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빼기 혹은 더하기
조 용 휘
점식이 하고는 절대로 함께 살 수 없다는 아내의 협박에 피부과에서 얼굴의 점을 여섯 개나 뺐다. 점을 뺀 후에도 사후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된다는 피부과 의사의 당부가 있었다. 거의 삼 주 동안은 점을 제거한 부분에 미용 테이프를 붙이고 햇볕 차단제를 발랐다. 낮에 외출하면 다시 점을 뺀 곳이 검어진다는 아내의 잔소리에 주로 저녁때나 밤에 출입을 했다.
어려서부터 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예순이 넘으면서 얼굴에 하나 둘씩 늘어났다. 여든넷에 작고한 선친의 얼굴에도 검버섯과 등에 사마귀 같은 점이 많았다. 점은 유전적인 요인도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얼굴에 점이 있으면 어떠랴 생각했는데 거울로 자세히 보니 특히 검버섯 같은 얼룩점은 흉했다. 점을 뺀 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점을 뺀 흔적이 옅게 남아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선 훨씬 보기가 좋다.
점과 관련하여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980년대 초에 KBS 방송국에서 진행한 이산가족 찾기 방송 프로그램이다. 거의 한 달 동안이나 이산가족을 찾는 방송을 스물네 시간 밤낮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했다. 나도 어머니와 함께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지새우며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을 보면서 웃고 울었던 기억이 어제인 듯 생생하다. 서울과 부산에 사는 이산가족인 부모자식, 부부, 형제자매가 방송을 통해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후 서른 해 만에 상봉하는 장면은 드라마틱했다. 수십여 년 동안 생이별한 이산가족이 만나면 첫 질문은 상대방의 태어난 곳과 몸속의 점을 먼저 확인하였다. 오른쪽 겨드랑이에 붉은 반점이 있는데 보여 달라는 어머니의 요청에 상대인 아들은 서슴없이 웃옷을 벗었다. 점을 확인한 모자가 얼싸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아나운서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함께 눈물을 흘렸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점 하나가 한 가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 외가도 이산의 아픔을 지녔기에 이산가족의 사연이 더욱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해방과 함께 삼팔선이 생겨나면서 팔남매 중 여섯 자매는 남쪽에, 두 아들은 북에서 이산가족이 되었다. 평양과 신의주의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두 아들은 소식이 두절되어 생사조차도 알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생전의 소원이었던 두 아들과의 상봉도 못한 채 지난 1975년 6월 아흔 여덟 나이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눈을 감았다. 외삼촌을 찾기 위한 노력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되었다. 어머니 형제들은 KBS 방송국에 헤어진 사연을 보내고, 외삼촌의 고향과 얼굴의 특징을 작성하여 KBS 벽과 마당에 부착하고 기다렸지만 끝내 소식이 없었다. 두 외삼촌의 몸에도 특징적인 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대한적십자사 주최로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도 여러 번 신청했으나, 북쪽의 외삼촌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인지 매번 떨어졌다.
점식이, 점순이, 점돌이, 점자처럼 점자 돌림을 가진 사람은 대개 얼굴이나 신체 어딘가에 점을 지니고 있다. 삼년 전 시집간 딸의 코 왼쪽 위에 사인펜 굵기의 점이 하나있다. 딸은 점을 빼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탤런트 고소영과 닮았다고 말려서 빼지 않았다. 이른 바 매력점인 셈이다. 첫 만남 후 여섯 달 만에 결혼에 골인한 딸과 사위의 경우를 봐도 점과 연관이 있다. 결혼을 못시켜 걱정하던 차 집 사람 친구의 소개로 두 사람은 만났다.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사위는 고소영의 팬이었는데, 딸과의 첫 만남에서 한 눈에 반했다. 점을 뺐어도 두 사람이 맺어질 수 있었을까? 서른한 살에 시집 간 딸은 결혼 두 해 만인 작년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시댁 어른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귀염둥이 외손자를 키우며 알콩 달콩 살아가는 딸 부부의 모습을 보면 점의 인연이 새삼스럽다.
관상을 통해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운세까지도 점칠 수 있다고 한다. 복을 부르는 관상이 있는가 하면, 화를 부르는 관상도 있다. ‘나의 관상은 어느 쪽일까?’ 궁금할 때도 있다. 살아가면서 무언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특히 그렇다. 인간의 타고난 사주는 바꿀 수 없어도 얼굴 관상은 바꿀 수 있다. 관상은 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사주팔자나 신체의 크기, 나이, 성별, 얼굴형태, 색깔 등이 다르지만, 길흉화복, 성격, 재물 운, 연애 운, 자녀 운, 건강 등 많은 관상의 정보를 제공한다. 멜라닌 세포가 피부에 침착하여 몸에 생긴 점은 인간의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점술과 연관이 많다. 여러 종류의 점집에서는 관상, 골상, 수상, 족상을 본다. 얼굴의 점이 애교 점 같은 복점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흉점이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하지 않으면 단명하거나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점괘로 작용한다.
제 작년에 구백 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영화 ‘관상’이 생각난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인 김내경은 수양대군의 관상을 보았다. 수양은 역모를 꾀하는 상이라고 귀뜸을 해도 열세 살의 단종은 핏줄이라고 믿지 않았다. 이에 내경은 묘안을 내어 역신의 상으로 바꾸기 위해 수양대군 두 눈썹 사이에 세 개의 점을 심어 놓았다. 하지만 결국 수양은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유배 보내는 역모를 꾀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점을 그려 넣어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했던 비운의 천재 관상가의 충성심도 점과 점괘로 이어졌다.
사람들도 운명을 바꾸려고 흉점과 복점을 구별해서 얼굴의 점을 빼거나 반대로 그려 넣기도 한다. 더하기와 빼기를 통해 인간의 운명이 바뀐다는 점,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첨단 과학과 정보의 시대인 최근에도 수많은 점집이 성업 중인 것을 보면, 불확실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미리 알아서 대처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대단하다. 겉으로 들어나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각자의 마음속에 점하나를 빼거나 그려 넣는 것은 어떨까?
‘가만, 그런데 까만 들깨 씨처럼 등에 있는 나의 떼 점은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점점 점, 점이 알쏭달쏭 해진다.
첫댓글 인생60 이면 왠만한 운은 다 받고 계시지 않을까요? 빼도 본전, 보태도 거기서 거기, 말씀대로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좋은 생각이 복점이 되겠지요? 눈에 안 보이는 점은 복점이라고들 하네요? 좋은 것은 믿고 나에게 나쁘다는 말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랍니다. 헤헤~ 오랜만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정형외과가 소리 소문없이 성업을 이루나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얼굴도 산수와 관련이 있는 같군요. 점點으로 보는 관상은 점성술占星術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