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교육연수원에서 주관하는 ‘2013 중등 행복학교 인문학 산책 직무 연수’에 강의를 해야 하는데, 주어진 주제가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들 : 생애사 혹은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원고 마감도 임박하여 자료를 찾다가 정해윤의 <사생활의 천재들>이란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었습니다. 이 주제는 바로 우리의 수필쓰기와 일치했습니다. 첫 장에 나오는 얼마의 구절을 소개합니다.
1)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아직 건너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해보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말은
아직 내가 하지 못한 말이다.
나짐, 히크멧, 「파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의 시 : 1945년 9월 24일」
(해설 : 나짐이란 사람은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몸은 컴퍼스의 한 끝처럼 감옥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다른 한 끝은 감옥에서 벗어나 내일의 씨앗을 위해 과일을 키웠다. 아직까지 펼쳐보지 못한 수많은 자아의 능력, 힘, 모습을 새롭게 시도해가는 희망의 원리 위에 우리의 삶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날과 말은 현재 나의 모습 그대로 있을 때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변해야만 세상이 아름답게 바뀐다는 말이었어. 이것이 희망을 이 사이에 넣어둔다는 말이야. 희망을 깨문다는 말이야. 희망은 별처럼 먼 곳에 있지만 그 별을 입으로 옮겨놓는 것야.”)
2) 예전이 지금과 충돌해 미래라는 별자리를 만든다.
3) 인간에게 어떤 미래가 있다면 그것 우리가 다시 시작하길 포기하지 않아서야. 우리는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고 괴로워하지. 하지만 다른 것은 현실과 아상뿐만 아니야. 현실과 인생도 달라. 인생에는 현실 속에선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중요한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어.그리고 또 다른 생각도 해 볼 수 있어.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인생,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야. 우린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사랑을 나누고 슬픔을 달래고, 용기를 내고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감등을 풀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어느 선에선가 타협을 하고 돈을 벌고 일을 하러 가야 하고 가족들을 먹여야 해.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거지. 단 희망을 이 사이에 깨문 현실주의자.
우리 인간은 수많은 하찮은 것을 만들어내지만 그 하찮은 것 속에서 수많은 숭고한 것을 만들어내는 존재야. 용기도, 사랑도 믿음도, 신도, 그러므로 사소하고 하찮은 것 속에서 어떤 것을 자기 중심점에 놓아야 할지를 잊지 말아야 해. 바로 그 자리에서 고유한 희망의 원리를 만들어내야 해.
4) 우리에겐 고독한 시간이 있다. 혼자 버려진 시간이 있다. 슬픔을 혼자 달래는 시간이 있다. 화를 혼자 푸는 시간이 있다. 혼자 밥 먹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공적인 삶이 있다. 대통령 선거나 비리 공무원 이야기를 하고 복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그 중간에 사생활이 있다. 살 집을 마련하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고 은행에 가고 잔액을 헤아려보고 세금을 내고 술을 마시고 친구를 찾아가고 연인을 만나고 가끔 인생 상담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생일파티를 하고 부모님을 병원에 모셔가고 안부 전화하는 사생활이 있다. 작은 세계다.
그러나 작은 세계의 한 귀퉁이는 열려 있어서 큰 세계로 흘러들어간다. 한 알의 소금이 대양에 흘러들어 가는 것 같은. 우리 같은 사람도 이 사회의 한 모퉁이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나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럴 수가 있다.
(우리가 수필을 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사소한 일들, 작은 세계를 건져 올리는 것이 수필 쓰기다. 그것은 큰 세계로 흘러드는 한 알의 작은 소금과 같다. 우리의 인생은 정제할 수 있는 어떤 가치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게 이어지는 잔잔한 일상 그 자체이다. 그 일상은 우리의 유일한 인생이다. 이것이 일상을 발견하는 수필 쓰기가 지니는 의의다. 사생활의 기록, 나 자신의 작은 이야기를 잔잔하게 기록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찾아가는 희망의 날갯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