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말씀 산책
청빈낙도는 우리나라 가난한 선비들이 자주 썼던 말이다.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기고 즐긴다.’는 뜻이다. 부자로 살지 못한 실패자의 푸념처럼 들린다. 그런데 왜 청빈한 선비들은 존경을 받았을까? 그들은 덕을 쌓고 자신을 위한 치부에 눈을 돌리지 않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옳게 사는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은 평생 복음 선포로 다른 사람의 영혼 구제에 힘을 썼는데 자기는 어떤 궁핍에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탐욕을 이겨낸 도인으로 옳은 길을 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체시카 교황이 ‘청빈은 방벽이자 어머니’라고 말한 바 있다고 들었는데 하나님께 몸 바친 사람들은 청빈한 삶이 없으면 대중 앞에서 방벽이 없는 것과 같으며 그것 없이는 성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어머니 역할도 할 수 없다는 말로 생각된다. 성직자가 호화로운 주택에 살며 호화로운 차를 타고 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을 전파해도 그것은 소귀에 경 읽는 꼴이 된다는 말이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면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CCC에서 전도훈련을 받고 남의 후원만 가지고 예수님께 헌신하고 사는 자매를 알고 있다. 1996년 한남대학교 CCC 간사로 와서 봉사하다가 지금은 4자녀의 어머니가 되어 있다. 그녀는 같이 CCC 간사로 있던 신랑과 결혼 했는데 밥 그릇 둘, 국 그릇 둘, 물 컵 두 개로 방 하나 딸린 옥탑 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성경에서 말한 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시골에서 택배로 올라온 쌀과 반찬은 학생들을 불러다 먹이고 일주일 분량의 장을 봐서 만든 반찬은 이 삼 일에 남의 입에 들어가도 나머지 날은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마트에서 반짝 세일로 몇 개 한정으로 파는 세일 상품 방송을 하면 물건을 고르되 늦게 올 사람을 위해 좀 못한 것부터 샀다고 한다. 그것이 성경의 말씀이었고 CCC에서 가르쳤던 삶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나는 두 사람이 지금까지 간사로서 일정한 수입이 없이 교회 봉사나 후원금만으로 살고 있는 가난한 삶이 불안하고 안타깝다. 그런데 더 대책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그들에게는 귀여운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다 자라기도 전에 또 다른 아이들을 입양한 것이다. 지금은 아들 딸 둘을 입양해서 여섯 가족이 살고 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생명을 자기들이 돌보기 위해서였다. 식구의 빨래만 해도 큰 일었다. 애들의 털옷, 털모자, 목도리, 장갑, 심지어 부츠, 실내와, 운동화도 모두 손빨래를 하는데 작은 세탁기로 돌려 빠는 양말만 42짝인데 어디로 빠졌는지 그 짝을 한 번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옛날 순장, 순원으로 대학에서 자기에게 신세를 졌던 학생들은 졸업하여 직장을 갖거나 잘 사는 남편을 만나 부유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이 자매는 옛 순원들이 잘 사는 것이 미안해 보내온 후원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선교사가 와서 캄보디아에서 국제대학을 세우는데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더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으로 알고 순종하겠다고 작은 집을 청산하고 통장도 정리하여 떠났다. 그런데 8 개월 만에 국제대학을 세우겠다고 간 선교 지를 떠나기로 했다는 편지를 받았다. 아무 곳에 연락도 못하며 그곳에 묻혀 하루 12시간씩 일만 했는데 그것이 자기가 남의 이용물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프놈펜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정식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다. 청빈은 가난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통로요 그것은 그들을 인도할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손길이라는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교수님^^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고난은 축복의 통로로 반드시 돌아오잖아요. 여기 저희가 교제한 선교사님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 왔더랬습니다. 저는 이때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한치 앞도 모르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언젠가는 간증할 날이 오겠지요. 너무 염려마시고 깊은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그녀에게서 받은 편지다.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삶을 살려면 사람이 보기에는 어리석게 살아야 한다. 나는 그의 편지 내용이 응답되기를 위해 기도할 뿐이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붙드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