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드어-- 고대 페르시아제국에서 고대 페르시아어와 엘람어 다음에 중요한 언어는 아카드어였다. 아카드어는 아랍어, 히브리어, 시리아어와 유전발생학적으로 셈족어의 일원이다. 기원전 2334년 사르곤이 메소포타미아 중부에 아카드왕국을 세울 때부터 기원후 75년까지 거의 2500년 동안 사용된 문자이다. 특히 아카드어는 기원전 1800년부터 기원전 1200년까지 오리엔트 전역의 국제공용어였다. 고대 이집트, 히타이트, 시로-팔레스티나, 그리고 엘람지방 서기관들은 아카드어를 지금의 영어처럼 숙지해야만 했다. 서아시아의 서기관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아카드어로 쓰인 문헌들이 "경전화"되었는데,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문헌들이[길가메쉬 서사시],[에누마 엘리쉬], 그리고[아트라 하시스]같은 작품들이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아카드어를 그들의 왕조비문에 새긴 이유는 바로 아카드어가 중세시대 라틴어처럼 학문의 용어이자 이전 정복자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모든 작품들은 아카드어로 정리되어 아카드어를 숙지하지 않고는 학문을 할 수 없었다.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등장하기 이전, 오리엔트 세계를 정복한 제국이었다. 그런 제국의 계승자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는 셈이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아카드문자를 소통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이집트어-- 고대 페르시아 비문 중에 종종 이집트 성각문자가 등장한다. 다리우스왕의 수에즈운하 건설을 기념하는 비문은, 전통적인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아카드어 뿐만아니라 이집트 성각문자로도 그 내용을 새겼다. 이집트 성각문자는 다른 세가지 문자와는 달리 전시를 위한것이 아니었다. 다리우스 이름이 수사나 페르세폴리스에서 파라오가 자신의 이름을 카르투쉬에 새긴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카르투쉬에 새기기를 원했다. 이런 다리우스의 열망은 그의 아들 캠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아람어-- 아케메네스 왕조비문에는 아람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람어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국제공용어로 채택되어 자신들이 정복한 23개 나라에 외교문서나 칙령을 내릴때 사용하였다. 아람어는 히브리어, 페니키아어 등과 함께 셈족어에 속한다. 기원전 95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아람어는 처음부터 상인들의 언어였다. 다마스커스는 대상인들의 집결지로 모든 민족들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와 문자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아람어였다.
아람어는 22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알파벳체계의 언어이기에 성각문자나 쐐기문자와는 달리 배우기 쉽고 읽기 쉬운 경제적인 문자체계였다. 신바빌로니아와 신앗시리아제국 등의 국제공용어인 아카드어가 아람어로 대체되었다.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등극한 페르시아 제국은 이집트, 아나톨리아, 중앙아시아까지 전역에서 아람어를 제국의 공용어로 채택하였다. 이 아람어를 흔히 '공식아람어'혹은 '제국아람어(기원전6~4)'라 부른다.
구약성서의[에즈라서]에 등장하는 아람어도 바로 이 제국의 아람어이다. 다리우스의 등극 100년을 기념하여 아람어 번역본이 페르시아 제국의 여러 정복국가에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