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기 / 선우스님
-추억의 졸업여행-
화엄 학림 스님들이 부처님 성지로 졸업여행을 떠난다.
꿈에도 그리던 외국여행이다 먼저 12월2일 5섯시간에 걸려 태국수도인 방콕에어포
트에 내리니 오전영시다. 또 다시 오전 11시 비행기 탑승이라니, 하휴 괜히 왔
나,11시간을 기다려야 하다니, 곧바로 연결되는 비행기가 없어서 쌀살한 기운이 옷깃
을 스몄지만 공항 한 구석에 옹기종기 쪼그리고 앉아 잠을청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내생각에, 옆에다 깡통이라도 하나 놔둘까 기왕에 이렇게 된거…… 어째
거나 11시출발 시간이 다가와서 네팔카투만두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3시간이 소요하여 내
리니 오후 2시였다 도시의 느낌은 우리나라 60연데 광주와 비슷했다 숙소에서 대충자고 다
음날 포카라 로 갔다 포카라 도시풍경은, 반쯤 파손된 콘크리트 건물이 생활공간 이었고 거
기에 낡은 이불하며 양말 옷가지들이 즐비하게 말리느라 걸려있고 거리도 신장로길은 대
충 포장이 되 있으나 다른샛길들은 모두 비포장길이다 기후는 우리나라 초봄 같았는데
멀리 바라다 보이는 웅장한 안나푸르나 산에는 만년설이 덮혀있었는데 여름과 겨울이 함
께 사는 동내이다 그래서 만감이 교차하니 그것을 즐길뿐이라고…….여인숙을잡고 하루머물면서 여기 저기 구경하기로했다 저녁이되
어 잠을 청하고 아침에 일어나 여인숙 앞마당 의자에 원탁회의를 했는데 집을 잊어버렸을 때는
서로 실상사로 연낙해서 장소를 알아내기로 했는데 참좋은 발상이기도 했지만 서로가 한바탕
웃음으로 통과시켰다 여기서 3일정도 머물면서 피로도 좀 풀고 쉬었다가기로 결론을 모았다 저
녁때까지 해쳐모여 약속을하고 삼삼오오 발닺는데로 눈가는데로 다니는데 버팔로 덩치큰
소가 도로 한 복판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교통정리 하고 있었고 , 내전중이라서 시내 군데군데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지만 교통순경은 소가 대신 해서인지 보이질 않았다 적당한 호수가 시
내를 끼고 돌아 나가고 한적하고 기후 좋고, 1달러에 70루피 하루종일 노가다 품삯이 50루피니
까 우리나라 '돈 가치가' 지금은 돈 부자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살기좋다
저녁이 되어 아침에 해쳐모인 스님들이 다시함께 모였고 한 스님이 100 미터 거리쯤
에 짱 아줌마 한국 식당이 있다고해서 저녁은 거기서 사 먹기로하고 다 같이 갔다
서로 통성명을하니 30대 강원도 노처녀식당집인데 여관까지 함께하고 있는, 마당도
넓고 90연간 임대 하였다고 하면서 여긴주로 한국 사람들이 여행와서 이용한다고 했다 음식
은 아주 맛이 좋았고 한국에서도 맛볼수 없이 참 맛이있었다.
내일은 소풍이라는 한국 음식집 주인이 한턱을 소겠다고했다 이유는 한국 고추장을 20킬로를
부탁해서 갔다드렸기 때문이다 어쨋든 누이좋고 매부좋고다, 다음날 '아침을 소풍에서 먹는
데 짱아줌마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음식이며 밥맛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아침을 해결하고 주
인 부부가 우리 일행을 에스코트해서 산행을 하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차로 30분 달려 내려서 산
행하는데 원주민들이 전통방식 그대로 땅일구고 밭에서 일해서 생활하는 아주 아주 가난한 초
가집 에 소 키우고 닭 키우고 염소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촌풍경 그대로다 암탉은 병아리때 거느
리고 먹이를 쪼아주고, 애들은 7세이하 남자 아이들은 신발이 없다 바지도 입지 않았다, 방을
살짝 들여다보니 황토 방인데 그 위에 아무거나 잠 잘 때만 거적을 깔고 자는지 지금은 아무것
도 깔리지 않았다 새삼 감회가 새롭다
방에 구둘은없다 아열대 기후라서 그런가 싶다, 그래도 저녁은 기온이 5도 내지 6도
이기 때문에 상당히 춥게느켜진다
다음날은 룸비니로 가는날이다
아침이 되어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15시간 달려 룸비니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산세 사이로 계곡 사이로 시골집들하며 참좋았다 저는 학창시절 친구에게 배웠던 시골로 가는길 올모스트해븐 철지난 팝을 혼자소리로 흥얼거리며 그대로 시골을 만끽한다 리무진 버스는 여러 나라 관
광객들 이 같이 합류하여 타고 가는데 중간에 20분차를 세우면서 볼일을 보란다. 남자
들은 산쪽을 향하여 발사 여자들은 차뒤에섯는지 앉잤는지 모르겠다.
계곡물도 맑고 옥빛이다 산이 있는 곳의 물은 참좋다
오후7시 15분쯤 룸비니에있는 대성석가사(한국사찰) 에 도착하여 짐을풀었다 밤이 되
니 여기 저기서 늑대울음 소리가 요란하다 늑대가 대문을 열어 달라는지 대문앞 에서도
힘차게 울어댄다.
대성석가사는 불사가 아주 잘되어 있었다 규모로 크고 방에는 각각 목욕탕 시설이 아주 잘 되있
고 방도 넓고좋다
방 두개를 잡고 쉬니 편안하다 달밤을 거닐고 있으려니 저쪽에서 어떤 비구니 스님 일행이 반갑
게 인사를 한다
수덕사 견성암 스님과 다른 일행이 결제 성지 순례 한다고 했다 얼마 동안이냐고 물으니 3달이
라고 했다
어딜가나 한국 사찰은 한국여행객들을 흔하게 만날수 있다 어떤 대학생과 우리스님들과 어디
로 들러 왔느니냐 머 어디는 어떠 터라 등등 밤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하니 즐겁다
저는 일찍 발 닦고 잠을 청했다
새벽 예불을 참석하고 잠시 있다가 공양을 하고 주지 스님과 인사를 하는시간 이다 모두 가사
를 수하고 맞절을 하고 앉자 차을 한잔씩 청하신다.
어떻게 이렇게 크게 불사를 잘하셨느냐고 물으니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처음에 쪼그만 학고방처
럼 짓고 살았는데 여기 저기서 도와줘서 이렇게 하셨다고 했다
일행 한 스님이 여기에 강원을 차리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본인은 학교 다닐 때 공부하곤 거리
가 멀다고 하시면서 , 어떤 것을 하던 다 중요 한 것이고, 다 보살행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입가에
웃음 지으신다.
유치원 불교학교에서 흔히 불러대는 룸비니 동산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래에 등장하는 그,
룸비니다 그런데 부처님 탄생지에 가서 보니 동산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아름드리 보리수 한 그
루 시멘트로 만든 내모 반듯한 작은 호수와 아소카 왕이세운 석주탑 뿐이다
그 석주에 글이 씌어져 있는데 (이곳은 부처님 탄생지 이므로 이곳 주민들에게는 세금을 면해준
다고 쓰여 있다고 한다)
이곳 저곳 주위에는 중국 사찰 일본 사찰 하며, 여러 나라 사찰들이 여기 저기 모여 있었는데 그
림처럼 꾸며져 있으나, 사람이 쉬기에는 적당하지 않아보였다
대충 훌터보고 석가사로 돌아왔다 사시 공양시간이되어 식당에 들어섰는데 먼저온 사람들이
일열로 줄을서있었다 줄선 사람들을보니 모두 한국 사람이였고 군데군데 일본 여행객도 밖
혀 있었다 왜국에있는 한국절은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의식주가 모두 무상으로 공짜이니말이
다
밥을먹고 나오는데 문옆에는 덤으로 미수가루며 콩가루며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써놓셨다 준
김에 홀딱주니여행객들은 얼마나 고맙겠는가? 이게 한국 사람들의 전통 인심인데 절집에
서 라도 영원히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에는 성도하신후 오비구에게 설법하셨던 녹원 성지 녹원 전법상 그곳으로 갔다
거기에도 한국 사찰이 있었는데 사찰이름은 생각이 않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리와있던
한국 비구니스님들이 인사를한다 그런데 인사가 왜 소 둔벙 보듯 대충훒터보고 옆눈짓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우리가 꼭 산적처럼 수염은 길어가지고 얼굴은 쎄까맣고 의상도 단정치 못
하고 나는 속으로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것들이 꽉 음~
얹쩨거나 우리는 한국 사람들이니 반갑다
대충 저녁을 먹고 밤이되어 주지스님이 옥상으로 모이란다 대충 거기 풍습을 설명듣는데 아
까본 비구니 스님들은 불참이다 처음에 서로 느낌이 않좋았는데 합석할리없다
새벽이되어서 선우스님이 도량송을 자청했다
휘영청 밝은달 고향도 그리운데 애절하고 간절한 경허선사 참선곡을 목터져라 맴을도니 너
도좋고 나도좋고 하하하
새벽예불을 대충 마치고 아침이되어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 둔벙보듯한 비구니스님들이 식사 준비도 하고 찌게도 끓이고 화기애애하게 비구스님들이
친절 만땅으로 대한다
아마 선우스님의 새벽 도량송 소리에 감동을먹고 우리를 다시보게한 게기가 되었나보다,그리고 도량송스님은 더욱 특별대우한다 그러기에 사람
은 곁만보고 평가하면 않되지 뭐-확그냥(속으론 기분 만탕이다) 우리가 누군데 조계종의 최고학부 대학원생 아닌가!
하하하
대접을 받고 동이트니 최초 오비구설법지로 향했다 가보니 엄청난 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아
쇼카왕이 세웠다고했다 오래된 불상 전시관 유물관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다음은 부다가야로 떠난다
부다가야에 도착하니 한국사찰 고려사가 있었다
삼일을 쉬고 부처님이 설산수도를 했다는 곳을 참봬하기위해
4시간 오토릭사를 타고 가는데 비포장 길이라서
먼지가 해성꼬리처럼 따라오고 저쪽건너편에서 밭을메는 아낙내도
옆에서놀고있던 얘들도 치마자락날리며 죽어라 쫓아온다
왜그런가 했더니 기브미 딸러 왜치는소릴 듣고 일행 한 님이
젤리사탕 한줌을 차밖으로 넵다 던져서란다
도착하여
설산수도산! 그런대 설산이 아니다 조그마한
동산인데 그 중간에 바위굴이 사람하
나 앉으면 딱 좋개 뚫어져 있었다 우리일행 스님들은 한사람씩 들어가 앉자보며 부처님을 재
연 해보았다 100 미터 아래는 수다타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에 지금 인터냇에 뜨고 있는 법
문 잘하는 법륜스님이 문명퇴치 하기위해 가난한 인도 가난한 오지를 선택
해서 학교를 세운 곳에 들어가니 한국 봉사자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를하
며 안내 하신다 선생의 말씀중에 여기 인도는 13살만 되면 시집보내고 장가든다고 했다 카
스트 풍습 때문에 학교를 나와도 출세도 못하기 때문에 학교도 부모들이 보내지 않아서 처음
에 학교를 운영 하기가 여간 힘들었다고 토로하신다 우리 학교 중학생들은 한둘 자녀를 가
진 학부모란다
다음에 계속
선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