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음직하다. 조상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왕족이나 이름 난 양반 댁 종손이 아닌 다음에야 역사 시간에 들은 몇 가지 이야기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전부일 것이다. 한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그 나라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 행동양식, 생활, 애환 등 이 모든 것을 통해 그 나라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한다. 왕조사⋅정치사에 치중하던 기존의 서술방식을 지양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주제로 조선시대 생활상의 구석구석을 사료분석을 통해 재구성하였다. 조선시대를 다룬 두 권의 책 중 경제⋅사회사를 다룬 1편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 조선시대 인구조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영조 때인 1750년경 600만 정도로 기록되 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3년마다 호구자료가 만들어졌 고, 조선인구가 처음 일천만 명을 돌파한 시기는 중종 때인 16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이때부터 주택난과 식량난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있었다. 물론 흔하지 않은 경우였고, 여자 쪽이 일방적으로 불리 했지만 공식적으로 이혼소송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 예컨대, 여자가 부정을 저지른 경우 등에 이혼을 요청해서 이루어진 경우가 조선시대 형법서인 추관지(秋官志)에 나와 있다.
조선조는 예치를 표방했지만 도난⋅상해사건이 적지 않게 일어났고, 세종 재위기간엔 60여건의 간통사건이 발생하여 관련자들이 극형을 받았다. 서민의 경우에는 양반보다 이 혼이 쉬워 결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서로 말하고 이혼에 합의했다. 칼로 웃옷자락을 베어 나누어가짐으로써 이혼의 표기로 삼기도 했다. ‘칠거지악’이라는 말이 있다. 처가 불효나 음행 등 일곱 가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쫓아내도록 한 유료의 관습이다. 이 관 습대로라면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여성들은 매일 이혼의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다. 조선 시대엔 국가가 제도적으로 이혼을 막았기 때문에 서민을 제외하곤 실제 이혼한 사례가 많지 않다. 이는 당시 팽배했던 ‘정절 이데올로기’로 설명된다.
⋅ 족보는 조선말기, 대략 1700~1900년 사이에 엄청나게 위조⋅변조되었다. 박지원의 ‘양 반전’의 배경인 1780년경에도 족보를 조작한 내용이 나오는 것처럼 족보조작이 공공연 히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중 김해 김氏 다음으로 전주 이氏, 밀 양 박氏, 경주 김氏 등이 많은데 특히 전주 이氏는 왕족이었던 만큼 가짜가 상당했을 것 으로 본다.
⋅ 향약은 지방의 선비들 간에 조직된 일종의 친목단체 친목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지 방은 목사, 부사, 군수, 현령, 현감 등이 통치했지만 실제 행정은 해당 지역민의 대표자 격인 좌수, 별감 등의 도움을 받아서 통치하였다. 따라서 향약이 지방자치의 성격을 가 지고 있다고 하겠다.
⋅ 서당은 오늘날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데 공식교육기관은 아니었다. 향교는 국립 교육기 관으로 교수라는 관직을 두었다. 서원은 사설교육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교육기능과 배향된 선현에 대한 제사기능을 보통 겸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지방양반세력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편, 당쟁의 소굴이 되는 등 역기능이 나타나 영조 때 1차로 남설 된 서원을 정리하고, 흥선대원군에 의해 대대적으로 폐쇄되었다.
⋅ 신분사회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백정(白丁)은 백의장정(白衣壯丁)의 준말로서 조선 초 기까지 보통의 서민을 지칭했는데 조선후기로 가며 도살업자를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신분사회의 피해자는 백정 뿐 만 아니라 노비와 기생도 그러하였다.
⋅ 18세기 쌀 1섬의 평균 가격은 5냥으로 오늘날의 10만 원정도가 된다. 1냥의 구매력은 현재 화폐로 2만 원정도 되는 셈이다. 지역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콩 1섬은 2.5냥, 삼베 1필은 2냥에 거래되었다.
⋅ 화장실이 별로도 없었던 프랑스궁전과는 달리 경복궁에는 28군데의 뒷간이 있었다. 단 지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고위직들은 뒷간에 가지 않고 이동식 변기(梅雨틀)를 사용 했으며 양반주택에서는 남성과 여성전용의 화장실을 두었다.
⋅ 오늘날 흡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흡연의 기록은 조선에도 남아있다. 조선후 기에는 흡연이 성행하였다. 「하멜표류기」에 ‘4,5세 때 이미 담배를 배우기 시작해 담 배 피우지 않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 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 는 담뱃대의 길이는 장죽은 양반층이, 짧은 곰방대는 일반 평민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장죽의 경우 혼자 담배통에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 하인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에 따르면 평민남자들은 16~60세 까지 군역의 의무를 수 행해야 했다. 2개월~1년정도를 교대로 근무한 옛날 군인들에게는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으며, 무기나 군복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느낀점
이 책은 그 동안의 역사전문서적들이 다루지 않았던 구체적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이 책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이 책의 필진은 모두 한국역사연구회 회원들로, 얘기들을 모두 정확한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엮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쓴 글이라면 자칫 문장이 어려워지기 쉬우나 이 책의 저자들은 구어체로, 대중의 교양에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를 읽듯 평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은 역사의 흐름에도 충실하다. 역사적 주요 사건들을 시대 순으로 구성해, 독자들이 조선사의 맥락을 짚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각 사건들이 전후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 왜 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체계 있게 설명한다. ‘물 흐르듯’ 역사의 흐름이 이해될 수 있는 책이다. 살아있는 역사이기에 우선 재미있고, 역사 공부가 결코 어렵거나 지루한 것이 아님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