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복남 마리아 할머니를 기리며...
“복남이네 어린아이 감기 걸렸네~~” 매달 환자영성체 날에 정복남 마리아 할머니를 찾아갈 때면 나와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이 동요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흥얼거렸다. 그리고 오늘 환자영성체의 마지막 집이구나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항상 다른 환자분들을 먼저 찾아가고 마리아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할머니께서 나를 놔주지 않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거실에 앉아서 바나나 우유와 과일, 그리고 튀긴 누룽지를 먹고 가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벌써 5년 가까이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정복남 마리아 할머니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흰색이 떠오른다. 94세의 고령이심에도 20년은 젊어 보이는 하얀 피부와 흰옷을 즐겨 입으셨고, 환자영성체 하시는 날이면 화장을 곱게 하시고 영성체할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다 하셨다. 아파트 인테리어도 풍기는 인품만큼이나 깔끔하고 밝은 톤으로 해놓으셨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까지도 보행보조기구의 도움을 받지만 걸어서 노인정에 다니실 만큼 건강하셨다. 정신건강은 60대, 아니 50대 부럽지 않으셨다. 매일 평화방송 프로그램 스케줄을 꿰차고 앉으셔서 매일미사며 신부님, 수녀님들의 성서, 전례, 영성, 성지 등의 강의들을 들으시고 저에게 이야기 해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옳고 그름의 사리분별이 정확하신 분이셨다. 때로는 강의 내용 중에 이해 안 되는 부분을 진지하게 물으셨고, 새로 지어지는 새성당에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건의도 해주셨다.
마리아 할머니를 깔끔한 흰색에 비유한 데에는 할머니의 죽음에서도 잘 드러난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자택에서 자연스럽게 돌아가시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3년 전에는 미리 아들과 분당성요한 성당 장례식장을 둘러보시고 병원장례식장이 아닌 그곳에서 장례 치루기를 희망하셨다.
마리아 할머니는 11월 위령성월에 병자성사를 신청하셨고 그때 병자성사를 해드렸다. 그리고 12월 대림시기에 환자영성체 날에 찾아뵈었더니 마리아 할머니는 여전히 화장을 곱게 하시고 침대에 힘없이 누워 계셨다. 3일간이나 곡기를 끊고 계셨다고 한다. 물 약간 외에는 어떤 것도 넘기실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병자성사를 또 해드려야겠다 싶어 정성껏 병자성사를 해드리고 노자성체를 모셔드렸다.
대림3주일 낮미사 후에 사제관에서 쉬고 있는데 마리아 할머니의 선종소식을 들었다.
마리아 할머니에 대한 많은 추억들이 머리에 스친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아침에 눈을 떠도, 밥을 먹을 때도, TV를 볼 때도 마리아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백발의 마리아 할머니가 아파트 발코니에서 환자영성체 하고 가는 나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주시는 장면이다. 할머니는 매번 그렇게 해주셨다. 마치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복남 마리아 할머니를 하느님 나라로 떠나보내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새성당 지어지면 성당 맨 앞자리에 환자영성체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모시고 미사봉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마리아 할머니와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할머니가 환자영성체 끝나고 나올 때마다 항상 저에게 친필로 쓴 봉투 3개를 주셨잖아요? 하나는 교무금, 하나는 생미사 예물, 또 하나는 저와 봉사자 점심 사먹으라고 용돈 주셨잖아요? 저도 할머니 기억날 때마다 할머니 위해서 연미사 봉헌할게요! 마리아 할머니도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서 전구기도 해주실 것을 믿어요. 아멘!
첫댓글 마리아 할머님은 돌아가실 준비를 오래전부터 해오셨네요.
비록 새성전에서 장례미사를 못하지만 병자성사를 두번씩이나 받으시고
또 신부님께서 오랬동안 추억해주실테니
마리아 할머니는 진정 은총을 받으신 분이 틀림없습니다.
마리아 할머님의 영혼의 평안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할머니께서도 주님곁에서 신부님을 위해서 전구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마리아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잘 보내드리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