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짐승[禽], 곧 새가 여느 다른 동물들, 특히 길짐승[獸]들과 확연하게 다른 점은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난다는 것입니다. 날개를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개쯤은 빠져서 잃어도 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한자 '깃 우(羽)'자는 원래 날개에 있는 깃털 두 개를 나타낸 것입니다. 문자상으로는 단 두 개만 그려놓았을 뿐이지만 한자의 특성상 '수풀 림(林)'자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은 아래의 사진처럼 많은 깃털을 나란히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깃 우(羽)'자를 보면 마치 아래의 사진처럼 날개에 깃이 달려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날고 있는 새를 옆에서 본 모습에서 나타나는 모양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니까 저런 깃이 모여 있는 날개를 표현한 문자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깃 우(羽)'자는 나아가 새를 가리키는 글자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한자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늘[鱗]을 가지고 물고기를 나타내거나, 배를 덮는 거적을 나타내는 봉(篷, 또는 蓬)을 가지고 배를 나타내는 경우와 같습니다. 사물의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지요. 한자는 다의성과 모호성을 가진 문학적으로 보면 최적의 언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나타내는 경우가 그리 특수한 예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깃 우(羽) 갑골-금문-소전 금문에서는 조금 흐트러진 깃 하나를 그린 것 같습니다만 갑골문과 소전에 나타난 '깃 우(羽)'자는 위 독수리가 나는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깃 우(羽)'자를 가지고 새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 이해가 가는 그런 모습입니다. 새를 옆에서 본 모습은 위의 사진이나 '깃 우(羽)'자에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만 뒤나 정면에서 날개를 펼친 모양은 또 다르죠. 다음 사진은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을 뒤에서 찍은 것입니다. 몸통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처럼 새를 정면이나 뒤에서 봤을 때 날개를 양쪽으로 활찍 펼친 모양을 나타낸 한자는 '아닐 비(非)'자입니다. 날개를 펼친 모양은 곧 새가 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이 글자는 원래 '날 비(非)'자의 본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닐 비(非) 갑골-금문-금문대전-소전 그러나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부정부사와 음이 같아서 이 글자의 소리를 빌려다 썼으므로 나중에는 '비(非)'자의 훈을 숫제 '아니다'라고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개념인 추상적인 뜻을 나타내는 한자는 거의다 기존 한자에서 음을 빌려다 쓰게 됩니다. 원래 나무의 뿌리를 나타내었던 한자 '아니 불(不)'자의 경우도 바로 그런 경우죠. 그러고 보니 부정부사에서 그렇게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가 나는 연습을 하려는 것인지 날갯짓을 하며 땅위를 걸어다니는 모습입니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을 하려고 할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실제로 사진의 오리 같은 비교적 체중이 많이 나가는 새들은 그 자리서 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날갯짓을 하면서 물이나 땅을 박차고 한동안 달리듯이 하다가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역시 날갯짓을 하는 새인데 이제 막 비행을 끝내고 나뭇가지에 내려 앉은 것인지 아니면 날기 위해 막 날개를 펼치는 것인 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비(非)자가 부정부사(주로 명사나 사실을 부정할 때 쓰임)로 쓰이게 되어 난다는 뜻을 상실하게 되자 다른 요소를 첨가해서 난다는 뜻의 글자를 따로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바로 '날 비(蜚)'자입니다.
날 비(蜚) 금문대전-소전 새 외에 날 수 있는 동물로는 곤충이 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날개를 나타내었던 한자 '비(非)'자에 곤충을 나타내는 한자 '충(虫)'자를 덧붙여서 '날 비(蜚)'자를 따로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졸지에 원래 뜻을 나타내던 '비(非)'자가 성부(聲部)로 바뀌어서 쓰이게 된 것이지요. 한자에서는 이런 경우도 적잖이 보입니다. 엄격히 말해서 '비(非)'자가 단순히 소리만을 나타내는 경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한편 '날 비(蜚)'자는 고대에는 일상적으로 쓰였습니다.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순우곤(淳于髡)에게서 나온 고사성어 불비불명(不蜚不鳴)의 경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불비불명은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동안 꼼짝도 않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사기·골계열전』에 의하면 제나라 위왕은 왕위에 오른 후 무려 3년 동안이나 꼼짝도 않고 사태를 관망하였다고 하지요.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도 유언비어(流言蜚語)라고 할 때는 습관적으로 꼭 이 '비(蜚)'자를 쓰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난다는 뜻의 한자를 결국 새로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공작이 나는 모습입니다. 돌물원의 철망 속으로만 보아온 공작이 나는 모습을 선뜻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작 같은 깃이 길고 화려한 새가 한번 날개를 펼쳐서 날면 정말 멋진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소매가 길면 춤을 잘춘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날 비(飛)'자는 바로 화려한 깃털을 날리며 훨훨 나는 새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날 비(飛) 금문대전-소전 어떻습니까? 위의 사진처럼 아름다운 긴 깃털을 나부끼며 날고 있는 공작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상상의 동물이기는 하지만 봉황(鳳凰)이 날 때 '날 비(飛)'자의 옛 자형과 닮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이 나서 어느 정도 자라면 걸음마부터 배우게 되듯이 새는 당연히 날갯짓을 먼저 배우게 되겠지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갈매기 조나단(Jonathan)처럼 극한의 훈련을 통해서 정말 잘 나는 새가 될 것입니다.
새가 해를 스쳐 날아 지나가려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새를 나타내는 깃, 아니면 날개에 해를 나타내는 백(白: 원래 日자였는데 나중에 변형되었음)자를 첨가한 글자가 바로 '익힐 습(習)'자입니다. 익힐 습(習) 갑골-소전 한나라 때 허신(許愼)이 지은 최초의 부수배열법 자전인 『설문해자』에서도 습(習)자를 풀이하여 "자주 나는(날갯짓을 하는) 것이다(數飛也)"라 하였습니다. 『논어·학이』편에 보면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말이 나오는데, 주자(朱子: 朱熹)는 이곳의 습(習)자를 풀이하면서 『설문해자』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습(學習)이라는 말은 원래 날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하였지만 습(習)자에서 백(白)은 일(日)자가 후대로 오면서 변형된 것입니다. 여기서 일(日)자는 '날로' 연습을 하여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또 새가 날기를 배우는 공간 즉 해가 있는 하늘을 나타낸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공(時空)을 동시에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인 듯하여 어느쪽으로 보아도 그럴듯한 것 같으므로 굳이 어느 한쪽이 옳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상 날개에 관한 한자를 학습(學習)해 보았습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