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이라는 용어가 모세의 율법에서 교회 현장으로 내려온 것은 한국 교회의 경우 최근의 일이다. 이는 특히 국내에서 해외로 과송했던 선교사들이 7년째 되는 해에 잠시 귀국하는 일을 통하여 보편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낯선 땅에서 선교사역을 하던 선교사들이, 소위 안식년을 맞아 돌아오는 것을 이제는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의 지역 목회자의 경우는 아직도 안식년이라는 제도가 낯설은 것 같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각박한 환경과 역사정 배경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안식년이라든지 휴가같은 것이 몸에 익지 않은 듯하다. 정작 우리 목회자들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아 왔었다. 교회가 걱정되고 해야 할 일이 태산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휴가를 즐기는 것이 몸에 배어있지 않아서 게으르다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왜 우리의 습관은 바이올린을 켤 줄만 알고 다음 연주를 위해 줄을 풀어 놓는 것은 마다하는 것일까? 바이올린의 줄은 다음의 중요한 연주회를 위해 느슨하게 풀어 놓지 않으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그나마 안식년 제도가 지켜지는 경우는 선교사들에게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안식년이 온전한 휴식일 수는 없다. 각종 선교 보고회와 다음 사역의 준비등으로 자칫하면 안식년이 ‘안 쉴년’이 되고 만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나 농어촌 교회를 막론하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안식년이 적용되기에는 교회의 성숙이 더욱 요청된다는 점에서 아직은 요원하다고 볼 수도 있다.
도시의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분주함 때문에, 농어촌 교회는 농어촌 교회대로 사정이 여의치 못함으로 교역자의 안식년 제도가 잊혀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안식년을 맞이 했다고 온전히 1년을 쉬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분명히 유익한 준비의 시간인 것이다.
목회자에게 안식년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는, 첫째 영적 신선함의 회복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피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피곤할 수 있다. 갈멜산상에서 장렬한 기도의 대결을 벌이고 혼쾌한 승리를 누린 엘리야를 보자. 잠시후 그는 기진하여 광야 깊숙한 곳의 로뎀 나무 그늘에 누워 있었다. 그에게 하나님은 떡과 마실물을 기꺼이 제공해 주셨다.
목양지는 어김없는 영적 전쟁터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적대 세력과의 투쟁, 교회 안에서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오해와 긴장과 배척과 숱한 상처들 - 그래서, 목회자는 거의 다 방전되어버린 밧데리와 같이 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소모되기 전에 재충전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창조적 안식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는, 육체적인 건강의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식적 과로는 대개 육체적 허약을 동반한다. 또는 신체 특정 부위의 발병 원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새벽기도회라는 멍에(?)를 지고 평생을 달려간다.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하고, 또 새벽잠이 많은 한 동료 목사는 말하기를 “새벽기도회만 없어도 목회 해 볼만 할텐데”하고 기회만 있으면 탄식한다.
사실 경건의 시간인 새벽기도가 꼭 새벽예배가 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어쨌든 현실적으로 새벽기도회를 마다하고 무사히 배겨내는 목사는 없는 듯하다.
목회자도 사람인고로 육체적인 관리와 건강회복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안식년 기간을 통하여 규칙적인 생활과 휴식, 운동과 레저 등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면 다음에 다시 건강한 몸으로 목양지로 뛰어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은 안식년을 마치고 목양지에 돌아온 한 목회자의 고백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안식년의 축복스러움은 돌이켜 볼수록 더욱 큰 것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가족들과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걸어서 다닐 수 없는 미국문화는 7년된 고물차 속에 우리 가속 네 사람을 가두어 가족단위의 교제를 하도록 해 주었다. 어디를 가도 가족단위가 함께 움직여야 했다. 늘 가족이 같은 공간에 앉아 같이 느끼고 같이 생각하고 삶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는 귀한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척 스미스, 스윈돌, 맥도날드, 마이클 그린, 골드 스미스 등 좋은 분들을 직접 뵐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 직접 교제를 나누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축복 이었다. 옷깃을 여밀 만한 스승을 찾기 힘든 때 그분들을 뵙게 된 것은 지금도 큰 기쁨이다.
또 하나는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각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살피고 세상의 다양함에 감탄을 보냈던 귀한 경험이었다. 특히 미국에선 여러 교파 각양각색의 회중들을 여행시 꼭 염두에 두고 교회 순방을 하였다. 웅장한 대교회 뿐만 아니라 30여명 모이는 시골 교회, 예배 자체가 열광적인 흑인 교회 등등 여러 가지 강조되는 바는 달랐지만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였기에 나에게는 교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일하는 것만이 주님을 향한 충성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휴식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가르쳐 준 일년이었다".
안식년은 배부른 자들의 신선놀음이 아니라 지난 사역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보다 나은 사역을 위해 재충전을 하기 원하는 신실한 종들의 투자이다. 안식년은 인생의 한계 있는 체질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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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설교를 할 때 우리 가슴의 뜨거움에서부터 나오는 메시지를, 즉 우리의 삶 속에서부터 막 넘쳐 흐르는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우리가 바짝 말라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목회 생활에 자칫 잘못하여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우리 영혼이 말라 버립니다.
그래서 목사는 오전 중에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활동적인 목사는 대체로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제가 부목사 한 분은 모셔와서 훈련을 시키는 동안에 제가 그분께 요구한 것이 오전 12시까지는 교회에 나오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에서 공부한 것을 돌아다니면서 다 까먹고 비쩍 말라서는 목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목회자는 평생 공부해야 됩니다. 12시까지는 공부하고 나오지 말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안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11시에 내가 전화 걸면 나와 있고, 또 10시에 전화를 걸어도 나와 있곤 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 불러서 12시까지 나오지 말라고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