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장36-47절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케리그마 디다케 멘토링)260503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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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원고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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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의 두 기둥: 뜨거운 영성과 바른 말씀의 균형
교회를 섬기다 보면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성령의 은사’라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이 세계를 경험하려면 깊은 기도 생활이 필수적입니다. 금식하고 부르짖으며 영적인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가 신앙의 전부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는 ‘말씀의 세계’입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읽고 가르치는 지적인 체계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지식이 많다고 해서 신앙이 완성될까요? 역시 아닙니다. 양극단에는 답이 없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와 정교한 말씀의 원리가 서로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무엇으로 나타나야 합니까? 바로 ‘삶’입니다. 신앙은 결국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삶의 현장에서 성품이 엉망이고 삶이 무너져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말씀은 줄줄 꿰고 있는데 그 말씀이 머릿속에만 머물고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일 뿐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말씀과 성령이 하나로 어우러져 성도들의 삶으로 나타나는 소중한 공동체가 되기를 꿈꿉니다.
대한민국에는 이런 고민을 실천으로 옮긴 훌륭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논산의 둔산감리교회가 대표적입니다. 그곳 목사님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무너지는 이유가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집중 말씀 양육을 하는데, 그 과정이 독특합니다. 30분 찬양, 40분 말씀 공부, 그리고 1시간 기도를 매일 반복합니다. 훈련이 끝나면 리더십들이 그 영혼들을 위해 중보하며 성령의 능력을 구합니다. 이렇게 40일간 말씀과 기도로 다져진 성도들은 세상에 나가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예수꾼’이 되어 돌아옵니다. 지식과 체험이 결합될 때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2. 부활의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공동체
또 하나의 본보기는 원주 한마음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핵심은 ‘부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숨 쉬듯 고백합니다.
그들은 이 고백을 실제 생활에서 구현합니다. 학사관 공동체 생활을 하며 밥을 같이 먹고, 오늘 하루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진솔하게 나눕니다. “예수님이 오늘 나의 진짜 주인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고민을 함께 나누고 격려합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머리로만 듣는 게 아니라 삶으로 치열하게 살아내는 현장입니다. 저 또한 부활절 이후 사도행전을 강해하며 이 ‘부활의 관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복음의 세 차원: 선포(케리그마), 변증(아폴로게틱스), 가르침(디다케)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보여준 설교는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케리그마(Kerygma)’, 즉 복음의 선포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십자가의 은총, 죄 사함, 부활, 그리고 승귀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이 진리는 너무나 명쾌해서 아이들도, 임종을 앞둔 노인들도 이 선포를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 케리그마가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복음의 실제’이기 때문이며, 성령님께서 그 선포와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변증(Apologetics)’, 즉 설득과 확증의 과정입니다.
본문 40절의 ‘여러 말로 확증했다’는 말은 복음을 변증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구약 예언을 들어 예수가 메시아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변증이 필요합니다.
저는 대학생들에게 전도할 때 “천당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질문합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착하게 살아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원효대사 같은 고승도 스스로의 수양으로는 성불할 수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길인 ‘용서받고 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기독교는 죄가 없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아 가는 곳임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셋째는 ‘디다케(Didache)’, 즉 가르침과 멘토링입니다.
본문 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단계입니다. 신약의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통합됩니다. 초대교회는 베드로와 사도들, 그리고 120명의 제자들이 멘토가 되어 삼천 명의 새 가족을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성전에 모일 뿐 아니라 집에서도 떡을 떼며 삶을 나누었습니다. 이 ‘삶의 멘토링’이 있었기에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건강한 공동체가 가능했습니다.
4. 분열의 영을 극복하고 본질로 돌아가라
우리가 이 아름다운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려 할 때, 반드시 경계해야 할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사단입니다. 사단의 이름 중 하나인 ‘디아블로스’는 ‘분리하는 자’, ‘이간질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단은 신앙의 본질인 말씀과 성령 사이를 갈라놓으려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핍박과 유혹을 주어 넘어뜨리지만, 신앙이 깊은 사람들에게는 ‘극단’에 빠지게 하여 분열시킵니다. 말씀만 강조하다가 차가운 율법주의자가 되게 하거나, 성령의 은사만 쫓다가 삶의 윤리가 무너진 이단적 성향으로 흐르게 합니다. 한국 교회의 비극은 ‘말씀의 종’과 ‘불의 종’이 서로를 비난하며 나뉘어 있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말씀과 성령은 결코 나뉠 수 없습니다. 한국 성령 운동의 시발점 중 하나인 고신 측의 한상동 목사님은 감옥에서 너무나 추워 “하나님, 저를 뜨겁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다 초자연적인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셨습니다. 정교한 말씀 신앙과 강력한 성령의 체험이 하나였던 것입니다. 사단은 이 둘을 짝 갈라놓아 힘을 잃게 만들려 합니다. 우리는 이 이간질을 극복하고 말씀과 성령이 하나 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5. 결론: 칭송받는 성도, 부흥하는 교회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과 기도가 멋지게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뜨겁게 기도하여 영적인 힘을 얻고, 말씀을 깊이 배워 삶의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찬미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들은 진짜다”라는 칭송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입술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본’을 보일 때,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당당한 설교와 예루살렘 공동체의 헌신적인 삶이 오늘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삶 속에 그대로 재현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와 초대교회 공동체가 보여준 그 거룩한 발자취를 우리도 따라가길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게 하옵소서. 머리로만 아는 신앙이 아니라 가슴으로 체험하고 손과 발로 실천하는 삶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인격과 삶이 주님을 닮아 세상의 칭송을 받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더해지는 부흥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