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의 기본 질문은 간단하다. '춘향전은 왜 그렇게 TV드라마로, 영화로, 연극으로 계속해서 그리고 자주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답 또한 명쾌하다. 그것은 춘향전이 지닌 연극적(劇的) 성격 때문이다.
위와 같은 전제로 하여 이 글은 시작되었다. 다만 소설에서 극적(劇的) 특성을 찾아내려는
무리를, 의식한 채 자행하고 있다는 점 · 춘향전과 춘향가라는 소설과 판소리의 개념을 확
실히 하지 않고 뭉뜽그려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는 점 · 논의의 잣대가 될 희곡 일반의 틀
이 서양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등이 비판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
다.
(1) <춘향전> - 서사적 골격의 연극성
<춘향전>은 연극과 영화, 방송극 등 극예술로 왜 그렇게 많이 각색되었을까? 왜 후대의 사
람들은 많은 고소설과 판소리 중 하필 춘향전을 골라 각색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춘향전이
지닌 서사적 골격이 연극으로 각색하기 좋은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춘향전이지만 분석을 위해 그 서사적 뼈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가) 남원고을에 춘향이란 기생의 딸이 있었다.
(나)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단오날 광한루에 놀러 나왔다가 춘향을 보고 반한다.
(다) 이몽룡이 밤에 춘향의 집을 찾아가 춘향모 월매의 허락 하에 백년 가약을 맺는다.
(라) 얼마 후 이몽룡의 아버지가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부모의 반대로 춘향을 데려가
지 못하고 춘향과 몽룡은 후약(後約)을 맺고 슬프게 이별한다.
(마) 신임 남원부사 변학도가 도임하여 기생 점고 끝에 춘향을 불러오라 명한다.
(바) 사또에게 불려온 춘향은 사도의 수청요구를 거절하다, 매를 맞고 옥에 갖힌다.
(사) 이몽룡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제수받고 전라도로 향한다.
(아) 남원에 오는 도중에 암행어사 이몽룡은 사도의 실정(失政)과 춘향의 고초 소식을
듣고, 춘향의 처형이 임박했음을 알게 된다.
(차) 어사임을 속이고 춘향의 집을 찾은 이몽룡은 낙심하는 월매와 함께 옥에 갖힌 춘향이
를 만난다.
(카) 춘향을 처형하기로 한 변학도의 생일잔치날, 이몽룡은 암행어사 출도를 하여 춘향을 구
한다.
이러한 서사적 골격은 다시 크게 세도막으로 나뉠 수 있다. 흔히 춘향전의 골격을 춘향전
을 한시로 번역한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의 언급을 빌어 '삼건기사(三件奇事)'로 요약하
는 것이 그것이다.
<광한루악부> '서' 에서는 '춘향가를 듣는 사람은 세가지의 기이한 일을 알게 되는데, 처음
에 이도령과 더불어 유완의 만남(한나라 때의 유신과 완주가 천태산에서 만 것을 일컬음)을
이룬 것이 하나의 기이한 일이요, 중간에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옥에 갖히고 매를 맞고 어
찌될 바를 알 수 없으면서도 백주의 절개(『시경』백주편에 나오는 미망인의 절개를 일컬
음)를 지킨 것이 또 하나의 기이한 일이요, 마침내 짚자리와 돌 위에서 고생한 끝에 이도령
이 어사가 되어 남으로 내려와 악창의 거울 다시 합하듯 (진나라 악창이 이별때에 거울을
나눠 가졌다가 다시 만나 합친 것을 일컬음) 다시 만난 것 역시 기이한 일이다.' 라고 하여
<춘향전>의 골격을 세도막으로 요약하였다. 즉 (가)에서 (라)까지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과
헤어짐, (마)에서 (바)까지 신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 고초를 겪으며 절개를 지킴,
(사)에서 (카)까지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춘향을 구하고 두 인물이 재결합함, 이 세 사건
이 <춘향전> 사건의 골격이다.
이렇게 사건의 뼈대를 간추려 놓고 보면 <춘향전>은 인물과 인물의 대립이 뚜렷하게 격렬
하며, 주 갈등이 인물간의 대립으로 확연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
다. 바로 이 점이 <춘향전>이 연극으로 쉽게 각색될 수 있는 요건이다. 왜냐하면 극의 핵심
은 인물 간의 대립·갈등이기 때문이다.
이 세 도막의 사건을 편의적으로 초반부, 중반부, 종반부라 칭하여 설명해 보면, 초반부에
서는 춘향과 이도령이 만나고 헤어지는 사건을 통해 둘의 갈등이 뚜렷하다. 둘은 사랑하고
결합함으로써 갈등은 한때 해결되는 듯 보이지만, 곧 이어 이도령의 아버지가 중앙의 요직
으로 영전하고 이에 춘향을 서울로 데리고 갈 수 없게 되면서 둘 사이에 잠재된 갈등은 가
시화된다. 중반부는 신관 사또 변학도의 수청 요구와 이를 거절하는 춘향 사이에 격렬한 대
립으로 일관한다. 종반부는 생일 잔치 끝에 춘향을 처형하려는 변학도와 암행어사 출도로
이를 저지하고 춘향을 구해내는 이도령과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반부) 춘향 - 이몽룡
(중반부) 춘향 - 변학도
(종반부) 춘향·이몽룡 - 변학도
이 세 대립은 모두 춘향이라는 주인공과, 그의 온전한 사랑의 성취를 가로막는 인물간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갈등이다.
초반부의 이몽룡이 온전한 사랑의 성취를 가로막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
을 수 있다. 그는 주인공 춘향의 사랑의 상대자이며, 사건의 발생은 정작 이몽룡이 춘향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반부의 이몽룡은 사랑의 성취에 적
극적인 인물이면서도, 정작 춘향과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인 제약을 제거할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현실적 제약을 스스로 몸으로 구현하는 인물이다. 춘
향을 원하는 이몽룡의 요구에 대해 춘향 모녀는 한 번 사랑한 후 버림받을 것을 염려하여
꺼리고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몽룡은 백년가약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 춘
향 모녀가 우려하는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그다
지 책임질 수 없는 백년가약을 호언장담하며 합방(合房)이라는 일차적인 사랑의 성취를 강
행한다. 이몽룡은 부모의 허락이 없으므로 춘향과 육례를 갖추어 결혼할 수 없음을 알고 있
었고, 춘향이 천민인 기생의 딸이므로 춘향을 부모 허락 하에 정식로 맞아들일 수 없을 것
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즉 이몽룡은 춘향과의 합방이 합법적 정실 부인으로서 맞아들
이는 것이 아니라, 기생집 출입이나 '작첩(作妾)'같은 것이라는 행위임을 알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결합은 아무리 백년가약을 맹세한다 하더라도 그 이행에 불안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결국, 이도령은 온전한 사랑의 성취를 가로막는 신분적 장애와 그 관행을 극복
하거나 제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만화본 <춘향전>의 대본에서 춘향이 만날 때부터
버림 받은 것을 염려하자, 이몽룡은 이렇게 호언장담한다.
만일 불 ?여 께셔 경직으로 올 가실 터이면 너를 설마 리고 갈쏘냐. 우리 부인은 샥갓가
마의 뫼실지라도 너는 경 의 달여갈 거시니 죠금도 념녀말 . 양반이 일구이언은 아니리니 밧비 허
락?여라.
이 말은 상식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몽룡은 그러한 미래의 실
현가능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채 일단 춘향을 수중에 넣을 생각만 하는 것이다.
물론 완판본인 <열녀춘향수절가>나 20세기 이후 판소리들에서는, 춘향이 일차 거절하자 이
몽룡은 춘향을 기생으로 여겨 부르는게 아니라 춘향의 글솜씨를 보려고 한다고 밝히고 춘향
의 바른 행실에 대해 감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몽룡의 행위는, 기생의 딸과 양반 자제
의 부모의 허락을 받은 사랑이므로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양반이 능히 할 수 잇는 기
생방 출입이나 작첩의 행위임에 분명하다. 춘향과는 다른 형태의 생각을 가지고 사랑을 하
면서 그로 인해 춘향과의 잠재된 갈등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결국 이도령의 맹세는 아버지의 한양의 중앙요직 영전으로 일시적으로 깨어진다. 이 대목
에서도 이도령은 미장가의 글방 도령에게 작첩이 왠말이냐는 부모의 호령 한마디에 다른 어
떤 방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춘향과의 이별(일시적 이별이라고 밝히기는 하지만)을 선언한
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전까지의 이도령의 사랑은 춘향의 바람과는 달리 일시적인
사랑일 수 있음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 장면에서는 부모의 분부를 전하는 방자만이 등
장할 뿐, 이도령을 서울로 끌어가는 다른 인물이 등장하지 않은 채 이도령은 스스로 떠나간
다. 이들은 후약을 두기는 하지만 몸이 떨어짐으로써 이들의 사랑은 큰 상처를 입게 되며,
결국 사랑을 깨는 인물은 이도령 자신이 되는 것이다.
중반부에 이르면 이제 춘향의 온전한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등장하게 된
다. 신임 남원 부사인 변학도이다. 기생의 딸에게 고을 수령이 수청을 요구하는 것은 당시의
관행으로서 그다지 어긋난 것은 아니다. 물론 춘향이 기생이었다면 변학도의 요구는 매우
합법적인 것이며, 춘향이 기생의 딸일 뿐 기적에 올라있지 않았다면 그 도덕성은 조금 훼손
될 것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관행적으로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일이기는 한 것이다.
변학도의 수청요구가 타당하건 아니건 간에, 이도령과의 백년가약을 지키면서 온전한 사랑
의 성취를 바라고 있는 춘향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훼절시키고자 한다. 전반부의 이도령은
기생 작첩의 일반적 관행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으며 부모의 명령에 의해 이별을 감
행하기는 하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춘향과의 백년가약을 맹세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변학
도는 타인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 춘향의 의지와 욕구를
꺽으려는 인물이다. 이 중반부에서 이도령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더욱 강력한 적대자가 등
장함으로써, 종반부 이도령이 춘향의 협조자 내지는 구원자로 등장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와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종반부에서 이도령은 춘향의 편이 되어 변학도와 대립하여
그를 물리침으로써 춘향의 사랑의 성취를 가능하게 해 준다.
판소리계 소설 중 이렇게 인물간의 갈등이 뚜렷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여 핵심적 갈등이
튼튼하게 자리잡은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춘향전>은 주제를 담지(擔持)하는 핵심 인물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작품 전반에 걸쳐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다. 극의 본질이 인물들 간의
대립을 매개자(해설자) 없이 직접보여주는 것임을 생각하면, <춘향전>의 이러한 서사적 골
격은 극으로 각색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된다. 초반부에서는 줄곧 춘향과 이몽룡이 등
장해 있으며, 중반부에서는 춘향과 변학도가, 후반부에서는 춘향과 이몽룡과 변학도가 계속
등장하여 서로 갈등한다.
(2) 그 밖의 논의들
춘향전이 지니고 있는 연극성에서 위에서 말한 핵심적인 성격을 제외한 나머지를 여기에서
펴 보이고자 한다.
극적효과를 지니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준거로
(ㄱ)극적 대립
(ㄴ)보여야만 할 장면
(ㄷ)연극의 조건성
을 들 수있다.
여기에서 (ㄱ)극적 대립에 해당하는 내용은 위의 서사적 골격의 연극성에서 밝힌 바 있다.
다음으로 (ㄴ)보여야만 할 장면(윌리암 아처 "보여줘야 할 장면이란, 관객이 다소라도 의식하고 틀림없이 보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하고 기대하고 있는 장면이며, 그것이 없으면 관개이 怒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다")이 있는데 이는 변학도의 생일날 벌어지는 이도령과 변학
도의 팽팽한 대립과 이에 이어지는 어사출두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품을 접하는
누구나가 원하던 장면이며 기대하던 장면이다. 말 그대로 보여야만 하는 장면인 것이다. (이
도령의 어사출두 장면은 이 외에도 감추어둔 진실의 공개라는 희곡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
다.)
세 번째 (ㄷ)연극적 조건의 문제이다. 주갈등과 사건들이 대체로 현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도, 각색의 주요한 요건에 포함된다. 심청전의 용궁장면이나 흥부전의 제비나라 장면·혹은
보은 박이 터지는 비현실적인 사건등은 이들 판소리계 소설의 극화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
다. 춘향전은 적어도 우화적이라고 할 만큼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 없다. 비사
실적인 인물, 시공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춘향전은 사건의 진행이 중후반부의 위기와 반전을 거쳐 대단원에 이르는 구성을 지
니고 있다는점, 반전에서 대단원에 이르는 대목에서 어사 이몽룡의 암행이 이루어져 다른
인물들을 속임으로써 강한 서스펜스를 지니고 있다는 점 등도 극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춘향전이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임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정리하며
지금까지 춘향전의 극적 성격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희곡 읽기를 즐겨 여러 편의 희곡을 특별히 여김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국문학 작품은 존
재하지 않았다.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희곡에 대한 자료를 대할 때마다 자주
접하게 되는 어구는 '극전통의 부재'라는 말이었다. 우리의 고전문학에서 지금의 극개념을
지닌 작품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에게도 전통 극이 있다. 가면극에서 인물들은 집단성과 개인성, 유형성과 개별성을 동
시에 지니면서 그 특성들이 다분히 분절적으로 드러나 있고, 장면이 엮어져가는 원리 역시
봉합적이고 분절적이다. 근대 이후 서구 예술에서처럼 필연적 계기를 통한 인과적 변화와
그 과정에서이 심리적 묘사의 방법으로 인물의 입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
이 지닌, 혹은 그러한 유형의 인간이 지닌 여러 측면과 리얼리스틱한 특성들을 불연속적이
며 분절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입체성을 드러낸다.
춘향전이 이본의 다양함, 내용의 불합리성 불통일성으로 지니고 있는 삽화적 성격과 가면
극의 저와 같은 성격은 맥이 닿아 있다. 어쩌면 여기에 해답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극화(劇化)에 있어 사각무대의 특성상 서양극의 일관성과 개연성을 향한 정리를 무시할 수는 없
으나 분절성·불통일성 등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나름의 방안을 궁구해 볼 수 있지 않을
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애초에 이 논의를 시작한 이유는 '극전통의 부재'라는 보기싫은
어구에 반기를 들어보이려는 뜻이었다. 그 논의가 판소리계 소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안
타깝기는 하지만 춘향전 속에 들어있는 단단한 구조의 극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나
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왜 극으로서 <춘향전>이 그토록 사랑받는 지도 충분
히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