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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진의 숲 카페》
## 제73화 ― 「차 이름을 틀리는 남자」
부제: 이름보다 먼저 기억하는 마음
여름의 숲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있었다.
소진의 숲 카페로 이어지는 돌길에는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계곡에서는 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오후 두 시.
카페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진소진은 창가의 작은 탁자에 앉아 원고를 고치고 있었다.
짧은 갈색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가는 테 안경을 고쳐 쓴 그녀는 방금 적은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람은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막연했다.
소진은 펜으로 문장 아래에 줄을 그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렸다.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연한 하늘색 셔츠에 짙은 회색 바지를 입은 남자였다. 머리는 단정했지만 표정에는 어딘지 모를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는 카페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메뉴판 앞에 섰다.
한참 동안 메뉴판을 읽었다.
그러다가 소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차를 한 잔 마시려고 하는데요.”
소진이 웃으며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어떤 차로 드릴까요?”
남자는 메뉴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신중하게 말했다.
“대추꽃차 한 잔 주세요.”
소진은 잠시 멈칫했다.
“대추꽃차요?”
“네.”
“혹시 대추차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다시 살폈다.
“아, 그렇군요. 대추차.”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제가 차 이름을 잘 몰라서요.”
소진은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따뜻하게 드릴까요?”
“네. 따뜻하게 주세요.”
남자는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
그가 앉은 곳은 숲과 계곡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다.
소진은 대추차를 준비하면서 남자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는 휴대전화도 꺼내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는데, 무언가를 외우는 사람처럼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소진은 대추차를 내왔다.
“주문하신 대추차입니다.”
남자는 찻잔을 바라보았다.
“아, 감사합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추차…….”
소진은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확인하는 사람 같았다.
다음 날이었다.
같은 시간에 남자가 다시 찾아왔다.
소진은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남자는 어제보다 조금 편안한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는 메뉴판 앞에 섰다.
이번에도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가 말했다.
“오늘은 우엉꽃차를 마셔볼까 합니다.”
소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엉꽃차요?”
남자는 당황했다.
“아니, 그게…… 노란 꽃이 들어가는 차 말입니다.”
소진은 웃었다.
“국화차를 말씀하시는군요.”
남자는 손뼉을 쳤다.
“맞습니다! 국화차!”
그는 멋쩍게 웃었다.
“어제는 대추차였고, 오늘은 국화차인데 자꾸 헷갈리네요.”
소진은 부드럽게 말했다.
“차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시면 그럴 수 있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국화차는 정말 꽃으로 만드는 겁니까?”
“네. 식용으로 준비한 국화를 말려서 우려내는 차예요.”
“아…….”
남자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엉차는요?”
“우엉 뿌리를 손질해서 볶거나 말린 뒤 우려내는 차입니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꽃하고 뿌리…….”
소진은 웃었다.
“네.”
남자는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러니까 국화는 꽃, 우엉은 뿌리.”
“맞습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창가 자리로 향했다.
소진은 국화차를 준비했다.
잠시 뒤 찻잔을 내놓자 남자는 향을 맡았다.
“향이 참 좋네요.”
“국화 특유의 은은한 향이 있어요.”
남자는 찻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진은 웃었다.
“내일도 오시면 시험을 봐드릴까요?”
남자는 놀란 표정이었다.
“시험이요?”
“농담이에요.”
남자는 그제야 웃었다.
“아이고, 순간 긴장했습니다.”
소진도 함께 웃었다.
그렇게 이상한 손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 끝났다.
세 번째 날.
남자는 오후 두 시 십 분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신지영이 카페에 있었다.
흰 셔츠에 짙은 회색 앞치마를 두른 지영은 주방에서 다음 ‘지영이 밥을 파는 날’에 사용할 식재료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자가 메뉴판 앞에 서자 소진이 다가갔다.
“오늘은 어떤 차로 드릴까요?”
남자는 자신 있게 말했다.
“오늘은 오미자꽃차를 마시겠습니다.”
소진은 웃음을 참았다.
“오미자차 말씀하시는 거죠?”
남자는 얼굴을 붉혔다.
“아이고, 또 틀렸네요.”
그때 지영이 주방에서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소진은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차 이름을 조금씩 헷갈리세요.”
지영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떤 차를 찾으십니까?”
남자는 대답했다.
“오미자차요.”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대로 말씀하셨네요.”
남자는 웃었다.
“방금 소진 사장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지영도 웃었다.
“그렇습니까?”
남자는 조금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제가 차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지영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손님, 이러다 차 이름을 새로 만드시겠습니다.”
남자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소진도 웃었다.
지영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차 이름을 꼭 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드셔보고 입맛에 맞는 걸 고르시면 되죠.”
남자는 잠시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긴 한데…… 저는 좀 외워야 할 사정이 있습니다.”
소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
그날부터 남자는 거의 매일 카페에 찾아왔다.
소진은 그의 이름이 강현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쉰여섯 살.
작은 인쇄업체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최근 퇴직했다고 했다.
그는 늘 오후 두 시 무렵 찾아와 차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런데 차 이름을 틀리는 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오늘은 국화뿌리차로 주세요.”
“국화차와 우엉차 중 어떤 걸 드실까요?”
“아이고, 또 섞였군요.”
어느 날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빨간색 차 있잖습니까. 다섯 가지 맛이 난다는…….”
소진이 웃었다.
“오미자차요?”
“맞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이름이 참 쉬워 보이는데, 막상 주문하려면 생각이 안 납니다.”
소진은 대답했다.
“쌍화차요?”
“네. 그겁니다.”
지영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현석 씨, 이쯤 되면 메뉴판을 집에 가져가셔야겠습니다.”
현석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싶습니다.”
소진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현석은 차 이름을 자주 틀렸지만, 자신이 마신 차의 맛은 정확하게 기억했다.
대추차를 마시면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달큰하고 부드럽군요.”
국화차를 마시면 말했다.
“이건 향이 먼저 올라오네요.”
우엉차를 마시면 고개를 끄덕였다.
“구수한 맛이 있군요.”
오미자차를 마신 날에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건 새콤하면서도 끝맛이 다르네요.”
소진은 신기했다.
이름은 틀리면서 맛은 정확하게 구별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현석 씨는 차를 정말 열심히 배우시네요.”
현석은 웃었다.
“그런가요?”
“네. 매일 다른 차를 드시잖아요.”
현석은 잠시 찻잔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대답했다.
“제가 원래 새로운 걸 배우는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세요?”
“네. 평생 일만 했거든요.”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요즘은 배워야 할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진은 더 묻지 않았다.
현석의 말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어느 목요일 오후였다.
현석은 평소보다 늦게 찾아왔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진이 물었다.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현석은 웃었다.
“볼일이 있어서요.”
그는 자리에 앉았다.
소진은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오늘은 어떤 차로 드릴까요?”
현석은 한참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그 노란 꽃차로 주세요.”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화차요?”
“네.”
소진은 웃었다.
“오늘은 거의 맞히셨어요.”
현석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름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끝내 생각이 안 났습니다.”
소진은 국화차를 준비했다.
그런데 차를 내오려는 순간, 현석이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짙은 갈색 표지의 낡은 수첩이었다.
모서리는 닳아 있었고, 여러 장의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현석은 수첩을 펼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소진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국화차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수첩에 다시 한 줄을 적었다.
소진은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를 보았다.
거기에는 차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추차 — 달큰하고 부드러운 맛.
국화차 — 노란 꽃, 은은한 향.
우엉차 — 뿌리, 구수한 맛.
오미자차 — 붉은빛, 새콤한 맛.
그런데 그 아래에는 조금 다른 글씨가 있었다.
정희가 좋아하던 차.
소진은 순간 시선을 멈추었다.
현석은 소진의 눈길을 알아차렸는지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공부를 좀 하고 있습니다.”
소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군가를 위해서요?”
현석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수첩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제 아내를 위해서입니다.”
현석의 아내 이름은 이정희였다.
쉰넷.
정희는 오랫동안 작은 꽃집을 운영했다.
꽃을 좋아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 안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꾸는 사람이었다.
봄이면 작은 화병에 들꽃을 꽂았고, 여름이면 창가에 초록 식물을 놓았다.
가을에는 국화차를 즐겨 마셨다.
겨울이면 대추차를 끓였다.
하지만 현석은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차는 그저 목이 마를 때 마시는 것이었다.
아내가 차를 내오면 마셨고, 그렇지 않으면 물을 마셨다.
어느 날 정희가 물었다.
“여보, 당신은 내가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알아?”
현석은 신문을 보며 대답했다.
“당신은 차라면 다 좋아하잖아.”
정희는 웃었다.
“그렇긴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지.”
“그럼 그거 마시면 되지.”
현석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정희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참 관심이 없어.”
현석은 신문을 넘기며 대답했다.
“차 이름까지 알아야 하나?”
정희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때 현석은 몰랐다.
그 짧은 대화가 아내의 마음에 얼마나 오래 남았는지.
몇 달 전, 정희는 오랫동안 운영하던 꽃집을 정리했다.
몸이 크게 아픈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손목과 어깨가 자주 아팠고, 예전처럼 오래 서서 일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꽃집 문을 닫은 뒤 정희는 한동안 집에서 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현석이 물었다.
“당신, 요즘 왜 그렇게 말이 없어?”
정희는 대답했다.
“그냥.”
“꽃집 문 닫아서 그래?”
“조금은.”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편하게 쉬면 되잖아.”
정희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참 쉽게 말한다.”
현석은 의아했다.
“뭘?”
“내가 삼십 년 동안 하던 일을 그만뒀는데, 당신은 이제 쉬면 된다고만 하잖아.”
현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한테는 꽃집이 그냥 일터가 아니었어.”
그녀는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을 바라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꽃을 만지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를 보내던 곳이었지.”
현석은 그제야 아내가 잃어버린 것이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 이해했다.
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날 밤, 정희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가끔은 누군가 나한테 뭘 좋아하느냐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
현석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자신은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며칠 뒤, 현석은 정희에게 물었다.
“당신, 요즘 무슨 차 마시고 싶어?”
정희는 놀란 표정이었다.
“갑자기?”
“그냥.”
정희는 잠시 생각했다.
“국화차.”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화차.”
그는 그날 마트에 갔다.
하지만 차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진열대에는 여러 종류의 차가 놓여 있었다.
대추차, 국화차, 우엉차, 보리차.
현석은 포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엉뚱한 차를 사 왔다.
정희는 봉지를 보고 웃었다.
“여보, 이건 우엉차잖아.”
현석은 당황했다.
“아니, 노란색 그림이 있길래…….”
정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국화차는 꽃이야.”
현석은 머쓱해졌다.
“그렇군.”
그날 정희는 웃었지만 현석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가 삼십 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생활 습관을 기억해주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데 자신은 아내가 좋아하는 차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했다.
그는 그날 밤 작은 수첩을 샀다.
그리고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정희가 좋아하는 것.
그 아래에는 한 줄을 더 적었다.
국화차.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국화차가 어떤 차인지도 알고 싶었다.
어떤 향이 나는지, 어떤 맛인지, 어떻게 우려야 하는지.
그래서 전통차를 전문으로 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진의 숲 카페를 알게 되었다.
현석은 수첩을 펼쳐 소진에게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차 이름만 외우려고 했습니다.”
소진은 조용히 들었다.
“그런데 이름을 외우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현석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서 직접 마셔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국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름만 외우면 또 잊어버릴 것 같아서요.”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석은 말을 이었다.
“제가 평생 아내에게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생활비도 벌었고, 집안에 큰 문제 없이 살았으니까요.”
소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석은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아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보니까 대답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군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좋아하는 꽃도 모르고, 좋아하는 차도 모르고…….”
소진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하나씩 알아가시는 거군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차를, 이번에는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소진은 그 말을 오래 마음에 담았다.
현석은 다시 말했다.
“정희가 꽃집을 그만두고 나서 많이 허전해했거든요.”
그는 잠시 생각했다.
“저는 그냥 쉬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위로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소진은 부드럽게 말했다.
“오랫동안 좋아하던 일을 내려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더군요.”
“그래도 지금부터 알아가시면 되잖아요.”
현석은 소진을 바라보았다.
“늦지 않았을까요?”
소진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는 데 늦은 때가 따로 있을까요?”
현석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그렇겠죠.”
그날 이후 소진은 현석에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차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차의 특징을 먼저 익히도록 한 것이다.
어느 날 소진은 작은 찻잔 세 개를 준비했다.
첫 번째에는 대추차를 담았다.
두 번째에는 국화차를 담았다.
세 번째에는 우엉차를 담았다.
현석은 놀란 표정이었다.
“오늘은 시험입니까?”
소진은 웃었다.
“시험이라기보다 맛보기예요.”
지영도 옆에서 웃었다.
“이번에는 이름을 안 알려드릴 겁니다.”
현석은 긴장한 표정으로 앉았다.
소진은 첫 번째 찻잔을 가리켰다.
“먼저 향을 맡아보세요.”
현석은 찻잔을 가까이 가져갔다.
“음…… 달큰한 향이 나네요.”
“맛은 어떠세요?”
현석은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럽고 달큰합니다.”
소진은 웃었다.
“그럼 어떤 차일까요?”
현석은 잠시 생각했다.
“대추차!”
“맞았습니다.”
현석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아, 이번에는 알겠습니다!”
지영이 손뼉을 쳤다.
“축하드립니다.”
현석은 두 번째 찻잔을 들었다.
향을 맡고 천천히 맛보았다.
“이건 꽃향기가 나네요.”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석은 자신 있게 말했다.
“국화차!”
“정답입니다.”
지영이 웃었다.
“두 문제 연속 정답입니다.”
현석은 어깨를 폈다.
“이제 감이 좀 옵니다.”
세 번째 찻잔을 들었다.
구수한 향이 올라왔다.
현석은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이건…….”
지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국화뿌리차입니까?”
현석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닙니다!”
“그럼요?”
현석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우엉차!”
소진은 환하게 웃었다.
“맞았습니다.”
현석은 기뻐했다.
“세 개 다 맞혔네요.”
지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차 전문가가 다 되셨습니다.”
현석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오미자차는 왜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합니까?”
소진은 웃었다.
“오미자는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다만 우려내는 방법에 따라 맛의 느낌은 달라질 수 있어요.”
현석은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열심히 적었다.
지영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현석 씨, 이제 차 이름뿐 아니라 설명까지 외우시겠는데요.”
현석은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중요했다.
며칠 뒤, 현석은 아내 정희와 함께 카페를 찾아왔다.
소진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현석 옆에는 단정한 옷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
연한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작은 꽃무늬 스카프를 두른 여자였다.
현석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진 사장님, 제 아내입니다.”
정희는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소진은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희는 놀란 표정이었다.
“제 이야기를요?”
현석이 얼른 말했다.
“아니, 그게…….”
소진은 웃었다.
“차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차를 좋아합니다.”
두 사람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현석은 메뉴판을 펼쳤다.
그리고 정희에게 물었다.
“당신, 오늘은 어떤 차 마실래?”
정희는 웃었다.
“당신은 뭐 마실 건데?”
현석은 잠시 생각했다.
“나는 우엉차.”
정희는 놀랐다.
“우엉차?”
“응.”
“당신이 그런 차도 마셔?”
현석은 조금 으쓱했다.
“그럼.”
정희는 웃었다.
“언제부터?”
현석은 대답했다.
“얼마 전부터.”
정희는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나는 국화차.”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정희는 눈을 크게 떴다.
“뭐?”
“당신 국화차 좋아하잖아.”
정희는 남편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당신이 그걸 기억하네.”
현석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제는 기억하지.”
소진은 두 사람의 차를 준비했다.
잠시 뒤 국화차와 우엉차를 내왔다.
현석은 정희의 찻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국화차. 꽃으로 만드는 거야.”
정희는 웃었다.
“알아.”
“그리고 이건 우엉차. 뿌리로 만드는 거고.”
정희는 더 크게 웃었다.
“당신, 갑자기 차 선생님이 됐네.”
현석은 조금 민망해졌다.
“아니, 그냥…….”
정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뭐가?”
“당신이 차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다니.”
현석은 웃었다.
“나도 신기해.”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차를 마셨다.
현석은 자신이 카페에 여러 번 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희는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당신이 혼자 차를 마시러 다녔다고?”
“응.”
“그것도 여러 번?”
“그렇다니까.”
정희는 웃었다.
“세상에.”
현석은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정희에게 내밀었다.
“이거 한번 봐.”
정희는 수첩을 펼쳤다.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희가 좋아하는 것.
그 아래에는 차 이름과 맛에 대한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정희는 한 장씩 넘겼다.
그러다가 손을 멈추었다.
국화차 — 정희가 가을마다 즐겨 마시던 차.
대추차 — 겨울에 손이 차가울 때 찾던 차.
오미자차 —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던 차.
정희는 한참 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이걸 당신이 다 적었어?”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왜?”
현석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걸 좀 알고 싶어서.”
정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석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동안 나는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어.”
정희는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좋아하는 건 늘 당신이 알아서 챙긴다고 생각했지.”
현석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걸 참 많이 기억하더라.”
정희는 조용히 들었다.
“내가 어떤 국을 좋아하는지, 어떤 반찬을 잘 먹는지, 몸이 피곤하면 뭘 찾는지…….”
현석은 쑥스럽게 웃었다.
“나는 그런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
정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현석은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희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차 이름을 몰라서 서운했던 게 아니야.”
현석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정희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당신도 궁금해해 줬으면 했던 거지.”
현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희는 웃었다.
“차 이름 하나 모른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어.”
그녀는 수첩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런데 이렇게 적어놓은 걸 보니까…….”
잠시 말을 멈추었다.
“참 좋네.”
현석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희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그때 지영이 주방에서 나왔다.
현석은 그를 보자 반갑게 손을 들었다.
“지영 씨!”
지영은 웃었다.
“어서 오셨습니까.”
현석은 아내를 소개했다.
“제 아내입니다.”
지영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희는 웃었다.
“우리 남편이 여기서 차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열심히 하셨습니다.”
현석은 조금 쑥스러워했다.
“아이고, 뭘 그렇게까지…….”
지영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처음에는 차 이름을 새로 만드셨습니다.”
정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요?”
소진이 옆에서 말했다.
“대추꽃차도 있었고, 국화뿌리차도 있었어요.”
정희는 한참 웃었다.
“아이고, 여보!”
현석은 얼굴을 붉혔다.
“그만들 하세요.”
지영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거의 다 맞히십니다.”
정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정말 많이 배웠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더 배워야지.”
정희는 웃었다.
“뭘 또?”
현석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꽃도.”
정희는 놀란 표정이었다.
“꽃?”
“응.”
현석은 진지하게 말했다.
“차 다음에는 꽃 이름을 좀 배워보려고.”
정희는 웃었다.
“당신, 그건 더 어려울 텐데.”
현석도 웃었다.
“그렇겠지.”
지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꽃 이름을 틀리는 남자가 되시겠군요.”
카페 안에 웃음이 퍼졌다.
현석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그건 좀 곤란합니다.”
소진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정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여보.”
“응?”
“꽃 이름은 내가 가르쳐줄게.”
현석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그럼.”
정희는 웃었다.
“내가 삼십 년 동안 꽃집을 했잖아.”
현석도 웃었다.
“그렇지.”
정희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대신 당신은 나한테 차 이야기 좀 해줘.”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그날부터 그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일주일 뒤, 현석과 정희는 다시 카페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작은 화분 하나를 들고 있었다.
정희가 소진에게 내밀었다.
“이거 카페에 놓으시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소진은 놀랐다.
“어머, 이렇게 예쁜 걸요?”
작은 화분에는 연한 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다.
정희는 웃었다.
“제가 집에서 키우던 거예요.”
소진은 감사히 받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석은 옆에서 말했다.
“이 꽃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소진은 웃었다.
“무슨 꽃인가요?”
현석은 자신 있게 대답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게…….”
정희는 웃음을 참았다.
현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히 어제 외웠는데…….”
정희가 말했다.
“아프리칸바이올렛.”
현석은 손뼉을 쳤다.
“맞아! 아프리칸바이올렛!”
지영은 웃었다.
“현석 씨, 이제 꽃 이름 공부가 시작됐군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진은 웃었다.
“차 이름보다 어려우시죠?”
현석은 진지하게 말했다.
“훨씬 어렵습니다.”
정희는 남편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도 잘하고 있어.”
현석은 조금 으쓱했다.
“그렇지?”
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꼭 꽃 이름을 다 외울 필요는 없어.”
현석이 의아했다.
“왜?”
정희는 미소를 지었다.
“모르면 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현석은 잠시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그러네.”
정희는 덧붙였다.
“나도 당신이 좋아하는 걸 모르면 물어볼게.”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날 두 사람은 창가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셨다.
현석은 우엉차를 주문했고, 정희는 국화차를 주문했다.
이번에는 이름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석은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물었다.
“여보, 그런데 당신은 왜 국화차를 좋아해?”
정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웃었다.
“가을 냄새가 나거든.”
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을 냄새?”
“응.”
정희는 찻잔을 가까이 가져갔다.
“어릴 때 우리 집 마당에 국화가 많았어. 가을이면 엄마가 그 꽃을 참 좋아하셨지.”
현석은 조용히 들었다.
정희는 웃었다.
“그래서 국화 향을 맡으면 어릴 때 집이 생각나.”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냥 향이 좋아서 마시는 줄 알았어.”
정희는 웃었다.
“그것도 맞아.”
현석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런 이유도 있었네.”
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현석은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해줘.”
정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들어줄 거야?”
현석은 웃었다.
“그럼.”
정희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날 저녁, 카페 문을 닫은 뒤 소진은 창가에 앉았다.
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숲길 위로 저녁 햇살이 길게 내려앉았다.
소진은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제목을 적었다.
‘차 이름을 틀리는 남자.’
그녀는 잠시 웃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대추차를 대추꽃차라고 부르고, 국화차를 우엉꽃차라고 부르던 남자.
차 이름을 외우기 위해 매일 카페를 찾아오던 사람.
하지만 그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차 이름이 아니었다.
그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작은 취향들.
그리고 그 취향 뒤에 숨어 있는 아내의 기억과 마음을 알아가고 싶어 했다.
소진은 천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는 이유로, 매일 얼굴을 본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마음까지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차 한 잔, 좋아하는 꽃 한 송이의 이름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녀는 잠시 펜을 멈추었다.
현석이 처음 카페에 왔던 날이 떠올랐다.
메뉴판 앞에서 한참 망설이던 모습.
틀린 이름을 말하고 머쓱하게 웃던 표정.
작은 수첩에 차 이름을 적던 손길.
소진은 다시 적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거창한 지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왜 좋아하는지 들어주는 일.
그 작은 관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준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묻는 용기가 오래된 관계를 새롭게 만든다.
소진은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마음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때 지영이 주방에서 나왔다.
“소진 씨, 오늘은 무슨 글을 쓰셨습니까?”
소진은 웃었다.
“차 이름을 틀리는 남자 이야기요.”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현석 씨 이야기군요.”
“네.”
지영은 웃었다.
“이제는 차 이름을 거의 다 외우셨는데요.”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지영은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꽃 이름은 아직 멀었더군요.”
소진은 웃었다.
“그래도 괜찮겠죠.”
“왜요?”
소진은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물어볼 사람이 있으니까요.”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소진이 물었다.
“뭐가요?”
지영은 진지하게 말했다.
“소진 씨가 가장 좋아하는 차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소진은 웃었다.
“정말요?”
“네.”
소진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저는 계절마다 달라요.”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오늘은요?”
소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오미자차가 좋겠네요.”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소진 씨.”
“네?”
“오미자차는 제가 만들면 안 되겠죠?”
소진은 웃었다.
“왜요?”
지영은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만들면 다섯 가지 맛이 아니라 여섯 가지 맛이 날지도 모르니까요.”
소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섯 번째 맛은 뭔데요?”
지영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웃었다.
“실패한 맛이겠죠.”
소진은 한참 웃었다.
“그럼 제가 만들게요.”
지영도 웃었다.
“그게 좋겠습니다.”
창밖에는 여름 저녁의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
소진은 다시 수첩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는 일은 어쩌면 차를 배우는 일과 닮아 있었다.
처음에는 이름도 낯설고 맛도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그 차만의 특징을 알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곁에 있었다고 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다시 물어야 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그리운지.
어떤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들어주어야 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을 기꺼이 알아가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소진은 마지막 문장을 조용히 읽었다.
그리고 수첩을 덮었다.
― 제73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74화 「오늘은 지영이 사장입니다」
부제: 찻잔 하나에도 주인의 하루가 담겨 있다
어느 날, 소진에게 갑작스러운 외출할 일이 생긴다.
하루 동안 카페 문을 닫으려는 소진에게 지영이 자신 있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카페를 맡겠습니다.”
소진은 조금 망설이지만 지영을 믿고 카페를 부탁한다.
그런데 막상 혼자 카페를 운영하게 된 지영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차를 우리는 시간부터 손님들의 까다로운 주문, 계산과 찻잔 정리까지.
평소에는 쉬워 보이던 일들이 하나같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 손님은 소진이 평소에만 만들어주던 특별한 차를 주문한다.
“사장님, 지난번에 마셨던 그 차로 주세요.”
지영은 난감해진다.
“그 차가…… 무슨 차였을까요?”
과연 지영은 무사히 카페를 운영할 수 있을까?
늘 곁에서 보던 일과 직접 책임지는 일은 얼마나 다를까.
소진이 없는 하루, 지영의 좌충우돌 카페 운영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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