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과정,, 불씨 발화는
그리스도인과 평민이 주도했다.
평민이 통일 준비
평민이 민간교류
평민이 친인척 선물전달
평민이 명절선물 전달
통일준비 통일완숙 평민이 주도하자
독일 통일 과정을 한국선교에 적용하자
,,독일 통일이 쉽게 이뤄진 것은
독일 통일은 오랜 시간의 준비와 과정이 축적돼 나온 결과물”이다.
▲동서독 간 기독교 기도회 등 인적·물적 교류가 두텁게 축적돼 온 결과로 통일이 완숙되었다.
▲통일 전에 서독 사람에게 동독은 비용만 지불하면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고, “서독사람들이 동독에 있는 가족, 친척들에게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는 일상, 서독 교회가 동독의 자매 교회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상, 이것이 서독과 동독의 통일 전 일상이었다”라는 점에서 사전 교류와 준비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또 “동독 정부는 동독에서 탈출하는 국민에게 총을 쏘았지만, 서독 정부는 동독과 교류하고자 하는 국민과 교회와 기업, 정당과 지방자치단체에 별다른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이 시대 현실은 어떠힌가? “대한민국의 여권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를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막강한' 여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여행하기를 원해도 정부의 승인 없이는 갈 수 없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북한'이다”
▲“통일 전의 서독은 개인과 기업이, 정당과 지방자치단체가 동독을 방문하고,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 서독 사람들의 자유로운 출입은 동독 사람들의 민간 차원의 경계심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 정부 차원으로는 북한과 교류·협력이 어려울 수 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을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맡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동·서독 간 통일의 기폭제로 작용했던 민간교류 협력 중 하나로 동독에서 열린 성 니콜라이 교회 기도회다. 이 기도회는 서독 개신교회를 중심으로 크리스티안 휘러 목사와 성도들이 1981년 9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개최한 평화 기도회에서 시작해 그 기도의 불이 확산되었다.
,,1989년 3월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의 헝가리의 자유화 승인에 따라 동유럽의 자유화 물결이 인 가운데, 동독 주민들도 여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1989년 3월 13일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앞에 독일 주민 300명이 ‘우리는 나가고 싶다(Wir wollen raus)’고 외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동독 정부는 데모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다수를 체포했지만, 이 데모는 동독 주민들의 여행 자유화를 향한 전국적 데모 행진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1989년 9월 11일 헝가리 정부는 오스트리아 국경을 전면 개방하면서 이날 하루 동안 동독주민 3천명이 개방된 국경을 통과해 서독으로 향했다”며 “9월 한 달 간 서독으로 넘어온 동독 주민은 약 2만 5천 명에 달했다.
“당시 서독 정부의 침착한 대응을 잊을 수 없다,.
“서독 정부는 밀려 들어오는 동독 주민들을 그들의 희망에 따라 독일 연방의 각 주에 보냈다”
“각 주 정부는 각 기초자치단체의 협조를 받아 동독 주민들이 자연스레 서독 사회로 편입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3백명으로 시작된 동독 주민들의 데모 행렬은 동독 전역으로 확산됐고, 1989년 11월 4일 베를린 데모는 50만명을 추산될 정도였다. “그리고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는 여행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에 날짜가 정확히 명기돼 있지 않아, 기자의 ‘언제부터?’라는 질의에 (동독 당국자가) ‘즉시”라고 발언한 것이 기폭제로 작용해 동독 주민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고, 이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베를린 장벽’은 동독 주민들을 가두어 둔 것이었다.
장벽의 붕괴는 동독 주민의 여행의 자유를 회복시킨 사건이었다”
당시 서독 교회가 동·서독의 자유로운 민간교류에 있어 최전선을 담당했는데, 여기엔 서독 정부의 행정적 지원이 밑거름이 됐다. 이 과정에서 동독 지역에 파견된 서독 선교사인 카스너 목사의 눈물겨운 목회가 독일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키워냈다고 한다.
▲독일의 민주주의는 평민이 주도한 기초자치단체에서 시작된다. 시·군정부가 기본으로 형성되고, 그 위에 완전한 국가 체제처럼 헌법과 법률을 갖춘 주정부가 형성된다.
“독일연방공화국은 각 주정부의 연합체로, (당시) 서독의 시와 군들은 동독에 자매 시와 군을 갖고 있었다.
▲“통일 전 동독과 서독의 교류를 담당했던 최전선엔 서독의 교회가 있었고, 교회는 동독의 자매 교회에 선교사를 파견했다.
“이 가운데 2005년부터 2021년까지 16년간 독일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의 아버지 카스너 목사도 있었다. 그는 서독 함부르크에서 동독에 파견된 선교사로, 동독의 철저한 탄압과 통제 속에서도 힘겨운 목회자의 생활을 하며 앙겔라 전 총리를 키워냈다.
또 “동독에 민주화의 물결이 일었을 때 이를 격랑으로 만든 것은 동독의 지역 교회였고, 앙겔라와 같은 지방 정치인들이었다”며 “서독의 교회들과 서독의 지방정당들은 자신들이 자매결연을 맺은 지역에 인력을 파견했고, 파견된 인력들을 통해 재정을 지원했다. 이들은 동독 각 지역의 리더들을 발굴하고 철저하게 도움을 줬다.
▲“한국에는 북한선교를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하며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통일선교회와 외 서부연회와 많은 교회와 선교단체가 있다. 이들이 북한 각 지역과 교회를 도와가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지지하는 교회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통일선교회가 통일학교 운영 확대 및 통일 릴레이 기도 지속은 희망이다.
2022년 09월 01일
lim
첫댓글 지난주 신대원에서 강의중에
통일선교회 활동을 설명!
이날 목사님 한분께서 Lim선교사님 통일은 언제되나요?
질문하셔서 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일은 시작, 되었어요.~ 통일을 완숙 시켜가는 과정입니다.
많은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노아를 믿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그를 놀리고 비웃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들은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늘의 지혜는 종종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으로 보입니다.
노아는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했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구원방주는 완성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북한이탈자 3만5천여명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6.25이후
누적 인원 17만명 추정!,, ,,통일시작 증거!,,
,,통일은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통일이 완숙, 될~때까지, 믿고, 그날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노아의 믿음이 이시대 이민족에게도 필요합니다.
통일선교, 통일준비 다 하기 싫어요.
저도 하기 싫어요.
다' 하기 싫다고 복음통일 준비를 다 안하면
모두다 개나, 소와 같이 살아 가는거지요.
그러나 내가 선을 넘는 선교로
통일을 준비하면 남들과 차이가 생겨요.
어려운 어떤 인생을 살건지는
하나의 의사 결정으로 삶을 바꾸게 됩니다.
삶을 바꾸고, 민족의 미래를 바꾸고
민족 복음통일을 완숙시키는 결정은
바로 지금뿐입니다.
함께 복음통일 준비에 동참하기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아래 연락처로 전화 주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ㅡㅡㅡ아 래ㅡㅡㅡ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연합회 통일선교회
선교기관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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