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아리랑 3..꿈꾸는 금양정사
하늘이 들어 올려, 허리춤에 놓고 앉아
비로봉 병풍치고 밀실을 꾸몄던가
오백년 세월품고 꿈꾸는 금양정사
나그네 인기척을 멧새가 알려주니
졸고있던 댕기소년 하늘,처언 따아~지
구름도포 준량선생 댓돌아래 내려서네
웃음짓는 입매보다 서글퍼라 젖은 눈이
하염없는 기다림에 잠긴세월 외로웠나
살포시 뒷꿈치들어 그를 안고 품었네라.
꿈꾸는 금양정사......황진이(이경진)
금양정사(錦陽精舍)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몇 백년전 댕기머리 소년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베고 누워 단잠에 빠져있었나,
나그네 인기척에 푸드득! 산새가 달아났다.
햇살이 마구 부서지며 금양정사 지붕을 두드리니
마루 밑 고양이가 노곤한 눈을 뜨고 하품을 한다.
오르는 길이 하도 험하여 팽팽한 외로움이 짐작되었지만,
이토록 은밀할 줄이야. 깊은 산중에 은폐된 비밀기지처럼
망 보던 키 큰 나무에 매미소리 걸려있다.
부산한 동행인들의 소리가 잠자는 금양정사의
깊은 마당을 건드리자 두껍게 가라앉아 있던 침묵이
낮은 포복을 하고 슬금슬금 흩어진다.
쉿!
잠깐만, 잠깐만.. 움직임을 멈추어달라고 손짓을 했다.
아!! 제발 조용히요...
발걸음을 멈추고 수백년 되었다는 목조 건물을 올려다본다.
시선을 우측으로 꺽고서... 뒷걸음질치고 물러나 다시 올려다본다. 이번엔 정면에서.
그리고 뒤돌아 아래를 훑어보니 본래의 물빛을 짐작할 수 없는 뿌연 연못이
마당 아래 놓여져 있다. 둥글지 않고 네모진 모양의 연못 안에는 회색빛 물에 동화된 잉어들이
유영하고 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산중 고가에 잉어라니...기묘하다.
‘이건 뭐지?’
‘저 서원인지, 집인지 모호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집의 정체가 뭐지?’
나는 그저 너를 보러만 왔는데, 네가 침묵을 하던, 낮잠을 자던,
난 그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데, 동공에 잡혀서 그냥 머물러 있는 널 보면 되는데,
왜 심장 안쪽이 들썩거리지? 마치, 현실과 꿈의 경계를 부유하고 있는 듯 한 그 기와집의
안개빛 기운이 내 몸뚱아리를 휘감아 끌어 올리고, 처마를 맞대고 이어져 있는
금양정사의 두 칸짜리 기와집으로 발목을 잡아당긴다.
검은 그늘을 덮고 있는 마루 밑 어둠이 짓궂은 햇살에 지속을 다 드러내고 있다.
이미 오래전 일찌감치 수액을 모조리 빨아들인 희뿌연 소나무는,
나이테를 멈추고 마루로 누워있었다. 골 깊은 세월자국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드러낸 마루의 나이. 짐작하기 어렵다. 댓돌을 디디고 대청마루로 오르기 위해
밟아야 하는 세 칸의 나무 계단을 나도 밟고 올라본다.
어느 누가 짜 올렸길래, 어떤 염원을 담아 이어 붙였길래 한 뼘도 안 되는
그 얇은 나무판자의 두께로 그 모진 세월과 그 숱한 디딤을 견뎠을까.
처마아래에는 금계선생이 간절히 머물길 바라며 이름 지었다는
‘금양정사’ 네 글자가 예사롭지 않게 걸려있다. 누가, 저 현판을 썼는가!
혹시, 이퇴계 선생의 글씨? 어디를 둘러봐도 설명 한 자락 없다.
너는 기억하고 있구나 금양정사여!
대청마루 한 켠에 바람을 들이기 위한
폭넓은 장지문 열어젖히고,
공자왈 맹자왈 읖조리는
댕기 딴 사내아이들의 넉살좋은 목청을.
차마 잊지 못하여, 차마 놓지 못하여
그래서 이토록 굳건하게,
이토록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구나.
현판을 또 한번 바라보니
준량선생의 헛기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마루를 따라 둘러쳐져 있는 아름다운 난간을
쓰다듬으니 저쪽 구석에 졸고 있던 댕기소년이
나를 보고 한쪽 눈을 찡긋한다.
서생들의 기숙을 위해 지어 놓은 듯 한 옆채로
발길을 옮겨본다. 좁은 들마루를 앞에 둔
두 개의 방문. 동그란 쇠고리가 얌전하다.
그 옆에 부엌인 듯 한 나무문을 열어젖히니 가마솥 올려놓은 아궁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유물이 되어버렸으나, 의식 속 깊숙이 웅크리고 앉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그 옛날 부엌의 형상.
그 부엌 안쪽에 또 하나의 문이 숨겨져 있다.
마치 아름다운 새색시를 감추어 놓은 은밀한 내실로 통과하기 위한 비밀의 통로처럼...
집안 속에 숨겨 놓은 또 하나의 마당이 나타나고,
또 하나의 묵은 툇마루가 나타나고, 누군가가 기거하고 있는 흔적이 나타난다.
나일론 빨랫줄에 매달려있는 빨래집게가 이곳이 꿈속의 집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물인양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어여쁜 새색시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순간 방향을 잃어버린 나.
고개를 들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기와집 처마 끝에
언제나 같은 빛깔로 고여 있을 것 같은 하늘에게 물어본다.
말해줘요!!
고요한 나의 심상을 건드린 것.
시선으로만 머물지 않고, 심장을 들썩이게 한 그것.
낡고 방치되어 있음에도 찬란하기 그지없는 저 당당함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름답기 때문인가요?
교교히 흐르는 적막함 때문인가요? 그것이 정녕 다인가요?
연필 한 타스 정도를 기대했던 보물찾기에서 산신령이 잃어버린 빛나는 구슬을 발견했거늘
사용할 줄 모르니 그대로 두고 가야하는건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디쯤에서 발길을 멈추어야,
풍기가 낳은 석학이자 대 문장가였던 황준량님을 만날 수 있지?
퇴락한 금양정사를 보고 비통한 마음 금치 못하여 이곳을 지켜 달라 부탁했던
퇴계선생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터인가. 숨겨진 안마당을 빠져 나와 맥 빠진 마음을 추스르며
원래의 모습대로 부엌문을 닫고 뒤돌아서는데, 긴 돌담이 에워 싼 또 다른 공간에
작은 문틀 하나가 문짝도 없이 열려져 있는 게 보인다. 무심코 들어선다.
내 몸이 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분명 없었던 문짝이 안쪽에서 스르르 빗장을 잠그며
저 혼자 닫히고 있다. 커다란 마당이 눈앞에 드러나고 사방에 솟구쳐있는
키 큰 나무들이 돌담 바깥으로 빽빽이 그곳을 에워싸고 있는 게 보인다.
이곳이 어디지? 아무것도 가두지 않았건만 왜 담을 쌓아 바깥을 가렸을까?
그때 무언가가 눈 안에 들어온다. 키 작은 연두빛 풀들이 마치 잔디를 깔아 놓은 듯
마당 가득 펼쳐져 있는 그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구름으로 만든 도포를 걸친 듯
윤곽은 선명하지 않지만 분명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다가선다.
왼쪽에 나를 보고 서 있는 비석의 글씨.
‘퇴도이공(退陶李公)’
그 비석 한 칸 아래 오른쪽 비석의 글씨
‘금계황공(錦溪黃公)’
금계선생의 비는 퇴도 이공의
비석을 향하여 옆으로 세워져 있다.
퇴도? 퇴계가 아닌 퇴도라는 명칭이 낯설지만
달리 짐작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황 선생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으리라.
비석이 있는 걸로 보아 이곳은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도산서원 초상화에서 보고, 지폐에서 본 그의 얼굴이 저랬었나?
흰 수염을 늘어뜨리고 만면에 웃음주름 가득한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
두근거리는 가슴에 힘줄이 뻗쳐 용기가 솟아났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천연스레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까이 다가서는데,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울린다.
“먼 길을 오시느라 애썼겠구려.”검은 수염에 유건(儒巾)을 쓰고 있는
그 분을 바라보니 어찌된 일일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누군가가 떠올려진다. 그도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왠지 웃고 있음에도
젖은 눈빛. 사나움이 하나도 없다.
“당신은 황준량(黃俊良)님이시고 저 분은 이황(李滉)선생님이신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황준량님. 공손히 인사라도 해야 하건만 질문이 먼저 나간다.
“제가 여기에 올 줄 알고 계셨나요? 제가 누군지 알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제가 무얼 알고 싶어 하는지 짐작하시나요?
비석의 글씨는 퇴계가 아닌 퇴도라 적혀 있던데요.
아! 그리고...그리고...묻고 싶은게 너무나 많았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하다가 “아! 생각났어요!” 퇴계선생님께 고개 돌려 다시 묻는다.
“근데 왜 당신의 비석이 이곳에 있지요? 그리고 당신은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지키고 계셔야지 어찌하여 그 곳을 비우고 여기에 와 계시는 거죠?”
퇴계선생과 금계선생이 마주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리는데 웃음소리가
귀로 들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들어와 웅웅 울린다.
“보아하니 아낙네 같은데 성격이 아주 급하군요. 내 오백년 가까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토록 당돌하게 나를 불러대는 여인네는 처음이요. 지난 밤 꿈에 귀한 손님이 올 거 같아
내 잠시 스승님을 모셨는데, 천천히, 천천히 머물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 보구려”
“영혼도...꿈을 꾸시나요? 그리고, 저는 천천히 머물 시간이 없답니다. 동행인들이
바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고, 돌아갈 길도 아주 멀기에... ”
“허허허! 나는 오백년 세월을 이곳에 머물렀어도 젊어지지도 늙어지지도 않았소이다.
바깥의 동행인들은 잠시 잠을 잘 것이고 그대는 이곳에서 하루를 지내도 단 일분의
시간조차 닳지 않을 것이외다. 여기는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영혼의 세계이며,
그 무엇도 멈출 수 없는 의식의 세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오.”
“무슨 말씀인가요? 멈추어 있는 영혼의 세계, 멈출 수 없는 의식의 세계라는 것이...”
금계선생은 빙그레 웃었다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보고 그 순백의 영혼을 상상하며 저절로 미소 짓듯..
마흔 일곱 살에 생을 마친 그때 그 얼굴로 나이만 오백 살을 더 먹어버린 금계선생은
아무래도 학식과 인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리숙한 여인네와의 만남이 곤혹스러운 것 같았다.
좀 더 멋진 여인네가 되지 못하고 말귀 어두워빠진 내 자신이 속상했지만,
이런 만남이 언제 또 내게 주어질 터인가, 그는 분명 귀한 손님이 올 거라는 꿈을 꾸었다했으니
배우고 갈 것이 반드시 있으리라.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성격이 튀어나온다.
“저는 우리 고향의 민속학자 송지향(宋志香)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읽고
금양정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19년을 풍기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때는 한 번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지요.
성리학의 대표 학자이신 퇴계선생님은 워낙 유명하셔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고
독후감을 쓴 기억도 나는데, 당신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왜 저는 당신이 낯설지 않을까요?”
묻기는 금계선생께 물었는데 퇴계선생이 입을 떼신다.
“호오! 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일세.
그렇다면 내 어린 시절 무엇을 책에서 읽었지?”
주저할 게 없다. 바로 대답했다.
“무엇을 읽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독후감을 써야 한다기에 썼던 건 생각난다는 말이지요.”
“그래? 그렇다면 방금 성리학이라 말했는데,
그렇다면 성리학은 무슨 학문이지?” 첩첩산중이다
“그것도 무엇인지, 어떤 학문인지,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깨닫기 위해 만든 것인지 아는 게 없습니다.
전 그저 그렇게 외운 답을 시험지에 쓴 기억이 날 뿐이라....
죄송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공부를 하고 오겠습니다.”
“하하하! 아무 것도 모르면서 퇴계가 유명한 건 알고 있다고? 허 참,
그것도 희한하구나.” 희한한 일은 아니라 냉큼 말한다.
“성리학(性理學)이 어떤 학문인지 모르고, 어린 시절 읽은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아주 모르진 않습니다. 주워들은 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당신께선 태어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막내로 크면서
거의 모든 공부를 독학으로 깨우쳤다 들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을 홀로 꾸려가면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 낸 어머니께는 극진한 효자였다는 것도 들었구요.
사실, 훌륭하기야 선생님보다 어머니가 더 훌륭하신 거지요”
“오, 그래 맞았네! 내 그런 어머니를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좋은 서원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맞는 말이네. 아암 백 번 맞는 말이지...
그리고 또 무얼 들었는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금양정사를 보러 오기 전에 읽었던 짧은 자료를 기억해 본다.
“풍기 군수로 부임했었고, 음..백삼십번 넘게 왕의 부름을 받았지만
절반 넘게 벼슬을 사양했으며...”
“그리고?”
짓궂은 웃음이 눈가에 가득한 퇴계선생을 보고 있자니 꼭 면접을 보러온 수험생 꼴이다.
“좌우지간 이율곡 선생과 이황 선생이 학자 중에 제일 유명하거든요?
또 제가 듣기론 당신께선 학문을 입으로만 주장한 게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했어요. ”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아주 기분이 좋은 걸?
공의 말을 듣고 여기에 오길 참으로 잘한 것 같소이다”
하면서 그 옆에 앉아 있는 황준량 선생을 향해 다시 한 번 큰 웃음소리를 뱉으신다.
그러고 보니 또 있다.
“그리고요, 저 분을 가장 아끼는 문인으로 대하셨고, 서신 교환도 두 분이 제일 많았으며, 또,..”
옆에다 사람을 두고 돌아가신 분이라는 표현을 쓰자니 좀 어색해졌다. 그러자 대뜸
“금계가 죽자 내가 그를 위해 행장을 쓰고 직접 제문을 지었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 하신다.
“맞아요!!” 역시 똑똑하신 분이라 뭐가 다르긴 다른 것 같다.
즐거운 듯 말을 나누던 그 분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진다.
“그렇다네,
그만큼 아까운 내 동지이자 훌륭한 석학이였는데,
빛을 보지 못하고 여지껏 묻혀만 있으니
참으로 애닯기가 그지없어” 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으셨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
“금계는 어떤 학문의 완성은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지만, 그는 사후에도 이곳을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 머물러 있다네.
어쩌다 내 있는 서원으로 오기도하지만
주로 내가 이곳을 찾는 편이야.
자네가 보다시피 이곳은 풍광이 뛰어나지만
산새들과 바람소리만 드나들 뿐
찾아오는 이들이 적으니
그가 외로울까 늘 걱정이 되거든.
내 살아 있을 적에는 세상을 등진 금계가 생각나
어느 날 이곳을 찾아왔는데 말이야,
정사가 황폐해지고 퇴락되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네.”
“그 때 스승님께서 군수에게 부탁하여 이곳을 지켜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사후에까지 받았으나
아무것도 갚아드리지 못하니...
못난 제가 미울 따름입니다. ”
머리를 숙이며 준량선생이 말했다
“무슨 소리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네.
벼슬을 마다하고 정사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려던
꿈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한이 되거늘, 그 정신이라도 후대에 물려주어야지!
못된 벼슬아치들이 그 뜻을 헤아리질 못했으니....
다행히도 풍기 군수 ‘조완벽’이 내 뜻을 거르지 않아 정사를 지킬 수 있었다네.”
“그 뒤 병자호란 때 정사가 소실되었다 들었는데요. 누가 다시 이곳을 지었나요?”
“호오? 그걸 어찌 알았는가!
이제 보니 금계를 만나려고 공부를 꽤 하고 왔나보구먼.”
퇴계선생이 금계선생을 바라보며 그리 말하자 집주인이 나를 보고 눈으로 웃어준다.
“그 후 60년 동안 잡초만이 우거진 쓸쓸한 빈터로 남아 있다가,
영조 때라지 아마? 금계의 손자 황성이 안타까이 여겨 다시 지어 올렸다들었네.
그러니 지금의 금양정사는 근 300년이 된 건물이야.”
“터는 500년 전에 제가 골라 둔 것이지요”
그들이 삼백년, 오백년 세월을 마치 3년,5년처럼 다루는 걸 보자
내 태어나기 이전에 이 분들의 500년 세월이 내 생 앞에 존재했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금계선생께 물었다
“이곳을 금양정사 터로 점찍어 둔 이유가 무엇이지요?”
갑자기 금계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 듯 밝아지더니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대 여기 오면서 보지 못하였소? 풍기 사람이 아니오?
이곳을 둘러보면 금방 알 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 오죽 아름다우면 금계(錦溪:비단계곡)라 불리었겠소.
드러나지 않으나 너무 깊이 앉아있지 않고,
세상을 등진듯하나 마을과 가까우니 아이들 드나들기 어렵지 않고,
게다가 금선정(錦仙亭) 맑은 냇물을 안고 돌아 흐르니 얼마나 정답소이까.
비단계곡 금선대에 금선정을 세우니 운치가 더하고, 어지러운 조정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옛 성현의 말씀을 음미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나 싶었지요.”
그러나 그는 금양정사도, 금선정도 완성 되는 걸 못보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 염원이 오죽했으면....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구나. 싶으니 가슴이 아린다.
“당신은 풍기에서 태어나셨지요?”
“그렇다오”
“성주목사를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 예천에서 운명하셨다 들었습니다.”
“그랬지요”
“금양정사라는 이름은 당신이 살아계실 적에 미리 지어놓은 것인가요.
아니면 후손 중 누군가가 지은 이름인가요.”
“허허허, 내가 지은 이름이라오. 고향을 드나들 때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초가집 한 칸지어 노년을 책이나 읽으며 보낼 생각이었는데,
너무 호사롭게 지어 처음 내 영혼이 이곳을 찾아 왔을 때 꽤 당황스러웠지요”
아름답기는 하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금양정사이건만...욕심 없는 분이라고 느껴진다.
“당신은 왜 입신양명의 기회를 물리치고 한사코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그토록 집착하셨나요?
몸도 약하신 분이 편하고 손쉬운 방법을 마다하고 구태여 어렵고 성가신 쪽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곳에서 오백년 가까이 머물렀다 하셨는데
60년 빈 터 시절엔 어디에 계셨나요?”
“쯔쯔쯔, 또 급한 성질이 나오시네..천천히 물어도 된다 했거늘
요즘엔 어찌 그리도 빠르고 급한지,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듯싶으니
우리 편하게 앉아서 귀를 열고 입을 떼면 어떻겠소?” 하며 내 손을 잡고 앉히는데,
조금도 민망하지가 않고 편안하다. 비록 지금의 얼굴은 나와 비슷한 나이로 머물러 있다하지만
그는 오백 살이 넘는 대선배님이 아닌가. 나는 그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인기척에 문을 닫은 영혼의 마당은 오직 천상에게만 길을 열어 주었는지
청정한 푸른 하늘만이 우리 세 사람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깥의 동행인들은 조금 더 낮잠을 자야할 것 같았다.
그들이 말한 멈추지 않는 의식의 세계에 대하여
내 나쁜 머리로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퇴도는 퇴계선생의 또 다른 호라고 했다. 그들의 인연에 대하여 묻고 답을 들었다.
풍기 군수로 재직할 적에 금계를 만난 퇴계선생은
그 누구보다 그의 학문과 인품을 사랑했노라 말씀하셨다.
준량이 단양 군수로 부임했을 때, 탐관오리의 횡포와 무거운 세금으로
곤궁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왕에게 4,800자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문을 올렸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름답고, 목민관(牧民官)으로서
백성을 향한 극진한 마음씨가 넘쳐났으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논리적 설득력이 얼마나 치밀했던지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왕의 눈에
눈물 맺히게 했으며 결국 마음을 열게 하여 그의 뜻대로 10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고 했다.
퇴계선생은 그런 그의 올곧은 기개와 현명함과 수려한 문장력을 칭찬하고,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양반이 아니면 공부 할 수도 없었으니 척박한 지방이야 오죽 했겠는가.
하면서 벼슬을 마다하고 자기가 태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자기네 고장에서 후학을 양성하려 했던 그의 단심이 애틋했노라 하셨다.
“백학서원이 완성 되었을 때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답니다. 스승님”
“그 뿐인가. 부임되어 가는 곳마다 학교의 부흥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던가.
단양 향교를 중수하고, 성주에서도 영봉서원을 중수하여 제자들을 불러 모아 교육에 힘썼지.”
“사람은 죽지만, 학문은 영원하지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학문이 영원하다는 말은 좀 생소하게 들렸다.
퇴계선생은 이어 말씀하셨다 60년 동안 금양정사가 허물어진 시기에는 금계의 영혼이 금선정과
풍기 향교를 오가면서도 금양정사 빈 터를 떠나지 못했다고.
외롭지 않으셨나요? 라는 내 질문에 준량선생은 다시 정사가 세워진 것만도 감사하다고 했다.
저 우거진 잡풀더미에 오가는 내방객 하나 없는 지금의 정사모습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하자,
당신의 영혼은 사통팔달이라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인근에 향교와 동양대학이 있고, 항공고등학교가 있고, 금계, 풍기중학교가 있는데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금선정을 찾아오니 그 모양새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하셨다.
요즘은 생전 알지 못했던 항공기술을 배우러 몰래 학교로 청강을 하러 다니는데,
졸음이 쏟아지면 서책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갑자기 금선정 소나무가 생각났다.
“당신은 금선대위에 세워진 금선정이
완공되기도 전에 타계하셨지만,
그곳을 지키는 소나무를 잘 알고 계시겠네요?
얼마 전에 완성된 새 다리 때문에
당신의 나이와 맞먹는 소나무가
무더기로 잘릴 뻔 했던 일을 알고 계시나요?”
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10승지 가운데 1승지에 속하는 훌륭한 땅이라오.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후손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계곡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었지요.
조바심나긴 했지만,
끝까지 소나무를 보호하려 했던 아름다운 얼굴들을 잊을 수 없답니다.
어제도 옮겨 심은 513살 소나무가 잘 적응하여 살아낼 수 있도록 오래도록
쓰다듬어 주고 왔지요” 정 깊은 성품까지 갖고 있는 멋진 분!
나는 또 물었다.
당신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가 사라지고 있고,
지금의 교육은 성리학이나 유교나 고전 철학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모두들 서양 언어에 열중하고 있으며,
많은 자녀들이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그들의 교육과 문화를 배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도대체 그들은 심각한 게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여전히 웃음 뛴 얼굴로 여유 있게 말씀하신다.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다른 나라의 앞선 기술력을 배우고, 언어를 배운다고
그들이 그 나라 사람으로 바뀌는 건 아니라고 했다. 결국 우리나라를 위해 쓰일 것이며,
우리나라의 학문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하신다. 미국에서 미국인 이름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룬다 해도 결국 그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조국을 부정하는 사람은 결국 모든 세상이 그를 비난할 터이니 결국엔
그 나라 사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그리하여 지나친 걱정은 안한다 해서 깜짝 놀랐다.
당연히 해괴망측한 일이라고 단정지을 줄 알았던 예측을 보기 좋게 뒤집는 말이었다.
한술 더 뜨신다 황준량님.
축구선수 박지성이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고 로버트.박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해서 그만 쓰러질 뻔 했다.
그들은 서책만 읽어대는 융통성 없는 선비들이 아니다. 산수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남자들이다. 그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학문과 교육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염려도 나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는 것보다 앞서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깨우침은 교육에서 나온다 라고 하셨다.
알 듯 말 듯 하다 하자 부연의 설명을 하시는 퇴계선생님.
어떤 학문이라도 완벽한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고, 역설되고,
연구하다보면 매번 다른 학문이 생겨나는데 어떤 것은 충돌하고, 어떤 것은 화합하면서
생성되고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학문의 연구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정점으로 모여지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다가 아니라 가치 충족을 위해선
하늘의 이치와 자연의 법칙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려면 앞선 자가 솔선하여 가르치고, 알지 못하였던 것을 깨닫게 하여
모두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니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천년대계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슬쩍 동의를 구하셨다.
틀린 말씀이 아닌듯하여 반론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금계가 세상이 알아주는 석학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뜻이 접혀졌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던 교육의 정신은 또 다른 교육을 지탱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정신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또 그가 목민관으로 행했던 백성만을 위한
마음가짐과 몸으로 실천하여 보여 준 청빈함은 후손들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다.
금계선생이 죽었을 때 수의마저 갖추지 못해 베를 빌려서 염을 했으며,
관에 의복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검소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의 정신을 배워야 할 사람들이 우리 중앙엔 넘쳐나는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멈추지 않는 의식의 세계라는 것은
당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네요 라고
준량선생을 향해 물었다.
그가 내 의문에 답을 주신다.
“모든 현재는 그 자체의 과거라 할 수 있지요.
그 현재라는 것이 과거 없이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오, 단순히 지나간 시간에 있었던
사실만이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간이 관계한 과거’ 만이
역사라 할 수 있는데, 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쉽지가 않다. 그는 쉽게 설명해주려 애쓰는데.
“쉽게 말할까요? 과거의 교육을 알아보는 것은
미래의 교육을 예측하기 위해서다.”
재미있다는 듯 싱글벙글 웃는 모습 한 구석에
사내아이의 장난기가 살풋 보인다.나는 말했다.
“당신을 외면해선 안되겠네요.
금양정사를 잠재워선 안된다는 말 같아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통해 새 것을 익힌다는 고사성어.
“너무 간단하네요?” 내가 말하니
“간단한듯하지만 잊혀지기 쉬우니 간단하지 않지요”라고 하신다.
“하지만, 이곳은 세월 뒷마당에 몸을 숨기고 잠을 자고 있는 거 같아요.”
그의 눈치를 살피며 그리 말하자 이번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다.
“자고 있다. 라.....그렇지 않아요, 항상 꿈을 꾸지요.”
“옛날을 그리워하는 꿈인가요?”
“미래를 생각하는 꿈도 함께 꾸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잖아요”
“느끼지 못할 뿐 그 누구라도 비껴갈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흔적 아니겠소.”
비껴갈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이라.
“제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은 것처럼요?”
“비유하는 솜씨가 제법이구려. ”
“하지만, 이제라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꿈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크게, 달라질 것이 뭐 있겠소. 나는 이미 과거의 한 자락이고,
그 자락을 펼친다고 갑자기 나아지지도 달라질 것도 없다 생각하오.
다만,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만 않는다면...”
“잊지 않는 다면요? ”
“그것만이라도 감사하지요”
“너무 겸손한 말씀이네요. 전 당신을 만나니
우리 고향에 대한 긍지가 생기는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뱉는 순간, 긍지라는 말이 저절로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가 왜 나를 귀한 손님이라 했는지를,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다정한 미소. 내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짐작된다는 눈빛.
조용히, 아주 느리게 그가 입을 떼었다
“이렇게 와주어, 너무나 감사하오 ”
나는 몰랐던 답을 기억해내어 해답을 맞춘 아홉 살짜리 아이처럼 조금 흥분되었다. 그
리고, 정확히 알아차렸다. 침묵을 헤집고 내 심상을 진동시킨 그 무엇은 바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내 무딘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그의 속삭임이였다는걸!
사람들에게 자신은 금양정사를 한시도 떠난 적이 없음을 알리고픈 바램이였다는걸.
멈출 수 없는 의식의 세계, 즉 그의 정신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라는걸.
결코, 가볍지 않은 당당한 자부심이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금계선생과 똑바로 눈을 맞추었다. 말했다.
“당신은 티끌이 아니라 보석이고, 금양정사는 그저 오래되어
아름다운 옛 기와집이 아니라 내 고향의 보물입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무척 미안하지만,
이해해 달라고 했다.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작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88호로 등록 되었으니 이제 저 묵은 먼지를
털어낼 것이라고도 했다. 아마도 더 이상 당신은 깊은 잠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꿈꾸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눈 안에 그가 들어온다.
“당신을.....안아 봐도 돼나요?”
그의 젖은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듯하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곳에 계속 머물러 주실거죠?”
구름도포가 들썩거렸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을 감았다.
영혼의 옷을 입은 그의 품은 어떤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어떤 촉감도 잡히지 않았으나, 따뜻했다.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너무나 다행입니다’ 그런 말을 가슴으로 내뱉은 거 같다.
고개를 돌려 이 황 선생을 바라보는데, 민망한 꼴을 이해해 달라고 말을 하려는데..
그 곳엔 아무 것도 있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준량선생을 보니 그 역시도 사라지고 없었다.
스승을 향해 누워있는 비석만이 뜨거운 여름 햇살이 버거운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황준량 선생의 학문과, 그의 청빈한 자세와
그의 인품을 존경해주었던 퇴계선생의 비석을 향해 걸어갔다.
‘그와 함께 해주어 감사해요. 당신께서 그를 아끼셨으니 그는 항상 든든했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그의 비석을 쓰다듬으니 더운 열기가 전해진다.
왜 그의 후손들이 이퇴계 선생의 비석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지 헤아려졌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났는지, 문으로 동행인들이 들어온다.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들이다.
내가 그들을 만났다고 한다면, 뭐라고 말을 할까?
다시 한 번 둘러본다.
가야하기 때문이다.
금양정사 앞 쪽에
심어진 오동나무가 마치
현판을 가릴세라 옆으로 누워
가지를 뻗고 있다.
이십년 수량 밖에 안됐다 하니 누가,
무슨 의중으로 그걸 심었는지 궁금했다.
적막한 금양정사가 어느 후손의
가슴팍을 답답하게 했나보다.
빨리 자라고 후다닥 굵어지는
오동나무라도 보면서 가라앉는 시간을 견디라는 헤아림이었나...
둘러봐도 역시 부연의 설명이 없다.
갈 차비를 서두르니 흩어졌던
침묵의 마당에 다시 고요가 몰려온다. 두고 가려니, 가슴이 왜 그리 아려올까.
보물을 발견한 희열이 내 심장을 붉게 달구건만, 코끝에 몰리는 이 아릿함은 무엇일까..
또 뒤돌아본다.
금방이라도 그가 지붕위로 불쑥
얼굴을 내밀고 나를 바라볼 거 같은데,
가지 말고 이곳에 남아달라는 눈빛을 건네줄 거 같은데,
그러면 모든 걸 다 내팽개치고 그에게 달려갈 거 같은데,
내 마음이 이리한데....... 처연한 하늘아래 무심한 매미소리.
단 몇 장의 자료만으로 남겨진, 어느 목민관의 이야기가 어떤 거대한 파장이야 불러일으키겠는가.
그런 기대를 꿈꾸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금양정사에 넋을 담고 머무르면서
후손들에게 티끌만한 자부심정도만 심어줄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했다.
이 고을 사람들 가슴에 작은 긍지 여물게 심어주면 기쁘리라 했다.
그 말이 깊고도 무겁다 말한다면, 억측이라 할까?
오르는 길목에 고운 빛깔 나무계단 두르고,
한 칸씩 밝고 오를 때 마다 살아있는 웃음소리 울리고,
낮은 책상 줄 맞추어 아이들 학습장체험이라도 한다면
졸고 있던 댕기소년들 신바람이 날 텐데...
부산했던 한낮이 물러나면
고단한 밤이 되어 외롭지 않을 텐데...
그런 날이 오겠지.
밀실에 누워 꿈꾸는 그의 마음 곁에 내 마음 누이고 왔으니
좋은 날이 오겠지.
그리 생각하며 금양정사를 떠났다.
모퉁이만 돌면 금방 숲 속으로 사라질 마당 깊은 기와집.
내 고향 풍기의 큰 스승이자 어른의 영혼이 머무는 아름다운 집.
노년을 아름다운 정사에서 책과 함께 도를 강론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기원했던 소박한 그의 꿈을 시로 표현했다지.
금양정사
휘어 꺾여 맑은 산골 물을 따르고
얽히고 돌아 끊어진 다리를 건너네.
언 구름이 돌구멍에서 피어나고
찬 눈이 소나무 끝에 쌓이네.
자리를 편 듯 바위가 예스럽고
병풍을 두른 듯 산이 높다네.
봄이면 한 초가집에 돌아가서
고기 잡고 나무하면서 늙으리
黃俊良(1517~1563년)
차가 덜컹거렸다.
행여 그가 빠져 나갈세라 가슴 안쪽 깊숙이 그를 밀어 놓고 고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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