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3월 29일 진시황릉이 발견되었다. 진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 불과 15년 만에 멸망했다. 분서갱유로 무모한 사상 통일을 시도하고, 만리장성 축조로 백성들을 못살게 핍박한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혹독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진시황은 몰랐던 듯하다.
중구삭금衆口鑠金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자성어는 노나라 좌구명이 춘추시대 8개국 역사를 담은 《국어》에 나온다. 춘추시대라면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전이다. 진시황이 아방궁에서 노느라 독서를 게을리한 탓에 《국어》를 읽지 않았거나, 읽고도 교훈으로 체화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터이다.
어느 쪽일까?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상급 사람, 배워서 아는 차등급 사람, 곤란을 겪고 나서 배우는 차차등급 사람, 곤란을 겪은 뒤에도 배우지 않는 하급 백성이 있다고 했다. 진시황은 곤란도 겪지 않고 배우지도 않았으니 제5 인간형이라 하겠다.
진시황을 그렇게 평가할 만한 예화들은 무수하다. 단적인 것이 불로초 이야기이다. 사람을 늙지 않게 하는 신비한 약초를 구해오라는 진시황의 명을 받은 사람들이 제주도까지 왔다고 전해진다. 진시황은 당시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사용하던 단어 ‘짐’을 자기 혼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진의 파멸을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1937년 3월 29일 세상을 떠난 김유정의 단편 〈만무방〉이다. 만무방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소설의 응칠은 전과 4범으로 동생에게 얹혀살고 있다. 동생 응오는 혹독한 지주 김참판의 수탈에 저항해 추수를 거부한다.
응오가 소작한 논에 밤마다 숨어들어 벼이삭을 잘라가는 도둑이 출현한다. 사람들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느낀 응칠은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한다. 이윽고 야심한 시각에 수상한 사내가 나타나 벼이삭을 자른다. 응칠이 기습하여 사내를 물씬 두들겨 팬다. 그런데 복면을 벗겨보니 동생 응오가 아닌가!
응오가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항의한다. 응오 같은 하급 백성이 제 것을 스스로 먹는 경우에는 누가 뭐라고 말할 일도 없다. 그러나 진시황은 제 것이던 천하를 말아먹었다. 국가 지도층 등이 제 소유이라며 삼키는 것에는 국유 재산이 많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진시황과 같은 국가적 만무방이 없는지 ‘주인’들은 잘 살펴야 한다. 가난한 내 것을 배부른 부자가 먹는다!
첫댓글 그래서 참으라고만 했네요.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참으라고.자신의 본능에 충실해야겠어요.내 권리는 내가 챙기도록.굶어 죽지 않을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