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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인간적으로 해야할 것
'창조주신'을 하나님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면 큰 코 다친다.
기독교가 창조주신에게 하나님아버지나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고 이름을 부여해주고 자기종교만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 이름의 신이 성경에 나오는 하늘의 신(창조주신)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하려면 창세기부터 시작된 온갖
부족 신들의 이름도 같은 분이라고 주장해줘야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각 부족들의 신들의 이름=그들의 창조주신의 이름
*여호와= 유대인이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나님=기독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느님=천주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알라=이스람교가 부르는 창조주신의 이름
*하늘의신=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라, 예레미야
등의 인물이 기도드렸던 대상
옛날에는 '유대인'만 사랑했을 것 같고,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인'만 사랑할 것 같이
착각하면 정말 큰 코 다친다.
'성경'을 자신들이 썼다는 우월감과, 창조주 신을
여호와, 야훼, 엘로힘 등으로 부르면서 자기들만의
신인줄 알고 떵떵거렸다가 큰 코 다친게 유대인이다.
성경은 사람이 쓴 것으로 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고,
성경 그때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건
이라고 생각하고, 현대에 와서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말고 다른 나라들은 적용이 안 된다고 떵떵거렸다가는
큰 코 다친다.
'창조주 신'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과 전 인류의
창조주 신이시며, '성경'은 온 우주와 온갖 피조물들,
특히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앞으로 태어나 죽을 전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창조주 신의 법전이시다.
성경을 읽을 때 '창조주 신'을 기독교식으로
'하나님아버지'라고 읽으면 창조주 신이 꼭
기독교만의 '신' 같으시다.
하지만 불신자들이 신이 없다고 하거나
그냥 '신' 이라고 하듯이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이라고 읽지 말고
'창조주 신' 이라든지 '신' 이라고 읽어야 한다.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서, 어느 종교에서
어느 관점에서 '신'을 느끼는 것은 다 다를지라도,
그래서 신들이 무지 많은 것 같을지라도,
영의세계에서의 '신'은 총체적으로
딱 '한 분' 이시다.
더 없다.
더 있으면 '신'들끼리 전쟁해서 1인자를
가르느라고 인간새우등 몽땅 다 터진다.
그러면 신들의 전쟁 때문에 지구나
우주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창조주 신' 외에 '신'이 더 있으면
그 어떤 신이든 전지전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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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신)의 온 인류적이고 전 인류적이고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신)께서 인간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간략하게
말씀하신 하나님(신)의 법전이지만 그 안에 다 들어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시스템일 뿐이다.
“하나님(신)께서 그렇게 하셨다” 하시는 것도 전 인류적이고,
“그렇게 하시겠다”도 전 인류적이고, 축복을 내리심도
전 인류적이고, 징계를 내리심도 전 인류적이다.
그런 것은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타 종파든 불신자든
그 누구든 다 해당된다. 믿든지 말든지 알든지 말든지
싫든지 좋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 모두 다 해당된다.
하나님(신)께서 창조하신 자는 ‘아담’이다.
하나님(신)께서 말씀하시는 대상은 ‘아담’이다.
성경은 하나님(신)의 말씀이시다.
성경은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은 죽어서 영의세계로 들어가 버린 ‘아담’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 땅에서 숨을 쉬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아담’에게 “이렇게 살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흙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
“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니 계산을 당해야 한다. 늙고 죽고”
내가 아담의 후손인지 알아도 흙이고 죽어야 하고,
몰라도 흙이고 죽어야 하고,
싫어도 할 수 없다 흙이니 죽어야 한다.
좋아도 할 수 없다 흙이니 죽어야 한다.
유대인이 “우리는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대한민국이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다.
일본이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인도가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미국이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다” 외쳐도 상관없고,
몽땅 해당된다. 몽땅 아담의 자손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영의세계의 모습에서
부자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 품으로 갔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조상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인 것일 뿐이다.
만약 예수님이 한국에 태어나셨다고 한다면 이 때
‘단군 할아버지’ 품안에 있다고 설명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미국에 태어나셨었다면 미국의 조상의 품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일 뿐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태국이든 필리핀이든 인도든 소말리아든 다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그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관리하신다. 우리는 너무 멀리 와서 모를 뿐이다.
하지만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 수준으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파헤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죄인 된 인간들을 이렇게 다스리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쓰신
성경을 죄인 인간들이 자기들 학식 위에 성경을 올려 놓고 요리 오리고
저리 오리고, 이렇게 파 보고 저렇게 파보고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고
한들 절대로 너희들은 모른다고 하신다.
성경에서 역사를 말씀해 주신 것은 인간들 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왜 그런 역사가 생겨났는지는 조상의 죄로부터
시작 된 것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영의세계에서 아담에게 선포하신 판결 기한의 끝이 와야
인생의 결말이 나는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를 표본으로 알려주신 것은
한 가정으로부터 부족이 형성이 됐고 나라로 형성이 됐고, 각 나라가
그렇게 살고 개인이 그렇게 살고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서 그런 환난이 온 것이고 그렇게 살아서 축복이
온 것이고, 때가 되어서 징계가 끝나는 것이고를 알려주신 것인데,
하나님이나 예수가 관련된 추상적인 말씀들을 해부할 수는 없다고 하신다.
그것은 영의세계에서의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판결문일 뿐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사람으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훤히 알 수 있는 말씀들이
있는데 그런 말씀들을 찾아 지키던지, 아니면 가정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배우고 사회생활에서 배우고 나라에서 배우고 하는 바르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고, 부모에게 잘하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고, 법도 잘 지키고, 남도 잘 챙겨주고 살아도 성경을 거의 지키게
된다.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 받고 존경 받는 사람은
거의 하나님께도 칭찬 받는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른 칭찬 받는 사람은 곧 들키게 된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좋은 말을 해도 속이 메스껍다.
사람도 느글느글 하다. 하나님도 역겨워 하신다.
성경의 성격을 전체적으로 보면 세 부류로 나눠 볼 수가 있다.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깨닫게 하신다.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안다고 믿는다고 자랑삼고 떠들면
오히려 혼나는 것이 있고,
사람이 꼭 ‘실천’에 옮겨야 하는 명령과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주의사항’도 있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행위로 형성된 ‘하나님의법 세계’와
‘죄의 법’ 세계로 실시간으로 계산하시고
사람에게 내리시는 ‘축복’하심과 ‘징계’하심의 명령말씀이 있으시다.
첫째는 ◆하나님(신)께서 일방적으로 하신 것이 있으신데 이런 부분은
사람들이 믿는다 안 믿는다 어쨌다 저쨌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 무엇 때문에라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신)의 뜻이고 마음이실 뿐이다.
하나님(신)의 창조를 믿네 안 믿네 라는 것들,
예수가 남자의 정자도 없이 여자의 홀몸으로 태어난 것을 믿네 안 믿네
라는 것들은 나의 뜻과 믿음과 주장과 시인과 외침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녀석들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신)의 역사를 못 믿네,
아이고 답답하네, 이 녀석들을 어찌할꼬!” 하시나?
절대로 그런일 없다.
“하나님(신)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너도 창조하셨고, 남자의 정자도 없이
사람으로 태어났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안 믿냐?
다시 이 땅에 또 올 것인데 그것도 안 믿냐? 너는?
성경에 써 있어도 안 믿냐? 너는?
저 녀석을 당장 죽여 버려라!”
그렇다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 중의 오산이다.
“그래! 너는 그것을 믿는다고? 어디 네 목숨을 걸 수 있냐?
혈서를 좀 써볼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시인할 수 있냐? 너는?”
하는 하나님(신)이냐?
하나님(신)을 미치광이 정도의 왕으로 보냐?
그런 하나님(신)이면 발로 차버려라.
사람이 알든 말든 믿든 말든 좋든 싫든 하나님(신)은
그냥 하나님(신)의 일을 하실 뿐이다.
사람이 그냥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신)의 능력을 ‘정자’로 제한시키는 것이고,
하나님(신)의 능력을 ‘예수구원’으로 제한시키는 것일 뿐이다.
재판장이 망치로 세 번 땅땅땅 두드렸다고 판결이 난 것이 아니다.
안 두드리고 그냥 재판을 끝냈다고 판결이 안 난 것이 아니다.
판사의 판결의 ‘말’로 재판은 끝난 것이다.
망치로 땅땅땅 하는 것은 그냥 재판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의례적인 형식일 뿐이다.
하나님(신)은 벌써 판결문이 창세기부터 나온 것이고,
예수는 '땅땅땅'과 같은 것이다.
예수가 태어나셔서 예수의 할 일을 하고 가셨으면 가신 것일 뿐이다.
예수가 왔다 갔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실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안 왔었기 때문에 구원을 못 시키시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은 나 때문에 한 것도 아니고, 너의 믿음을 테스트 해보려고
한 것도 아니고, 너 하나 때문에 한 것도 아니고, 네 나라 하나 때문에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님(신)의 뜻일 뿐이고 마음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신)과 사람과의 역사기록일 뿐이다.
둘째는 ◆사람들이 꼭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 말씀이 있다.
“이렇게 하라” 라고 쓰여졌지만 영의세계 법으로 쓰여진
형이상학적이나 추상적이거나 해서 사람이 지키거나
행할 수 없는 말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성령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라는 말씀들이다.
그런 말씀들은 우리에게 하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라는 말씀인데,
영의세계에서 하나님(신)께서 그 사람 영체에게 말씀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런 때를 “성령의 들을 귀가
열렸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성령의 음성을 듣겠다고 들고 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신)께서 들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말씀들이 있는데,
부부관계, 자녀관계, 가족관계, 상전과 종 관계, 이웃관계,
나라관계, 교회와의 관계,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나의 성격이나 성품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실행해 나갈 수 있는
말씀들이다.
이런 말씀들을 지키면 복을 받는 것이고,
이런 말씀들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다.
신약에서 많이 말씀하셨는데 남편의 말에 순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상전에게 순종하고, 종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착하고, 정직하고, 저울을 속이지 말고,
분을 내지 말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고, 험담하지 말고,
이간질 하지 말고, 아닌 척, 착한 척 하지말고 등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있다.
그런 것도 각 나라마다 약간씩 다를 수는 있는데
그 나라 법대로 그 나라 관습대로 적용이 된다.
옷을 벗고 사는 나라는 옷을 벗고 사는 대로, 옷을 입고 사는 나라는
옷을 입고 사는 대로, 어른에게 이름을 부르는 나라는 부르는 대로,
존칭을 쓰고 촌수를 따지는 나라는 그 대로,
기도를 길게 드리는 나라는 그대로, 짧게 드리는 나라는 그대로,
기도를 무릎을 꿇고 하는 자는 그대로, 다리를 뻗고 하는 자는 그대로,
그 나라 사는 방식대로 살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다 해당이 되는데 이런 잘못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징계로 계산된다.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과 사람이 지켜야 할 육적인 말씀이
같은 구절이나 앞 뒤로 나열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해야 하는 말씀에 신경 써야 한다.
성경에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행위에 밑줄을 쳐봐라.
그리고 그대로 행하라.
그렇게 하나님은 나의 행위를 판결하시겠다는데,
나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만 드려서 소원 성취하는 요술램프 지니
정도로 알아도 되는 것인지, 그러면 주의 종들은 대박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하나님은 나가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데,
교회에서 기도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절에 가서 염불만 하고
수행하고 도를 닦는 것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불교를 비하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올바른 사회생활은 없이 새벽이고 낮이고
교회에 가서 기도해야 하고 봉사해야 하는 삶이 기독교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 절에서 스님이 하루 종일 목탁을 두드리시며 염불을 외우시며
도를 닦고 수행을 하고 시주가 들어오는 것으로 먹고 살고,
절을 청소하고 관리하고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 것이다. 기독교만 거룩하다고 주장해서 착각하고 살아서 그렇지
다들 똑 같은 종교생활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정작 네가 기도하지 않아도, 네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고 하시는데 말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기독교인이 기도를 드려서
그러는 것이라고 얼마나 떠들어 댔는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나도 조금 했으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일을
이루셨는데, 우리의 선함의 행위를 보시고 복을 주시는 것이지
무조건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처음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야 우리도 하나가 되어서 신학이든
신앙이든 선행이든 하나가 되어 정진했었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먹을 것을 주고 하는 구제와 선행을 했었다.
그래서 복을 받았다.
그러다 변질되어 파가 여러 개로 갈라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기독교인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선행을 보실 뿐만 아니라 기도드리고 있는 “너는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으신다고 하신다.
지금은 기도를 많이 드리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욕을 먹고 사는 기독교인으로 1위를 꼽고 있다.
기독교에서 ‘의인’과 ‘악인’의 개념을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로 설정했다.
자기들은 의인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도 꼼짝을 못하고
그 일을 이루고야 마는 것처럼 설정했다. 그래서 삶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의인과 악인의 개념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의인과 악인의 개념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아무리 “악인은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들 나를 악인으로 계산하시면 내가 그물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해서 얼마나 그물에 안 걸리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시편에 그렇게 되어있다고 나도 그렇게 기도하면 큰 코 다친다.
내가 장본인이다. 나의 악인이 다 계산되고 있었다. 기도하든 말든.
(시편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아멘.
(시편 141:10) "악인은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아멘.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기쁜 소리며, 슬픈 소리며,
탄식의 소리며, 소원의 소리며, 감사의 소리며, 짜증의 소리며,
원망 불평 불만의 소리며, 합당하지 않은 지껄이는 소리며,
다 듣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계시다.
그 ‘의인’ 이라는 것은 정직한 것이고, 성실한 것이고, 착한 것이고,
바른 것이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공평한 재판을 하는 것이고,
사람으로서의 합당한 도리를 행하면서 칭찬 받고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무조건 기독교인의 공로라고 치부하지 말고,
기독교인의 기도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선하게 살고 있는 의인들의 힘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 중에도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고,
불신자 중에도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고,
타 종파에도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는 것이다.
악인은 살인자만이 아니다.
네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너의 의로운 행함을 찾으신다.
일반인이 그냥 사는 것 같아도 그냥 말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찾으신다.
우리 가정은 기독교 우등생이라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우리 교회 보물’
이라는 소리도 듣고, ‘달란트도 많다’는 소리도 듣고, ‘공 예배든 기도든
열심히 한다’고 소리도 듣고, ‘목사님 측근’ 이었고, 나름 ‘교회생활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닥 사회 봉사생활을 많이 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교회에서 잘 지내면서 기도만 충실하게 드려도
잘하는 것인 줄 알았고,
기독교인만 천국에 가고 불신자나 타 종파들은 다 지옥에 간다고 배워서,
신문사에서 기사를 발췌하면서도 기독교인이 아닌 곳에서 김치를
담가주기를 하거나 반찬을 만들어 주거나, 소외계층 어르신에 식사를
대접하거나, 이웃돕기에 발 벗고 나서거나, 각종 선행의 뉴스를 보면서,
“이래봐야 예수를 안 믿기 때문에 다들 지옥에 갈건데 멀” 그랬다.
나는 그런 선행을 하지도 않아놓고 말이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가신 마리아 테레사 같은 분을
놓고도 지옥에 갔네 어쨌네 했다.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너는 아무 것도 안하고 손 놓고 있으면서.
어느 교회에서는 지옥에 갔다고 그러고, 어느 영성의 대가 목사는
천국에 갔다고 그러고… 아주 통탄할 노릇인 것이다.
겨우 어느 교회에서 어르신에게 쌀 1키로씩 주겠노라고,
식사도 대접하겠노라고 광고를 해서 시작을 했는데 100여분이
모였다고 한다.
그런데 노래고 뭐고 보여줄 것 보여주고 설교라는 것도 주야장창 하고
실컷 할 것 다하더니 끝에 나갈 때에 쌀 1키로씩 주었다.
끝까지 버티고 있었던 어느 할머니가
“다른데서는 10키로씩 20키로씩 주던데 1키로가 뭐냐?”고 하셨다.
“할머니, 다른데서는 한번에 10키로 20키로지만 우리는 한번
오실 때마다 1키로씩 드리니까 1년 동안 50주를 계속 오시면
50키로가 넘습니다” 라고 설득을 시켰다.
그런데 다음에 다들 안 오시더란다.
“너 같으면 오겠냐?”…
정말 쌀 1키로라도 필요한 분은 올 것이다.
그것을 노리지 말라.
그것은 구제가 아니라 갖고 노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리고 자기설교를 그렇게 드러내려고 하니 짜증을 내는 것이다.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말씀을 마구
꾸겨서 그 사람의 머리 속에 넣어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내가 선을 베풀 때 왼손이 하는 것 오른 손이 모르게 하지
그걸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핑계 대고 떠들 것 다 떠들고 주냐!
동네에도 가끔 마이크를 대고 떠드는 소리가 있다.
바가지든 고무장갑이든 무엇을 준댄다.
이제는 쓰레기 봉투나 담는 용기를 준댄다.
꼭 받아가야 한댄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온건가? 하고 가보면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몇 시간을 떠드는지 먼저 주면 그냥 가버리니까 끝에 가서
준다고 하는데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기다리고 서 계신다.
그것 좀 받아가려고.
그것을 그냥 주면 고마울텐데 한참을 떠들고 주면 받는 것도 지겹다.
다시는 이런 거 안 속는다고 간다.
교회에서도 그렇게 주지 말라. 그냥 줘라.
우리 교회에서 이런 거 준다고 소문 내 달라고도 하지 말라.
그냥 선을 베풀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솔선수범해서 선전하시고 다니신다.
교회로 오라고 콩 하나씩 던져주는 그런 구제는 하지 말라.
교회를 오든지 말든지 그냥 하는 것이 ‘선’이지.
교회로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라고 기독교 자체 내에서
세운 목적일 뿐이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사심’이 들어간 것은 선이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 사심이 없는 것이다.
천국일지라도.
최고로 사심이 많은 곳이 또 교회이다.
이런 것을 절에서 했다고 해봐라.
“쪼잔 한 것” 들이라고 당장 욕을 했을 것이다.
“줄려면 그냥 주지 그래 절에 한발씩 오라고 1키로씩 주냐?
나 같아도 안가겠다” 할 것이다.
꼭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자.
그 할머니들이 거지냐? 1키로씩 받으려고 교회 문턱을 밟게?
기독교인은 지옥얘기는 입도 뻥긋도 하지 말고 내 마당부터 쓸어야 할 것이다.
헐벗은 자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해도 상무시하고 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거지냐? 쌀 1키로를 약점 삼아 매주 교회로 오게 하는 수법을 쓰게?
천국을 교회가 보내는 것이냐, 주의 종 네가 보내는 것이냐? 기독교가 보내는 것이냐?”
누가 선하게 살든 말든 지옥에나 간다고 하고…
네가 갈 것이다 그 넘의 지옥.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죄!”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전부 일반인들의 선행이 많았고 간혹 교회의 선행도 있긴 있었지만
그거야 뉴스에 안 나오는 것도 있을 것이니까.
그래도 %로 따지자면 기독교가 많이 딸린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선행을 의인이라고 하신다.
나는 기독교에서 뭘 배운 거냐 도대체.
잘 가르쳐 줬는데 못 알아들었냐? 아님 잘 못 배운 거냐?
하나님은 누구든 기도를 드리던 드리지 않든 그 사람의 하루 종일
일거수 일투족을 계산하시는데 생각 느낌 마음 말 눈길 뜻 목적 동기
과정 행동 등 계산이 안 되는 것이 없다.
기도만 많이 한 자보다 선한 행위를 많이 한 자가
더 좋은 계산을 당한다고 하신다.
무조건 기도로 털려고 하지 말라신다.
사람이 하나님께 “해야 하는 것”은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고 못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곳도,
교회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주의 종들이 보내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유대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천주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불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슬람교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 땅에서 사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기관도 그 어떤 종교도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오직 전지전능 하신 창조주이시며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뜻으로 간다.
“기도해야 하는데, 성경 읽어야 하는데,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봉사를 해야 하는데,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데,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성령이 충만해야 하는데, 능력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예수를 사랑해야 하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야하는데...”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하신다.
과거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 이라는 말씀을 붙들고
어떻게 해야 심령이 가난해 지는지 고민 많이 했다.
이런 말씀은 내가 심령이 가난해 지려고 해서 가난해 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떤 좋은 행위 값으로 계산이 되는 것인데,
아마도 나의 마음에 욕심이 없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생활에
감사하면서 즐겁게 사는 삶이 아닌 가 싶다.
“너는 참 심령이 가난하구나, 그래 천국 같이 살아라” 라고
판결문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똑 같이 주신다.
천국 같은 만족의 삶. 감사하는 삶.
기도하게 하신다, 성경을 읽게 하신다, 예배를 드리게 하신다,
봉사를 하게 하신다, 성령을 주신다, 능력을 주신다, 예수를 믿도록
믿음을 주신다, 예수를 사랑도 할 수 있도록 사랑을 주신다,
예수가 좋다고 예수를 사랑한다고 즐거움으로 입으로 고백하게도
하신다.
사람이 하나님께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다. 내가 한다고 하면 오만불손이다.
셋째는 ◆ “그렇게 하라” 하셨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 징계를 주시는 판결문이라는 것도
“하라”를 쓰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하시기 때문에 판결문이든 무엇이든지
“하라” “하지마라” “그렇게 되라” “그렇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보면 꼭 우리 사람더러 하라고 하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판결문 명령이실 뿐이다.
네 눈이 범죄하면 빼버려라, 내 손이 범죄 하면 잘라버려라,
네가 실족하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져죽어라 라는
말씀들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벌을 내리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실수로 다치든 재수가 없어서 다치든 우연히 다치든
질병에 걸리든 사고가 나든 해가면서.
성경을 역사 식으로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 쓰셨는데,
그곳에 나오는 나라의 모습대로, 그 나라 모습대로 그 사람의
모습대로 우리들도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흥하고 어떻게 해서 망하고,
어떻게 해서 포로로 끌려가고, 어떻게 해서 죽게 되고,
어떻게 해서 살아나고가 있는데,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는 모를지라도 그 말씀대로 우리도 심판을 받고 살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대 왕들의 삶을 돌아보고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도 그들의 삶을 보고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이스라엘 문화로 쓰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주로 쓴 것 같아서 우리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너희도 그렇게 살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그냥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전능하신 ‘신’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라고 하시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을 안 믿고 안 섬기면 다 죽여 버리시겠다는 것이 아니시다.
하지만 일부 나라든 일부 사람이든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알려주시고 끌어가시는 것은 있으시다.
성경은 역사공부를 하듯 분류해서 공부하고 외우고 밑줄을 긋고
하는 것도 상관은 없겠지만 하나님의 법전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모르겠더라도 그 안에 나오는 사람이 행해야 할 것들인
‘실천사항’과 ‘하나님의 주의 사항’ 이 있는데
신약성경에 많이 써 있다.
이런 것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법은 외우고 믿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행하라고 있는 것이다.
행할 것을 찾아라.
내가 한다고 떠들면 오히려 안 되는 것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고 나서 내가 하지 못할 것들이 있다.
내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태초에 있었던 일들,
하나님께서 계시다.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천군 천사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들인 노아를 선택하시고 방주를 짓고 구원시키고 온 인류를
홍수로 멸하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모세를 선택하시고
애굽 나라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노예로 살고 있던 야곱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구원시켜 주시고, 예수는 남자의 정자도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태어나고,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태형 39대를 맞고 십자가에 매달려 말려죽으셨다,
나중에 재림하실 것이고, 기독교인들은 휴거를 당할 것이고,
기독교인들만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는 그냥 일반적으로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해도 이상한 것들,
그 이론에 테클을 걸만한 것들,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린다 : 예수는 이단일 뿐이고 사람일 뿐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하는 이론들,
▶창조다 : 진화다 이론들,
▶하나님 : 부처-알라-루시퍼사탄-악마-마귀-귀신 등 다른 이론을 댈 수 있는 이론들,
▶예수가 하나님이다 : 아니다 사람이다 그런 이론들,
▶성경을 하나님이 쓰셨다 : 성경을 사람들이 썼다 그런 이론들,
▶우리만 천국에 가고 : 니네는 지옥에 간다는 이론들,
▶어디를 와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들,
▶성경 : 토라-탈무드-코란-불경-몰몬경 등 그런 이론들,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의 것에 사람의 생각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테클 걸 수 있는 이론들,
각 사람마다 무언가 다르게 보고오고 무언가 다르게 듣고 했다고 그런 건
마귀가 알려주는 거야, 그런 건 귀신이 알려주는 거야 할만한 것들,
예를 들면 “지금 성령으로 내가 잉태됐다”고 말했을 때
"이게 미쳤나?" “그런 게 어딨냐?” “마귀 들렸네, 귀신 들렸네”
라고 하는 것들, 그런 것을 가지고 믿는다 믿지 않는다,
맞다 틀리다 떠드는 것은 대책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떠드셔도 귀신이 그러는 것이라고 할 것이니까,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서로 논쟁을 벌이고, 서로 분을 내고, 단절을 하고,
폭력이 일어나고, 전쟁을 벌이고, 떠들어도 neverending 인 것들은
사람들이 신경 쓸 문제가 전혀 아닌 것이고,
사람은 자기가 처해진 곳에서 충실하게 살면 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도 신경 쓰시지 않으시는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 생존 시에도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살았던 예수가 귀신들린 것이라고 미친 것이라고
이단이라고 죽여야 한다고 떠들어도 다 죽여 없애버리시지 않으신 것이다.
까짓거 천사 하나만 와도 다 죽여 버리시는 권세가 있으시다는 데도
가만히 피해서 가시고 다른 곳으로 가시고 자기 할 일만 하셨다.
그런 것들을 믿는다고 예뻐하시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다고 미워하시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나님의 헌법을 좀 아느냐 믿느냐, 모르느냐 일 뿐이다.
그런 것도 전부 하나님께서 알려주셨냐 안 알려주셨냐 이기 때문에
신경 쓰시지 않으신다.
만약 저런 사실들이 믿어졌다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인데,
내가 기독교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듣기 전에, 교육받기 전에 믿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신 믿음이고,
내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일대일 양육을 통해서 믿어지는
것은 공부를 해서 믿어지는 것이다. 둘 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셔서 아예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주시는 경우가 있으시고, 기독교 공부를 통해서 믿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역사 공부를 통해서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알 뿐만 아니라 믿기까지
하는 것 같은 경우나 같은 것이다.
역사공부를 통해서 역대 왕들의 일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게다가 그 역사기록들이 믿어진다. 그런 것이 믿어진다고
그 사람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필요해서 공부한 것일 뿐이고 누구는 필요치 않고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녀서 못 배웠을 뿐이다.
내가 역사가 믿어진다고 해서 내가 한글을 창제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해전에서 일본에게 이긴 것이 아니다.
내가 역대 왕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공부했다.
그냥 공부한 것에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기까지 걸 필요는 없다.
그냥 공부한 것에 자기 목숨을 담보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너나 나나 우리가 믿으나 믿지 않으나 보았든지 보지 못했든지
그냥 하나님의 뜻에 이루어진 것들,
나나 너나 우리의 믿음에 의해 변질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좀 안다고 좀 믿는다고 들고 뛰어도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믿는다고 안다고 증명한다고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걸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자기가 목숨을 걸고 믿든지 말든지 알든지 말든지
벌써 이뤄버리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과정을 알려주신 것일 뿐,
지금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느냐만 남은 것이다.
그런 것은 그냥 내가 배워서 좀 이 나라의 헌법을 좀 알고
각종 법률을 좀 알고 머리에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떠들고 가르치고 잘 믿는다고
내 목숨도 내 놓을 수 있다고 떠드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믿으나 믿지 않으나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똑 같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의 헌법에 대해서 잘 아나 모르나 믿으나 안 믿으나
잘 살던지 못 살던지 똑 같다.
믿는다고 잘 살고 안 믿는다고 못 살고가 아니다.
하나님의 헌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과정을 설명해 놓은 것에
밑줄 치고 쓰고 외우고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매달린들
그 헌법이 바뀌냐?
아니면 1등이라는 상을 받을까?.
하나님께서 성경 골든벨을 하시나?
각 나라마다 사람이 정해놓은 사람의 헌법은 바뀔 수 있다.
문화에 따라 형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바뀔 수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헌법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인데,
혹시 모르겠다.
사람들이 성경이라는 것을 번역을 하는데 자기네 형편대로
이 단어로 저 단어로 바꾸고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고
할 수는 있겠다.
지금도 성경을 그렇게 넣고 빼고 바꾸고 했다고
한탄하는 주의 종도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꾼다고
하나님의 성경말씀의 속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냥 하나님의 성경말씀의 목적대로 결과대로 실행될 뿐이다.
하나님의 성경말씀 명령들은 벌써 영의세계에서 형상화되어
운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운행하심은 성경이라고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사람들이 율법이라고 글로 쓰기 전부터,
창세기부터 운행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창세기 전부터 운행하셨겠지만 창세기부터 알려주셨으니
우리는 창세기로 알고 있어도 된다.
하나님이 정말 믿어지고 성경이 정말 믿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뿐이기 때문에 내가 믿는다고
떠들면 오히려 더 안 된다.
그런 것은 내가 믿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나의 믿음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나의 믿음으로 증명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주께서 주의 뜻에 의하여 주의 뜻대로 하셨을 뿐이고,
그것을 성경에 말씀해 놓으신 것일 뿐이다.
믿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믿어져도 상관없다.
하지만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라고만 해야 한다.
그러면 안 된다 하고 마시나? 하면 아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지는데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단절이 일어나고 폭력도 일어나고 종교전쟁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다치고 아프고 죽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나의 종교가 최고라는 자랑을 일삼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의인’으로 생각해서
자기 잘못을 모른다. 폭탄을 품고 들어가서 너도 죽고 나도 죽고 한다.
이 땅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천국 구원 없다
▶이스라엘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이스라엘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유대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유대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제칠일안식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제칠일안식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천주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천주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기독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기독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불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불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이슬람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이슬람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흰두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흰두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몰몬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몰몬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기타 종교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기타 종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무신론에도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구원은 없다
-무신론자인 각 사람마다 선하고 악하고 해서의 이 땅에서 축복과 징계는 있다.
이 땅에서는 종교든 선함이든 악함이든 의인이든 악인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그 무엇으로든 천국 구원은 없다.
단지 이 땅에서의 선하게 살았냐? 악하게 살았냐?의 축복과 징계만 있다.
어느 종교에 속해져 있든 어느 위치에 속해져 있든 너희들은 그저
너희들이 해야 할 일들만 잘 하라고 하신다.
너희들에게서 절대적으로 나올 수 없는 천국 구원을 주장해봤자
피와 전쟁과 죽음밖에 없다고 하신다.
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사람이라고 하는 너는!
더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 받게 되냐?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면서 살게 되냐?
더 나은 삶으로 나아지게 되냐? 더 존경받고 높은 자리로 나아지게 되냐?
재정이 풍성해지게 되냐? 행복하고 즐거워서 천국 같은 삶을 살아지게 되냐?
or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냐?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자기 밖에
모른다는 소리 듣고 사냐? 그래서 무시당하고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고 사냐?
더 가난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냐? 재정이 바닥을 치게 되냐?
슬프고 우울하고 괴롭고 눈물 나고 통곡하고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되냐? 만 있다.
개나 소나 누구나
‘천국 같은 삶 ⇦ ⇦ ⇦ ⇦ ⇦ 현재 위치 ⇨ ⇨ ⇨ ⇨ 지옥 같은 삶’
이냐 기로에 서 있을 뿐이다.
나든 너든 우리든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 이라는 곳은
오직 창조주 이시며 재판관 이시며 심판주 이시며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마음이시다.
‘완전 공평’ 그 자체이신 여호와 하나님아버지는
다 데려가시든 다 버려버리시든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의 몸 세포 한 개가 암세포가 되어서
내가 암 병에 걸려 죽게 되는 것처럼,
아담의 세포 한 개에 불과한 '나' 하나가
암세포가 되어서 지옥에 가야 한다면
'아담' 자체가 지옥에 가버리는 것이고,
아담의 세포 한 개에 불과한 '나' 라는 세포가
너무 의로워서 천국에 가야 한다면
'아담' 자체가 천국에 가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알고 나면 우리는 그저 “아~ 그랬구나!”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구나!”
“아담과 하와라는 조상이 그런 죄를 지어서 우리가 이렇게 사는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구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구나!”
“우리는 각 처소에서 맡겨진 대로 하나님께 예배할 사람들은 예배하고
아니면 아닌 대로 살면 되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구나!”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구나!”
“내가 죽으면 영의세계로 열조에게 돌아가는 것이구나!”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구나!”
“그리고 또 하나님과 천사들과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이구나!”
라고 말하면 된다.
“나는 그것을 철저하게 믿는데, 너는 그런 믿음이 없냐?”
“나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것을 믿는다! 이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 내 목숨까지 건다!” 라고 까불고
들고 뛰어도 하나님께서는 인정을 안 하신다고 하신다.
사람이 하나님께 하는 것은 인정이 안 된다.
그것은 그냥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일 뿐이다.
성경에는 구약에서는 ‘하나님’으로 말씀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로 말씀하셨는데,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내가 행함으로 옮길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고나, 그렇게 할 것이고나,
신약에서 예수가 그렇게 하셨고나, 그렇게 할 것이고나
그런 것은 그냥 읽고 넘어가야지 나에게 적용시킬 수가 없다.
나한테 그렇게 해주셨다고 나만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을 안다고 믿는다고 내가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교회로 오게 하시고 오지 않게 하시고, 나에게 시인하게 해주시고,
시인하지 않게 해주시고 나에게 믿게 해주시고 믿지 않게 해주시고
알게 해주시고 알지 못하게 해주시고 그런 것은 오직 하나님아버지,
예수의 뜻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내가 잘난 척 하면
오히려 더 안 되는 것이다.
성경 전체적인 것을 알아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또 그렇게
자기는 그런 것도 알고 믿어진다고 자기는 귀한 존재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 자랑이 된다.
이렇게 ‘신’께서 하신 일을 사람인 내가 이렇게 교리를 만들고,
저렇게 교리를 만들고, 그렇게 교리를 만들고, 이 교리를 믿어야 된다,
저 교리를 믿어야 된다, 그 교리를 믿어야 된다고 주장하면
‘이단’이 일어나고, 전부 이단이 되는 것이고,
자기 교리를 믿어야 된다거나 믿는다고 목숨 걸고 주장해봤자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만 일어나고 ‘단절’이 일어나고
‘종교전쟁’이 일어난다.
자기 교단 교리가 성경보다 월등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유대교’로 규명 짓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천주교’로 규명 짓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이슬람교’로 규명 짓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불교’로 규명 짓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기독교’로 규명 짓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사람이 만든 그 어느 종교로도 규명 짓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과학’으로 규명 짓는 것도 아니고
성경은 그냥 하나님의 사람 다스리심의 '법전'일 뿐이다.
성경은 전 인류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이신데 유독 유대인들을 위해서
쓴 것처럼, 이제는 영적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인만 위해서
쓴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 위해서 쓴 것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만 위해서 쓴 것처럼, 교회를 다니는 사람만 위해서 쓴 것처럼
기독교에서 해부를 해 놓았는데,
사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 인류를 통 털어서 해당되는
말씀이시고, 내가 믿던지 말던지 알던지 말던지 보았던지 보지
못했던지 실행되는 말씀이다.
한국 사람인 내가 한국의 헌법이나 기타 법규나 법률을 몰라도
다 해당 되는 것처럼 말이다.
법률을 다 공부하고 외우고 자료를 책으로 갖고 있고,
그 법을 가지고 직접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산골의 사람일지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다 해당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법전일 뿐이지
어느 교의 교리를 만들라고 토대를 마련해 주신 것이 아니다.
성경을 토대로 해서 교리를 만들어 놓고 그 교리에 매여서
성경을 버리는 기독교 교단이 허다하다.
어느 장로교단의 장로가 어느 신학교수에게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다.
그 교수는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면서
성경을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더니 “정말 그렇군요”
라고 하더니,
다음에 말하기를 “그런데 우리 교단 헌법에는 그렇게
안 되어 있다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가슴을 치고 돌아왔다고 한다.
어쩌라는 것인지, 성경을 믿겠다는 것인지,
성경을 실천하겠다는 것인지, 성경을 이용해서 교리를 만들고
교단을 만들어서 종교생활을 해보겠다는 것인지.
‘성경’이 기독교의 교리라고 주장한다면,
성경은
유대인의 ‘토라’와 같은 것이고, 불교의 ‘불경’과 같은 것이고,
이슬람의 ‘코란’과 같은 것이고, 몰몬교의 ‘몰몬경’과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기독교만의 경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성경’은 기독교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전 인류의 것이다.
너를, 나를, 우리를, 우리나라를, 전 세계를, 온 인류를 그 말씀대로
다스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실 뿐이다.
‘성경’은 유대인들도 다스리시고, 기독교인들도 다스리시고,
천주교인들도 다스리시고, 불교인들도 다스리시고, 이슬람교인들도
다스리시고, 몰몬교인들도 다스리시고, 흰두교인들도 다스리시고,
기타 종교인들도 다스리시고 기타 이단들도 다스리시고,
기타 삼단들도 다스리시고, 사단이든 오단이든 예외 없이
짐승들까지 온 우주만물을 오직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말씀이실 뿐이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다.
“권혁미! 네가 과거에 그렇게 교회에서만 사는 것이 열심이 특심 인 줄 알고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만 살려고 했던 너의 그 믿음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맘에 안 들면 마음 속에서 버려버리고,
교회에서 잘 배운 대로 예수를 안 믿고 죽은 조상이나 부모나 형제들은
지옥에 보내버리고,
그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도 꺼내실 수 없다기에
생각도 안하고 살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짜피 지옥에 갈 사람들이고,
타 종파들이나 불신자들이나 나랑 아무리 친해도 다 지옥에 가야하고,
그래서 그들과 친해지면 나도 불신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신자들을 기피하고,
내가 아무리 지옥에 떨어질 자들을 사랑해야 하고 눈물 흘리고 기도드리고
전도해야 한다고 배워도 사랑해지고 눈물이 나고 전도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죽어 없어져도 나 혼자라도 뚝심 있게 버티고
기독교 안에서만 사는 것이 대단한 양 살았던 삶이
오히려 하나님께 혼날 짓이라고 깨닫게 하신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께 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이니 네가 잘난 것이 아니고,
자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쭐대야 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그저 너와 관계되어 줄로 매어준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사랑하는 관계로 서로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필요로 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먹으면서 안부를 묻고 챙겨가면서 잘 살으라고 하신다.
내가 꼭 해야 하는 것들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라고 이 땅에서 교육을 통해 배운 것들이다.
“해라” “하지마라” “홍익인간” “전인교육” “바른생활” “도덕” “에티켓”
“공중도덕” “위계질서” “상부상조” “품앗이” “win-win”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 “대인관계” “경우” “도리” “성실” “정직” “공평”
“구제와 선행” “선함” “착함” “효자” “효부” 등
사람들이 인정하고 칭찬하는 존경하는 삶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예수를 믿으면 예수를 전하면 세상이 예수쟁이를 미워하고 핍박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쟁이로서 그냥 욕 먹고 사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누가 나를 욕해도 누가 나를 손가락질해도 오히려 하늘에 상급이 쌓이겠지?
하고 착각하면 정말 안 된다.
정말 세상을 루시퍼사탄이 다스린다고 하면 ‘예수쟁이’가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온 우주나 전 인류는 오직 한분이신
여호와 하나님, GOD, LORD께서 다스리시는 것이 때문에,
그냥 미움 없고, 그냥 핍박 없고, 마구잡이 공격 없다.
예수가 세상을 다스리시는데 예수쟁이를 미워하시고 핍박하시고
때리시고 하실까? 게다가 공평하심이 100% 라시는데!,
천만의 말씀이지 않을까?
예수쟁이? 네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일에 전문가를 말하는 것이다.
대장쟁이, 말쟁이, 예수쟁이,
그러면 예수에 대해서 전문가여야 한다.
예수 이름만 팔고 다니는 것이 전문가일까?
예수 하나님의 성품을 팔고 다니는 것이 전문가일까?
전도만 하면 상이 크다니까 나는 어떻든지 간에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피켓 들고 소리 지르고 들고 뛰어도
아무 소용없는데다 사람들도 싫다고 하고 하나님도 싫다고
하신다고 하신다.
‘개과천선’이 따라줘야 한다.
누군가 ‘예수쟁이’가 전도를 할 때,
그 ‘예수쟁이’의 말이 내 귀나 네 귀에 좋게 들려올 때는
그 ‘예수쟁이’는 그나마 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내 귀에나, 네 귀에나 시끄러운 소리로 들려오고
내 마음에서나 네 마음에서나 역겨움으로 나타난다면
그 ‘예수쟁이’는 바른 생활은 없고 예수 이름만 팔고 다니는 사람이다.
예수 이름만 믿고 바른 행실이 없기 때문에 욕하고 때리고 죽이는 것이지,
예수도 믿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사람도 원하는 바른 행실이 따라주면
자기도 예수를 믿겠다고 나서는 것이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 사람의 행함을 요구하시는 말씀은
전도자도 꼭 실천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전도자의 실천이 전도의 열매를 맺는다.
“소리 전도 말고 행함 전도” 그것이 바른 전도법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당신 같은 기독교인도 있습니까?”
라는 소리를 듣는 행함의 바른 전도를 하라.
집안에서 가만히 있으면서 교회만 다니면 다 좋은 사람 같고
누가 어떤지를 잘 모른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 알게 된다.
직장이라는 곳을 다니면 알게 된다.
사업 이라는 것을 하면 알게 된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교인들일지라도. 서로 교인 때문에 미치겠다고, 살 수가 없다고.
문을 닫는 것이 속 편하다고.
지들이 지들끼리 욕하고 살고 있다.
“저는 어느 교회 장로인데요, 곧 갖다드릴게요 외상으로 주시죠!”
“아! 교인이세요? 알겠습니다 가져가세요” 라고 했는데 떼어 먹히는 게
다반사란다.
교인이 손님으로 올까 겁난단다.
“너무 비싼데요, 이 아까운 헌금을 그런데다 쓸 수가 없죠. 막 깎아주세요”
라고 하는데다, 지가 알아서 더 깎아서 송금 한댄다.
이렇게 살면 당연히 기독교인이나 마나 누구도
욕하고 욕먹고 손가락질 당하고 산다.
이런 것이 주를 위한 고난 절대적으로 아니니 착각하지 말고
바른 성품으로 바꾸고 살아라.
이 땅에서도 상 없고 천국에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도 토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의 사탄이 세운 나라법은 안 따라도 되니까
아무데나 교회 세워놓고 “배 째라” 하고 있으면 안 된다.
당연히 욕먹고 손가락질 당하고 무너짐을 당하고 산다.
이래 놓고 세상이 자기를 미워한단다.
이를 어찌할꼬!
마귀가 무너뜨리는 것 아니다.
하나님께서 불법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라도 무너뜨리신다.
주의 종이라도 나라법 안 지키면 잡혀간다.
(베드로전서 3:1~10) (골로새서 3:13~23) (빌립보서 2:1~4) (에베소서 6:1~9)
(에베소서 5:22~33) (에베소서 4:28~29) 등 성경에서 사람이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들이 있다.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닌 행함으로 옮길 수 있는 말씀들이 있다.
그 말씀들은 내가 꼭 실천에 옮겨야 하나님께 토함을 안 당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을 많이 알고 배우고 외우고 한다고 해서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행해야 하는 것은 행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배우기만 하고 알기만 하고 외우기만 하면
결국에는 바리새인 밖에 안 된다.
세상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알고 외우고 하면 교수도 되고 선생님이 되는 것이지만,
성경에서 행함은 빼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 배우고 외우고 잔뜩 쌓는 것은
‘바리새인’이 된다.
성경에서 ‘축복 받는다’ ‘위대하게 된다’ ‘거룩하게 된다’ 라는 말씀만 붙들고
외우고 쓰고 늘어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축복을 받기 위해 어떻게 행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행함을 찾으시기 때문에 내가 행하지 않고 손만 벌리고 있으면
하나님께 더 혼날 수도 있다.
♥
성경에서는 무조건 사람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나? 라는 말씀을 찾아
밑줄을 긋고 외우고 나가서 실천하고 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4:24절) 말씀 같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라는 말씀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말씀이다.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인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라는 말씀에 밑줄을 긋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버려라. 참된 말을 하라. 참되게 행하라. 모든 삶에 있어서.
우리는 서로 하나이다. 한 몸.
그래서 네가 거짓을 일삼았든 악을 행했든 어짜피 너에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모습이 무얼까?
사람들에게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다” “그 사람 참 좋다”
“그 사람과 사귀고 싶다” “그 사람을 추천합니다” 라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라는 말씀만 붙들고 외우고 쓰고 늘어져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인 31절 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 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라는 말씀에
밑줄을 긋고 외우고 쓰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된다.
♥
우리는 우리가 행해야 하는 수준은 생각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배울 생각도 안하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가르치고 외우고
믿는다고 떠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하나님의 생각이고 뜻이고 방법이기 때문에 나는 몰라도 된다.
주의 종들이 설교를 할 때도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거나,
우리는 할 수도 없는 앞 구절 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설교하고, 막상 사람이
지켜야 하는 것을 본인도 행하지 않고 가르치기만 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잘못된 것이다 하시고 마냐? 아니다.
그 주의 종에게 마땅한 징계가 내려지는데 그 주의 종도 그 것이 세상이
예수쟁이를 미워하는 어떤 의로운 고난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면 모를 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행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악하게 노하고 분내고 떠들고
비방하고 친절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 않고 서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께서 근심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근심만 하시고 마시냐? 아니다. 그 사람에게 징계를 내리신다.
성령께서 근심하실 때는 사람들도 그 사람 때문에 근심하게 된다.
♥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나 믿지 않으나 가정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며,
부모는 함부로 자녀를 노엽게 해서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하며, 부부간에도 아내는
남편의 주권 됨을 인정하고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
꼭 남편의 말을 100% 다 순종해야만 하는 것인지는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남편의 말을 잘 따르고, 하자고 하는 대로 해주고, 보살펴주고, 먹이는 것을 즐겨하고,
노엽게 하지 않게 하고, 나는 남편 것을 챙겨주고, 남편은 나의 것을 챙겨주고,
서로 웃어주고 사니 서로 행복해지는 것은 알겠다.
물론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용히 상처받지 않게 말해주기는 한다.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자손에게는 내가 조상이 되므로 그 조상들이 그냥 나 였을 뿐이다.
그들이 수고하고 살면서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가실 때도 눈물 흘리며
가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에 귀신이라고 치부하지 말라.
기일이 되었을 때 제사상을 차려놓지는 않아도 형제 자매 자손들이 모여서
부모의 은덕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이는 것조차도 피하려고 했었다.
삭막한 기독교적인 삶을 살았다.
♥
예수님도 죽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해주셔서 믿을 뿐이지
내가 무언가 특별하고 귀하고 위대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떠드는 것도
다 자기 자랑이다.
그러면 자랑만이냐? 아니다. 합당한 징계가 내려진다.
본인이 의로운 고난이라고 착각해서 모를 뿐이다.
믿든지 말든지, 사건이 크든지 작든지 눈꼽 만하든지 어쨌든지 무조건
나의 일이 안 되고, 엉키고, 떨어지고, 눈물 나고, 마음이든 몸이든 아프고,
경제가 끊기고, 망하고, 무너지고,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실수하고, 매까지 맞고, 혼나고, 갇히고, 사고 나고, 죽고
하는 것에 있어서
나의 거룩하고 의로운 고난은 절대적으로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기를 바란다.
세상이 예수쟁이를 미워하기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기를 바란다.
나의 마음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생각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눈길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느낌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뜻과 목적과 동기와 과정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말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나의 행동이 잘못했어도 잘못했다.
전부 나의 잘못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하나님이 잘 못했다고 하는 것으로 된다.
엉터리 심판의 하나님.
♥
성경을 읽을 때 “이 녀석들이 나를 떠나고” “내 말을 안 듣고”
“나를 버리고” 라는 말씀은 하나님 본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올바르신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구약은 여호와 하나님의 올바르신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신약은 예수의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름만 팔고 다니면 큰 코 다친다.
정말 ‘하나님 이름’ 만 팔아도 되는 하나님 같으면 이스라엘이
잘못하던지 말던지 그냥 마구잡이로 축복해 주시고,
무슨 전쟁이든 이기게 하시고 세계를 정복하게 하셔서
대장을 삼으시고,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블레셋을 들어서 바벨론을 들어서 앗수르를 들어서
공격당하게 하시고 죽게 하시고 지게 하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모델로 쓰셨을 뿐이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전 세계적이고 전 인류적이시다.
전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이스라엘 편에서 볼 때 타국이 이방인이지,
하나님께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일 뿐이다.
“내 종” “내 목자” “선지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 본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좋으신 성품, 올바르신 성품, 선하신 성품, 정직한 성품,
공의로우신 성품, 공평하신 성품, 편벽이 없으신 성품, 긍휼의 성품,
사랑의 성품, 자비의 성품을 닮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징계와 진노와 심판은 더더욱이나 하나님의 주권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성품과 징계의 성품을 닮으면 안 된다.
이 하나님의 진노의 성품과 징계의 성품과 심판의 성품을 닮으면
나도 사람을 때릴 수가 있고 죽일 수가 있다.
하나님? 무섭다!. 아주 무서우신 분이다.
루시퍼사탄에게 빼앗긴 영체들 때문에 맨날 우신다고 가르치지 말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루시퍼사탄 밑으로 떨어뜨려 놓지 말라.
형 한테 사탕 뺏기고 우는 동생이냐?
루시퍼사탄이고 뭐고 악마고 뭐고 마귀나 귀신이나 천군이나 천사나
하나님 앞에는 먼지 하나일 뿐이다.
감히 하나님 앞에, 하나님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지 말라!.
축복이든 심판이든 하나님께서 홀로 하시는 것이다.
사람 앞에 ‘복’ 과 ‘화’를 놓으신 분이 하나님 이시다.
‘복’은 하나님이 놓으시고 ‘화’는 사탄이 놓으신 것처럼 가르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혼자 못하셔서 둘이 하시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빼앗겨서 절절 매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저 홀로 하신다. I am who I am 이시다.
♥
사람들이 잘못하면 계산하셔서 막 죽이신다.
7천명씩 3천명씩, 몇 천명씩, 몇 백명씩, 몇 명씩, 한 명씩, 전염병으로,
불 뱀을 보내시고, 기근으로, 전쟁으로, 땅을 꺼뜨리시고, 산을 무너지게 하시고,
화산으로 터뜨리시고, 지진으로 무너지게 빠지게 하시고, 바다로 덮어버리시고,
희귀병으로, 칼로, 낫으로, 포도주 틀로, 사자로, 표범으로, 곰으로, 올무로,
올가미로, 함정으로...
전부 하나님께서 홀로 하신다.
하지만 올바로 재판하시고 공의롭게 판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함부로 마구잡이로
사람이 어떤 잘못도 없는데 때리시고 죽이시는 분이 아니므로 자기가 어떤 성품적
(마음, 생각, 느낌, 눈길, 뜻, 목적, 동기, 과정, 말, 행동)으로 잘못한 것이 없다면,
길 가다가 그냥 뒤통수 얻어맞고, 그냥 인신매매 당하고, 그냥 새벽예배 가다가
칼에 찔려 죽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그동안 기독교식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운 교인들에게
이제와서 무서우신 하나님을 말하면
“그건 당신에게나 그렇게 나타나시는 것이죠! 나는 아직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느끼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요!” “나도 하나님 사랑하구요”
라고 한다.
우리 사람이라는 것이 부모에게 책망을 듣고 꾸중을 듣고 매를 맞아도
맞을 때는 아프지만 부모의 사랑으로 맞았다는 생각에, 내가 잘못해서
내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맞았다고 생각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억하심정을 갖지 않고 억울하다는 원한을 맺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징계하심도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하신다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만해도 다행이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만큼 살려주신 것도 감사하지” 그런다.
일반인들도 “참 그만하길 다행이지,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하늘이 너를 살렸구나” 한다.
매를 맞으면서도 사랑을 느끼는 것도 좋고, 우연히 라고 알고 있어도 할 수 없고,
그냥 이라고 알고 있어도 할 수 없고, 재수가 있어서라고 알고 있어도 할 수 없고,
재수가 없어서라고 알고 있어도 할 수 없고, 아무리 이렇게 계산 들어 간다 어쩐다
해도 우리는 모르겠고, 왜 이런 좋은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고, 왜 이런 나쁜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고, 왜 새벽예배를 가다가 칼 맞아 죽는지 모르겠고,
왜 인신매매를 당하는지 모르겠고, 전부 모르겠어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도 잘잘한 것까지 다 못 가르쳐 주신다.
이 땅에다가는 책으로 써서 둘 데도 없다.
가르쳐 주셔도 우리는 그렇게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하면서 살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너희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연 같고 그냥 같고
재수가 있고 없고 같은데, 너희들의 행위 값으로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만 알고 있어라 이시다.
(에스겔 38:23) “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아멘.
사람들 이라는 것은 살려고 태어난 것 같지만 죽으려고 태어났고,
그 죽어야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죽이셔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계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 죽기도 하고, 늦게 죽기도 하고, 병 들고, 늙기도 하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라는 것이 죽어야 하기 때문에 늙는 것이다.
♥
기독교에서 교인들 끌어 모으느라고 좋으신 하나님으로만,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눈물의 하나님으로만, 요술램프 지니
요정처럼만 기도응답의 하나님으로만 포장해서 선전하지 말라.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사랑바보 할아버지 같이 가르치지 말라.
전부 사탄이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은 하시는 것이 없는
무능한 존재처럼 가르치지 말라.
교인들이 오고 안 오고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내가 굶을 것 같아 편법을 써서 교인들을 모으지 말라.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타 종파인들이나 불신자들이나
이렇게 징계 받고 심판 받고 늙고 죽고 해야 하는 것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일 뿐이다.
교회를 다녀도, 유대인이어도, 타 종교를 믿어도, 아무 것도 안 믿어도,
일찍 죽고, 병들고, 우울하고, 미치고, 울고, 싸우고,
천국 같이 살기도 하고 지옥 같이 살기도 하고, 사고 나고, 늙고,
죽는 것은 똑 같다.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
하나님은 사랑도 100 이시지만 진노와 징계와 심판도 100 이시다.
공평하심도 100 이시다.
뭘 좀 제대로 알자.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아버지의 뜻일 뿐이다.
그 곳에 가서까지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저는 천국에 가야 하고 쟤는 지옥에 가야 하는데요!”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
“그러면 하나님의 좋으신 성품을 본 받아 누구에게 써야 하냐?” 하면
“내 이웃이다”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관건이다.
죽었다 깨나도 이거 안 된다.
조금만 잘 못하면 미워 죽겠어서 살인도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단감을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지?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했으니 단감을 좀 사다줘야겠네!
그런 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고, 편하게 사는 이웃을 험담하고 이간질 하지 말고,
모해하지 말고, 남편이든 아내든 남의 것 탐내지 말고, 그들이 슬플 때
진심으로 같이 슬퍼해주고, 그들이 기뻐할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그들이 나로 인해 편하고 즐겁든지,
나의 피해를 받지 않고 편하고 즐겁든지 살아야 하지 않을까.
보잘 것 없는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준 것도
하나님께서는 내 몸 같이 사랑한 것으로 계산해 주실 뿐이지,
사람인 내가 남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는 못한다.
♥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 하나님은 참 어려운 것을 시키신 것 같다.
그나마 가족은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주셔서 망정이지,
사람의 속 성품은 그냥 혼자 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죽지 않아봐서 영의세계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성경에도 영의세계는 그냥 혼자라고 하신다.
누구랑 부부로 가족으로 묶인 것이 아니라.
그런데 이 땅은 다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는 꽁꽁 묶어 놓으셨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을 다 죽여 버리고 혼자 살아도 좋다고 하는
단독적인 성품인가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부로 묶으시고, 자녀로 묶으시고, 가족으로 묶으시고,
형제로 묶으시고, 친구로 묶으시고, 직업으로 묶으시고, 취미로 묶으시고,
문화로 묶으시고, 연예로 묶으시고, 이웃으로 묶으시고, 종교로 묶으시고,
사회로 묶으시고, 나라로 묶으시고, 세계로 묶으시고 다양하게 꽁꽁 묶어
놓으셨다.
내가 망하면 나와 연계된 사람들도 같이 힘들어지고,
내가 부해지면 나와 연계된 사람들도 부해지도록.
나를 비롯해서 이기적인 사람아! 지구 하나 너 줄게 혼자 살아봐라!
“No”
“바퀴벌레라도 하나만 주세요” 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바퀴벌레라도 죽을까봐 애지중지 할 것이다.
그런 것을 사람에게 하라는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없으면 나 혼자다.
내 옆에 아무도 없고 혼자라고 느낄 때 자살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자살하기 직전에 느낌을 그렇게 말한다.
너 자살하지 않게 네 옆에 다른 사람 놓으셨다.
♥
하나님께서 이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시고 아시고 다스리시기에
정신이 사나우실 것 같다. 사람 같으면 그랬을 테니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을 보실 때 하나로 보신다. 하나의 세포일 뿐이다.
머리에 있는 세포들, 머리카락에 있는 세포들, 팔에 있는 세포들,
손에 있는 세포들, 손톱의 세포들, 몸통에 있는 세포들, 심장에 있는 세포들,
허파에 있는 세포들, 피의 세포들, 뼈의 세포들, 내장 부위 마다의 세포들,
신경 근육의 세포들, 다리의 세포들, 발가락의 세포들, 살들의 세포들,
피부 겉껍질의 세포들, 털들의 세포들.
머리세포만 중요하고, 피부 겉껍질의 세포 정도는 중요하지 않고,
심장의 세포는 중요하고, 털들의 세포는 중요하지 않고 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내 몸의 세포 중 하나만 암처럼 되어도 내 몸에 암이 퍼지는 것이고
그 암으로 나는 죽는 것이다.
그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
머리카락 세포가 없어지면 대머리가 되는 것이고,
털의 세포가 없어지면 몸이 보호가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피부 겉 껍질 세포는 죽어서 떨어져 나가고 새로 생성되고 한다.
그런 것은 또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는가보다 하는 것이지
껍질 세포는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 수명이 다 된 세포는 죽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노화가 되면서도 세포는 죽어서 떨어져 나가고 세포가 늙고 할 뿐이다.
♥
나는 그냥 ‘세포’ 하나일 뿐이다.
‘나’ 라는 세포는 중요해서 천국에 가야하고,
‘너’ 세포는 중요하지 않아서 지옥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 라는 사람 몸뚱이 하나, 다양한 곳에 수를 셀 수 없이 퍼져있는 세포들.
전 인류 몸뚱이 하나, 다양한 곳 중에 한 곳인 이 곳에 ‘나’ 라는 세포 하나.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이고, 내가 쟤이고, 쟤가 나이고, 내가 그고 그가 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로 보신단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잘하고 친구에게 잘하고 인사 잘하고,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 말고, 침 뱉지 말고,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금연 하라고 하면
금연 하고, 금주 하라고 하면 금주 하고, 싸우지 말고 그야말로 우리가 배우고
살았던 바른생활, 도덕생활, 학교에서 배운 대로 가정에서 올바로 배운 대로
잘 사는 것이 관건이다.
과거에는 이 땅에서 배우는 이런 것들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다. 어짜피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죽을 것인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했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하나님께서 사람선생을 통해 시키시고 계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자동의 삶을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수동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
살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동이시라 성품이든 지혜든 기능이든 무엇이든 한 마디 명령에
그냥 주실 수가 있으시다. 필요하시면 그렇게도 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이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야 하는 것이고,
공부를 통해 지식을 갖추는 것이고, 선배의 가르침을 통해 기능도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선배에게 배우고, 나는 후배에게 가르치고 나는 죽는 것이다.
내 것을 잘 물려주고 죽는 것이다.
정말 기독교인이 나빠서 욕을 먹는 것인지, 기독교인을 팔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욕을 먹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반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치를 떨면서 싫어한다.
그러니 기독교인 답게 살지 말고 꼭 사람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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