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ABBA)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 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로마 8,15; 갈라 4,6).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빠" 와 "아버지"라는 두 가지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인가?
부친을 "아빠"라고 부르는 어린이나 젊은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아빠"라고 합니다.
부친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들은 더이상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습니다.
부친을 두 가지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우리말 예법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이 저마다 나이나 감정에 따라 하느님을 "아빠"라 불러도 좋고 "아버지"라 불러도 좋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위의 "아빠"는 우리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쓰시던 아람 말인데,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말로 서간을 쓰면서 이 아람 말을 소리나는 대로 그리스 말로 옮긴 것입니다. 영어식으로는 "abba"인데,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아바"가 됩니다. 그런데 같은 아람 말 "rabbi"를 원 발음에 더 가깝게 "랍비"라고 하듯이, "abba"도 "압바"로 옮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은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압바" 곧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늘 "아버지"라는 명칭으로 하느님을 가리키실 뿐만 아니라, 기도하실 때에도 하느님을 직접 "아버지!" 하고 부르십니다(마태 11,26; 루가 23,34; 요한 17,1 등. 특히 마르 14,36 참조).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그분과 더없이 친밀하심을, 그분과 하나이심을 드러 내시는 것입니다(요한 5,18; 10,30 참조).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을 받은 신자들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감격스레 선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쓰신 아람 말 "압바!"를 그리스말 앞에다 놓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는(로마 8 ,15), "하느님을 아람 말로 "압바!" 곧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라는 뜻 입니다. 그래서 <신약성서 새번역>에서는 "아빠, 아버지!"를 "압바! 아버지!" 라 옮기고, "압바"가 외국말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다른 글씨체("압바")로 표기합니다.
- 임승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