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을 여는 법을 알 수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사춘기”를 읽고
딸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문 닫히는 소리에 놀랐고, 열두 살인 둘째가 이런 적이 처음이라 놀랐다. 딸아이를 밖으로 불렀다. 나는 화가 나서 무슨 짓이냐고 소리쳤다. 딸아이는 울기만 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아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둘만 있는 방에서도 한참을 울었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자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물었다. 또 다시 북받친 모양이다. 서럽게 운다. 울면서 이야기한다. 오빠가 밥 먹지 말라고 해서 화가 났다고 한다.
여섯 식구가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6인분의 밥과 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가 되면 밥과 반찬을 그릇에 담아서 식탁으로 옮기고, 수저를 자리에 맞게 둔다. 맛있게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 있다. 하루에 세 번씩 이 일을 반복한다. 여섯 명이 모두 힘을 모이지 않으면 힘들다.
식사 준비가 얼추되면 나와 아내는 ‘밥 먹어라!’라고 부른다. 다 준비가 되었으니 와서 먹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요리가 거의 끝났으니 밥 먹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먼저 손을 씻는다. 밥과 국, 반찬을 떠서 주면 식탁으로 옮긴다. 그 사이 다른 아이는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다같이 준비하고 다같이 맛있게 먹는다.
요며칠 둘째는 ‘밥 먹어라’고 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날은 첫째가 요리를 돕겠다며 엄마 곁에서 시키는 일을 도맡아 했다. 둘째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했다. 식사 준비가 거의 다 되어 밥 먹자고 했지만 둘째는 못 들었는지 일어나지 않았다. 먹을 준비가 끝나고 다른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그제야 일어나서 손을 씻으러 갔다. 첫째는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둘째 들으라고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은 밥도 먹지 마!’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화장실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 말에 속상하고 화가 났던 모양이다. 화장실에서 나와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딸에게 “오빠가 그렇게 말해서 많이 화가 났어?”라고 물었다.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어.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렇게 말한 건 오빠 잘못이 맞아. 그건 아빠가 오빠한테 말할게.” 먼저 속상한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를 썼다. 딸의 잘못도 꼬집어 말했다. “유나야, 너 오빠가 요리 돕는 동안 뭐했어? 너가 컴퓨터 하는 동안 오빠가 엄마, 아빠를 도왔잖아. 오빠가 수고했으니깐 그건 인정해주어야 해. 그리고 요며칠 밥 먹을 때 아무 일도 안 했잖아.” 아이는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하염없이 우는 딸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울었는데 그칠 줄 몰랐다.
“별것 아닌 일에 아이가 벌컥 화를 내면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걸 보면 부모로서는 당연히 속이 뒤집힌다. 그렇지만 순간 아이 자신도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변덕스런 감정 변화에 스스로 놀라고 당황하는 게 사춘기다.”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 217)
아마 자기가 한 행동에 많이 놀란 게 아닐까. 이제껏 그런 적이 없어서 나도 놀랐지만 자신도 당황했을 거다. “변덕스런 감정 변화”가 일어나는 둘째의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다.
며칠이 지나고 물어보았다. “너 그때 왜 그렇게 울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딸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빠한테 화난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순 없었다. “너가 나중에 말할 수 있으면 이야기해줘.”
ps.
나는 넷 중 막내다. 셋째 형과 일곱 살 차이 나는 막둥이다. 사춘기가 한창 심한 시절 나는 기분이 상하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서 혼자 많이 울었다. 뭐가 그리 속상했는지, 화가 났는지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소리치면서 문 밖으로 불러내지 않으셨다. 문 밖에서 화를 북돋울까 조심스러워서 하면서 말씀하셨다.“지호야, 내가 미안하다. 화 풀어라!”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다 들으면서도 문을 열지 못했다. 무슨 자존심인지. 문을 열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직도 그 소리가 귀가에 맴돈다. “지호야, 미안하다.” 아버지, 제가 많이 죄송했어요.
첫댓글 “지호야, 내가 미안하다. 화 풀어라!”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뭉클했습니다.
저도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어요ㅠㅠ
아.. 눈물이 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