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舌禍)-치명적 말실수’를 피하려면>
[1] 진시황을 도와 전국 시대를 통일한 이사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진나라 왕이 유세객들을 몰아내려고 할 때 상소를 올려 진나라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다. 그때 올린 상소의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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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으며,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도다
왕들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았기에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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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이사의 표현법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전에 먼저 세상의 원리, 사물의 이치를 설명한다. 태산이 높을 수 있는 것은 흙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줄기도 마다치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진 왕이 되려면 백성을 물리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직설법을 사용하지 않고 원리와 이치에 비유를 담아 알려주고 있다.
[3] 직설법을 사용하지 않고 원리와 이치에 비유를 담아 에둘러 알려준다. 왕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넌지시(indirectly) 말하고 있다. 우리도 무엇인가를 전달할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확연히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을 알고 부드럽고 매력적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번엔 ‘다다익선’(多多益善)과 관련된 얘기를 들어보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란 뜻이다.
[4] 이 고사는 한신과 관계가 있다. 한신과 한나라의 왕이었던 유방이 담소를 나누던 중 유방이 이렇게 물었다. “장군은 몇 명의 군사를 이끌 때 가장 잘 지휘할 수 있소?” 그러자 한신은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한다. “다다익선이옵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얘기다. 유방 앞에서 자신감에 가득 찬 한신 장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유방이 한신에게 묻는다. “그럼 나는 몇 명의 군사를 이끌 수 있겠소?”
[5] 한신은 “폐하께서는 10만 명 정도가 적당할 듯 하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쯤 되면 유방의 입장에선 눈살이 찌푸려질 만하지 않았겠나. 사실 유방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말이었다. 유방이 다시 한신에게 묻는다. “그럼 그대는 어째서 내 밑에 와서 장군 노릇을 하고 있는 거요?” 그제야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한신이 이렇게 둘러댄다. “폐하께서는 저 같은 장군 수백 수천을 이끌 수 있는 분이십니다.
[6] 또한 폐하의 능력은 하늘이 내리신 것으로 소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차!’ 해봤자 이미 때는 늦으리. 어쨌든 이 대답을 들은 유방이 마음을 좀 풀긴 했으나 두 사람 사이에 이전과 같지 않은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늘 같은 권력을 가진 왕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한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어야 하건만 왕 앞에 다 드러내고 말았으니 신하 한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7] 결국 한나라가 초나라를 물리친 후 한신 역시 역모죄를 쓰고 죽게 된다. 실제로 한신이 반란을 꾀했다는 징후가 포착되기도 했다. 어쨌든 한신은 2인자로서의 자신의 화려한 삶을, 말 한 마디 실수함으로 인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주인공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군사전략에는 대가였지만 자기 삶을 겸손하게 운영하는 전략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운영의 묘미’라고 했던가? 왜 대부분의 영웅들은 이를 갖추지 못해서 성웅이 되질 못하는지?
[8] 국회의원이나 연예인 같이 유명한 이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의 경솔하고 추한 말들이 구설수에 올라 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빈축을 사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함을 본다. 목회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라.’ 중요한 자리에서의 실언은 역사를 바꿀 만큼 치명적이고 결정적이다.
[9]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붕괴는 동독 정부 대변인의 사소한 말실수로부터 시작됐음을 아는가? 일본에서 다섯 차례나 총리를 지낸 요시다 총리가 물러나야 했던 것도, 2008년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까지 모두 민주당에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도, 2012년 올림픽이 파리가 아니라 런던에서 치러진 것도 모두 말실수 때문이었다.《결정적 말실수》의 저자 박진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실수는 한 번 내뱉으면 '자신에게 쏜 되돌릴 수 없는 화살’과 같다.”
[10] “말을 잘하는 것보다 말실수를 안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마라”는 격언은 사실이다. 평생을 묵상하며 살아온 이해인 수녀는 ‘날마다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해 준 신에게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누구도 실언하지 않고 살기는 어렵다.
[11] 다만 학습을 통해 이를 줄이고 깊이 공감하는 대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사려 깊지 못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내뱉은 직설적인 내용의 말들은 남들도 쏘지만 돌고 돌아와서 나까지도 쏘는 화살이 되고 만다. 따라서 유명세를 타거나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넌지시’ 말하고 ‘에둘러’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Practice makes perfect.’ 오랜 연습과 훈련이 답이다. 오늘 나부터 그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