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단원(11-16) 백마를 탄 자와 하늘군대
①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1) 합니다. 그러면 백마를 타고 등장하는 이분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 눈이 불꽃같고”(12, 1:14, 2:18), “그의 입에서 예리한 이 나오니”(15, 1:16) 등의 묘사와, 그 이름을 “하나님의 말씀이라(13),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16)고 말씀하는 것으로 볼 때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14)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란 누군가? 이는 천사로 보기 보다는 17:14절에서,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한 성도들로 보아야만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라 하는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빌 3:20)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는 “땅에서 올라온”, 즉 땅에 속한 군사요, 성도들은 하늘에 속한 “하늘의 군대”인 것입니다.
② 그런데 학자들은 이 장면을 계시록에서 주님의 재림하시는 장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시록의 구조와 기록목적을 도외시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계시록의 구조(構造)를 요약을 하면, 1장에서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으로 나타나신 주님은, 2-3장에서 일곱 교회에게 “이겨라, 이겨라”고 격려하시고, 4-19장까지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전사들을 진두지휘하시다가, 20-22장에서는 원수들에게는 보응(報應)을 하시고, 이기는 자들에게는 보상(報償)이 주어지는 것이 계시록의 구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계시록의 기록목적은 “내가 본 천국”이나, 주님의 재림 장면을 보여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투하는 교회에 주신 병법인 것입니다. 요한은 1:7절에서 주님은 백마가 아닌,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하면서, 싸우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고 증언했습니다.
어찌하여 “애곡하리라”하는가?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살후1:7-9) 되기 때문입니다.
③ 그런데 19:11절에서는, “백마를 타고” 등장하셔서,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고, “싸우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더욱이나 7절에서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고 말씀했는데, 등장하는 주님은 신랑의 모습이 아닌 “피 뿌린 옷을 입고(13),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는”(15) 야전군 사령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주시는 의도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점에서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입고 있는 “군복”(軍服)과 어린 양의 아내가 입고 있는 “예복”(禮服)(8)을 대조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똑같이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형제는 “세마포”를 입고 싸우는 군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어린 양의 혼인 잔치”(7-9)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 문맥인가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14)한, “하늘 군대”와 연결되어있는 문맥인 것입니다.
④ 여기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깨닫게 되는데,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된 그의 아내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싸워야 하는 “군대”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19장을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마포를 입고 있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 군대들(14)이면서, 동시에 세마포를 입고 있는 그의 아내(8)들인 것입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롬 8:17)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19장을 통한 도전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전쟁에도 참여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군대, 장차는 신부
하늘의 군대들이 입고 있는 “세마포”에 대해서 한 말씀 부언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이 “세마포”를 성화로 여긴다면 군복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적탄을 막아줄 갑옷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세마포”를 성화로 여긴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주를 따를 그런 자격이 있는 군사는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위로 하면 스가랴 3장에 등장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처럼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마포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한 칭의로 보아야만 안전합니다.
계시록은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하신 전투하는 교회에 하시는 훈령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19장의 “하늘 군대들”은, 17:14절에서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과 동일한 전사들이요,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들을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12:11)한 동일한 전사, 바로 형제인 것입니다.
1:16절과, 2:1절에서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라 하심을 상기하십시오. 그 주님은 계시록 내내 십자가 군병들 사이에 계시면서, 그들을 오른 손에 붙잡으시고, 선봉에서 싸우시는 야전군사령관이시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⑤ 이점이 왜 중요하냐 하면 19장의 구조와 의도를 바르게 파악을 해야만 다음 장에서 언급하는 천년왕국(20장)에 대해서도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백마”(白馬)는 승전(勝戰)한 장수가 타고 입성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님을 “백마와 탄 자”로 묘사하고 있는 의도는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군대들과 함께 싸우시는 대장(大將)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점이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다”(13)는 것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천사”라 하지 않고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라고 말씀하면서 그들도 “백마를 타고 따르더라”(14)고 말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재림하시는 주님이 “피 뿌린 옷”을 입고 오신단 말입니까?
⑥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제기됩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언제 어디서 재림하시는가?
㉠ 6:16-17절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한, 이 장면도 재림의 날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 또한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으더라”(16:14)한, 이 “큰 날” 도 바로 “그 날” 이요,
㉢ 또한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19:6-7)한 “기약이 이르렀다” 는 날도 주님의 재림의 기약(期約)으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계시록에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장면은 없고 다만 전사들의 대장으로 등장하실 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점을 구속사라는 넓은 지평으로 볼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출애굽 당시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고 격려합니다.
모세는 죽기 전에 행한 설교인 신명기에서,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신 1:30)하면서,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신 31:3)고 격려합니다.
여호수아도 고별 설교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수 31:3)하면서,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수 31:10)고 격려합니다.
싸워주시는 어린 양
⑦ 본문에서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하면서,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19-20)하는 장면은 주님의 재림의 장면이 아니라 구속사의 동일선상에서 전사들과 함께 싸워주시는 주님이시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재림에 관하여는 첫 장에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1:7) 말씀하고, 마지막 장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22:12)하고, 약속으로 주어 질뿐입니다. 만일 주님의 재림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면 보다 더 장엄하고 영광스럽게 묘사했을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느냐 하면 계시록이 주님의 재림 직전의 어느 짧은 기간에 되어 질 일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줍니다.
그렇다면 계시록의 기록목적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유다서의 기록목적이, “성도에게 단 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 1:3)에 있음 같이, 계시록도 전투하는 교회에게 “힘써 싸우라,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백마를 탄 자와 하늘군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