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시월 초사흘 날에 비가 내린다. 가을비처럼 처연한 게 또 있으랴. 悲感이 빗물이 되어 가슴에 차오른다.
카톡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여고 동기생이다. 제목이 천개의 바람이다. 많이 알려진 노래다. 죽음을 앞둔 자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가사다. 나, 죽지 않았으니 나 때문에 슬퍼하지도 울지도 말라는 부탁이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곁에 늘 있다고 한다. 각기 다른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데 한결같이 애절하다.
淚腺이 가만가만 흔들린다. 드디어 조용조용 흘러내린다. 언제인가 부터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겠구나’ 생각이 들었었다. 걸음이 잘 걸리지 않는 거다. 집이 언덕 위 동네이고, 장을 보거나 전철을 타러 갈 때, 또 돌아올 때, 언덕길을 걸어 올라와야 한다. 언덕 초입에 서서 올려다보면그 길이 까마득하고 아득하게 느껴진 것이 오래 되었다.
또 특별히 아픈데도 없는데 몸이 아프다. 누우면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열 손가락에서 뭔가가 술술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두 달간 이석증으로 어지럼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믿는 것은 단잠을 자는 것, 입맛이 여전한 것뿐이다.
병간호하는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말이 있다. “본인 건강 돌보세요. 병자보다 간병인이 먼저 죽는 것 봤어요”이다. 염려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여간 의기소침하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노래가 들린다. 나는 천개의 바람으로 불어 눈밭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기도 하고 익은 곡식 위에 햇빛으로 내리기도하고 아침에 서둘러 당신이 깨어날 때 당신 곁에 재빨리 다가와서 당신 주위를 맴돌 거에요.
어미는 죽어, 어떻게 천개의 바람만 되랴? 가능하다면 만개의 바람, 만개의 햇빛, 자식이 아침에 깨어 밤에 잠들 때까지 지키는 수호신이 되고 싶지 않을까? 정말이지 할 수만 있으면 그러고 싶다.
베란다로 나간다. 발코니형 베란다라 화초들이 비를 흠뻑 맞고 있다. 싱싱하다. 초여름에 고추모종 세 개를 큰 화분에 심었더니 몇 집에서 나눠먹어도 남을 만큼 실하게 고추가 열렸고 그 잎이 무성하다.
하남시에서 3천평의 밭농사를 하고 있는 조카딸에게 전화를 건다. 슈퍼우먼 중의 슈퍼우면인 칠순의 여인이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집안 살림 다 해 놓고, 만동이 트면 밭에 나가 그 날의 밭일을 하고, 아침이면 산행을 나간다. 전국의 산은 물론, 외국의 명산등정 이력도 화려하다. 마나슐루 제2 베이스 켐프까지 올라간 여인이다.
늘 활기차다. 전화를 통해서도 기가 팍팍 들어온다. “아무개야, 고춧잎이 무성한데 뜯어서 나물 해먹어도 돼?” “그럼, 되고 말고... 맛있어요. 근데 이모 목소리가 왜 그래?” “응, 천개의 바람 노래를 듣고 센티해 졌어. 근데 아무개야 울 자식들, 나 죽으면 울까? 울지 말라고, 만개의 바람으로 살아서 너희들 주위에 있다고 말해줄까?“ “아유, 이모! 그 애들 안 울어, 울기는커녕 눈 째리고 원망할 걸요?” “엥?!!” “아버지는 어떻게 하려고 돌아가시냐고? 우리들한테 떠넘기고 혼자 편하려고 가셨냐고? 그게 자식 사랑하신다는 엄마시냐고? 어머니 나빠요. 나빠 하면서 원망하느라 울지 않아요. ㅋㅋ 애들이 울려면 이모부 잘 보내드리고 그 때 가셔요. 그러면 아들들이 어머니, 어머니 훌륭한 어머니 하면서 울 거에요, 그 때 돌아가셔요“
그런 건가? 아직 죽으면 안 되는 거구나. 車를 달리게 하려고 기름을 주유하듯 그녀는 꾸역꾸역 음식을 넣었다. 죽으면 안되니까 ....살아야 하니까.... 세 살짜리 늙은 아해가 있는 어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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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 마가 치매기 있는 아버지 병간호 하실때 힘드신 것을 다 이해 못하고 엄마는 당연히 그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 했읍니다. 가끔 짜증도 내시고 너무 힘들어
하는 엄마에게 퉁명 스럽게 면박도 주고.....못된딸.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엄마는 그 허전함에 많이 힘들어 하셨지요.아빠 살아 계실때
힘들어 하던 모습은 간데 없고 힘없이 늙어버린 조그만 노인 하나가 남아 있었지요. ""문소리만 나면 네 아버지가 오시는거 같다" "먼곳에 사람이 보여도 서서
네 아버지인가 보게되""에고 살아 계실때 좀더 잘하지" 면박은 주지만 ...아프다고 소리 지르시고 짜증내고 입맛 없으시다고 식사 안하시고 치매로 목욕탕 욕조 안에
용변 보시고,,,,그래도 그때는 엄마가 작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혼자 남겨진 엄마는 너무 작았읍니다.천개의바람이 되어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 가야할 부모에 대한 시이지만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잠시나마 가슴에 묻어 줄까요? 자식은 절대 아니고 그래도 오랜세월 함께한 부부가 아닐까 생가 해 봅니다. 아주 잠깐 이겠지만.
ㅎㅎ
천개의 바람은 어느 병사가 죽어가면서 남겨진 사람에게 보내는 위로인데
애절한 것은 그 시를 모두 자기로 받아드리며 국경을 초월해 사랑받고 있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말년의 형부도 치매기가 있으셨네? 몰랐어.
심장 수술, 투석등 병고가 많으신 것은 알았지만.
언니가 원체 말을 안하시는 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