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TV화면으로 뉴스를 보긴 했다. 그런데 무엇을 보았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건망증인가? 최근 독일에서 실시된 조사결과에 의하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TV를 본 다음날에는 전날 본 것들을 거의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두뇌의 생물학적 적응현상이라니 놀랍다. 정보와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그것들을 모조리 입력 수용하려면 아마 두뇌가 수십 개 있어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현명하게도 우리는 그것들을 바라보긴 해도, 흡수하지 않는다. 따라서 깊이 느끼지 않고 오래 사고하지 않는다. 그저 구경꾼이다. 어쩌면 사진이나 TV화면이 많은 사람들을 관음증 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예전부터 그림으로도 많이 표현되어 왔다. 고통을 겪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인간의 욕망은 나체 사진을 보려는 인간의 욕망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바타이유는 중국의 한 죄수가 백 조각으로 찢겨져 죽는 형벌을 당하는 사진을 평생 자신의 책상 속에 간직하며 자주 보았다고 한다. 그 사진을 보며 극심한 인간의 고통을 상상했다니, 감수성을 날카롭게 벼리는 것도 좋으나 참 엽기적인 취향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타인의 고통도 한낱 이미지일 뿐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대량 복제되어 실시간으로 배달되는 영상시대에 사진은 대중들의 관심과 이목을 쉽게 집중시킬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능력을 점점 빼앗아간다. '연민하면 연민할수록, 연민을 사그라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이미지가 가진 맹점인 것이다. 강력한 이미지의 위력에 실재(實在)는 점점 희미해지고 급기야 변질되거나 사라져 버린다. 이미지에 길들여져 인간 본래의 감수성이나 심성조차 잃어가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조차도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텔레비젼이 보여주는 충격적인 전장의 장면들을 안방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전율적인 장면도 자주 보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어느 새 사람들 속엔 충격에 대한 항체가 생겨버린다. 그래서 전쟁마저도 '스펙터클로 소비'된다. 타인의 고통은 그야말로 사진이나 화면 속의 고통일 뿐. 인간의 감수성은 이미지의 지속적인 세례로 인해 결국 하얗게 탈색되고 만다.
그렇지만 사진 한 장이 역사적 진실을 증언하기도 한다. 또한 사진은 '재현'될 수도 있고 '조작'될 수 있다. 1950년대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르베로 두아노의 사진 '시청 앞에서의 입맞춤'도, 미국 해병대가 이오 섬에서 일본군을 내쫓고 성조기를 꽂는 장면도 연출이었음이 밝혀져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68년 사이공에서 베트콩으로 보이는 사람을 총살하는 장면 또한 연출이라고 한다. 그래도 수잔 손택은 사진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사진의 한계를 알고, 사진 이미지가 제공하는 용도를 되짚어보면서, 전쟁의 본성과 인간이 가진 연민의 한계까지 진실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주로 사진에 대한 이야기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한 현대인의 무감각을 지적하는 글이다. 사진 이미지를 주로 다루었지만 결국 전쟁을 다룬 책이다.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 둬야 한다'고 저자는 호소한다. 문제의 본질이나 실재를 보지 못하고 나약한 감상에만 젖어 있는 현대인의 무딘 감각을 날카롭게 찌르는 말이다.
첫댓글 이렇게 무덤덤, 무감각해지다 보면 앞으론 엽기란 말도 사라질 지 모르겠습니다. 자극에도 내성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맞아요..그렇게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어요....수전손택의 글은 참... 길고 복잡하면서도 한가지를 향해 나아가는 듯 해요..인간에 대한 사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