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문학제의 개최
송강문학제가 이루어지게 된 과정은, 충북예술제 기간에 충북문인협회 회장(김홍은)이
예술제기간에 충북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위한 계기를 만들기 위함에서였다.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선생의 사당과 묘소가 충북 진천에 있음에 우리의 가사문학을 드높이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행사추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문인들의 참가자를 넓히려는 과정에서 김홍은 회장과 함께 동조하여 줄 수 있는 푸른솔문학회(회장 이재부)와 공동 주최를 하게 되었다. 마침 김회장이 임기를 마친 이후 2회에 가서는 행사가 추진되지 않고 중단하고 말았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전임회장은 충북예술제 기간에 이를 충북예총에 건의하여 작은 예산을 지원받아 행사를 다시 추진하기로 하고, 푸른솔문학회회장 이재부가 주축이되어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강생들과 청주시 일원의 1인1책 만들기 수강생들과 함께 모여 2회 작품낭송회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제 3회 작품낭송회 때는 푸른솔문학회는 지원받은 150만을 송강선생 작품낭송과 제 1회 작품 전시회는 목판에다 낙화(김영조 충북무형문화재 22호)로 만드어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실내에서 가졌다. 2회때는 족자로 만들어 소나무 숲가로수 길에다 전시를 가졌다.
전시가 끝난 이후에는 문의 향교 벽에다 전시를 하게 됨으로 새로 축제의 분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푸른솔문학회 류기학 회장은 문학회 고문 김홍은과 마음이 합심되어 푸른솔문학회의 위상을 높여갔다.
예총에서 150만을 지원하던 지원금이 끊기자 예산이 없어 문학회 월례회를 기하여 최근까지는 문의향교에서 10회까지 행사를 이어 왔다. 1998년에 와서는 푸른솔문인협회 출판기념회및 송년의 밤과 함께 그 명맥을 이어 갔다.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게 된 이후부터는 송강작품낭송회를 송강문학제로 개칭하고 문의 향교에서 개최하였으며, 10회를 기하여서는 송강문학제의 행사 화보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동안 문학회 회원들의 고마운 뜻을 보답하기 위해 푸른솔문학(발행인 김홍은)이 송강문학상을 제정하였다. 그동안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우리의 가사 문학을 드높여준 작가에게 주었다. 또한 문학인으로 문학의 원로이며 문학회를 선양하는 분에게 드리기로 하여 어느덧 제3회에 이르렀다. 제1회에는 상금대신 민화작품(박명숙 국전작가) 화접도를 부상으로 수여하였다. 제1회 이재부 수상자는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송강문학상 상금으로 200만원을 푸른솔문학회에 내놓게 되었으며, 이후 상금 100만원으로 결정하여 3회로 이어져 가고 있다. 수상을 하게 된 수상자분들은 우리의 가사문학을 드높이는 주는 뜻을 알고, 어려운 행사를 한다며 상금을 다시 송강문학상의 기금으로 쓰라며 내놓았다.
제1회 송강정철선생 작품낭송회
인사말
가사문학의 향기 속에서
깊어가는 이 가을은
여러분을 송강선생의 문학향기에 흠뻑 취하게 하고 싶습니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 내어 님 계신데 보내고저.
님께서 보시온 후에 녹아진들 어떠리.」
송강 가사를 읽다보면 연군지정(戀君之情)의 애틋한 문학의 향기 속으로 끌어들여, 매료시킵니다. 정철 선생의 가사문학은 세계 속에 우리문학의 정신을 심어주고, 우리 정서의 고매함을 현양(顯揚)합니다. 후손들에게 문학의 혼을 일깨워 줄뿐만 아니라 위국 애민의 충정으로 다가옵니다.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충북 문인협회와 푸른솔 문학회가 주관하여 「제1회 송강 정철선생 작품낭송」행사를 갖게 됨 이 기쁩니다. 처음으로 시행하는 낭송모임이라 조심스럽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문학을 사랑하고, 물려받은 위업을 발전시키자는 시발이라고 다짐하며 한 줄의 시라도 낭송해서 문학의 향기 속에 젖어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고자 다짐해 봅니다.
후원해주신 충북예총 장남수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참여하여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에 고개를 숙입니다.
2007년 11월 22일
충북문인협회장 김홍은 푸른솔문학회 회장 이재부
* 푸른솔문인협회와 공동주최하게된 연유 삽입
* 회고담 집필 / 정명숙사무국장
송강선생의 생애
원래 정철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면 신원리에 있었다. 돌아가신 지 72년 뒤인 1665년 송시열과 후손 정포가 논의하여 현재의 장소로 묘소를 이장하고 사우를 건립한 이래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호가 송강(松江)이고 본관이 연일(延日)인 정철은 1536년 아버지 정유침과 어머니 안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누이가 왕실과 혼인하여 어려서부터 궁궐을 자주 드나들었으나 을사사화 이후 유배를 당한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유배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담양 당지산 아래로 이주하면서 약 10년간 머물렀다. 이 시기에 임억령과 송순에게서 문학을 배우고, 기대승과 김인후 등 당대 명사들로부터 학문을 익혔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통해 동인을 제거하는 등 서인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선조임금의 다음을 계승할 세자를 책봉하는 문제에서 광해군을 지지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사 유배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벼슬에 나아가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다시 동인의 모함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강화도 송정촌에서 은거하던 중 1593년 58세로 돌아가셨다.
정철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 주장이 많다. 또한 도학으로 크게 이름을 얻지는 못했지만 학문적 능력이 탁월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이와 성혼 등 당대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그는 천부적인 문학 재능을 발휘하여 관동별곡(關東別曲) 훈민가(訓民歌)와 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 등 많은 가사(歌辭)와 단가(短歌)를 지어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가 되었다.
정철의 가사와 시조는 <면앙정가>로 유명한 송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오히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한문학에 가려 있던 국문시가를 새롭게 인식하고, 감각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을 통하여 국문시가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정철이 살았던 당시에는 충북지역과 깊은 인연을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충북 진천 땅에 묻힌지 300 여년이 지난 오늘, 정철은 우리 지역의 명현으로 자리하였고, 그의 정신과 문학은 이 땅에 이어지고 있다.
정철이 담양 창평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 두 누이가 각각 인종의 귀인이자 계림군 유의 부인이었던 덕에 궁중에 출입하며 경원대군(나중에 명종)의 동무가 되기도 하는 등, 명문가의 자식으로 유복하게 지내던 그의 어린 시절은 그가 열 살 먹던 해(명종 즉위년, 1545)에 을사사화가 터지면서 끝이 났다. 계림군은 죽임을 당했고 형은 매를 맞고 귀양 가던 길에 죽었으며 아버지는 함경도 정평으로, 다시 경상도 영일로 유배되었고 정철도 북으로 남으로 아버지를 따라 떠돌았다.
유령은 언제 사람고 진(晉)적의 고사(高士)로다
계함은 긔 뉘러니 당대의 광생(狂生)이라
두어라 고사광생을 므러 므삼하리
을사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정적 파탄을 맛본 송강의 눈에 비친 현실은 암흑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자신을 `당대의 광생`이라고까지 비하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귀양에서 풀려난 것은 그가 16세인 1551년(명종(明宗)6년)인데 그 길로 자연에 묻혀 살기로 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라남도(全羅南道) 창평(지금의 전라남도(全羅南道) 담양군 창평면)으로 내려갔다. 그간 유배 생활로 잃었던 소년시절의 화려한 꿈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곳 성산(담양)의 자연 풍경과 성산 앞을 흐르는 죽계천인 일명 송강(松江)의 도도함은 그의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시절을 사로잡았고 훗날 `송강(松江)`이라는 그의 호를 낳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임억령에게 시를 배우고, 김인후, 송순, 기대승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학문을 익혔으며 이이, 성혼, 송익필 같은 또래의 유생들과 친교를 맺었다.
17세에 성산 지방의 부호였던 유강항의 딸과 결혼하여 4남 2녀를 낳았다. 또 26세에 진사시에 일등으로 합격했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가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자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명종이 그를 왕궁으로 불러 들여 성대한 축하연을 베풀어 주기도 하였다.
그의 첫 벼슬은 사헌부 지평이었는데, 그가 이때 처음으로 다룬 일은 국왕의 사촌동생이 저지를 살인사건이었다. 명종은 정철을 따로 불러 그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부탁하였지만 그는 왕의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사형에 처해 버렸다. 이 일에 화가 난 명종은 그를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그 후 지방의 관직을 떠돌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중앙으로 올라왔으며, 31세에 이르러 정알, 직강, 헌납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가 함경도 암행어사를 지냈다.
현재 그가 묻혀 있는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는 송강 정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정송강사(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가 있으며, 그 입구에는 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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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송강정철시낭송계획 및 실적
제 2회 송강 정철 시낭송회를 충북문인협회와 푸른솔문학회가
(제1회 2007년 11월 개최 하였음) 행사의 맥을 이어, 충북지역의
문학성을 높이고자 다음과 같이 신청하오니 협조를 바랍니다.
다음
1. 일시 : 2009년 10월 29일 6 - 8시 (목요일)
2. 장소 : 충북대학교 개신문회관
3. 주최 : 충북예총, 충북문인협회
4. 주관 : 푸른솔문학회
5. 경비
1) 문화관 대실료 = 20만원
2) 초청장 및 낭송집
초청장 200매 * 70백원(발송비 포함) = 14만원
낭송집 200권 * 3천원= 60만원
3. 저녁식대 100명 * 4천원 = 40만원
4. 미용비(한복차림) 30명 * 1만원 = 30만원
합계 164만원
청풍명월 예술지원사업실적보고서
ㅇ사 업 명 : 제2회 송강정철선생 시낭송회
ㅇ사업기간 : 2009. 11. 26(목) 오후 2시 - 4시
ㅇ사업장소 :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
ㅇ사업비 집행사항
(단위 : 천원)
박영수 딩아돌하문예원 이사장(사진)이 제3회 송강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푸른솔 문학(발행인 김홍은)은 `제3회 송강문학상'수상자로 지역사회 문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딩아돌하문예원 박영수 이사장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수필가로 <산에서 여는 아침>,<땅 한 평 책 한 권>,<망초꽃 핀 언덕>,<개똥모자에 핀 구름 꽃>수필집을 펴내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충북수필문학회장, 수필과비평작가회 회장, 청주문화원장, 2008 문화의 달 행사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 교실을 운영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한편 송강문학상은 푸른솔 문학이 송강 정철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0년째 개최해 오는 `송강문학제'의 일환으로 2015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4일 오후 2시 문의향교에서 개최되는 제10회 송강문학제에서 진행된다.
/연지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