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있어서 씁쓸한 입맛을 다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뉴욕의 리디머(Redeemer)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유명한
팀 켈러가 췌장암으로 지난 5월19일 죽으면서 몇 달에 걸쳐 간절하게 매달린
다음에 비로소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고 아쉬움이 하나도 없다고 소천한 일과
빌리그레함 목사의 전도집회 50주년 기념대회를 거창하게 여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 빌리나 아들 프랭클린이나 기초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앞으로 불러 모으는 스타일이 비슷해서 실소를 한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1973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50년 동안 그 정도의 초등학문인
기초 복음 곧 알파벳의 A,B,C하는 정도의 복음전도자를 배출하지 못했단 말인가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국교회를 우습게 보는 미국교수와 대판 논쟁을 벌인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나도 죽으면 부활한다고 다부지게 다짐하다가
막상 췌장암으로 죽음 앞에 서고 보니 암담해 지는 팀 켈러 목사는 저의
개인적으로는 칼빈주의의 목회자라고 말하지 말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도의 신학지식으로는 칼빈의 신학을 이해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으니 나도 죽으면 부활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걸까요?
마르다에게 배운 걸까요?(요11:24) 아니면 세월 따라 교회 안에서 자생한 교리일까요?
주님께서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못하리라(요8:51)는 말씀은 왜 못 믿나요?
나는 부활이며 생명(요11:25)이라는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 부활과 생명과 하나가
된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이거늘 왜 현재부활이 없으며 현재 생명의 능력이 없을까요?
만일 제가 팀 켈러 목사보다 먼저 죽었다면 천국 문을 지키고 있다가
넌 들어오지 말고 다시 주 예수그리스도를 학습하라고 나무라고 싶습니다.
작금의 교회의 총체적인 문제는 바울의 로마서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공히 로이드 존스나 C. S. 루이스 정도의 신학자들의
설교 집을 인용한 설교들이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의 기독교는 바울이 만든 기독교라는 혹평을 들을 만큼 로마서는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모든 목회자들이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이들은 로마서에 집중하세요.
Q. 바울은 왜 로마로 가야만 할까요?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1:13)
A. 제가 선교지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지금은 바울과 같은
선교여행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전 세계의 선교지에서
한국 목사가 가서 복음을 전하려면 반드시 행사비용에 대한 문제가 앞섭니다.
지난 번 아르헨티나 선교여행에도 3,000만원 이상의 경비가 들었습니다.
제 마음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빚진 마음이 있어 달려가는데 현지 사정은 다릅니다.
필리핀이나 호주나 인도와 아프리카에 대해 제 마음이 간절하지만 마음 같지 않습니다.
바울에게는 로마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자리 잡고 있는데 로마로 가고자
여러 번 반복 시도 해 봤지만 지금까지 길이 막히고 방해를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진리의 복음을 증거 하는 주의 종들은 반드시 이 부분을 주지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들은 태풍처럼 전달됩니다. 누구나 웰컴하고 환영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복음은 막는 자가 있어요. 진리는 아무나의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서에서도 그렇잖아요. 미가엘이 왜 앞장서서 그 길을 뚫습니까?(단10:21)
막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대적하는 자가 있어요.
진리의 복음이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하게 전파되는 게 아닙니다.
이점을 여러분이 꼭 알고 계셔야 합니다.
바울은 생명력 있는 믿음으로 어디론가 계속 나아갑니다.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함이로되’ 하면서 어떻게 하든 다른 이방인 안에서와
같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길이 막혔도다’ 탄식합니다.
만일 바울이 로마에 가지 않았다면 요즘의 교회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나도 죽으면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죽으면 부활한다고 믿으니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공중혼인 잔치에 참여했다가
지상에 내려와서 천년동안 왕 노릇한다고 설레발치는 사기꾼들에게 당하게 됩니다.
로마서는 우리 속에 내주 역사하는 복음입니다.
주님이 부활이시면 그 부활이 우리 속에 계시고, 주님이 생명이시면 그 생명이 우리 속에,
주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면 그 형상이 우리 속에,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이면 그 영광이
우리 속에 계시고, 주님이 하나님의 사랑이면 그 사랑이 우리 속에 거하여 우리도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말씀은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만 하고 있어도 이루어져 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동의를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임하시는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길
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대로 내 안에서 이루어져 갑니다.
따라서 내주하는 복음을 받은 사람은 응답이 밖에서 오길 기다리면 안 됩니다.
영생의 믿음을 가진 사람의 응답은 성령 안에서 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며 주의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안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한 하나님의 능력인 겁니다.
Q. 왜 바울이 그토록 로마에 가기를 열망할까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4-15)
A. 바울은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다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 나의 빚입니다’ 이런 외침을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부젓가락으로 입술을 깨끗하게 한 뒤에 누가 갈꼬 하니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나를 보내소서 하고 대답합니다. 거긴 이사야 밖에 없어요.
신학교나 노회에서 선교사로 나갈 사람은 결단하세요 이게 아닙니다.
오직 이사야 혼자 있는 상태에서 누가 갈꼬 물으십니다.
근데 그 복음이 예수 믿으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해 본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전하는 일이었습니다(사6:9)
왜냐하면 그로부터 700년 후에 오실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그로 인해 죽었던 자들이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살리라고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나 바울은 이 세상에 부름을 받고 보냄을 받는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은 갑니다.
그건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하는 엄청난 사랑의 채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부득불 전할 수밖에 없고 만일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고전9:16)
바울은 정작 사랑의 빚은 하나님께 지고,
그 빚을 갚기는 다른 사람에게 갚으려는 그의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바로 이겁니다. 모든 복음의 종들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든지 말든지 다른 사람이야 우로 가든지 좌로 가든지 나는 간다 이겁니다.
주의 종들만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오직 한 길 반드시 내가 갈 길이다 이겁니다.
복음의 종들이 이 길에서 갈등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드렸는데 미련이 남아 있으면 안 되지요.
지금 바울의 심정은 아무도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아도
자기 혼자서라도 복음을 가지고 반드시 로마로 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 이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사실 로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바울을 기다려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가야겠다는 겁니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기 위해서...(롬1:1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진 종으로 택정함(set apart)을
입어 보냄을 받은 자들의 자세입니다. 아무도 기다리거나 반겨주지 않아도 나는 가야 한다는 각오입니다.
평생 갚아도 빚진 자 되어 주님의 빚진 자 되어 주의 말씀 전하여 주의 복음 전하여
그 하나님의 사랑의 빚 은혜와 긍휼의 빚을 갚으리라 하고 나선 복음전도자의 자세입니다.
첫댓글 아침마다 늘 카페를 찾아 말씀을 사랑해 주시고 함께 주를 찬양하시던
한규진 선배님께서 오늘 아침에 보이지 않아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연세가 높으셔서 덜컹 염려가 됩니다.
주님의 영과 생명으로 모세처럼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주님께서 깨우시지 않아서 었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