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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화일로 읽으면, 사진과 함께 읽을수 있답니다.
겨울, 山寺에서의 하루
‘템플스테이’는 만남의 場입니다.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 산사(山寺)에는 수행 구도자들의 삶과
수행의 기록이 담겨 있으며, 이 땅의 자연과 사람에게 귀 기울여 전해 준 가르침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템플스테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교량과 같습니다.
불교의 참된 정신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 템플스테이를
통해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한국불교 템플스테이 홈페이지 -
요즘, 대한민국 문화관광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템플스테이’ 前, 우리나라 불교의 전래를 떠올리고자 기억을 더듬어보니 긴가민가하여,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우리나라 불교는 우리나라 역사와 상당부분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불교에 대한 충분한 지식도 없고, 佛者도 아니면서 템플 스테이(Tample stay: 사찰문화 체험)를 하고자 함은 모처럼의 긴 설 연휴동안 지척의 친구, 친척들과 술에 찌들려 갤~갤~거릴 시간들이 끔찍하지만, 3월에 입대하는 아들녀석의 복잡한 심사를 차분히 정리할 절호의 시간이라는 애비의 애잔한 바램을 담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뤄지는 것도 별로 없이, 늘 바쁜 時間과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쳇바퀴같은 日常, 무한경쟁 구도에 있는, 복잡한 對人關係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에 포근히 안겨있는 山寺에서 신발 코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으면서, 잠시 잊고있는 나 자신과 대화,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줄 상큼한 공기, 이는 바람에 넘실대는 이파리들의 춤사위, 계곡을 구비치는 청량한 선율의 물소리를 맞이하고파, 템플스테이를 갈망하는게 아닐까?
올 설 명절은 수요일에 시작되어 일요일까지 5일간의 황금연휴이기도 하고, 목요일 명절 당일 날이 ‘눈이 비로 바뀐다’는 절기상 우수(雨水)이기도 하다. 우수가 지나면 북쪽에서 날아온 기러기가 다시 북쪽으로 날아가며, ‘초목에 움이 트기 시작한다’하니, 겨울이 쫒겨나는 시기인 것이다.
템플스테이를 작정하고 인터넷(www.templestay.com)을 통해, 전국 사찰의 프로그램을 뒤져보니, 몇 군데 눈에 띄이기는 하나, 개인 일정에 부합되는 곳은 별로 없어, 멀리 내설악에 있는 백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담사는 예전 80년대 初, 자동차를 처음 샀던 해, 동해안으로 마눌님과 함께 하계휴가를 떠났다가 귀가도중 처음 들렀고, 이후 직장 산악팀의 설악산 종주 산행에 내설악 하산지점 차량 운전자로 낙점되어 일행들을 영접하러 나갔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저런 연유로 몇 차례 방문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겨울에 목적지로 정하고 나서기는 처음이다.
예전에 이 계곡에서 보았던 한뼘은 훌쩍넘는 크기의 산천어를 아들에게 보이고 싶어, 여울에 구멍진 물속을 열심히 들여다봐도, 꼭꼭 숨어서 겨울잠을 자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예상했던 시간을 훨씬 지나 도착한 백담사는 일주문부터 범상치 않다.일주문을 지나 사찰진입 삼거리 우측으로 수심교(修心橋)앞에 다달으니, 건너편 아늑한 반원형 터전에, 전각들이 정렬되어 있는 백담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담사를 소개하자면
【 만해 한용운선생님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28대 진덕여왕 원년(647) 자장율사가 지금의 설악산 장수대 안내소 인근의 한계사터에 절을 세우고, 아미타 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다 한다. 하지만 창건 이후 7차례에 걸친 화재가 발생하면서 한계사, 운흥사, 심원사, 심구사, 영취사로 불리면서, 자주 절터를 옮기게 된다. 1783년 주지스님(최붕과 운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가 몇 개 있는지 세어보라고 해서 세어보니, 꼭 100개였다고 한다. 이후 이름을 百潭寺로 고쳤고, 그 뒤로는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5년 겨울밤에 화재를 당해 다시 불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바람의 한터에 자리한 百潭은 바람벽으로 빙 둘러싸인 경계의 격절감으로 담(壁)이요, 수심교를 건너며 드는 생각은 백 가지의 사연 즉, 백 가지의 이야기 담(談)이요, 절집에 들어앉아 마주하며 드는 마음은 담담할 담(淡)이다. 다시 봉정암을 오르며 드는 기운은 당차고도 담대할 담(膽)이어서 그 터의 기운이 묘하고도 신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백담사는 고색창연함과는 거리가 있으나, 백담사로 드는 수심교(修心橋) 주변 계곡의 돌탑이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계곡에는 수천수만의 근심, 소망과 바램을 담아 쌓아올린 수천 개의 돌탑들을 지난 여름 급류가 휩쓸고 간 후, 각자 나름대로 삶의 기쁨과 슬픔, 원망과 근심을 담아 다음 여름까지 다시 쌓여져 백담사의 대표적 풍경이 되고 있다. 수심교를 건너면, 속세와의 격리를 의미하는 산문으로 든다. 그렇게 본다면 백담사는 온전히 격리된 공간이다. 경내에는 탈속 수행을 하거나, 힐링하며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에 안성맞춤격 공간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수심교를 건너면 좌우로 사천왕상이 봉안된 금강문이 있고, 뒤이어 종묘, 재실 에나 있을법한 솟을 산문과 멀찌감치 삼층석탑, 대웅전격인 극락보전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백담다원에 배낭을 풀고, 만해교육관에 있는 템플스테이 접수처에 들어가니, 단아하고 해사한 미소를 머금은 교육팀장님(김명임 님)이 입재식을 겸한 입소등록을 하면서, ‘잠시 속세를 떠나 오롯이 현재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며, ‘핸드폰이나 전자기기를 임시로 보관한다’ 하신다. 일순간 ‘핸드폰은 나의 분신같은 존재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며시 곁눈질을 해보니, 버텨도 소용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순순히 내놓기는 하였지만, 허전한 심사를 떨칠 수가 없었다. 수행복을 받아들고 나와, 내부가 양변기에 따뜻한 물이 철철 나오는 현대식으로 깔끔히 개조된 무산장실 3호를 거처로 안내 받았다. 아들과 짐을 풀고 지척거리는 비를 맞으며 경내를 순회를 했다. 법고와 범종 그리고 목어 등을 품고있는 범종루를 거쳐, 만해기념관에서는 중. 고등학교때 배웠던 〈님의 침묵〉은 물론 〈알수없어요〉 등의 탄생 배경과 선생님의 일생이 잔잔한 감동으로 엄습한다.
반시계방향으로 나한전을 둘러보고, 극락보전 뒤에 있는 해수 관음상에서 가슴속까지 시원한 감로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신령각을 거쳐, 12대 대통령(전두환)내외가 2년 1개월 동안(1988.11.28~1990.12.30) 기거했던 화엄당이 삼층석탑을 코앞에 모셔두고, 화엄당 뒤편 기와불사를 위해 쌓아둔 각양의 기와들이 아직도 미완의 백담사를 예시한다. 만복전으로 향하는 쪽문을 지나, 선열당을 거쳐, ‘미리 해결하자’는 아들의 권유로 해우소에 들어가니, 공공화장실치고는 너무나 깨끗하고, 글자 그대로 아무 근심없이 ‘볼일’ 볼 수 있도록 시설되어 있다. 만해 적선당 앞 물가에 가서 명경지수같은 계곡물에 손을 담그니, 온몸이 짜릿할만큼 서늘하다.
귀소하여 샤워를 한 후, 저녁공양을 위해 布蕯食堂 으로 가면서도 시간이 오후 4시반이기에, 어색하기 이를데 없다. 공양간에는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욕망을 버리고 몸을 회복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저 합니다.”
와~~ 어색함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저녁예불이 끝난 뒤에는 차담을 하거나, 좌선 명상을 한다는데, 우리는 거소로 돌아가서 10시에는 소등하라는 팀장님의 지시에, 낯선 냄새때문에 다시 샤워를 하고 이부자리를 폈으나, 도대체 잠이 오지않아, 아들녀석과 K-pop스타 4. 출연자들을 입맛대로 평가하고, 푼수덩이 우리 동네 통장님 부인 흉도 보면서... 온갖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산사에서의 하루 일정은 (공통)
◆ 03시, 기상과 함께 道場釋 (새벽 예불 전,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
◆ 04시30분, 새벽 예불 (법고와 범종, 목어 등을 울리며, 법당에서 아침예불)
◆ 06시30분, 아침공양과 運力 (울력: 일반인들은 노동이나 스님들은 수행의 하나)
◆ 11시30분, 점심공양과 사시마지(巳時麻旨: 부처님께서는 1일 1식으로 알려짐)
◆ 15시, 자유정진 및 포행(布行: 천천히 걸으면서 禪을 행함, 산책)
◆ 17시, 저녁공양 및 예불(茶啖: 차를 마시며, 스님과 함께 대담하는 시간)
◆ 20시, 수행체험 및 취침(108 염주꿰기, 연꽃燈 만들기 등의 체험)
손목시계 알람에 깨어난 06시 15분경, 밤새 뒤척인 흔적이 역역한 아들녀석을 깨워, 코 끝에 물을 찍어 바르고, 아침공양에 나선다. 요즘들어 ‘밤이 이렇게 길다는걸 느껴본적이 없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빨리 밥먹고 와서 더 자야 된다’는 아들녀석의 푸념이 밉지만은 않다. 평상시 같으면 아침밥을 생략했을걸 빤히 아는 애비로써는 웃으며 넘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공양간 문화를 체험한 후, 아침예불은 자율권이 있어, 아들은 다시 잠자리로 갔다. 추위에 만반의 채비를 한 후, 어스름한 여명속에서, 한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탁닛한(속명:釋一行, 베트남) 스님’의〈걷기 명상〉(자연 명상, 요약 :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두걸음으로 들이쉬고, 두걸음으로 내쉬면서, ‘고요히, 편안히’를 입으로 되뇌이는 명상법)을 해볼 요량으로 거소를 나서니, 새끼 2마리를 거느린 멧돼지가 하산하여 포륭식당 주변 전각들을 느릿느릿 시찰하고 있어, 귀여워 구경하고 있자니, ‘낯선 녀석이 뭘 구경하느냐~’는 식으로 내쪽으로 오더니, 자기네 領域인양 비키란다. 장독대 얼음을 치우던 처사님이 ‘비키세요~’ 하면서 웃어댄다. 따라 올까봐 겁이 나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얼른 툇마루로 올라서니, 유유히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리신다.
만해 적선당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꺼내들고, 경내 곳곳에 세워진 詩碑를 둘러보다 보니,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고은 시인과 신경림 시인(2점)의 작품이 있어, 친밀감이 급상승 했고, 수심교를 건너면서부터 머릿속을 완전히 비우고,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고요히, 편안히’만 중얼거리며 일주문까지 왕복하였다.
다시 아들녀석을 깨워, 특별히 휴대폰을 돌려준다기에 만해교육관엘 들러, 백거스님과 우리 부자의 일상사들을 다양하게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걷기 명상이란 휴식 속에서 멈춤을 수련하며, 감정을 치유하는 수행이라’지만,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신발 코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걸으면서 전혀 부담없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영시암(永矢庵 : 조선 숙종때 장희빈의 세자책봉에 반대하여 숙청된 노론의 김수항의 아들 김창흡이 속세를 떠나 지은 암자
초대’라는 詩板이 있는 자연 탐방로의 시작이다.
프로그램상으로는 명상포행이지만, 20여분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백담 자연탐방쎈터부터는 온전히 두발만 이동이 허용되는 산길로 봉착한다. 멈춰서서 주변 경관도 둘러보고, 각종 수목이나 생태계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읽으면서 소소한 주제를 던지며 생각도 나누고, 아들 인생에서 다가올 군대생활이 어떤 역할을 할지를 예견하는 싯점에서 “군대는 남자로 완성되는 하나의 단계이니, 뜻한바 한 가지만 이루고 오리라”는 결론으로 귀결했다.
퇴소를 위해 행장을 정리하고, 자체 도량석 格인 구석구석 掃除를 하니, 점심공양시간이다.
공양을 마치고, 처사님께 수행복을 반납하면서 공식일정을 모두 마쳤다. 나서면서 다시 경내를 한바퀴 돌아 몇 장의 사진을 담고, 차가 주차된, 용대리로 향한다.
山寺에서의 하루
참 나를 찾고, 새로운 인연이 이어지는 공간, 그곳이 바로 산사(山寺)이다.머물고자 하는 이들을 머물게 하고,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내설악의 백담 산사에서 풋사랑같은 1박2일의 짧음이 아쉽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들어설 때 낯선 체험에 대한 조바심이 뒤돌아올 때 홀가분해짐은 ‘틀에 넣지 않고, 약간의 자율을 배려해주신 교육팀장님의 혜안이었을까?’
하냥 걷다보니, 일상의 발걸음보다 훨씬 느려졌음도 수행의 산물일까? (억지춘양 ^^-)
찾아올 때 ‘휴식을 겸한 자아발견’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이뤘지만, 시간적인 이유로 靜적이면서 깊이가 있는“참선수행”을 충분히 하지 못함이 못내 안타깝다.
산사는 아주 느린 걸음이다.
그 느림의 시간은‘실행자’의 것이다.‘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산사의 시간은 ‘자아발견’이라는 긴장의 연속일게다.
산사체험은 고요함에 감춰진, 느림과 긴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아닐까?
2015년 새 봄을 기다리는 김 주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