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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연재 제18회>
<대하장편소설> 떠오르는 지평선[제1부][제2권]
악산(岳山) 정대재(鄭大載)
| 제1부 제1권 차 례 서문(序文)- 지기(地氣)가 들끓는 땅 제1장. 산사를 다녀오던 날 ◇두 친구 ◇천추에 새긴 문양(文樣) 제2장. 일락서산(日落西山) ◇처가(妻家) ◇유종(儒宗)의 고향 제3장. 우국(憂國)의 밤 ◇이상한 만남 ◇안개 마을 ◇성내에 부는 바람 ◇북쪽에서 온 손님 제4장. 운막향(雲幕鄕)의 후예들 ◇오리무중(五里霧中) ◇여황(女皇)의 행차 제5장. 운명의 그림자 ◇석양에 온 여승(女僧) ◇월하망월도(月下望月圖) ◇밀사(密使)가 된 절친(切親) 제6장. 종손(宗孫)의 반역(反逆) ◇이유 있는 모반(謀叛) ◇불청객(不請客) |
제1부 제2권 차 례 제1장. 청사초롱(靑紗炒籠) ◇중추가절(仲秋佳節) ◇이상한 결혼식 ◇백가쟁명(百家爭鳴) 제2장. 개화(開化)의 기수(旗手) ◇비극의 전조(前兆) ◇저무는 무오년(戊午年) 제3장. 묵상(黙想)의 계절 ◇한밤의 방문객(訪問客) ◇문전성시(門前成市) ◇바람의노래 제4장. 부산포(釜山浦) 가는 길 ◇출항(出航) ◇피가 흐르는 강 제5장. 하늘에 세운 가람(伽藍) ◇산중문답(山中問答) ◇유생(儒生)과 동자승(童子僧) |
| 제1부 제3권 차 례 제1장. 꿈꾸는 동토(凍土) ◇목탄기차가 실어 나르는 꿈 ◇야욕(野慾)과 신망(信望) ◇위민축제(爲民祝祭) 제2장. 문중수렵대회(門中狩獵大會) ◇전설(傳說)의 땅 ◇설중수렵도(雪中狩獵圖) 제3장. 뒤풀이 잔치 ◇반노(叛奴)의 탄생 ◇이단아(異端兒)의 귀환(歸還) 제4장. 천붕지통(天崩之痛) ◇붕어통부서(崩御通訃書) ◇송구영신(送舊迎新) 제5장. 기중(忌中)에 내리는 봄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단군(檀君)의 사제(司祭) ◇협객(俠客) |
| 제1부 제4권 차 례 제1장. 추화산성(推火山城) ◇단지혈맹(斷指血盟) ◇천로역정(天路驛程) ◇중산의 포석(布石) 제2장. 대륙풍(大陸風) ◇젊은 성운(星雲)들 ◇의승(義僧)의 길 ◇지신밟기와 호국법회(護國法會) 제3장. 천둥소리 ◇빈자(貧者)의 환상(幻想) ◇유림단(儒林團) 사건 제4장. 어둠 깊은 밤 ◇풍운진객(風雲珍客) ◇심야방담(深夜放談) 제5장. 떠오르는 지평선(地平線) ◇꿈꾸는 포구(浦口) ◇마부(馬夫)의 아들 |
제3장. 묵상(黙想)의 계절
◇한밤의 방문객(訪問客)
“이보게, 중산 종질! 중산 종질! 내 말 들리는가?”
문밖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에 중산은 가위눌리듯 온 몸이 바싹 얼어붙는다.
“누, 누구요?”
“나, 나야! 청계(淸溪) 종숙일세!”
“예? 청계 종숙님이라고요?”
청계 종숙이라는 바람에 중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청계 종숙은 지난 비상 종회 때 괴질 소식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운당 종조부의 오남매 중 장남이었다.
그러나 중산이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그렇다니까! 잠깐 안으로 들어가겠네!”
하는 다급한 말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의관도 제대로 못 갖춘 덧옷 차림의 청계 종숙이 방으로 성큼 들어선다.
“아니, 이 오밤중에 종숙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차가운 외기와 함께 얼굴에 확 끼얹히는 불길한 예감에 중산의 가슴이 지레 덜컥 내려앉는다.
“크, 큰일 났네! 우리 병훈(丙勳)이의 몸이 불덩어리일세!”
“아니, 병훈이가요?”
병훈이는 청계 종숙의 다섯 살배기 맏손자였다. 그의 장자 형산이 결혼은 중산보다 한 해 늦게 하였으나 중산처럼 참척을 겪는 일 없이 결혼 이듬해에 병훈이를 낳아 온전하게 키워 온 것이었다.
“언제부터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까?”
다급하게 물으면서 중산이 더듬거리며 촛불을 켜려니까, 청계 종숙은 그러지 못하게 황급히 말리면서,
“오늘 저녁을 먹고 잘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는데, 자는 중에 그리 된 모양일세! 그러니 자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제 아비랑 같이 병원에 좀 가 줘야 하겠네!”
하면서 체면 불구하고 중산에게 청하는 것이다.
“아, 알았습니다, 종숙님!”
서반아 독감임을 직감한 중산은 부리나케 옷을 찾아 허둥지둥 몸에 걸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음만 급할 뿐 오히려 더디기만 하다. 상현 달빛이 스며든 희뿌윰한 미명 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면서 중산이 바쁘게 묻는다.
“누구한테서 옮았는지, 혹시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바깥나들이를 한 적은 없는 모양이야. 물론, 외부인의 접촉도 없었고…. 그런데 아무래도 연이며 팽이를 만들어 준다며 데리고 놀았다는 그 머슴 놈 때문이 아닌가 싶네!”
머슴 놈이라는 바람에 중산은 아연실색을 한다.
“종팔이 놈 말씀입니까?”
“그, 그렇다네!”
“그래서 제가 진작부터 올해 새경을 미리 줘서 자기네 집으로 한시 바삐 내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산리 출신의 머슴인 종팔이는 또출이와 한 통속으로 삼수 녀석을 자기네가 다니는 교회에 끌어들인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자네의 전갈을 받자마자 진작 그리하기는 하였지!”
“그렇다면 초당 종조부님 댁의 또출이 놈은요?”
마음만 급할 뿐, 몸이 제대로 되지 않는 대신 중산의 말이 많아진다.
“내 얘기를 듣고 같은 날 새경을 줘서 부랴부랴 내쳤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잠잠한 것을 보니 그쪽은 아무 탈이 없는 모양일세!”
바지저고리를 대충 걸치기가 바쁘게 댓님을 매는 둥 마는 둥 한 중산은 갓과 도포를 챙겨 들기가 무섭게 청계 종숙보다 먼저 밖으로 나선다.
밖에는 동짓달 초순께의 눈썹달이 서산마루에 손톱으로 찍은 듯이 걸려 있었다. 비수같이 싸늘한 조각달이었다. 이미 겨울로 접어든 새벽 공기는 살을 에일 듯이 차가웠다. 무오년도 저물어 어느덧 동짓달 초순께, 양력으로는 벌써 섣달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식구들이 알게 되면 한 바탕 대소동이 벌어질세라, 조심조심 밖으로 나온 그들은 흡사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난 노복들처럼 숨소리마저 죽여 가며 종종걸음을 친다. 이심전심으로 뜻이 통한 그들은 청암과 송암이 잠들어 있는 아랫방 툇마루 앞을 조심스럽게 지나쳐서 곧장 뒤뜰로 돌아나가 축사로 통하는 일각 대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고 밖으로 빠져 나간다. 문 밖은 시커멓게 맨살을 드러낸 채마밭이었고, 저쪽 건너편에 말과 나귀며 소들을 기르는 축사가 길게 자리 잡고 있었다.
“종숙님! 병원에 데려 갔다가 당분간 피접을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괴괴한 마구간으로 향하면서 중산이 속삭이듯 묻는다.
“그래서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이 오밤중에 불문곡직하고 자네부터 찾아오질 않았겠나?”
그렇다면 운당 종조부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것일까? 중산은 아직도 <수화불통>의 조처에 묶여 있는 죽명 숙부를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운당 종조부 역시 어린 증손의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운사의 양 의원이든 죽명 숙부의 한의원이든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청계 아제! 운사 친구의 병원에는 입원실도 없으니, 아무래도 죽명 숙부님 댁으로 일단 먼저 데리고 가 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이 사람아! 더운 밥 찬밥을 따지게 생겼는가? 자네 뜻대로 하게!”
중산의 짐작은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축사 앞에 이르자 여러 축생들도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꼈는지 저마다 콧김을 투르르 내뿜으며 술렁이기 시작한다.
“제가 말을 몰고 나올 테니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중산이 자신의 백마를 몰고 밖으로 나오자 마음이 바빠진 청계 종숙이 앞장을 선다. 그들이 행랑 담장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때까지 솟을대문을 열어 잡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서 서방이 주위를 살피면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이보게, 서 서방! 오늘 밤 여기서 있었던 일은 아예 없었던 일로 해 두게! 아무한테도 일절 발설하지 말란 말일세!”
물중한 서 서방이 자칫 일을 그르칠세라, 중산이 어김없이 입단속을 한다.
“예, 서방님!”
“식구들이 알게 되면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길 터이니 내 말을 꼭 명심해 두게!”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껴?”
서 서방에게 신신당부를 한 중산은 백마를 몰고 앞장을 서면서도 미심쩍은 나머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본다. 멀리서 어디선가 또 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골목길을 지나 멀지 않은 청계 종숙 댁에 당도하였을 때, 한 무리의 식구들이 대문간에 모여 서서 그들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족처럼 부리는 하인과 머슴들의 모습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병훈이의 아버지인 중산의 재종 아우뻘인 형산(亨山) 춘식(春植)은 아픈 아이를 두꺼운 이불로 단단히 감싸 등에 업었고, 그의 아내는 포대기를 들고 나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아이의 머리를 덮어 주면서 소리 없이 울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초저녁 잠에 빠져 들었다가 뒤늦게 놀라서 달려 나온 운당 종조부 내외와 종숙모도 그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중산은 저녁 문후 인사를 여쭙는 것도 잊은 채, 아이를 업어 몸이 둔해진 재종 아우를 부축하여 대기하고 있던 그의 말에 먼저 태운다.
“중산아! 이번 괴질에 대해서는 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우리 병훈이를 꼭 좀 살려 다오! 우리는 너만 믿고 있겠다!”
덧옷도 제대로 못 걸치고 나온 노구의 운당 종조부가 추위도 잊은 채 중산의 두 손을 마주 잡고 신신 당부를 한다.
“운당 할아버지! 크게 놀라셨겠지만,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제가 비록 미력하나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선을 다하여 우리 병훈이를 꼭 살려 내도록 하겠습니다! 병훈이는 영양 상태가 좋은 아이라, 아무 탈 없이 병을 꼭 이겨낼 수 있을 겝니다!”
왼발로 등자(鐙子)를 밟고 말에 훌쩍 올라 탄 중산은 뒤에 남은 운당 종조부 댁 식구들에게 재차 다짐하듯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형산 아우를 앞세우고 그대로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막상 길을 나섰으나 막막하기 짝이 없는 먼 밤길이었다.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타고 달려 간다 해도 한 시간은 좋이 걸릴 먼 길이건만, 모든 뱃길은 이미 전부 끊긴 상태이고, 응천강을 건너야 할 나룻배마저 얻어 타기 어려운 형편이고 보니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멀고 먼 험로인 것이다.
이대로 집 앞의 들판을 가로질러서 새로 축조된 밀성제 제방까지 간 다음, 거기서 제방을 타고 읍내로 건너가는 상남벌 초입의 길목까지 줄곧 말을 타고 달려간다 해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늪지대와 샛강들을 건너기 위해서는 물이 얕은 여울목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바깥마당을 나선 그들은 당곡과 마산리로 통하는 신작로를 버리고 응천 강변의 돌티미 나루로 이어지는 중앙 농로로 접어들었다. 이번에 새로 축조한 밀성제 제방과 그 위쪽의 상남제 제방을 따라 예림리 동촌의 이창진(耳倉津) 나루까지 일단 달려가 볼 생각인 것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도구늪들로 나서자 삭막한 무주공산으로 변한 허허벌판이 파리한 초승 달빛을 받아 저승길처럼 더욱 아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읍성 쪽으로 건너가는 길목인 이창진 나루까지 가려면 쉬지 않고 말을 달려도 한 시간은 좋이 걸려야 가 닿을 수 있는 먼 길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맞은편 밀양역 쪽의 남포 나루로 건너가려면 뱃사공을 찾아서 나룻배를 타야 하고, 또 몇 마장을 더 달려서 응천강의 동쪽 지류에 있는 용두목 나루를 다시 건너야만 삼문리 삼각주를 곧장 가로질러 영남루 앞의 배다리 부교를 통하여 밀양 읍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밤이 깊을 대로 깊었으나 때마침 동짓달 초순께의 상현달이 떠 있어서 흐릿하나마 시계가 일망무제로 활짝 열려 있어서 속도를 내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북쪽에서 세차게 마주 불어오는 매서운 강바람만은 결코 피해 갈 재간이 없었다.
공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밀성제를 따라 형산을 앞세우고 한참을 달리던 중산은 광탄(廣灘) 나루에 못 미쳐 시목포(枾木浦) 또는 종병탄(鍾柄灘)으로 불리는 곳에 이르러 형산에게 소리쳐 묻는다.
“이보게, 형산 재종제! 병훈이를 내가 대신 좀 업을까?”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들 부자를 등에 태우고 달리는 말이 더 지치는 듯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형산 재종 아우는 마음이 바쁜 나머지 머리를 흔들면서 오히려 속도를 드높인다. 미친 듯이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가는 재종 아우가 행여 낙마라도 할세라 중산도 채찍을 가하며 그 뒤를 바싹 따라간다.
희미한 달빛 아래 파발마처럼 달려가는 아득한 제방길, 무한 질주하는 속도감과 함께 핑그르르 돌아가는 강물, 씽씽거리며 스쳐 가는 바람소리, 발말굽 소리, 인간과 짐승이 동시에 내뿜는 거친 숨소리, 소리들….
애마와 일심동체가 되어 그렇게 무한으로 한사코 질주하던 중산은 자기도 모르게 아련한 환각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뒤에는 능선으로, 골짜기로 산하를 새카맣게 뒤덮은 적들의 천둥 같은 함성과 함께 끝도 없이 밀려오는 깃발의 물결, 앞에는 섣불리 들어설 수 없는 망망한 강물, 자욱한 화약 연기 속에 비 오듯 쏟아지는 조총의 총탄을 피해 질펀한 광탄 나루를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리는 패색 짙은 조선 군사들! 아비규환으로 변한 물보라 속에서 총탄에 쓰러지고, 세찬 물살에 휩쓸린 그들은 두 팔을 휘저으며 사생결단으로 허우적거리다가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씩 움직임을 멈추어 가더니 어느 새 홍수 때의 부유물처럼 온 강을 하얗게 뒤덮으며, 아래로 아래로 무한으로 떠내려 온다.
중산은 악몽 같은 환상 속에서 피맺힌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저들을 살려야 한다! 살려야 한다…! 그러나 말문이 트이지 않아 애쓰는 사이에 아비규환을 이루며 온 강을 허옇게 뒤덮으며 떠내려오던 시신들은 간 곳이 없고, 싸늘한 달빛 아래 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물결들만 가득한데, 수심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뭇 혼령들의 피맺힌 절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살려 주소! 살려 주소! 살려 주소…!’
‘살려내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산울림과도 같은 그 소리는 속도와 크기를 점점 더해 가다가 급기야는 처절한 호곡성으로 바뀌면서 무수히 많은 시커먼 망자들의 차디찬 손들이 매서운 강바람과 함께 삽시간에 물속에서 뻗쳐와 중산의 면상을 확 덮치는 것이다. 그 순간, 화들짝 놀란 중산은 상체를 크게 뒤틀면서 으악!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백마가 우렁찬 울음과 함께 앞발을 높이 쳐들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고, 본능적으로 낙마의 위기를 모면한 중산은 필사적으로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애마와 함께 크게 맴을 돌면서 한 바탕 씨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형님! 왜 그래요? 괜찮습니까?”
때 아닌 환각 소동에 앞서 달려가던 형산이 황급히 길을 멈추며 뒤돌아본다.
“내 걱정은 말게, 괜찮네!”
크게 놀라 미쳐 날뛰던 말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중산이 정신을 차려 보니 강폭이 갑자기 넓어진 응천강은 여전히 말이 없고, 멀리 산을 돌아 나간 강물이 파르스름한 달빛에 젖어 더욱 아득하기만 한데, 상남면 기산리와 삼랑진면 임천리(林川里)를 연결하는 광탄(廣灘) 나루가 저만큼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 광탄 나루는 이름 그대로 강폭이 넓고 수심이 비교적 얕은 곳이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임진왜란 때 밀양 부사 박진(朴晉) 장군이 동래성 싸움에 지원군으로 나섰다가 패퇴한 삼백여 명의 관민 군사들을 이끌고 삼랑진 낙동 강변의 깎아지른 작원관(鵲院館) 요새에서 배수진을 치고 산하를 새까맣게 뒤덮으며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만 팔천여 명의 수륙 왜적들과 맞서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밀린 끝에 퇴로를 찾아 필사적으로 도강을 시도하다가 강물의 깊이를 파악하지 못한 군사들 거의 모두가 급류에 휘말려 아비규환 속에 전멸하다시피 한 피눈물 나는 전적지였던 것이다.
광탄 나루를 지나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중산은 형산 아우에게 소리쳐 속도를 늦추게 하여 한 동안 말들을 쉬게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병훈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중산이 기겁을 하며 덮어씌운 이불 사이로 손을 넣어 이마를 짚어 보니 아이는 더욱 심하게 펄펄 끓는 열기 속에 실날같은 생명줄을 가까스로 유지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안 되겠네! 빨리 길을 서두르세!”
그들은 채찍들을 마구 휘두르며 예림리 동촌의 이창진 나루까지 단걸음에 득달같이 달려가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밀양역이 있는 맞은편의 남포 나루로 건너가야 삼문리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뱃사공은 간 곳이 없고, 나룻배도 건너편의 남포 나루 쪽에 묶여 있었다. 더구나 남포 나루를 건너간다 해도 얼마를 가지 않아 또다시 용두목 나루에서 삼문리로 건너가는 나룻배를 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뱃사공을 불러 올 재간도 없거니와 그렇게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인적이 끊어진 맞은편의 남포 나루 쪽을 망연히 바라보던 중산은 길게 망설이지 않고 결연히 용단을 내린다.
“길은 멀어도 우회로를 택하는 편이 그래도 나을 것 같네!”
지난 오월 단옷날 감내 장터에 들렀다가 마지막 황포돛배를 타고 귀갓길에 올랐던 그 뱃길과 나란히 뻗어 있는 멀고 먼 우회로를 따라 역방향으로 읍성까지 죽을 힘을 다하여 내쳐 달려갈 심산인 것이다.
“형님 좋을 대로 하십시오!”
형산은 여전히 아들의 운명을 중산에게 맡기고 있었다. 한 마음이 된 그들은 다시 말을 몰아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창 나루에서 밀양 읍성까지는 이십 리가 좋이 넘는 먼 길이었다. 그들이 파김치가 다 되어 향청껄로 들어섰을 때는 성 밖의 먼 농가에서 어느덧 첫닭이 울고 있었다.
중산은 운사의 집으로 먼저 찾아가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그대로 혜민당 죽명 계부(季父) 댁으로 향하였다. 꼭두새벽에 들이닥친 그들 때문에 혜민당에서는 때아닌 밤중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잠옷 바람으로 달려 나온 죽명 선생 내외는 오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환자가 운당 중부주(仲父主)의 증손이라고 하는 바람에 크게 놀랐고, 다급해진 그는 손수 병훈이를 받아 안고 진료실 대신 안방으로 달려간다. 그가 처음 마주 대하는 형산 종질의 인사를 받을 사이도 없이 땀범벅이 되어 널부러진 아이를 진맥하느라 아무 정신이 없는 사이에 괴질로 인한 휴교 조처 때문에 집에 와 있던 관식이와 인식이도 잠옷 차림으로 달려 나왔다.
서둘러 진맥을 끝내고 병환이의 몸 상태를 구석구석 세세히 살펴본 죽명 선생은 심각한 얼굴로,
“언제부터 이리 되었는가?”
하고 중산에게 묻고는 그의 옆에 앉아 있는 형산에게로 시선을 옮아간다.
“어제 저녁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자다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산은 뒤늦게 형산을 소개한다.
“참, 여기 이 사람은 환아의 아버지로 운당 종조부님의 장손인 춘식 재종제(再從弟)입니다. 자호는 형산이고요!”
“종숙님, 본의 아니게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저의 절 받으십시오!”
형산은 자식의 일로 아무 경황이 없으면서도 말로만 듣다가 처음으로 뵙게 된 죽명 선생에게 예를 갖추어 큰절을 올렸고, 죽명 선생은 병준이를 부인에게 안겨 주고 문갑 위의 필묵 함을 가져다가 제약 처방전을 쓸 준비를 하다 말고 엉겁결에 정좌를 하면서 절을 받는다.
“이리로 오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잘들 왔네! 증세를 보아 하니 요즘 창궐하고 있는 괴질이 맞는 모양이야! 많이들 놀랐겠지만, 내가 지은 탕제를 먹고 완치된 괴질 환자가 한 둘이 아니니, 마음을 굳게 먹고 너무 걱정들 말게!”
중산과 형산을 안심시킨 죽명 선생은 정신없이 처방전을 작성하여 낭하 저쪽의 약제실로 달려갔고, 관식이는 바쁘게 전하는 중산의 부탁으로 운사를 데리러 장군껄로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에 형산과 수인사를 마친 이씨 부인은 인식이를 데리고 부엌에서 미음을 쑨다, 입가심용 감초 달인 물을 데운다, 야식을 준비한다, 물수건을 가져 온다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소 안정을 되찾은 형산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병훈이의 이마를 짚어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보고 중산은 탕제실로 달려가 숯불을 지피며 탕약을 달일 준비를 서둘렀다. 숯불을 다 피우기도 전에 죽명 선생이 직접 조제한 향약 두 첩을 가지고 허둥거리며 탕제실에 나타났다.
“자, 황련(黃連)․황백(黃柏)에다 석고(石膏) 등을 넣어서 조제한 해열제와 황련과 부자(附子)를 넣은 번조증(煩燥症) 약일세! 이번 괴질에는 양의학 쪽에서도 특효약이 따로 없어 일반 감기에 쓰는 해열제를 주로 쓴다고 하더구먼. 그런데 예로부터 우리 한방에는 감기에 효능이 좋은 쌍화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처방약들이 있는데, 이번 괴질의 해열 치료제로는 내가 써 본 이 두 가지가 제일이더라니까! 아직 번조증은 없는 모양이니 우선 이 석고를 넣은 해열 치료제부터 먼저 써 보자구!”
“숙부님, 입에 쓴 약을 아이가 잘 먹어낼 수 있을까요?”
“잘 못 먹으면 억지로라도 먹여야지!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은 법이니….”
“양약과 향약을 함께 쓰면 안 됩니까?”
“약의 성분이 겹치게 되니 당연히 안 되고말고!”
대답을 한 죽명 선생의 시선이 중산의 얼굴을 의아하게 더듬는다.
“아니, 그러고 보니 자넨 양약을 쓰고 싶은 게로구먼?”
“그런 게 아니오라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양쪽 다 써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식이더러 운사 친구를 데려 오라고 하였으니 그 친구의 의견이 어떤지도 한번 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요!”
“그래? 그렇다면 약효가 빨리 나타난다는 주사약부터 먼저 써 보게 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 무얼 먼저 쓰든지 자네 좋을 대로 하게. 하지만 이번 괴질에는 황련․황백에다 석고(石膏) 등을 넣어 조제한 우리 향약의 해열 효험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많이 써 보고 알게 되었다네! 허한 체질에는 번조증이 나타나기 십상인데, 설사와 번조증에는 황련(黃連)과 부자(附子)를 써서 큰 효과를 보기도 했거든! 단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린 환자가 쓰디쓴 약을 장복(長服)하면서 어떻게 잘 먹어 주느냐가 관건이지!”
“숙부님, 그 약을 먹고 완치된 환자가 많습니까?”
“그렇다마다!”
“그렇다면 효과가 좋은 향약부터 먼저 써 보기로 하지요, 뭐! 우리 향약은 수백 년 동안 써 오면서 수없이 임상 실험이 되어 있는 셈이니 그만큼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효험이 없었다면 우리 조상들이 수백 년 동안이나 써 왔을 까닭이 없지! 양복은 서양 사람의 체형에 맞게 만들어졌고, 조선옷은 우리 조선 사람들 몸에 맞게 만들어져서 수천 년 동안 사용되어 왔으니까 어련하겠는가?”
탕약을 달이면서 이렇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사이에 운사가 달려왔다는 전갈이 왔다. 중산은 죽명 숙부를 따라 안방으로 달려간다.
운사는 당도하기가 바쁘게 왕진 가방을 열고 청진기와 체온계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운사가 온 식구들이 숨을 죽인 채 초조하게 지켜보는 속에서 병훈이의 진찰을 하고 있는 동안에 어린 병훈이의 숨이 금방이라도 멎은 것 같은 팽팽하게 긴장된 순간순간들이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윽고 진료를 마치고 뒤로 물러나 앉는 운사에게 중산이 조급증을 감추지 못하고 묻는다.
“그래 아이의 상태는 어떠한가?”
“맥박도 빠르고 인후염에다 체온이 삼십구도 일부일세! …해열제부터 먼저 써야겠네!”
“그리도 위중한가?”
심각해지는 운사의 안색을 살피면서 중산이 걱정스레 묻는다.
“고열 쇼크로 인해 큰일을 당할 수도 있단 말일세!”
그러자 중산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옆에 있는 죽명 숙부를 돌아본다. 그가 조제한 향약 해열제는 이제 겨우 끓기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이 보게, 운사! 그렇다면 해열제 주사부터 먼저 놓아 주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죽명 선생이 자기의 뜻을 접으며 운사에게 먼저 양약을 써 보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운사는 왕진 가방 속에 챙겨 온 해열제를 끄집어 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선생님, 주사약이 아니라 구강 복용제입니다!”
“구강 복용제?”
이번에는 죽명 숙부가 그래도 되겠느냐고 의향을 묻듯 중산을 돌아본다.
“그게 어떤 약인가?”
중산이 안전성을 확인하고자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19세기 초에 바이엘이라는 독일의 한 제약회사에서 만든 아스피린이라는 약일세!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사리신산이란 물질로 재가공한 약인데, 해열과 진통제로 쓰고 있다네!”
“동의보감(東醫寶鑑)과 의방유취 (醫方類聚) 같은 우리 의서(醫書)에 있는 여러 향약들처럼 오랜 임상 실험을 거친 약이겠지, 물론?”
언젠가 죽명 숙부의 서재에서 읽어 보았던 향약 의서까지 들먹이며 중산이 다짐하듯 재차 묻는다.
“그야 여부가 있겠는가? 서양에서는 2천 5백여 년 전부터 버드나무 껍질의 즙을 약으로 써 왔다고 전해지고 있고, 우리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지칭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생께서도 해열과 진통을 위해서 이 약을 썼다는 기록이 있는 데다, 신약을 개발할 때는 반드시 임상실험을 거치게 되어 있거든!”
“숙부님,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중산이 죽명 선생께 다시 물었고, 죽명 선생도 심사숙고 끝에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들의 의향을 알아차린 운사가 뜻밖에도 난색을 표명하는 것이다.
“이 아스피린은 성인들에게 사용해야지, 아이들에게 사용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라니? 어떤 부작용 말인가?”
중산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묻는다.
“혈류가 높아져서 간과 뇌에 부담을 주게 되어 의식이 소멸되며, 심한 설사 후에 뇌압(腦壓)이 올라 뇌 기능이 저하될 수도 있단 말일세! 오래 복용하면 뇌출혈, 장출혈에다 신장 장애도 올 수 있고…!”
“우리 동의보감에도 버드나무 껍집의 해열 효능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재가공한 신약에 그런 부작용이 있다면 함부로 사용하기에는 암만해도 마음에 걸리는 걸!”
그 소리를 듣고 중산은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다는 듯이 탕약이 끓고 있을 탕제실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다행히 약은 허연 김을 내뿜으며 한창 끓고 있었다. 중산이 허둥거리며 미처 다 달여지지도 않은 약을 짜서 안방으로 달려왔을 때, 병훈이는 자기 아빠의 품에 안긴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움을 못 견디고 심하게 몸을 뒤채고 있었다. 그에게 탕약을 먹이기 위하여 찬물에 약을 띄워 식힌다, 물수건을 준비한다, 입가심을 할 감초 달인 물을 준비하는 등,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꼼짝 못하게 팔다리를 붙들고 억지로라도 약을 먹일 요량으로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극도로 마시기를 거부하기 마련인 쓰디쓴 탕약을 병훈이가 놀랍게도 꿀꺽꿀꺽 잘도 마셔 주는 것이다. 아마도 고열로 인한 심한 갈증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병을 이기겠다는 의지가 이 정도이니 오래지 않아 기필코 완치될 것일세!”
죽명 선생은 신통하게도 탕약을 잘 마시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단단히 자신감이 생기는 눈치였고, 형산은 기특하기 짝이 없는 아이를 얼싸안으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병훈아! 네가 참으로 장하구나! 고맙다, 참으로 고마워, 우리 아들!”
약을 먹인 뒤 물수건으로 이마를 덮어 주며 애타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아이들 돌보는 사이에 어느덧 바깥이 훤히 밝아 왔다. 약을 먹은 후 서서히 체온이 떨어지면서 깊게 잠이 든 병훈이의 몸 상태를 청진기로 두 번 세 번 재검진을 한 운사는 왕진 가방을 챙겨 들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열이 내리고 맥박도 좋아지고 있어 예후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뀔 수도 있으니 제가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불러 주십시오!”
누구에게라 할 것도 없이 운사가 좌중을 둘러보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인사를 한다.
“고맙네, 운사!”
연일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는 진료 때문에 피로가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단걸음에 달려 와 준 운사에게 중산이 진심으로 고마움을 낸다.
“고맙긴,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러다가 운사는 중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면서,
“이보게, 중산! 전에 부탁한 한 사장 일은 말일세!”
하고 말문을 열며 뒤따라 나오는 죽명 선생을 돌아다본다.
“아, 그 얘기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자네들이 더 이상 걱정할 것 없네!”
죽명 선생이 그들의 얘기 내용을 눈치 채고 뒤에서 소리친다. 아마도 한춘옥 사장과 을강 선생의 갈등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나름대로 그 동안 애를 써 온 바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었다.
운사가 돌아가자 죽명 선생의 안방에서는 자연스럽게 가족회의가 열린다.
“숙부님! 병훈이가 완치될 때까지 형산 아우도 여기에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면서 죽명 선생은 중산과 형산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묻는다.
“그런데 집안의 어르신들께서는 자네들이 이리로 온 사실을 알고 계시기나 한 것인가?”
<수화불통>의 처결로 인해 자신의 문중 출입은 물론이요, 모든 인간 관계까지 규제되고, 문중 사람들의 자기네 집 출입과 모든 인적 교류 또한 엄격히 통제되어 온 것이 현실이고 보니 죽명 선생으로서는 아이의 병을 치료하는 일 못지않게 그 문제가 지대한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운당 종조부 댁에서는 하인들 외에는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산은 운당 종조부가 병훈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난관도 마다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대답한다. 그리고 그것은 잠자코 듣고만 있는 형산의 태도로도 증명이 되고 있었다.
“아버지! 하나님 아버니께서도 우리를 도우시는 것 같습니다!”
운당 종조부는 아버지의 중부(仲父)로서 용화 할머니와 더불어 작고한 승당 할아버지의 빈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위상과 영향력이 문중에서 으뜸인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식이가 그렇게 감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들뜬 관식이의 말에 인식이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고, 병훈이를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여 헌신적으로 움직였던 이씨 부인도,
“그러게나 말이다!”
하고 감격에 겨워 목이 메인다.
“그러면 그렇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으니, 내 기필코 신명을 다 바쳐서 저 아이의 생명을 기어이 지켜 내고야 말 것이야!”
하늘에 대고 고하는 것처럼 부르짖는 죽명 선생의 목소리가 신원(伸寃)의 다짐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간단없이 터져 나온다. 부산진 조세창의 수운 관리로 있었던 청년 시절, 일본과 중국을 오가는 개화파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의료 분야에 남 먼저 눈을 뜨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중의 금기를 어기고 갑신정변에 연루된 개화파 인사들과 교류했다는 이단의 죄목으로 진노한 승당 어른이 내린 <수화불통>의 조처에 의해 약관의 어린 나이로 문중에서 축출되었던 죽명 선생이었다.
그렇게 궁지에 몰렸던 그가 이제는 자수성가한 한의학의 명의가 되어 적잖은 재산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헐벗은 빈민들에게 의료 시혜를 끊임없이 베풀면서 어엿한 지역 사회의 유지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자기를 내쳤던 문중의 병세 위중한 혈손을 치료하는 오늘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보니 그 동안에 겪은 갖가지 피맺힌 아픔과 거기서 오는 남 다른 감회가 어찌 없을 수 있으리!
모처럼 천재일우(千載一遇)를 맞이하여 병훈이의 병을 고쳐 내고야 말겠다고 신원하는 그의 부르짖음 속에는 수십 년 묵은 파란만장한 지난날의 고뇌와 피맺힌 여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다.
◇ 문전성시(門前成市)
영동 어른의 처소 앞 댓돌 위에는 내방객들의 것으로 보이는 낯선 신발 두 켤레가 주인의 것과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중산은 부친의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축대 아래에서 헛기침을 하면서 고한다.
“아버님, 소자 중산입니다.”
방안에서 새어 나오던 두런거리는 얘기 소리가 멎으면서 영동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이냐?”
“급히 아뢸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들어오너라!”
중산이 들어가니 방 안에는 낯이 익은 내방객 두 사람이 부친과 찻상을 가운데 두고 무언가 중대한 사안을 놓고 밀담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는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오신 우리 집안의 어른이시니라. 인사 올리거라!”
부친의 영에 따라 중산이 예를 갖추어 손님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 앉자 영동 어른이 묻는다.
“그래, 무슨 일이냐?”
손님들 앞에서 저어하는 기색 없이 묻는 것으로 보아 내방객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 개의치 말라고 아뢰라는 의도 같았다.
“오늘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문제의 기사가 실린 지면을 위로 오게 접은 매일신보를 부친에게 받들어 건네면서 중산은 숨을 죽인다. 그가 놀라서 들고 온 12월 5일자 매일신보에는 지난 융희(隆熙) 1년(1907년)에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유학이란 미명 하에 일본으로 볼모로 잡혀갔던 이은(李垠) 황태자가 어느덧 혼기인 스물 두 살의 춘추를 맞이하여 왕족 출신의 왜녀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 方子)와의 국혼(國婚) 날짜가 내년 1월 25일자로 잡혔다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었다
"허허, 이런 변이 있나! 그렇잖아도 밤차로 서울서 내려오신 손님들과 황태자 마마의 국혼 기사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느니라. 말로만 듣다가 막상 내 눈으로 이 기사를 보니 참으로 망극하기 짝이 없어 억장이 무너지는구나! 지난 정초에 있었던 파혼의 충격으로 갑완이를 그리도 애지중지하시던 외조모님이 끝내 상을 떠나시고, 왜놈들의 등쌀에 술의 힘으로 근근이 버티던 부친마저 주독이 들어 내의원(內醫院)의 전의(典醫)한테서 치료약을 타다 먹고 피를 토하고 죽은 후에 무덤에 흙도 안 마른 상중인데, 또 이런 불상사가 터졌으니 앞으로 우리 갑완이의 일을 어이 할꼬!
영동 어른은 신문지를 중산에게 되돌려 주고 나서 가슴을 치며 피를 토하듯 탄식하였고, 손님 중의 연상으로 보이는 이가 마음의 결의를 나타내며 비분강개로 맞장구를 친다.
“황태자비로 간택되어 지난 십년 동안 황태자 마마의 환국만을 기다리며 살아 온 우리 갑완이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게 되었지만, 총명하고 호방한 아이라 현명하게 대처하겠지요! 그리고 이번 거사도 사실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특단의 각오로 준비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번만은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성사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유년(丁酉年: 1897년)의 조모 회갑 때 태어났다 하여 이름마저 '갑완(甲完)'이라 지어져 조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났던 민갑완-.
동갑의 나이에 생일이 같고 태어난 시간도 거의 같았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지, 열한 살 되던 해인 지난 융희 원년(1907년)에 이은 황태자의 비로 간택 되었던 것이 어찌 한탄할 일이랴만, 황실의 혈통을 끊고 조선 식민지 통치를 영구히 하려는 일제 당국은 볼모로 잡아 갔던 이은 황태자의 혼기가 다가오자 지난 1916년 8월 2일에 불임 소문이 은밀히 나돌던 자국 왕족 출신의 왜녀를 새로운 황태자의 비로 자기네 멋대로 간택하여 공표한 바가 있었고, 지난해 연말에 창덕궁의 제조상궁을 민영돈의 집으로 보내어 총독부의 뜻이라며 보름 동안이나 밤낮으로 들볶은 끝에 약혼단자와 신물까지 회수해 감으로써 갑완이를 애지중지 보살피던 외조모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올 무오년 정월 초사흗날 밤 열두 시 경에 친일 대신들로 하여금 민갑완의 부친 민영돈을 혜당(惠堂)으로 불러들여 '신의 여식을 금년 내로 타문에 출가시키지 않으면 부녀가 중죄를 받아도 좋다는 것을 맹세한다.'는, 미리 작성하여 상(上)의 대리로 시종 부관이 가지고 온 결혼에 관한 서약서에 날인을 받아 오게 하였다. 상의 뜻이 그러하다니 약혼단지와 신물까지 내어 준 마당에 이제는 민영돈도 더 이상 거역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놈들의 간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서약서의 내용대로 올 연말까지 갑완이를 다른 남자와 혼인을 시키라고 숨도 못 쉬게 몰아붙여 술의 힘을 빌어 근근이 버티던 부친 민영돈마저 술병이 들어 내의원(內醫院)의 전의(典醫)한테서 치료약을 타다 먹고 피를 토하며 죽게 만들더니, 이제는 부친 무덤의 훍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은 공과 왜녀와의 국혼 날짜를 확정하여 공포하는 판국이 되고 보니, 당사자인 갑완이는 물론이려니와 척족 민씨 집안 사람들 모두에게 이만저만한 참극이요, 변고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일이 이리 될 줄 알았으면 태룡리 무릉 선생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진작부터 그들 일가를 진작 중국으로 피신을 시키든지 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영동 어른의 때 늦은 한탄에 연배가 낮은 서울 손님이 위로를 한다.
“갑완이의 일을 생각하면 땅을 치고 통곡하여도 모자랄 일이지만,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전화위복이 되도록 우리만이라도 가일층 분발해야지요!”
하지만 세상에 알려질세라 식구들도 모르게 몸소 동래로 가서 비명에 간 민영돈 대감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바 있는 영동 어른은 망부석이 된 듯 말이 없었고, 연상의 서울 손님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다시금 결의를 다진다.
“우리가 마련하여 보낸 거사 자금으로 구입한 북경의 행궁 개조 공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하니 이제는 시간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 됩니다!”
내방객들의 말에 중산은 정신이 번쩍 들어 두 손님과 부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지난 종회 때도 일체 거론 된 바가 없었던 이번 거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하여 아무도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른들이 비밀리에 행하는 막중한 일에 대해 감히 물어본다는 것도 그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지난 11월 15일에는 여운형(呂運亨)이라는 신한청년당원이 미국 윌슨 대통령의 특사인 크레인과 회견을 했다는 풍문이고, 11월 30일에는 파리강회회의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한국독립 요청서를 크레인에게 전달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차제에 우리 거사까지 성사가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격으로 태황제 폐하의 복위 문제도 세계 열강들의 크나큰 관심사로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내방객들 사이에 오가던 얘기가 민감하기 짝이 없는 시국 문제로 옮아가자 영동 어른이 서둘러 중산에게 이르는 것이다.
“용무가 끝났으면 그만 나가 보도록 하여라!”
부친의 분부에 따라 말없이 밖으로 물러난 중산은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방 안의 분위기로 보아 그 동안에 용화 할머니와 부친이 비밀리에 추진해 온 또 다른 거사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이은 황태자의 국혼 기사로 놀랐던 가슴을 뚫고 용솟음치는 주체할 길 없는 없는 새로운 감격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음날, 영동 어른은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들과 함께 또다시 어디론가 길을 떠났고, 대종가의 일상은 중산의 책임 하에 평소와 다름없이 괴질 사태 수습에 주력하는 동안에 하루하루 속절없이 흘러갔다.
양지바른 축대 아래에 금가루처럼 반짝이는 아침 햇살이 소복소복 내려앉는 이른 아침이다. 똑같은 서책들을 옆구리에 낀 아이들이 재재거리면서 강학당이 있는 영양재(迎暘齋) 재사 안으로 모여들고 있다. 예닐곱 살쯤은 되었을까? 그만그만한 아이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서 사당 앞에 자리 잡은 영양재의 중문을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앙증맞은 바지저고리 차림에 복건들을 쓴 사내아이들이었는데, 색동저고리에 댕기 머리를 앙증맞게 늘어뜨린 계집아이들도 이따금씩 눈에 띈다.
“훈장 선생님, 안녕하셨사옵니까?”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의관을 갖추고 서 있는 나이 지긋한 훈장님께 너도 나도 판에 박은 듯이 공손히 인사를 한다.
“자아, 고뿔 걸리겠다. 어서들 오너라.”
유관(儒冠)에 녹두색 유복(儒服)을 차려입은 훈장 어른은 문 밖에 나와서 아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시선은 연신 먼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통상, 서당으로 불리는 문중 강학당으로 오는 아이들이 중문을 통해서만 들어서는 게 아니라 후원 쪽 일각대문을 통해서도 들어오고, 축사가 있는 채마밭 쪽의 후문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산이 양반촌 여흥 민씨 문중의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매일 이렇게 대종가의 영양재 안에 있는 강학당에 모여 오전 한 나절 동안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이며, 소학(小學)과 같은 수신제가에 관한 기초적인 한문 지식을 배우면서 제도권의 신식 학교 공부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인근에 마땅하게 보낼만한 보통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학문에 뜻을 둔 민씨네도 아니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일제가 관리하는 신식 학교 교육은 그들의 식민 정책에 호응하는 일이라 하여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옛날부터 해 오던 자기네들의 교육 방식 그대로 문중에서 따로 훈장을 초빙하여 구식 한문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한학 교육은 서원에 가서 배우게 되는 게 일반적인 관례라, 민씨네 문중에서도 그런 관례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서원의 교육은 그렇게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원생들의 목표와 학문 수준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비형식적인 자득교육(自得敎育)으로서 도학(道學)의 정맥(整脈)을 잇는다는 목적을 가지고 행해졌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서원의 원생 생활은 관학(官學)의 학령(學齡)이나, 풍기 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이 세웠던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의 본보기가 되었던 주희(朱喜)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원규(院規)나 각 서원의 독자적인 원규에 따르게 되어 있었으나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교육 과정은 대개 비슷하여 소학(小學),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의 순서대로 읽었으며, 그 외에 경․사․자․집[(經․史․子․集)은 수시로 읽게 되어 있었다.
교육 과정이 그러했으므로 문중 강학당에서 기초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다시 삼랑진 오우진 나루 건너편의 삼강서원 안에 있는 강학소에 가서 다음 단계의 교육을 받기도 하고, 형편에 따라서는 동래 향교나 부북면 서대동리의 예림서원 안에 있는 경학원에 관학유생(館學儒生)으로 들어가 숙식을 하면서 유교 본연의 정통 동방이학(東方理學) 교육을 받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양재 토담 지붕을 타고 넘어온 아침 햇살이 안사랑, 중사랑, 바깥사랑의 용마루를 차례대로 노랗게 물들이며 타고 넘어와서, 다시 그 옆 토담 너머로 길게 늘어선 고방 앞마당에까지 번지고 있을 무렵이 되면, 아이들의 머리수를 헤아리며 밖에 서 있던 훈장 어른도 드디어 안으로 사라져 버리고, 영양재 주변 일대는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무인지경의 외딴섬이 되고 만다. 집안의 그 누구도 후손들의 교육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오랜 가풍으로 지켜져 온 여흥 민씨 가문의 교육 지침이자 강학당의 관리 법도인 것이다. 그래서 영양재 재사 주변에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오전 한 나절 내내 사람의 발길도 끊어진 채, 외딴 산사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만이 꿈결처럼 한가롭게 밖으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을걷이가 끝날 때쯤이면 벌써 사랑채 너머의 저쪽 고방 앞에서는 각 지역에서 소작료를 싣고 온 우마차들이 당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벼 수확이 끝나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초정월까지 소작료 볏섬을 싣고 오는 소작인들의 우마차 행렬은 거의 매일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곳 종가뿐만이 아니라, 동산이 집성촌에 사는 여흥 민씨네들 집집마다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이러한 상황들이 거의 동시에 벌어지기 때문에 이곳 일대는 연일 타관에서 온 우마차들과 마름이며 소작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종가의 방대한 소작료 징수는 샛강으로 나룻배가 와 닿는 바깥 들마당에서도 이루어지곤 하는데, 거기서 거두어 들이는 소작료는 주로 배에 실려서 온 것들이었다. 이 볏섬들은 정자나무가 있는 긴다리강 가의 들마당에 야적해 두기도 하고, 농로를 이용하거나 다시 나룻배에 실려 긴다리강을 통하여 야중촌 아래쪽의 돌티미나루로 실어 나른 다음, 거기서 다시 커다란 황포 돛과 초석(草席) 돛을 단 중선에 옮겨 싣고는 구포에 있는 정미소로 실어 가거나, 그보다 훨씬 많은 볏섬들은 아예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이 와 닿는 부산 중앙 부두까지 실어 가서 그곳의 양곡 무역상한테 넘기기도 하였다. 그런 한 편으로 시세가 좋지 않으면 초량에 있는 자기네 객관의 양곡 저장 창고까지 싣고 가서 시세가 좋아질 때까지 다시 쌓아 두게 되는 게 상례였다.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부친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종가의 당주 노릇을 하고 있는 중산과 그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김 서방을 비롯하여 농감(農監) 일을 맡아서 하는 곽 서방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기 마련이었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이는 수십 명이나 되는 머슴과 하인들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황소처럼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멀리 응천강 너머 삼랑진 쪽의 천태산 위로 고개를 내민 아침 해가 그 찬란한 빛을 이곳 종가의 바깥마당까지 비출 무렵이 되면서부터 소작료를 실은 우마차와 소달구지가 사방에서 밀려들기 시작하면, 양반촌 일대는 명절을 앞둔 대목 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지역별 마름들과 수많은 소작인들을 비롯하여 그들이 끌고 온 우마차와 소달구지들로 온통 북새통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학교 운동장처럼 넓은 종가의 바깥마당 가에는 멀리서 온 마름들과 소작인들을 위하여 숫제 여러 개의 가마솥이 일렬로 내걸리고, 그들에게 먹일 밥과 쇠고기국과 돼지고기 국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삶아내고 끓여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기에다 햅쌀로 빚은 농주와 시루떡이며 가래떡 같은 간식까지 곁들여진 밥상을 받게 되니 소작료 징수 철이 되면 종가의 일꾼들에게는 생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고역의 나날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소작인들에게는 각지에서 몰려온 동료 소작인들을 다시 만나 농주 잔을 기울이며 고단한 소작농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회포를 풀 수 있는 추수감사절과도 같은 잔칫날이 되기도 하였다.
아무 탈 없이 소작료 수납을 끝낸 그들은 차일을 친 마당에 음식상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권커니 마시거니 하면서 그 동안 못다 한 얘기들을 끝도 없이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지주 몰래 자기네들에게 등쳐먹은 악질적인 마름의 만행도 그들의 입과 입을 거치면서 종가의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불만이 많은 소작료에 대한 탄원과도 같은 원성도 그들의 입을 통하여 지주 측에 전해지기 마련이었다.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요, 농민은 농업 생산의 주역이기 때문에 방대한 소작지를 관리해야 하는 종가의 입장에서는 소작료에 관한 원성에 대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지는 원성에 대해서는 무시하지 않고 가능한 선에서 원만하게 처리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었다. 소작료 책정 과정에서 작황이 과다하게 높이 평가되거나, 그 후에 일어난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소출이 감소하여 원성을 사게 된 경우에는 당연히 재조정이 이루어지곤 하였지만,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중간에서 농간을 부렸다가 원성을 불러일으킨 마름이 있을 경우에는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한때는 집사 노릇을 하다가 한직인 청지기로 전락한 서 서방도 글을 아는 바람에 이때가 되면 농감 곽 서방을 도와 소작료 수납 업무에 동참하면서 모처럼 활기를 띠곤 하였다. 그리고 승당 선생의 충복이었다가 선생 사후에 과거의 인물로 치부되어 이따금씩 용화 부인의 밀명을 받고 원지 출행만 담당할 뿐, 뒷방 노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영양재의 지킴이 김 영감도 여전히 원로 집사장 신분을 상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 일쑤였다. 그는 소작료 수납 업무 전반에 대하여 훤히 꿰뚫고 있었으므로 날마다 작업 현장에 나타나 수납 업무를 직접 돕기도 하고, 일이 지체되는 기미가 보일 때면 어김없이 적재적소에 나타나 꾀를 부리는 일꾼들에게 불호통을 치기도 하였다.
소작료의 징수 절차는 각 지역의 마름들이 자기가 관장하는 소작인들과 함께 예정된 날짜에 맞추어 수납처가 마련된 종가 앞의 바깥마당에 나타나면 농감인 곽 서방이 소작인의 명부에 적힌 소작인의 인적 사항과 소작지의 소재지와 전답의 평수를 확인하고, 작황 실사 때에 미리 책정하여 통고해 주었던 기준량대로 소작료를 싣고 왔는지를 일차적으로 점검을 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옆에서 일꾼들과 함께 진을 치고 있던 서 서방이 소작료의 실사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볏섬들의 수량을 확인하는 일이었고, 그 다음으로 볏섬들의 무게를 달아 보고 볏섬 속에 벼가 아닌 이물질이 포함되었는지의 여부와 벼의 건조 상태까지도 꼼꼼하게 살피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일손을 줄이기 위하여 소작료의 수량 확인만 대충 하고는 곧장 양곡 저장 창고로 옮겨서 차곡차곡 쌓는 것으로 소작료 징수 작업을 마무리하던 좋은 시절도 없지 않았었다. 그런데 나중에 정미소로 싣고 가서 도정을 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쭉정이가 발견되고 심지어는 왕겨와 지푸라기며 모래까지 쏟아져 나오는 볏섬에다, 비를 맞혔거나 벼를 제대로 말리지 않아서 쌀보다는 싸라기의 양이 더 많이 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번거로운 내용물의 실사 작업까지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소작료 수납 업무가 까다로워지면서 일의 양이 몇 갑절로 늘어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 바람에 실제로 그 작업을 수행하는 머슴과 하인들만 죽을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괴질의 범람으로 말미암아 한 달이나 늦게 소작료 징수 작업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작업량이 한꺼번에 폭주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 작업을 도맡은 하인과 머슴들의 노동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보소, 서 서방요! 우리 운반조 아아들이 지금 녹초가 되어 비실대는 기이 눈에 안 보이능교? 이러다가는 나락 가마니 운반조 일꾼들이 오늘을 못 넘기기고 모두 샛바닥을 빼물고 뒤로 벌렁 나자빠지게 생겼단 말이요! 그러니 가마니마다 일일이 무게를 달아 가며 속을 파헤쳐 볼 기이 앙이라 수상쩍은 놈만 골라서 본보기로 내용물을 검사하고 나머지 일꾼들은 우리 운반 조한테로 넘겨주면 안 되겠능교?”
서 서방이 웃전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소작료 볏가마니를 일일이 쏟아 가며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점검을 하는 바람에 정작 힘이 많이 드는 운반조의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는 것을 보고 용달이가 기어이 볼멘소리로 한 말씀을 하고 나선다.
하기야 근 열흘째 쉼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지칠 대로 지칠 만도 했을 것이다. 점심때는 아직 멀었는데, 할일은 태산 같이 밀려들기만 하니 오전 내내 나이 어린 젖머슴들을 데리고 수많은 볏섬들을 창고까지 등짐으로 져다 나르다 보니 힘이 장사라는 중머슴 용달이도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인집의 청지기 신분인 서 서방에게 기어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젖머슴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나서는 것이다. 그는 농감 곽 서방의 사위이자 용화 부인이 아끼는 유모 옥이네의 남편이기도 하였다.
이곳 민 씨네 대종가에는 사소한 잔일을 하는 젖머슴에서부터 이삼십 대의 중머슴에다 사오십 대의 상머슴에 이르기까지 일꾼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나이 분포도 다양하였다. 나이가 많은 오 서방이나 천 서방, 황 서방과 같은 하인들과 그들 또래의 머슴들은 소작료 징수 철이 되면 종마장이나 종묘장으로 가서 비교적 힘을 덜 쓰는 일을 한시적으로 하게 되고, 그 대신 거기에 있던 젊은 일꾼들이 모두 소작료 징수 현장에 투입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는 용달이는 서 서방보다 여남은 살밖에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식까지 달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장골로서 종가의 중머슴 치고는 꽤 연륜이 깊은 사람이었다. 키는 작달막하여도 무쇠 같은 몸으로 동료 두 사람 몫의 일을 혼자서 거뜬히 해낼 정도로 일솜씨가 뛰어난 그는 용화 부인이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자신이 의성에서 시집 올 때 교전비로 데리고 왔다가 요절한 천수의 딸과 혼인을 시켜 주고 따로 살림집까지 마련해 줄 정도로 똑똑하고 자신의 소신 또한 그만큼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으므로, 동료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얘기도 필요할 때는 이렇게 서슴지 않고 입에 담고 나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작료의 내용물 실사 작업을 관장하고 있는 서 서방의 입장에서는 그렇잖아도 이번의 이 작업을 통하여 추락한 자신의 위상을 만회하려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자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온 머슴 주제인 용달이의 얘기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거 알 만한 사람이 일하는 아아들 앞에서 몬 하는 소리가 없구만 그래! 소작료 가마니와 볏섬들을 창고에 져다 날라서 태산처럼 쌓기만 하면 뭐 하노? 그 안에 채워져 있는 소작료 나락이 얼마나 충실하고 잘 말랐는지, 이물질은 안 들었는지, 그기이 더 중요한 기이지! 내한테 실없는 소리를 할 거 없이 용화당으로 가서 노마님께 한번 물어 봐라! 내 말이 어데 틀렸는강!"
"누가 나락 가마니 속의 내용물을 살펴보지 말자고 했소? 뒤에는 저렇게 소달구지들로 미어터지는데, 거기서 터무니없이 시간을 허비하며 작업이 자꾸만 밀리게 하니까 하는 소리 앙인교?"
이번에는 용달이가 뒤에 밀려 있는 우마차들을 들먹이며 지지 않고 항변을 한다. 그러자 쑥떡 같은 서 서방이 욱하는 마음에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야, 이 사람아! 힘이 불끈불끈 치솟는 한창 나이에 구신 씨나락 까 묵는 소리 그만 작작하고 하던 일이나 제대로 퍼뜩퍼뜩 해치우라니까! 중천에 밀려난 해가 노상 거기에 머물러 있을 줄 아나?”
“허허, 나 참! 내가 할 말을 사돈께서 하고 계시는구먼!”
“사돈이라니! 내가 으째서 자네 사돈이 된단 말인가?”
사돈이라는 바람에 서 서방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펄쩍 뛴다. 자기 딸 삼월이와 김 서방의 혼담 얘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처한 홀아비에다 자식까지 있는 김 서방이 탐탁할 리 없었으나 삼월이가 김 서방에게 상사병이 난 지경이고, 김 서방이 중산의 신임을 받고 있는 집사 감인데다 위전들의 생각도 그렇게 흐르고 있는 형편이고 보니 마냥 싫은 내색만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서 서방이 예상 외로 어깨에 힘을 주고 나서는 바람에 용달이는 속으로 끙! 하고 소리를 내면서 그 만 입을 다물고 만다
그 역시 농감 곽 영감의 사위로서 조금도 꿀릴 것이 없었으나 저쪽에서 소작인 명부 확인 작업을 하고 있는 장인 어른과 연배가 비슷한 서 서방과 태격태격해 봤댔자 그분의 체면 유지에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군내의 각지에서 싣고 온 소작료를 제시하면서 농감인 곽 서방에게 일차적인 점검을 받은 소작인들의 우마차가 서 서방 앞에 오면서부터 자꾸 뒤로 밀리고 있었건만, 서 서방은 용달이의 말을 무시한 채 여전히 자기가 세워놓은 원칙대로 볏섬마다 빠짐없이 무게를 달고 내용물의 확인 작업까지 일일이 하도록 일꾼들에게 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그의 꼼꼼한 확인 작업의 절차 때문에 불합격의 퇴짜를 맞고 옆으로 밀려난 소작인들이 속출하고 있는가 하면, 뒤에 밀려 있는 우마차의 행렬이 어느 새 마을 외곽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보소, 올해 겉은 풍년에 나락 속에 쭉정이가 이렇게 많이 섞여서야 되겠소? 이런 것을 그대로 통과시켜 주면 웃전들이 우리 보고 뭐라 하겠냔 말이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서 서방이 가끔 이런 말을 하게 되면 소작인들은 벌벌 떨면서 연신 굽실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소작료의 부실한 수납의 행태가 해마다 누적되어 눈 밖에 나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의 고변으로 소작권의 박탈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서 서방으로부터 퇴짜를 맞지 않고 통과된 소작료들은 이내 힘이 센 중머슴, 상머슴들과 한창 힘이 팔팔한 젊은 하인들에 의해 고방 안으로 속속 옮겨지고 있었다.
"야 이놈들아! 방금 서 서방이 하는 말을 너네들도 귓구멍이 있으니 들었겠제? 젠장맞을 거, 책임을 맡은 사람이 뭣으로다 밤송이를 까라 카모 까야 되는 기라!"
하찮은 종놈 주제에 큰소리를 치는 서 서방의 기고만장한 태도에 화가 치민 용달이는 자기와 신분이 같은 머슴들은 접어둔 채 만만한 종놈들을 향하여, 그러나 감히 욕은 못하고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다가 그래도 성이 안 차는지 볏섬을 진 자기네 운반 조들이 방금 사라진 저쪽 고방을 향해 돼지 멱따는 소리로 냅다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야 이노무 자슥들! 일, 이수, 삼수, 갑수야! 참, 삼수는 빼고…. 이놈들 갑, 을, 병환아! 니네들은 들어간 지가 언젠데 고방 안에서 무신 짓을 하고 있길래 여태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있노? 설마 거기서 자빠져 자는 거는 앙이겠제?"
나이를 먹은 중머슴, 상머슴들은 새경을 받고 일하는 바깥사람들이라 염치가 있어서 제각기 알아서들 성심껏 애를 쓰는 편이었지만, 스물 안팎의 이들 하인 자식들이 살살거리며 꾀를 부리는 데에는 성질이 어지간히 무던한 용달이도 그만 부아기 치미는 것이다.
일, 이, 삼수는 각각 일수, 이수, 삼수를 말함이고, 갑, 을, 병환이는 갑환이와 을환이, 병환이를 이르는 말이었다. 하인이 많은 종가에서는 하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혈연관계와 상관없이 외우기 좋게 태어난 순서대로 이렇게 이름을 지어 주기 십상이었다. 그런 결과로 항렬에 맞춘 듯이 생뚱맞은 그런 이름들이 각기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수’자 돌림인 이들은 열아홉 살에서 스물 살까지의 어린 나이로 일수는 농감 곽 서방의 외아들이었고, 이수는 집사장인 김 영감의 맏손자였으며, 삼수는 마지기 황 서방의 둘째아들이었다. 그리고 ‘환’자 돌림인 갑환, 을환, 병환이는 이들보다 한 터울 위인 스무 두 살 동갑내기로 갑환이는 염 서방의 장남이었고, 을환이는 가마꾼 오 서방의 차남, 병환이는 초량에 나가 있는 사무장 윤 영감의 외아들이었다.
"아따, 저승차사가 뒷다리 붙잡을라꼬 쫓아 와요? 용달이 아제는 와 그렇게 숨도 몬 쉬게 족쳐 쌓소?"
목에 걸친 무명 수건으로 목덜미의 땀을 연신 훔치면서 고방 밖으로 나온 병환이가 자기보다 나이가 한창 위인 용달이한테 제법 머리를 꼿꼿하게 쳐들고 항변을 한다. 나이를 떠나서 너나없이 죽을 맛이라 입만 열면 절로 싫은 소리가 나오는 모양이지만, 병환의 행동은 그런 처지를 감안하더라도 좀 심한 편이다.
"야, 이 노마야! 난들 좋아서 하는 말인 줄 아나?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서 서방한테 가서 한번 물어 봐라!"
생각 같아서는 버르장머리 없는 병환이에게 한 대 쥐어박고도 싶지만 용달이는 그런 말로 속을 삭이고 만다.
하기야 서 서방도 아랫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중산의 수행 집사로 있는 김 서방처럼 뒷일을 책임질 만큼 뒤가 든든한 것도 아니요, 재량권을 행사할 정도로 여유를 부릴 만한 배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 마침 중산을 대신하여 일의 진척 상황을 둘러보러 다니던 김 서방이 나타난다. 그는 얼굴이 잔뜩 부어 있는 용달이를 보고,
"하루 이틀도 앙이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일하느라고 수고가 많구마는!"
하고 땀에 흠뻑 젖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다.
"아, 그걸 몰라서 묻는가, 이 사람아! 황소 궁둥이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꼬 하는데, 이거는 집채만 한 황소를 통째로 삶아 묵은 항우 장사 겉은 죽은 구신도 앙이고…."
저쪽에 있는 서 서방을 걸쳐서 하는 용달이의 말에 그 동안 혼자서 삭였던 원성이 잔뜩 배어 있다.
"앞만 보고 일하는 사람이라 그렇지, 다른 뜻이야 있겠나, 어데! 이제 곧 점심때가 될 테니 하던 일을 마저 끝내고 오후부터는 저쪽에서 일꾼을 한둘 끌어다 줄 테니 그리 알고 좀 참아 주면 안 되겠나?"
장차 장인 될 사람이라서 그러는지 김 서방은 서 서방을 대신하여 용달이의 뒤틀린 심사를 달래 주고는 휘하의 일꾼들에게 황소 같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친다.
“일수야! 이수야! 갑환아! 을환아! 병환아!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무쇠 소를 잡아 묵고도 남을 한창 나이에 그것도 일이라꼬 벌써부터 그렇게 흐느적거리고 있으믄 우찌 하노? 자, 퍼뜩퍼뜩 오이라. 여기에 쌓인 볏섬들을 어서 져다 나르고 나서 우리도 막걸리 한 사발씩 쭈욱쭈욱 걸쳐야 하지 않겠나!”
“과부 사정은 홀애비가 안다꼬, 역시 우리 김 서방 형님이 최고구마!"
목덜미에 붙은 검부러기를 떼어 내면서 갑환이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김 서방을 보고 벌쭉 웃는다. 그는 용달이와 함께 내용물 검사를 마친 벼 가마니를 을환이의 등짝에다가 덜렁 들어서 올려 주고는 자기도 볏가마니를 지고 가기 위하여 기꺼이 마당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곧추 세우고 앉는다. 김 서방의 얘기로 미루어 보건데 오후부터는 차기 당주를 모시는 집사의 재량권을 발휘하여 일을 좀 수월하게 진행할 모양인가 싶은 것이다.
"덩치가 크면 모든 것이 다 큰 법이라, 통도 대천지 바다처럼 넓고 큰 기이 앙이가!"
뒤에 서 있던 입심 좋은 병환이도 마대자루를 덮은 등짝을 용달이 앞에 내밀면서 한 마디 거든다.
"그라모 밤마다 쓰는 김 서방 형님의 그것도 홍두깨처럼 크겠네?"
병환이까지 걸쭉하게 씨부리자, 기가 오른 갑환이는 볏가마니를 지고 끙! 하고 용을 쓰고 일어서면서 자기도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내뱉으며 목청을 높이는 것이다.
"하모! 두말하모 잔소리제! 초가삼간 기둥을 하고도 남을 기이다!"
"이 노무 자슥들이 보자보자 하이 형님 앞에서 몬 하는 소리가 없구마!"
김 서방은 그들의 농담이 도가 넘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럴 때는 그냥 웃어넘기기 일쑤였다. 같은 일을 하고도 분위기에 따라서는 일하는 이의 기분이 달라지고 일의 능률도 오르기 마련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전들이 들었으면 기겁을 할 낯 뜨거운 육두문자로 한 바탕 말잔치를 벌인 그들은 볏가마니를 창고에 져다 나르기가 무섭게 속속 달려와서 들고 있던 마대를 둘러쓰며 다시 차례대로 잔등을 내밀었고, 사람을 부리는데 달관한 김 서방은 대단한 선물 보따리를 안겨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수 그 무거운 볏섬들을 혼자서 덜렁덜렁 들어다가 떡판 같은 그들의 잔등마다 어렵지 않게 하나씩 털썩털썩 얹어 주는 것이었다.
“자, 너그들 비싼 밥 묵고 씰데없이 헛심들일랑 쓰지 말고 장딴지 알통이나 좀 키워라잇!”
그러면서 그야말로 솥뚜껑 같은 손으로 머슴들의 엉덩짝을 철썩철썩 때려 주면서 고방 안으로 들여보낸 김 서방은 뒤에서 구경을 하고 서 있던 작인들을 향하여 냅다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자, 용무가 끝난 사람들은 달구지부터 퍼뜩 뒤로 빼 주소! 그래야 다음 사람이 지체 없이 속속 들어올 거 앙이요?”
어르고 달래고, 강온 양동작전으로 일꾼들을 무리 없이 부리는 솜씨하며, 장골 두 사람 몫의 힘을 어렵지 않게 써 가며 일을 추진하는 걸 보면 만석지기 종갓집의 집사를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김 서방이 그러하매 서 서방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던 작인들도 그가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슬슬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들 고분고분 움직이곤 하였다.
일찌감치 용무를 끝마친 작인들은 보통학교 운동장 같이 넓은 마당가의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남녀종들이 내어 온 점심을 먹은 다음에 농주들을 나누어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는 마을은 서로 달라도 동변상련으로 뜻이 통하거나 더러는 안면이 있기도 하는 사이라 너나없이 한 자리에 앉으면 말벗이 되곤 하는데, 화제는 단연코 소작과 관련이 있는 올 농사 얘기가 으뜸이었다. 그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끼리라도 백년지기처럼 서로 인사를 트고, 막걸리 잔을 나누면서 자신이 싣고 온 소작료의 경중을 남들과 비교하여 은근히 셈해 보기도 한다.
“그쪽 동네엔 올해 농사가 어땠능교?”
삼랑진 안태에서 왔다는 윤 서방이라는 사내가 상투머리를 한, 기산리에서 온 작인한테 물었다.
“우리 서당골 쪽이사 천수답이 많아 가지고 가뭄이 들 때마다 물을 퍼다 붓는다고 생똥을 샀지마는 평년작은 족히 된 것 같은데, 거기는 어땠소?”
“말도 마소! 물 좋은 야중옥답(野中沃畓)이라꼬 소문만 요란했지, 제방 축제 공사로 전에 없던 수리 조합비까지 새로 물게 생겼으니 풍년이 들어도 남는 기이 있어야 말이지요. 게다가 마을 앞의 논배미를 제외하고는 전부 벼멸구에 도열병까지 들어 가지고 나락들이 배배 타들어 가는 바람에 불쏘시개처럼 모조리 불이 붙을 지경이 되어 삐렸다니까요!”
“사정이 그렇다모 소작료도 웬만큼 탕감 받았을 기인데, 뭘 그러슈?”
“탕감요? 허참, 탕감이 다 뭐요! 병충해로 실농을 했으니 소작료를 탕감해 달라고 했더니 농감 대신에 벼 작황을 보러 왔던 마름이라는 작자는 작년에 이어 올 농사마저 실농을 했으니 딴 사람한테 소작을 주든지 말든지 해야겠다꼬 길길이 뛰면서 생 개지랄을 다 하더라니까요! 어디 그 뿐인 줄 아슈? 게다가 농감이나 지주 나리한테 일러바쳐야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는 판이니 이러고 있어도 간이 절로 오그라드는 기이 죽을 맛이라니까요!”
농감은 바깥에서 각 지역의 마름들과 소작농들을 총괄하는 직책인 만큼 그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였다. 그러니 소작인들은 여기까지 온 김에 농감 일을 하는 곽 서방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어 놓고 가고자 하나, 이렇게 바쁜 날 그를 따로 만나 본다는 것은 나라님 알현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아니, 농감이랑 지주 양반은 가만히 있는데, 지놈이 무신 권리로 길길이 뛰면서 개지랄을 하고 그런데요? 농사가 그 지경이 됐다면 지놈도 눈이 있으믄 보았을 기이 앙이요?”
제 아무리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한 남의 얘기에 더럭 공분을 느끼는 걸 보면 가진 것은 없어도 그 꼴에 글자깨나 읽었는지, 성질만은 기고만장한 남산골샌님 같은 위인인 모양이다.
“쉿, 조심하소! 누가 들으믄 그 뒷감당을 우찌할라꼬 그러슈? 그 사람한테 한번 찍히는 날이면 이거요, 이거!”
윤 서방은 손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다 말고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핀다.
“아따, 이 양반 오뉴월 메뚜기 겉이 심장이 여리기는! 그렇게 개냉이(고양이) 앞의 생앙쥐맨치로 천날만날 벌벌 떨어대니 그 늑대 겉은 마름 놈이 떡고물을 떨어 묵을라꼬 기가 올라서 더욱 그러는 기이라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도 역시 남의 귀가 두렵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으로 주위를 슬쩍 둘러본다. 그러나 먼저 일을 마친 작인들은 저들끼리 권커니 마시거니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놓고 술 배를 채우기에 바빴고, 각 지역에서 온 마름들도 안으로 들어가서 웃전들을 배알하고 있는지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자 상투쟁이는 다시 기고만장하여 언성을 돋운다.
“그 사람이라니, 그 자가 도대체 누구란 말이요?”
“누군 누구겠소? 안태에 있는 이 댁 종산을 지키는 그 강 서방이라는 늑대 겉은 묘지기 마름 놈이지요!”
소작료는 지주나 농감의 실사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형편에 따라서는 벼 작황을 잘 아는 현지 마름들의 전언에 따라 정해지는 게 상례였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지주들에게는 방대한 소작지를 간편하게 관리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소작료를 싣고 와서 새삼스럽게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은 거의가 마름의 엄포에 못 이겨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미 뇌물을 바쳤거나, 연이은 실농 책임을 묻겠다는 마름의 속 보이는 엄포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이기 십상이었다. 말하자면, 그 소작료라고 하는 것이 벼 작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권을 취하고자 하는 마름들의 뜻에 따라 경감될 수도 있었고, 가중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힘없는 소작인들로서는 풍년 농사를 짓는 일보다도 마름들의 비위 맞추기에 더욱 공을 들이는 게 어쩔 수 없는 눈앞의 현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소작료의 책정이 이렇게 마름들의 기분에 따라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 이루어지다 보니, 너도 나도 마름의 비위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이 없다 하여 숨넘어가는 자식새끼한테도 먹여 보지 못한 곶감 짝이나 꿀단지 같은 귀한 물건들을 뇌물로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염소나 송아지 같은 가축을 갖다 바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소작을 안심하고 계속 부칠 수만 있다면, 그게 오히려 소작지를 잃고 비렁뱅이로 주저앉는 것보다 낫다는 게 마름의 손에 생사가 달려 있는 소작인들의 생각인 것이다.
어쨌든 마름들의 입김이 그만큼 소작인들에게 절대적인 것만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횡포가 지주에게 칭송이 되어 돌아가기보다는 원성이 되어 돌아가기 십상인 것은 당연지사요, 인지상정이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로는 일제 당국이 농지세다 공출이다 뭐다 하고 거두어 가는 세곡(稅穀)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식민 치하인 오늘의 현실에서는 그 여파로 생긴 무지막지한 욕설과 원망들까지 모두 지주농제를 발판 삼아 식민지 정책을 계획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원흉인 일제가 아닌 애매한 지주들한테로 돌아가 버리게 만든 것이 일제의 농업 정책이요, 그에 따른 세상살이의 일반적인 민심의 흐름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기네들이 사는 사방 일백 리 안에서 굶어 죽는 양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게 양식 있는 사대부 지주들의 생각이었던 데다, 민초들의 원성이 있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윗대 조상들의 유훈을 지키려고 유난히 애를 쓰고 있는 동산이 여흥 민씨네의 생각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으므로, 그들 종가의 민심 관리도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 서방의 입에서 마름의 얘기가 나오자, 서당골에서 온 상투쟁이는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되묻는다.
“방금 묘지기 마름 놈이라꼬 했소?”
“그렇다니까요!”
“묘지기라면 양반 사대부들의 묘를 지켜 주고 사는 종놈이 앙이요? 그런데 늑대 겉은 마름은 또 뭐요?”
“허허, 민씨네 종가 댁의 소작을 부치면서 아직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능교?”
윤 서방은 핀잔을 주면서 사리 분별없이 큰소리만 치고 있는 상투쟁이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혀를 끌끌 찬다. 그러자 상투쟁이는 들고 있던 막걸리 잔을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볼멘소리를 한다.
“아, 이 댁의 전답과 임야가 군내에 없는 곳이 없다 카는데, 하남면 서당골에서 온 불초(不肖)한 소생이 강 건너 삼랑진 쪽의 사정을 우찌 알겠소?”
“그래도 그렇지요! 삼랑진 안태 ․ 행촌 하면 이곳 민씨 가의 여러 종산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선산이 있는 곳인데, 여태까지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요? 선산을 지키는 여러 묘지기들 중에서도 천태산의 묘지기는요 인근에 있는 이 댁의 전답까지 모두 관리하고 있어서 그 위세가 웬만한 양반 집 나으리보담도 대단하니까 하는 소리지요! 내가 알기로는 이 댁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종복들 중에서 가장 충직한 사람한테는 마름 권리까지 주어 가지고 노리(老羸)에 묘지기로 내보낸다는 말도 있습디다. 그러니 그런 사람한테 잘못 보여 눈 밖에 나는 날이몬 볼짱 다 보는 기이 앙이겠소?”
삼랑진면 안태리라고 하면 밀양 읍성 사 오십 리 밖의 동남방 끝에 위치한 곳으로, 천태산과 구천산(九天山)의 웅장한 산록 사이에 형성된 분지형의 마을이었다. 옛날부터 감여가(堪輿家: 풍수지리설을 공부하여 묘지나 집터의 길흉을 가리는 사람)들은 밀양군 내에서 풍수지리학 상으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일 안태(一安台), 이 청룡(二靑龍), 삼 사포(三沙浦)로 꼽아 왔는데, 그 으뜸 되는 명지로 꼽은 곳이 바로 안태리인 것이다.
구천산 자락은 좌청룡이요, 천태산의 줄기는 우백호가 되어 힘차게 꿈틀거리며 낙동강으로 내리 뻗치고, 북쪽을 등진 산세와 남쪽으로 탁 트인 질펀한 강물이 이른바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뜻의 낙지(樂地)로 안과태평(安過太平)한 마을이라 하여 옛날부터 안태리(安太里), 또는 안태리(安台里)라는 지명으로 불리어져 오게 된 것이었다.
밀양 지역의 역사서인 <밀주구지(密州舊誌)>에 의하면, 옛날에는 사족(士族)이 살지 않았으나 조선 광해군 14년인 임술년(壬戌年: 1622년)에 교리(校理) 심광세(沈光世)가 이 마을에 맨 처음 터를 잡은 뒤에 그의 손자인 찰방(察訪) 심약해(沈若海)가 뒤를 이어 살았으며, 매부인 김구(金球), 이석번(李碩蕃) 등도 한양에서 내려와 이 마을을 세거지로 삼았다고 하니 명지로 소문이 났었다는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마차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는 그 행렬이 동구 밖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안에서도 김 서방을 통하여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곧 시정 명령이 떨어졌다. 아주 미심쩍은 가마니를 제외하고는 내용물을 점검할 것도 없이 볏섬 숫자만 헤아리고 그대로 고방에 갖다 쌓으라는 것이었다. 작인들의 양심만 믿고 소작료를 받아 주자는 의도였다. 현황 보고차 안으로 갔다가 바깥의 사정을 고하고 중산의 지시를 전달받은 김 서방은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던 춘돌이를 바깥마당으로 보내어 서 서방한테도 그 사실을 기별한 뒤,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자신도 소작료 징수 업무에 가담하면서 작인들이 싣고 온 가마니 숫자만 확인하고는 머슴들로 하여금 그대로 고방에 날라다 쌓도록 진두지휘하기도 하였다.
한낮이 되자, 먼 데서 온 마름들과 작인들까지 들이닥치기 시작하면서부터 평소에 원근 각지에서 찾아 온 일반 나그네들이 이런 저런 사정을 안고 주인장 뵙기를 청하며 진을 치고 있던 행랑 쪽도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들 하룻밤을 묵고 갈 원지의 사람들이라 마름들은 마름들대로, 소작인은 소작인들대로 일찌감치 뜻에 맞는 사람들끼리 방을 차지하고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투전판을 벌이거나, 숫제 사지를 뻗고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는 축도 있었다.
이렇게 행랑 쪽까지 잔칫집처럼 온통 북적거리면서부터 더욱 바빠진 것은 부엌일을 맡아서 하는 안채의 하녀들 쪽이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가솔들의 식사도 무리 없이 해내는 안채의 부엌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기근이 들 때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救恤)할 때 그랬던 것처럼, 대문간의 그 많은 행랑 아궁이마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절간의 밥솥처럼 큰 가마솥에서는 끊임없이 밥과 국이 끓고 있었다.
해마다 소작료 징수가 시작되는 가을은 등화 가친지절(燈火可親之節)이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손끝에 물도 안 묻히고 사는 양반 집의 나으리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것임이 분명하다. 동산리의 양반촌, 그 중에서도 종갓집인 민 대감 댁의 남녀 하인들과 머슴들, 심지어 달구지와 마차를 끄는 소나 말들에게까지도 이러한 가을은 오히려 달갑지 않은 시련의 계절이요, 한 바탕 홍역을 치르는 혹사의 계절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고비를 넘기고 나서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늪지대와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크고 작은 도랑을 따라 마른 억새풀과 갈대만이 우묵 장성으로 남아 있는 황량한 벌판 위로 계절의 망령 같은 찬바람이 음산하게 휘젓고 다닐 무렵이 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지고 만다. 그때쯤이면 소작료를 싣고 오는 우마차의 수효도 점점 줄어들게 되고, 밤낮 없이 해야 했던 월동 준비도 거지반 끝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일손도 줄어들게 될 것이니 하인들에게도 마침내 해방의 날은 오기 마련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한 해가 마무리되는 섣달 그믐께가 되면 머슴들에게는 지난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인 새경으로 적지 않은 볏섬들이 돌아가게 되고, 또한 열심히 일한 만큼 인상된 다음 해의 새경을 새로 약속 받게 되고, 과년한 비복들에게는 마음에 드는 색시나 신랑감을 얻어서 혼례를 올리는 행운까지 잡을 수 있는 때가 바로 이 무렵인 것이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온 산하를 색색으로 물들이며 왕성하게 약동하던 만물들이 덧없는 한해살이를 마감하고, 더러는 낙엽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더러는 헐벗은 나목(裸木)으로 남아 그 음산한 동장군(冬將軍)의 혹독한 조화 속에 소생의 단련을 받는 겨울철이야말로 이곳 머슴들에게는 오히려 손꼽아 기다려지는 환상의 계절이요, 소득과 휴식의 계절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가을은 침묵의 계절이며 묵상의 계절이기도 하였다. 가을걷이가 끝나기가 무섭게 씨를 뿌려놓았던 보리들이 지난밤에 내린 때 아닌 초겨울 비에 흠뻑 젖어 더욱 선명한 자태로 파릇파릇 움을 틔우고 있었다. 이제 곧 한겨울이 되면, 때 아닌 단비에 촉촉이 젖어들어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고요히 명상에 잠겨 있게 될 이들 들판의 보리들도 동장군의 내습으로 얼어붙은 대지 속으로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긴긴 겨울잠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가을, 만경창파와도 같은 황금의 물결이 끝도 없이 넘실거리던 그 눈부신 들판에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눈도 못 감고 죽어 간 민초들의 원혼 같은 겨울바람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면서 밤새도록 헤매고 다니게 될 것이고, 때로는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하늘의 축복인 양 소복소복 내려 쌓여 비단 이불처럼 폭신하게 온 들판을 뒤덮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죽어서 구천을 맴돌던 원혼들도, 밤새도록 허허벌판을 헤매고 다니면서 처절하게 울부짖던 겨울바람도 태초의 광야와도 같은 허적(虛寂)의 적막 속에 고요히 잠들게 될 것이고, 광막한 설원의 두꺼운 솜이불 속에서는 새 봄을 기다리는 새 생명들이, 뭇생명력의 화신과도 같은 그 숱한 보리들의 단꿈이 새록새록 여물어 가게 될 것이다.
오소리, 너구리들이 굴을 파고 사는 야산 등성이에,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다가 저주받은 운명처럼 하얗게 얼어붙어 버린 강가와 늪지대에,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우묵 장성으로 자라나서 밀림을 이루고 있는 마른 갈대밭, 억새숲 사이로 산토끼, 들쥐들을 찾아 헤매는 여우와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파도 같은 밤바람 소리에 실려 오는 으스스한 저녁이 되면, 그 소리에 놀란 화롯가의 아이들은 옛날 얘기에 깨가 쏟아지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도 어른들의 품속을 파고들며 숨을 죽인 채 귀를 막고 있다가 저절로 잠이 들게 될 것이다.
지금은 겨울 갈무리에 이어 소작료 징수가 한참인 한 해의 끄트머리. 까치밥으로 몇 개 남겨 놓은 감나무의 감들이 이제 막 번지기 시작하는 황금빛의 햇살을 받아 임을 향한 일편단심처럼 붉게 타는 이른 아침이다. 서리가 녹으면서 허연 김이 피어오르는 초가지붕 위의 감들은 그래서 가난한 민초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시장기를 더욱 자극하는 요물이 되기도 하는지 모르겠다.
감이란 과일은 원래부터 애절하게 인간의 속이 타들어 가듯이 붉기도 하려니와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아 한층 더 투명해진 진홍색을 띠고 있기에 안팎의 모양도 자세히 쳐다보면 각양각색이다. 까치들이 파먹다가 남겨 둔 것도 있고, 아예 속이 텅텅 비어 버리고 껍질째 딱딱하게 말라 버린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애달프게 자극하며 붉게 타는 것이 메마른 가지 끝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길복을 빌면서 까치밥으로 남겨 둔 몇 알 안 되는 성한 감들이다. 해맑은 아침 해살 아래 유난히 붉은 색을 띠며 매달려 있는 온전한 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생각만 해도 눈물겨운 배고픔의 기억을 가장 자극적으로 되살려 주는 과일 중의 과일이요, 망국의 서러움을 간직하고 배고픈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허기진 자기네를 걱정하는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애타는 혼불인 양 숙연한 생각이 들게 해 주는, 한민족의 한과 시장기가 서린 과일인 것이다. <계속>

첫댓글 한밤의 방문객 정독합니다.
밤 기온이 차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