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오는 여행
. 중도자 위원회
. 1935년
133:0.1 예수는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 없이 로마를 떠났다. 다마스커스 서기관은 예고 없이 로마에 나타났고, 사라졌다. 만 1년이 지나서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를 만날 희망을 버렸다. 그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이끌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금욕주의파, 견유학파, 신비 종파로 이루어진 집단들은 로마에 기독교의 첫 전도자들이 나타나기 바로 전까지, 불규칙하게 비공식 회의를 계속 열었다.
고노드와 가니드는 소유한 재산을 타렌툼까지 미리 보냈고, 세 나그네는 아피아 길로 한가히 걸었다. 이 여행에서 그들은 온갖 종류의 인간들과 마주쳤다. 고귀한 로마 시민과 그리스 거류민이 숱하게 이 길을 따라서 살았지만, 이미 열등한 노예들의 자손이 큰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니드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관하여 솔직하게 물었다. 예수는 말했다. "비록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르더라도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영적 세계에서는 모든 필사자가 똑같은 자리에 서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동물과 같이 간주된다. 인류는 여러 계급으로 적절히 분류되지만 하나님의 심판석 앞에서는 똑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너는 지식ㆍ사회ㆍ도덕 문제에서 차별 되는 인간의 능력과 자질이 인정된다 해도,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사람의 영적 모임에서 절대로 그러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1. 자비와 공정
133:1.1 타렌툼에 가까이 갔을 때, 한 소년이 더 어린 소년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을 보았다. 예수는 서둘러 얻어맞는 아이를 구한 후, 그 아이가 달아날 수 있도록 때리는 소년을 단단히 붙잡았다. 예수가 작은 깡패를 놓아 주자, 가니드가 그에게 달려들어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예수는 재빠른 간섭에 그 소년이 달아나자, 가니드가 놀라 물었다: "선생님,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비가 그 어린 소년을 구하는 것이라면, 공정은 폭행하는 소년을 벌주는 것이 아닌가요?” 예수가 대답했다.
“가니드, 자비는 개인의 일이지만, 공정으로 벌을 내리는 것은 사회나 정부나 우주 행정 집단의 기능이다. 자비는 아낌없이 베풀어도 좋지만 공정은 정밀한 것이다. 한 사람은 40번이나 채찍질을 내리고 싶어 하고, 한 사람은 스무 번, 또 다른 사람은 독방에 가두는 것이 정당한 벌이라 여긴다. 그러니 그 집단이 선택한 대표자들이 집행하는 것이 더 좋음을 이해할 수 없느냐?”
그들은 여러날 동안 자비와 공정의 시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니드는 예수의 행동을 이해했다. “선생님, 더 힘세고 성질 나쁜 사람이 당신을 공격하고 죽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나요?” 예수는 비록 소년의 물음에 충분하고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이만큼 말했다:
“가니드, 네 물음에 답하려고 애써 보겠다. 첫째로, 공격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육체를 입은 내 형제―인지를 결정한 후, 그 사람이 도덕적 판단과 영적 분별이 없다면, 힘이 자라는 데까지 나를 방어하고 폭력을 쓰거나, 벌은 주지 않을 것이다. 가니드, 내 하늘 아버지가 넘치게 돌보심을 나는 절대로 확신한다.”
가니드는 만족하지 않고 여러번 이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예수는 어린시절 석공의 아들 야곱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니드는 "아하~ 이제야 알것 같아요. 첫째로, 어떤 사람도 친절한 당신을 공격하고 싶어하지 않을 거고, 당신이 사람들을 돕는 것처럼, 당신이 곤경에 빠지면 도울 사람들이 당신 가까이 확실히 있을거예요. 선생님은 꽤 안전하리라 짐작되요. 언제나 방어해 줄 누군가가 있을 것 같아요.” 예수는 대답하였다: “그 시험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가니드, 시험이 다가올 때,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지켜야 한다.”
2. 타렌툼에서 배를 타다
133:2.1 자기 아내를 학대하는 사람을 보고서, 예수는 습관대로 얻어맞는 사람을 위해서 간섭했다. 그리고 성난 남편 뒤로 가서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나의 친구여, 잠깐 이야기해도 되겠는가? 보아하니 무언가 끔찍한 일이 당신에게 일어 난 듯 한데, 당신의 얼굴에는 공정을 사랑하는 빛이 있다. 내가 강도들에게 공격을 받는다면, 당신은 분명히 나를 도와줄 것이다. 당신의 아내가 이렇게 맞을 짓을 한 것인가?" 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예수의 친절한 모습과 인자한 웃음이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당신은 견유학파 사제인 것 같습니다. 나를 말리셔서 감사합니다. 내 아내는 아무런 큰 잘못이 없으며, 착한 여자입니다. 내 아내가 나를 화내게 하여 흥분하였습니다. 삼가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나에게 좋을 길을 알려준 당신의 형제들 중 한명에게 서약한 것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약속하겠습니다."
작별을 알리면서 예수는 말했다: "나의 형제여, 여자가 자원해서 그런 권한을 주지 않으면 남자는 어떤 정당한 권한이 없다. 당신의 아내는 함께 일생을 지내고, 당신을 도우며,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짐이 당신보다 무겁다. 남자가 여자에게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겨우 공평합니다. 남자가 기꺼이 아내와 자식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배려할 때 상급 수준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주에 있는 자녀들의 영 어머니를 자신과 동등한 이로서 대우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듯 당신도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배에 올랐을 때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는 부부가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고노드는 예수의 후반부 말씀을 귀담아 들어서, 하루종일 명상에 잠겼고, 인도로 돌아갔을 때 가정을 개혁하기로 결심했다.
세 사람은 로마에서 체험한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가니드는 개인적 봉사에 빠져있었다. 그는 배에서 도와주는 일을 시작했지만, 둘째 날에 종교적으로 깊은 문제에 빠졌을 때 요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니코폴리스에서 어느 예라미 라는 사람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그는 유대신앙으로 개종한 그리스인이었는데 갑판에서 만났다. 사도 바울은 세 번째 선교여행 과정에서 바로 이 집에서 예라미의 아들과 겨울 내내 지냈다. 예수 일행은 니코폴리스에서 고린도를 향해 돛을 달았다.
3. 고린도에서
133:3.1 고린도에 도착할 즘 가니드는 유대 종교에 무척 관심이 생겼다. 예수에게 부탁하여 회당장 그리스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가족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고, 유대인의 생활을 지켜보는 것을 무척 기뻐했다.
예수는 상급의 종교 생활을 그리스보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이 유대인과 스무 번이 넘게 회담을 가졌다. 여러 해 뒤에 그리스보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조직한 기독교 교회의 주요한 지지자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전도했고 나중에 실라스와 디모데가 함께 하였다. 이 전도 기간에 바울은 “어느 인도인 상인 아들의 유대인 가정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다음으로 고린도는 지중해 제국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다. 여가 중 상당히 많은 시간을 회당 근처와 그리스보의 집에서 보냈다. 그는 유대인 가정에서 여자의 지위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고 나중에는 매력을 느꼈다.
예수와 가니드는 또 다른 유대인, 유스도의 집에서 가끔 손님이 되었다. 후일에 여러 번, 사도 바울이 이 집에 머물렀을 때, 인도인 젊은이와 유대인 가정 교사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지혜롭고 놀라운 히브리인 선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였다.
133:3.6 로마에 있을 때, 가니드는 예수가 공동 목욕탕으로 따라가려 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였다. 어느 날 저녁, 고린도에서 두 매춘부가 인사를 건네자 가니드는 무례하게 손짓해서 보냈다. 이것을 보자 예수는 “너는 좋은 의도를 가졌지만 비록 어쩌다가 잘못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그렇게 주제넘게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 여자들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 생계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 말씀에 창부들은 가니드보다 더욱 놀랐다.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모든 인간의 지성 안에는 신성한 영이 살고 있으니, 이 착한 영은 늘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고,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내고 하나님을 알도록 도우려고 애쓴다. 가니드, 보아하니 이 여자들은 많은 슬픔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의도하여 이 종류의 생활을 택하지 않았다. 예수는 모두에게 말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여러분을 용서했음을 대신 말한다. 이제 모두 나와 함께 가서 마실 것을 들면서, 앞날의 생활을 위해 계획할 것이다"
이 늦은 시간에 예수가 가니드와 낯선 두 사람을 데리고 유스도의 아내 마르다에게 나타났다.
마르다가 음식을 식탁 위에 펼쳐 놓았을 때, 예수는 말했다. "때가 너무 늦어 젊은이의 아버지가 기다릴 터이니 최고자가 사랑하는 세 여인들을 두고 떠남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당신들이 땅에서 새롭고 더 나은 삶과 영생을 계획하는 동안에 나는 당신들이 영적 인도를 받도록 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는 가니드와 함께 떠났다. 두 창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니드, 마르다 말이 없었다. 마르다는 이 낯선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가 희망했던 대로 모두 처리하였다. 둘 중에 나이 든 여인은 영생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죽었고, 나이 어린 여자는 유스도의 사업 장소에서 일하다가 고린도 의 첫 기독교 교회에서 평생 회원이 되었다.
133:3.11 그리스보의 집에서 예수와 가니드는 가이우스라는 사람을 만났고, 나중에 바울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다. 고린도에서우연으로 보이는 이 두 달 동안 접촉한 사람들 중의 과반수가 나중에 기독교 공동체의 회원이 되었다.
바울이 처음 고린도에 갔을 때, 아퀼라와 프리실라가 이미 큰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퀼라는 로마에 있을 때 예수가 접촉하게 된 견유학파의 한 사람이었다. 이 부부는 로마에서 온 유대인 피난민었고, 재빨리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살았고, 고린도에서 체류를 연장했다.
4. 고린도에서 개인적으로 한 일
133:4.1 예수와 가니드는 고린도에서 많은 흥미 있는 체험을 겪었다. 큰 무리의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큰 유익을 얻었다.
생활 체험의 방아에서 진리의 알곡을 가루로 만드는 것에 관하여 그는 방앗간 주인에게 가르쳤다. 예수는 “영적 깨달음이 젖먹이 수준에 있는 자에게 진리의 젖을 주라. 능력에 맞게 영적 음식을 준비하라.”
로마의 백부장에게 말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 하나님께 성실히 봉사하는 것과 가이사를 충실히 섬기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고 충성한다면, 당신은 황제에게 더 성실하게 충성할 것이다.
미트라 종파의 지도자에게 말했다: “영원한 구원의 종교를 찾으니 당신은 잘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신비와 인간의 철학 가운데서 찾는 것은 잘못이다. 영원한 구원의 신비는 바로 당신의 혼 안에 있음을 모르는가? 하나님은 그의 영을 당신 안에 보내셨고 이 영은 영원한 빛의 나라까지 인도한다.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동경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쾌락주의파의 선생에게 말했다: "당신은 최선을 고르고 존중하니 잘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 속에 담겨 있는 것, 필사자의 일생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체험 속에서 중요한 일은 우리의 공통된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의 영은 끝없는 여행길에서 당신 안에 살며, 당신을 인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133:4.6 도급업자요 건축가인 그리스인에게 말했다: “친구여, 사람들의 물질 건물을 짓는 동안, 당신 혼 안에 신성한 영의 모습을 좇아서 영적 인품을 기르라. 영적 아들로서 세울 업적이 세상의 건축가로서 세우는 업적보다 뒤지지 않게 하라. 하나님이 건축하고 지으신 도시가 있음을 늘 기억하라.”
로마인 재판관에게 말했다: “당신이 사람들을 재판하는 것과 같이 당신도 언젠가 우주 법정에서 재판받을 것을 기억하라. 자비롭게 판단하라. 당신이 공평하게 재판하는 것 같이 당신도 자비로 완화된 판결을 기대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
그리스 여인숙의 안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고자의 자녀들을 대접하는 자로서 친절을 베풀라. 날마다 하는 고된 일을 예술의 높은 경지까지 올리라. 이로서 저희의 영을 변화시키고 혼을 인도하여, 신성한 영을 주신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알게 하라.”
예수는 어느 중국 상인과 여러번 이야기를 나누고 말씀을 주었다: "당신의 진정한 영의 조상이신 하나님만을 경배하라. 아버지의 영은 언제나 당신 안에 살고있으니, 무의식에서 이 영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당신은 점점 그를 닮게 되어 있다. 자 장씨여, 잘 가시오. 영혼의 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빛의 세계들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브리톤에서 온 나그네에게 말했다: "형제여, 당신은 진리를 찾고 있고, 모든 진리의 아버지 영이 어쩌면 당신 안에 거할것이라 생각된다. 물질 지성이 하나님의 깃드는 영과 교통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성공한다."
133:4.11 집을 뛰쳐나온 소년에게 예수는 일렀다: “하나님과 바로 너―이 두 가지로부터 네가 달아날 수 없는 것을 기억하라. 어디로 가든지, 너는 네 몸, 그리고 네 마음 속에서 사는 하늘 아버지의 영, 이 둘을 가지고 간다. 오늘부터 인생을 직면한 대장부가 될 뜻을 가지라.”
그는 선고받은 죄수에게 말했다: “형제여, 당신은 불운을 당하였다. 동료들은 당신이 저지른 죄에 따라서 당신을 판단하겠지만, 좋은 재판관이 있으니, 그는 당신의 진정한 동기를 따라서 판단할 것이다. 진지하게 뉘우치고 성실하게 믿으면, 하나님의 심판받는 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부과한 사형의 벌이 따른다 해도, 하늘 법정 앞에서 혼은 정의를 받고 자비를 얻을 것이다.”
예수가 고린도에서 큰 무리의 갈급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을 기록하기에는 너무 많다. 로마시대에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고린도에서 두 달 동안 머무른 것은 세 사람 모두에게 값진 체험을 많이 얻을 기회를 주었다.
고노드는 고린도에서 많은 사업이 있었지만, 마침내 사업을 마쳤고 아테네를 향하여 출범하려고 준비했다.
5. 아테네에서―과학에 대한 담화(談話)
133:5.1 그들은 그리스의 과학과 배움의 옛 중심인 아테네에 다다랐다. 그리스는 한때 알렉산더 제국의 문화 중심이었고, 제국의 경계는 인도까지 뻗어있어서 가니드는 아주 기뻐했다. 고노드는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와 가니드와 함께 보냈다.
한 큰 대학이 아직도 아테네에서 번성하였고, 세 사람은 아테네에 있는 배움의 학당을 자주 방문했다.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에서 열렸던 여러 강의에 참석했을 때, 예수와 가니드는 플라톤의 가르침을 샅샅이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의 예술을 즐겼다.
어느 날 저녁, 고노드와 가니드는 여인숙에서 예수가 한 그리스 철학자와 과학에 대하여 세 시간 동안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 현대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는 인력, 빛. 전기가 에너지로 명시되는 것을 측량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우주 현상을 과학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과학은 물리적 에너지 활동을 다루고, 종교는 영원한 가치를 다룬다.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수학적 자만과 자기 중심의 통계만 믿는 병에 걸릴 위험이 언제나 존재한다.
논리와 수학이 믿을 만 하지만 생활 문제에 적용되었을 때는 확실하지 않다. 한 사람이 10분에 양 한 마리의 털을 깎는다면, 10 사람이 그 양털을 1분에 깎을 수 있다고 수학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 없다. 10사람이 함께 털을 깍으면 서로 방해가 되어 일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133:5.6 인간 성격자를 다룰 때, 성격 현상은 산술적 합보다는 관련된 성격자의 수의 제곱에 해당하는 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로 조화된 인간들의 사회 집단은 그 부분들의 단순 합계보다 훨씬 더 큰 세력을 대표한다.
수량은 하나의 사실로 확인되고, 질은 개인의 체험으로 남아야 한다. 과학과 종교 모두가 독단을 줄이고 비판을 더 너그럽게 대할 때, 철학은 비로소 통일되어 우주를 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당신이 실제로 우주의 작용을 헤아려볼 수만 있다면, 우주에는 통일성이 있다. 오직 양적 사실과 질적 가치의 공통된 원인이 파라다이스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을 때 우주를 파악하는 이 지성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실체의 파악은 우주 현상에서 넓은 통찰력을 낳으며, 성격이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영적 목표까지도 드러낸다.
물질과 영과 그 사이의 상태는, 실재하는 우주가 참으로 통일되는 수준, 서로 관계되고 서로 얽혀 있는 세 수준이다. 이것들은 결국 최상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에너지 및 질량, 지성ㆍ영으로 이루어진 이 우주의 근본 원인은 영원하다―우주의 아버지 그리고 그와 절대로 동등한 자들의 성질 및 반응 안에서 존재하고, 또 그러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133:5.11 예수의 말씀에 그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도 남았다. 그리스인이 그들을 떠나면서 말했다: “민족이 우수하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고 종교 외에 무언가 이야기하는 유대인을 마침내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테네 체류는 즐거웠지만, 사람들과 접촉한 성과는 좋지 않았다. 많은 아테나 사람들이 지적 자만심을 가졌거나, 또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은 열등한 노예들의 자손이었다. 아테네 시민 가운데 여전히 명석한 지성인이 많이 있었다.
6. 에베소에서―혼에 대한 담화(談話)
133:6.1 나그네들은 아테네를 떠나 에베소로 갔는데, 여기에는 이름난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온 소 아시아에서 가장 이름난 여신이었고, 가니드는 일찍부터 우상을 신의 상징으로 훈련을 받았고, 아직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그들은 물건을 숭배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머무른지 사흘이 되어 한 젊은 페니키아인을 만났는데, 그는 일터에서 그를 제쳐놓고 진급한 다른 젊은이를 질투하고 있었다. 예수는 위로하며 히브리 속담을 인용하였다: “재능은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그를 위대한 사람 앞으로 데려간다.”
이 지중해 여행에서 얻은 성과는 후일 기독교 선교사들의 일에 가장 가치가 적었다. 기독교가 에베소에서 뿌리를 내린 것은 대체로 바울의 노력을 통한 것이었다. 바울은 2년이 넘도록 거주했고, 생계를 위하여 텐트를 만들면서 밤마다 종교와 철학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어느 진취적 사상가가 있었고 예수는 그와 더불어 몇 차례 담화를 가지는 과정에서 이 그리스인은 “혼”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고, 대답은 이러했다:
“혼은 사람이 자아를 비추어 보고, 진리를 헤아리고 영을 파악하는 부분이다. 자의식 그 자체는 혼이 아니며, 도덕적 자의식은 인간의 참된 자아가 실현된 것이요, 인간 혼의 기초를 이루며, 인간의 체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가 혼이다. 도덕적 선택과 영적 달성, 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충동은 혼의 특징이다. 신성한 영은 인간 지성의 첫 도덕적 활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도착하며 그때에 혼이 태어난다.
133:6.6 “구원은 도덕적 의식의 자각이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 살아남는 가치를 소유하게 된다. 혼이 겪는 온갖 형태의 갈등은 도덕적 또는 영적 자의식과 순전한 지적 자의식, 이 둘 사이에 조화가 모자라서 생긴다.
“물질을 조사하거나 영적 증명 방법으로 인간의 진화하는 혼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혼이 어떻게 생겼는지 묘사하기 힘들고 보여주기는 더욱 어렵다. 도덕 의식을 가진 필사자는 누구나 실재하고 실제로 몸소 겪는 하나의 체험, 즉 자신의 혼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7. 키프러스에서 머무르면서―지성에 대한 담화(談話)
133:7.1 얼마 안 있어 나그네들은 키프러스를 향해 돛을 달았고, 로드에서 멈추었다. 맑은 정신으로 목적지인 섬에 도착했다.
이번 키프러스 방문에는 정말로 쉬고 노는 시간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바보스에 상륙해서 식량을 모으고, 사흘째에 산을 향하여 떠났다.
두 주 동안 세 사람은 무척 즐겁게 지냈는데, 갑자기 가니드가 너무 아팠다. 두 주 동안 끓어오르는 열병을 앓았고, 때때로 헛소리를 했다. 예수는 능숙하고 부드럽게 소년을 돌보았다. 아버지는 예수의 부드러움과 신속함에 놀랐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소년이 건강을 되찾도록 준비하였다.
가니드가 건강을 회복하는 3주 동안, 예수는 그에게 자연과 그 여러 변화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산을 거닐면서, 소년은 묻고 예수는 대답하며, 아버지는 그 구경거리 전체를 감탄하면서, 너무나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산에서 머무르던 마지막 주에, 예수와 가니드는 인간의 지성에 대하여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년이 물었다. "선생님, 고등 생물보다 사람이 더 높은 자의식을 체험한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가요?" 현대적 표현으로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133:7.6 "아이야, 이미 너에게 사람의 지성 안에 사는 신성한 영에 대해 많이 말하였다. 이제 자의식은 하나의 실체임을 강조한다. 어떤 동물이 자의식을 하면 원시인이 된다. 이는 지성이 물질개념과 영을 조정함으로 생긴다. 이 현상으로 아버지의 영이 인간 성격에게 수여되는 것을 정당화한다.
관념(idea)은 단순히 감각의 기록이 아니라 감각과 자아의 반사적인 해석이다. 자아는 감각의 합보다 더 크다. 성장하는 자아 속에는 통일에 대한 접근방법이 시작되고, 그 통일은 절대적 통일의 한 부분인 깃드는 존재에서 파생되며, 자의식하는 동물 기원의 지성을 영적으로 활성화시킨다.
어떤 동물도 시간적 자의식을 소유할 수 없다. 자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이 사실은, 나중에 영적 체험의 실체와 연합하여, 사람이 우주에서 아들이 되는 잠재력을 이루며, 궁극에는 사람이 우주를 다스리는 최상의 하나에 도달한다는 것을 미리 예시한다.
인간의 자아는 의식의 총합도 아니다. 의식을 분류하고 연결짓는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자아라는 충분한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일되지 않은 그러한 지성은 인간의 지위를 가진 의식 수준에 도저히 이를 수 없다.
육체적 감각의 의식으로부터 만들어진 인간 지성은 결코 영적 수준에 이를 수 없다. 물질 지성은 도덕적 가치를 깨닫는 감각이 모자라고, 사람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안내 감각이 결여될 것이다. 안내 감각(조절자)은 이 세상에서 조화된 통일된 인격을 얻는데 필수이며, 영원 속에서 성격이 살아남게 한다.
133:7.11 인간의 지성은 일찍부터 물질을 초월하는 성질을 나타낸다. 개인들이 일생에 이룩한 업적이 무척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유전 자질과 상이한 환경의 영향뿐 아니라, 자아가 성취한 바 아버지의 깃드는 영과 어느 정도 통일되었는지를 가리킨다.
인간의 지성은 선과 악, 이 두 가지를 섬기는 갈등을 잘 견디지 못한다. 최상으로 행복하고 효과 있게 통일된 지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데 전적으로 몸을 바친 지성이다. 평화는 참된 것의 승리를 꿋꿋하게 주장함으로 얻으며, 선의 강한 힘으로 악을 이겨서 이러한 승리를 달성한다.
다음날 그들은 살라미스를 향해 떠났고, 시리아의 바닷가에 있는 안티옥을 향하여 출발했다.
8. 안티옥에서
133:8.1 안티옥은 시리아 지방의 서울이었고, 제국의 총독은 여기에 거처를 두었다. 안티옥의 인구는 50만이었고, 제국에서 셋째로 큰 도시이며, 사악함과 지독한 부도덕면에서 첫째였다. 고도드는 업무로 바빴고, 예수는 가니드와 둘이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악명 높은 치욕의 사당 다프니의 숲에는 고노드와 가니드만 갔고 예수는 따라가기를 거부했다. 그러한 장면은 인도인에게 충격이 아니었지만 이상을 추구하는 히브리인에게는 불쾌했다.
안티옥에서 예수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가니드가 선생이 어째서 안티옥에 흥미를 갖지 않는지 물으니, 팔레스타인에서 멀지 않으니, 언젠가 다시 올 것이라 대답했다.
가니드는 예수의 가르침을 얼마큼 실천하기 시작했다. 안티옥에서 어떤 인도인이 아버지의 사업과 관계되었는데, 불평이 많아서 그를 해고할까 고려중이었다. 가니드는 아버지의 사업장으로 가서 그와 이야기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관하여 말하고 그의 종교적 시야를 넓혀 주었다. 히브리 속담을 인용한 것이 효력이 있었다: “네 손에 무슨 일이 맡겨지든지, 힘을 다하여 일하라.”
낙타 카라반에 실을 짐을 준비한 뒤에 시돈으로,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마스커스로 계속 내려갔고, 3일 후 모래 사막을 횡단하기 위하여 준비했다.
9. 메소포타미아에서
133:9.1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 여행은 이력이 나 있었다. 선생이 낙타 스무 마리에 짐 싣는 일을 돕는 것과 동물을 몰려고 자원하는 것을 본 가니드가 외쳤다. "선생님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요?" 예수는 빙그레 웃으며 "부지런한 생도의 눈에 선생은 확실히 명예가 있나 보구나."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 여행은, 옛 도시 우르를 향하여 떠났다.
예수는 우르의 초기 역사에 관심이 있었고, 여기는 아브라함의 출생지였다. 수사의 옛터와 전통에 마음이 똑같이 끌렸다. 고노드와 가니드는 예수를 위해, 함께 인도로 가기 위해 설득하려고, 이 지역에서 3주 동안 체류를 연장했다.
가니드는 우르에서 지식ㆍ지혜ㆍ진리의 차이에 관하여 예수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히브리인 현자의 말에 크게 감동했다: “지혜가 첫째 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라. 지식을 얻으려는 온갖 노력으로 사물을 이해하라. 지혜를 높이라, 그리하면 지혜가 너를 높이리라. 지혜가 너에게 명예를 가져오리라”
마침내 이별의 날이 왔다. 소년에게는 어려운 시련이었지만 눈물을 글썽이며 선생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틀림없이 무언가 당신과 같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가르침과 당신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고노드가 말했다: “위대한 선생이여,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주신 분께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예수는 대답했다. “당신에게 평화가 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축복이 늘 당신과 함께 있기를.” 나중에 나사렛 예수로 나타난 그 사람이 막 떠나 보낸 바로 이 친구―그들의 선생 요수아―인 줄 결코 알지 못했다.
인도에서 가니드는 자라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 탁월한 아버지의 마땅한 후계자가 되었고 사랑하는 선생 예수에게서 배운 고귀한 많은 진리를 널리 퍼뜨렸다. 가니드는 말년에, 십자가에서 생애를 마친 이상한 선생에 대해 들었을 때, 자신의 유대인 가정교사의 가르침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같은 사람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다.
133:9.6 이렇게 사람의 아들의 일생에서 요수아 선생의 사명이라고 불러도 좋은 장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