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들이 오가던 길을 따라간다. 봇짐이나 등짐을 짊어지고 행상을 다니던 길이다.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해산물을 팔러 갔다. 내륙에선 공산품을 가져와 팔았다. 길도 예쁘다. 편백숲과 산성, 마을길과 숲길의 연속이다.
보성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이다. 옛날 보부상들이 오가던 편백숲길과 활성산성의 성곽길을 연결했다. 한국차박물관에서 시작된다. 차박물관은 차 문화 연구와 보급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아무 때라도 녹차를 음미할 수 있다.
 | 하늘을 가릴 것 같은 편백숲은 활성산 일대 80㏊가 분포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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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차박물관에서 턱골고개로 간다. 보성읍 봉산리와 쾌상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숨이 턱까지 찬다고 해서 턱골고개다. 버튼을 누르면 판소리가 나오는 보성소리 체험시설이 보인다. 서편제 보성소리의 고장답다. 간이 화장실에서도 라디오가 들려온다. 모두 태양열을 이용하고 있다.
판소리 한 소절을 들으며 보성읍장이나 웅치 곰재장으로 가는 옛 보부상들을 떠올려본다. 무거운 봇짐을 메고 가파른 고개에 올라 서 땀을 훔치며 가쁜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턱골고개에서 길이 활성산성과 보성읍내로 갈라진다. 활성산성은 왼편 돌탑 사이로 들어간다. 발걸음도 반기는 흙길이다. 편백나무와 삼나무도 빼곡하다. 1960~70년대 심어진 것들이다.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고장이 보성입니다. 장성 축령산처럼 집중돼 있지 않아서 그렇죠. 편백나무 면적이 6000㏊나 돼요. 여기 활성산 일대에 80㏊가 분포돼 있고요. 장성은 5000㏊로 보성 다음이에요"
선남규 보성군 해양산림과 계장의 말이다.
 | 보부상이 넘나들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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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만을 내려다보는 활성산성(活城山城)은 길이 1600m의 토성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선조 26년(1593년) 득량만 인접지역의 경비를 위해 쌓았다. 바다로 쳐들어오는 왜구를 감시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성벽 안은 완만하다. 바깥의 경사는 급하다. 밖에서 성안의 상황을 짐작할 수 없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4개의 성문이 있었다. 동문이 옛 보부상들의 출입구였다. 왼쪽에 움푹 파인 곳이 통제와 검열을 담당했던 초병의 근무공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른편으로 편백나무에 기대 선 나무기둥 여러 개가 보인다. 기대앉아 쉴 수 있는 산림욕대다. 처음에 기댈 때는 어색했다. 하지만 금세 편안해진다.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가 온몸을 감싼다. 차향도 저만치서 날아와 코끝을 간질인다. 기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이 산림욕대는 지난 지난해 8월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넘어지고 부러진 편백나무를 활용해 만들었다. 그냥 땔감으로 쓰지 않고 다시 활용한 그 마음이 예쁘다.
한참동안 산림욕대에 기대 쉬었다가 일어나 성곽을 따라 걷는다. 바람이 시원하다. 득량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다. 성곽길도 푹신푹신하다. 차분히 앉아서 피톤치드를 호흡할 수 있는 평상도 군데군데 만들어져 있다. 평상에 앉아서 득량만 일대를 내려다본다. 전망이 좋다.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봉화를 피워 알리던 봉화산도 왼편으로 보인다.
성곽길에서 헬기장의 흔적도 만난다. 1990년대 초까지 군용헬기가 내리고 떴던 곳이다. 그 자리에 활성산성의 정상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도 태풍 볼라벤으로 쓰러진 편백나무를 활용해 만들었다. 의미까지도 애틋한 상징물이다.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은 여기서 부춘동마을 쪽으로 간다. 숲길이 다소곳하다. 두 개의 바위를 자연스레 감싸고 있는 쉼터도 예쁘다. 쌍둥이바위 쉼터다.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해 바위를 따라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쉬어가기에 그만이다. 반달 모양의 데크의자도 멋스럽다. 천편일률적으로 짜놓은 게 아니어서 더 좋다.
흙길을 계속 따라가니 녹색의 들판이 펼쳐진다. 들판을 가로질러 자라고 있는 소나무도 멋스럽다. 순간 차밭인가 했는데, 아니다. 가까이 가서보니 보리밭이다. 때 이른 보리 이파리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영화 속의 배경 같다.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보리밭 사잇길을 걷는다. 기분이 좋다.
보리밭 사잇길이 부춘동마을로 연결된다. 마을의 돌담이 정겹다. 마당에 널어놓은 농작물도 반갑다. 순국선열을 모셔놓은 모춘사도 눈길을 끈다.
여기서부터 길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왕새고개를 넘어간다. 새 가운데 가장 큰 봉황이 오래 머물다 날아갔다는 고개다. 왕새고개를 넘으니 삼수마을이다. 비래천과 상진천, 하진천을 합해 '삼수'라 했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당산나무 세 그루가 있어서 '삼수'라 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도로 양쪽으로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다. 억새와 어우러지는 도로가 늦가을의 심연으로 이끈다. 삼수마을을 지난 활성산성 편백숲 보부상길은 한치재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가는 길
화순읍에서 29번국도를 타고 보성으로 간다. 초당교차로에서 2번국도를 타고 장흥?목포방면으로 가다 장수교차로에서 회천ㆍ안양방면으로 18번국도를 타면 된다. 내비게이션에는 '한국차박물관'이나 '보성군 보성읍 녹차로775(봉산리 1197번지)'를 입력하면 된다.
먹을 곳
다향 머금은 녹차음식은 보성특미관(852-4545)이 맛있다. 한정식과 꼬막요리는 차향머문보성예가(852-3458)와 수복식당(853-3032)을,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녹차 먹인 한우와 돼지고기는 보성한우식육식당(853-3399)과 한우직판장(853-5266)을 알아준다. 백반은 놀부식당(853-3016)과 제일식당(852-6015), 생선회는 해돋이횟집(852-6790), 장어탕은 신동원식당(852-3955), 짱뚱어는 청마루식당(852-8011)이 좋다.
묵을 곳
보성골망태펜션(852-1966)과 갈멜농원(852-6087)과 흙집펜션(853-5145)이 좋다. 한국차박물관 옆 보성녹차리조트(852-2600)는 통나무집 펜션이다. 한옥펜션 녹차마루(010-3640-9188)도 있다. 봇재다원펜션(853-1117)과 들풀민박(852-0698), 보향다원민박(852-0626)도 괜찮다. 제암산자연휴양림(852-4434)과 보성다비치콘도(850-1100)도 있다. 삼수마을에 민박집도 많다.
가볼 곳
대한다원은 보성차밭을 대표한다. 드라마, CF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차밭에서 가까운 율포해변도 고즈넉하다. 해수녹차탕에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푸는 것도 행복하다. 웅치면에 제암산자연휴양림도 있다. 문의는 보성군 해양산림과 061-850-5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