자를 쓴다.
이 말은 참다운 지혜를 드셨습니까? 참다운 지혜를 배우셨습니까?라는 뜻이다.
왜 우리 조상들은 밥을 진지라고 표현했을까?
밥은 땅과 씨앗, 물, 햇빛, 공기 등 모든 자연현상과 사람이 협동해서 만들어진다.
우리 조상들은 이 모든 생태계의 조화로운 삶을 이해한다는 뜻에서 밥을 진지(眞智)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진지(眞智)를 식사(食事)라 부른다.
식사라는 말은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군에서 쓰던 말이 생활용어로 굳어져서
일반 사회와 가정에서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식사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먹는 일이다.
밥을 대하는 우리 조상들의 철학이 오늘 우리에게 단순히 먹는 일에 불과한 식사로 전락하면서
밥을 대하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전락하고 말았다.
밥은 무엇인가? 밥은 생명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은 밥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밥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모든 생명은 밥으로부터 생겨났고 밥을 통해서 자라고 밥이 되어 죽어간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밥)이다(요한 6,5)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밥으로 모시고 생명을 얻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밥이 오늘날 단지 상품으로, 거래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우리의 밥상과 건강, 농촌은 농약에, 수입농산물에, 공해에 찌들어 죽어가고 있다.
물질과 소비, 경쟁 중심의 반자연적이고 반생명적인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어느덧 온 사회 깊숙히 파고들어와 그것이 빚어낸 농촌의 위기, 밥상의 위기.
나아가 생명과 하느님의 창조의 위기가 심화되어 가고 있다.
밥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인식하는 것,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시작이다.
동학의 최재우 선생님은 식즉천(食卽天)이라 하였다.
밥 한 공기에 우주의 삼라만상이 들어있음을 알고 밥을 소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길만이
나와 이웃과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