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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50강> (2017.02.20)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맹자(孟子) (제14강)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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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 ; 1. <맹자 13강> [복습] ‖ 2. 오늘의 <맹자> 읽기
* [오늘이 맹자(孟子) 읽기] (3) *— [이루장구·상] (제11~18장)]
離婁章句 上·(凡二十八章)
* [이루장구·상](제11장) — [道在爾而求諸遠] 행복과 성공의 비결은?
07-11-01 孟子曰 道在爾而求諸遠 事在易而求諸難
人人親其親長其長而天下平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먼 곳에서 구하며, 일은 쉬운 데 있는 데도 그것을 어려운 데서 구하는도다. 사람들이 자기의 어버이와 친하며 자기의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화평해 질 것이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道在爾而求諸遠’에서 ‘爾’(이)는 ‘이(邇)’와 통용, ‘가깝다, 가까운 곳’ / ‘諸’(저)는 ‘之於’
* [강 설(講說)] ——————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는 근본적인 방법은 수신(修身)에 있다. 수신(修身)이 되면 저절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오직 수신(修身)에 힘쓰도록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자가 말했다. “어버이와 어른은 사람에게 있어 매우 가깝게 있고, 친애하고 어른으로 섬기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매우 쉬움이 되는데, 도(道)는 애당초 여기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버리고 다른 데서 구하면 또 어려워서 도리어 잃게 되니, 다만 사람마다 각기 그 어버이를 친히 하고 그 어른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저절로 평안해질 것이다.(親長 在人 爲甚邇 親之長之 在人 爲甚易而道初不外是也 舍此而他求 則遠且難 而反失之 但人人 各親其親 各長其長 則天下 自平矣)”
* [이루장구·상](제12장) — [誠者天之道也 思誠者人之道也] 남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07-12-01 孟子曰 居下位而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也
獲於上有道 不信於友 弗獲於上矣
信於友有道 事親弗悅 弗信於友矣
悅親有道 反身不誠 不悅於親矣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其身矣
02 是故誠者天之道也 思誠者人之道也
03 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 不誠未有能動者也
01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信任)을 얻지 못하면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서 다스릴 수가 없을 것이다. 윗사람의 신임을 얻는 데 방법이 있으니, 벗에게 신용(信用)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신용을 얻는 것에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서 기쁘게 하지 못하면 벗에게 신용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것에 방법이 있으니, 몸을 돌이켜보아 정성스럽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기쁜 마음을 갖게 하지 못한다. 몸을 정성(精誠)스럽게 하는 것에 방법이 있으니 선(善)을 밝게 알지 못하면 그 몸은 정성스럽게 하지 못한다.
02 이 때문에 정성스러움 그 자체는 하늘의 작용(作用)이고, 정성스럽게 되기를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道理)이다. 03 지극히 정성스럽고서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있지 않으니, 정성스럽지 못하면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있지 아니하다.”
* [강 설(講說)] ——————
“성(誠)은 나에게 있는 이(理)를 모두 성실히 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니 천도(天道)의 본연(本然)이요, 사성(思誠)은 나에게 있는 이 이(理)를 모두 성실히 하여 거짓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인도(人道)의 당연함이다. (誠者 理之在我者 皆實而無僞 天道之本然也 思誠者 欲此理之在我者皆實而無僞 人道之當然也)” 이렇게 지극하게 성실히 하고자 하는 노력을,『주역(周易)』건괘(乾卦) 상(象)에서 ‘자강불식(自彊不息)’이라 했고,『중용』에서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 했다. 지성무식이면 ‘지성감천(至誠感天)’이 되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다음의『중용(中庸)』제20장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하다. 다만 여기의 ‘思誠者’를『중용(中庸)』에서는 ‘誠之者’라고 하였는데, ‘사성(思誠)’과 ‘성지(誠之)’는 아직 온전히 성자(誠者)가 되지 못하여 성(誠)할 것을 생각하고 성(誠)하려고 노력한다는 데에서 의미가 통한다.
20-17 在下位 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獲乎上 有道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信乎朋友 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順乎親 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
誠身 有道 不明乎善 不誠乎身矣
18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19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의 신임을 얻어서 다스릴 수가 없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에는 방법이 있으니, 친구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용을 얻지 못한다. 친구에게 신임을 얻는 데에는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따르지 않으면 벗에게 신용을 얻지 못한다. 어버이를 따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자기 몸을 돌이켜보아 ‘정성스럽지[誠]’ 않으면 어버이에게 따르게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몸을 ‘정성스럽게[誠]’ 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으니, 선(善)에 밝지 않으면 몸에서 성실하게 되지 못한다.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誠)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이다. 성(誠)한 자는 힘쓰지 않아도 적중(的中)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며 저절로 도(道)에 적중하니 성인(聖人)이다. 성(誠)해지려고 하는 자는 선(善)을 택해서 굳게 붙잡는 자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확히 분별하며 돈독하게 행한다.
* [장하주(章下註)] —————
이 장(章)은『중용(中庸)』에 있는 공자의 말씀을 기술한 것이니, 사성(思誠)은 수신(修身)의 근본이 되고 명선(明善)은 또 사성(思誠)의 근본이 됨을 볼 수 있다. 이른 바로 자사(子思)가 증자(曾子)에게 들으신 것이요, 맹자(孟子)가 자사(子思)에게 전수받은 것이다. 또한 『대학(大學)』과 서로 표리(表裏)가 되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此章 術中庸孔子之言 見思誠爲修身之本 而明善 又爲思誠之本 乃子思 所聞於曾子 而孟子所受乎子思者 亦與大學 相表裏 學者 宜潛心焉)
* [이루장구·상](제13장) — [文王之政] 그 인정(仁政)은 몇 년이면 이루어지는가?
07-13-01 孟子曰 伯夷辟紂 居北海之濱 聞文王作興
曰盍歸乎來 吾聞西伯善養老者 太公辟紂 居東海之濱
聞文王作興 曰盍歸乎來 吾聞西伯 善養老者
02 二老者天下之大老也而歸之 是天下之父歸之也
天下之父歸之 其子焉往
03 諸侯有行文王之政者 七年之內 必爲政於天下矣
01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伯夷)가 주(紂)를 피하여 북쪽 바닷가에 살고 있다가 문왕(文王)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어찌 돌아가지 아니하리오. 나는 서백(西伯)이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고 들었다’ 하였으며, 태공(太公)이 주(紂)를 피하여 동쪽 바닷가에 살고 있다가 문왕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어찌 돌아가지 아니하리오. 나는 서백이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다.
02두 노인은 천하의 대로(大老)인데 그(문왕)에게 돌아갔으니, 이는 천하의 아버지가 그에게 돌아간 것이다. 천하의 아버지가 그에게 돌아갔으니 그 아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제후 중에 문왕(文王)의 정치(政治)를 행하는 자가 있다면 7년 안에 반드시 천하에서 정치를 할 것이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伯夷辟紂 居北海之濱’에서 ‘辟’(피)는 ‘피(避)’와 통용, ‘피하다’. ‘濱’(빈)은 ‘바닷가’
· ‘聞文王作興’에서 ‘作興’은 ‘일어난다’(주자), ‘문왕이 일어나서 왕도정치를 일으키다’(조기)
· ‘曰盍歸乎來’에서 ‘盍’(합)은 ‘하불(何不)~’의 뜻. ‘來’는 어조사
· ‘西伯’(서백) ; 문왕(文王)을 지칭함. 주(紂)가 서방의 제후의 우두머리로 삼은 데서 연유.
· ‘太公’(태공) ; 성은 강(姜), 씨는 여(呂), 이름은 상(尙), 문왕의 스승이다. 여상(呂尙)를 보통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한다. 태공(太公)이란 원래 ‘조부’를 지칭하는데, 문왕의 할아버지인 고공단보라 ‘성인이 주에 가고 주가 그의 힘으로 크게 일어난다’고 한 말에 연유하여, 태공이 바라던 사람이라는 뜻에서 태공망(太公望)이라는 호가 붙여진 것이다. 제(齊)의 시조.
· ‘其子焉往’에서 ‘焉’은 ‘往’의 목적어인데, 의문대명사이므로 앞으로 나온 것이다.
* [강 설(講說)] ——————
‘七年之內’ ; 대국은 5년, 소국을 7년이라 하였으므로 7년 안이라 하면 대국 소국이 다 포함된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細胞)의 수명은 3년이기 때문에 3년이면 체질이 바뀔 수 있다. 주자학적 설명에 의하면, 사람의 착한 본성이 몸이라는 기질(氣質) 속에 있으므로, 기질이 착하지 못하면 착한 본성이 착하게 발휘되지 못한다. 사람의 본성이 착하게 발휘되게 하기 위해서는 기질을 맑게 변화시켜야 된다고 한다. 7년이면 사람의 체질을 두 번이나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므로 선(善)으로 유도하는 충분한 시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주자가 말했다. “문왕은 정사를 폄에 반드시 홀아비[鰥]·과부[寡]·고아[孤]·무의탁자[獨]를 우선하였고, 서인의 노인들도 모두 얼고 굶주리는 자가 없게 하였다. 그러므로 백이 태공이 와서 그의 봉양에 나아간 것이요, 벼슬을 구한 것이 아니다.(文王發政 必先鰥寡孤獨 庶人之老皆無凍餒 故伯夷太公 來就其養 非求仕也)”
* [이루장구·상](제14장) — [罪不容於死] 불인(不仁)한 사람의 말로(末路)는?
07-14-01 孟子曰 求也爲季氏宰 無能改於其德而賦粟倍他日
孔子曰 求非我徒也 小子鳴鼓而攻之可也
02 由此觀之 君不行仁政而富之 皆棄於孔子者也
況於爲之強戰 爭地以戰 殺人盈野 爭城以戰 殺人盈城
此所謂率土地而食人肉 罪不容於死
03 故善戰者服上刑 連諸侯者次之 辟草萊任土地者次之
01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구(求)가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되어 그 계씨의 덕(德)에서 고쳐내는 것이 없고, 도리어 곡식을 세금으로 걷는 것이 다른 때보다 배(倍)가 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구(求)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얘들아, 북을 쳐서 성토(聲討)하는 것이 좋겠다’ 하셨다.
02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임금이 어진 정치를 하지 아니하는데도 그를 부유하게 해주는 것은 모두 공자에게 버림받을 자이다. 하물며 임금을 위하여 무리하게 전쟁을 하여, 땅을 다투어 싸워서 사람을 들에 가득하게 죽이며, 성을 다투어 싸워서 사람을 성에 가득하게 죽이는 것에 있으서랴! 이는 이른바 토지를 거느려 사람의 고기를 먹게 한다는 것이니, 죄는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03 그러므로 전쟁을 잘 하는 자는 상형을 받아야 하고, 제후와 연합하는 자는 그 다음이고, 풀밭과 쑥밭을 개간하여 (백성들에게) 토지를 맡기는 자가 그 다음이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求也爲季氏宰’에서 ‘求’는 공자의 제사 ‘염구(冉求)’. ‘季氏’는 노(魯)의 대부 ‘계손씨’
· ‘無能改於其德~’에서 ‘能’은 ‘능히 ~을 한다’ ‘’능히 ~을 해낸다. ‘其’는 ‘季氏’를 가리킴.
· ‘爭地以戰’에서 ‘以’의 목적어는 ‘爭地’이다. ‘以爭地(爲)戰’이다.
· ‘辟草萊任土地者次之’에서 ‘辟’(벽)은 ‘벽(闢)’과 통용, ‘개간하다’
* [강 설(講說)] ——————
이 장에서 ‘선전자(善戰者)’는, 병법가(兵法家)]는 손빈(孫臏)과 오기(吳起)와 같은 장수로, 땅을 넓히기 위하여 전쟁을 통하여 많은 백성을 죽이는 자를 말한다. 땅을 넓히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땅으로 하여금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다. 죄가 제일 큰 것이다. ‘연제후자(連諸侯者)’는 소진, 장의와 같은 종횡가를 말한다. 그들은 전쟁을 직접 일으키지는 않지만, 제후들을 연합하게 하고 전쟁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다음으로 죄가 많은 자들이다. ‘벽초래임토지자(辟草萊任土地者)’는 세금을 많이 받을 목적으로 땅을 개간하고 넓혀 사람들로 하여금 경작하게 하는 자들이다. 이성 상앙과 같은 중농주의자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사람을 직접 죽이는 자는 아니지만 재정수입을 늘이기 위해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이다.
제자인 염구(冉求)가 노나라의 대부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되어, 부(富)와 권력을 가진 계씨를 위하여 백성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하니 아주 공자(孔子)께서 노하신 것이다. “구(求)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얘들아, 북을 쳐서 성토(聲討)하는 것이 좋겠다” 하셨다.
* [이루장구·상](제15장) — [莫良於眸子] 불인(不仁)한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07-15-01 孟子曰 存乎人者 莫良於眸子 眸子不能掩其惡
胸中正則眸子瞭焉 胸中不正則眸子眊焉
02 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廋哉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있는 것 중에서 (마음을 살필 수 있는 것으로는)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눈동자는 자기의 악(惡)을 가리지 못한다. 가슴 속에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는 밝고 가슴속에 마음이 바르지 아니하면 눈동자가 흐리다.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눈동자를 관찰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숨기겠는가?”
* [자구(字句)의 해석] ——————
· ‘存乎人者’는 문맥상 ‘눈·코·귀·입 등 사람에게 있는 것 중에서’로 해석하면 무난하다.
초순은 ‘存’을 ‘살핀다’는 뜻으로 파악, ‘사람의 마음속의 선악을 살필 수 있는 것 중에서’.
· ‘莫良於眸子’에서 ‘眸子’(모자)는 ‘눈동자’
· ‘胸中正則眸子瞭焉’에서 ‘瞭’(료)는 ‘밝다’
· ‘胸中不正則眸子眊焉’에서 ‘眊’(모)는 ‘흐리다’
· ‘人焉廋哉’에서 ‘廋’(수)는 ‘숨기다’ ‘사람이 어떻게 숨기겠는가?’
* [강 설(講說)] ——————
주자가 말했다. “사람은 사물이나 사람을 접할 때 그 정신(精神)이 눈에 있다. 이 때문에 가슴속이 바르면 정신이 정(精)하여 (눈동자가) 발고, 가슴속이 바르지 못하면 정신이 흩어져 (눈동자가) 밝지 못하다.(蓋人與物接之時 其神在目 故胸中 正則神精而明 不正則神散而昏) …
말 또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말]까지 아울러 관찰한다면 사람의 사악함과 바름은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말은 오히려 거짓으로 잘할 수 있지만 눈동자[眸子]는 속일 수 없는 것이다.(言亦心之所發 故幷此以觀 則人之邪正 不可匿矣 然言猶可以僞爲 眸子則有不容僞者)”
* [이루장구·상](제16장) — [恭者不侮人 儉者不奪人] 인(仁)은 꾸며서 할 수는 없다
07-16-01 孟子曰 恭者不侮人 儉者不奪人
侮奪人之君 惟恐不順焉 惡得爲恭儉 恭儉豈可以聲音笑貌爲哉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恭遜)한 자는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검소(儉素)한 자는 남의 것을 빼앗지 아니한다. 남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빼앗는 임금은 오직 (사람들이 자기에게) 순종하지 아니할까 두려워하니, 어떻게 공손함과 검소함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공손함과 검소함을 어찌 음성이나 웃는 모양으로써 실천할 수 있겠는가?”
* [자구(字句)의 해석] ——————
· ‘惡得爲恭儉’에서 ‘惡’(오)는 의문사 ‘어떻게’, ‘爲’는 타동사 ‘실천하다’
* [강 설(講說)] ——————
공손한 사람은 자기의 양심을 잘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므로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검소한 사람은 물질적인 욕구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므로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 백성을 업신여기고 백성의 것을 빼앗는 임금은, 그 백성의 반발을 사게 마련인데 그것을 무마하고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에 급급하므로 공손함과 검소함을 실천할 수가 없다.
백성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백성에게 공손하고 스스로 검소함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은 양심을 따르는 것이므로, 양심을 회복하지 않고 건성으러 부드러운 음성과 웃는 얼굴을 꾸미는 것은 기만(欺瞞)에 불과하다.(惟恐不順 言恐人之不順己 聲音笑貌 僞爲於外也)
* [이루장구·상](제17장) — [援之以道] 천하를 구원(救援)하는 것은?
07-17-01 淳于髡曰 男女授受不親禮與 孟子曰 禮也
曰嫂溺則援之以手乎 曰嫂溺不援 是豺狼也
男女授受不親禮也 嫂溺援之以手者權也
02 曰今天下溺矣 夫子之不援何也
03 曰天下溺 援之以道 嫂溺援之以手 子欲手援天下乎
01 순우곤이 “남자와 여자가 (물건을) 주고받는 것을 직접 하지 아니하는 것이 예입니까?” 하고 묻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예이다.” / “제수씨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끌어냅니까?” / “제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끌어내지 아니하면 승냥이나 이리이다. 남자와 여자가 (물건을) 주고받는 것을 직접 하지 아니하는 것은 예이고, 제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끌어내는 것은 권이다.” /
02 “지금 천하가 빠졌는데, 선생께서 끌어내지 않으심은 무엇 때문입니까?” / “천하가 빠지면 도(道)를 가지고 끌어내고, 제수가 빠지면 손으로 끌어내는 것이니, 자네는 손으로 천하를 끌어내려 하는가?”
* [자구(字句)의 해석] ——————
· ‘淳于髡’(순우곤) ; 제나라 사람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성이 ‘淳于’다.
· ‘男女授受不親禮與’에서 ‘親’은 손과 손이 맞닿아 접촉하는 것, 물건을 직접 주고받는 것.
· ‘曰嫂溺則援之以手乎’에서 ‘嫂’(수)는 ‘제수’, 시아주버니와 손을 잡기 어려운 사이다.
· ‘是豺狼也’에서 ‘豺’(시)는 ‘승냥이’, ‘狼’(랑)은 ‘이리’
· ‘嫂溺援之以手者權也’에서 ‘權’(권)은 ‘저울대’, 저울대의 저울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무게에 따라서 이동하는 것이므로, 이에 연유하여 ‘상황에 따라서 달리 대처해야 한다는 행동원리’라는 뜻이 되었다.
* [강 설(講說)] ——————
예(禮)는 사람의 삶을 참되고 조화롭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행동양식(行動樣式)이다. 그것은 구체화된 형식이므로 참되고 조화로운 모습을 일일이 다 표현하지 못한다. 따라서 예(禮)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을 실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형식화된 예(禮)만 집착하면 삶이 손상을 입게 된다.
‘남녀 불친(男女不親)’은 남자와 여자가 직접 물건을 주거나 받다 보면 상도(常道)가 문란해지거나 삶이 손상을 입기 때문에 만들어진 예(禮)이다. 그러나 예(禮)의 정신은 모르고 ‘남자와 여자가 직접 손을 잡지 않는다’는 그 형식에만 얽매어,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다면 이는 삶을 위하여 만들어놓은 예(禮) 때문에 오히려 삶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예(禮)의 정신을 알고 예(禮)의 정신에 입각하여 상황에 맞게 변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행동원리가 권(權)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손으로 건지듯이, 도탄(塗炭)에 빠진 세상은 도(道)로써 구해야 한다. 제후를 찾아가 관직을 부탁하는 등 도(道)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세상을 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주자가 말했다. “‘천하(天下)가 도탄에 빠졌을 적에는 오직 도(道)만이 이를 구원할 수 있으니, 제수가 물에 빠졌을 적에 손으로 구할 수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제 ‘자네[淳于髡]’가 천하를 구하고자 하면서 마침내 ‘나[孟子]’로 하여금 도(道)를 굽혀 (제후에게) 영합하기를 구하게 하려 하니, 이것은 구원할 수 있는 도(道)를 먼저 잃는 것이다. 이는 나로 하여금 손으로써 천하를 구원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言天下溺 惟道 可以救之 非若嫂溺 可手援也 今子 欲援天下 乃欲使我枉道求合 則先失其所以援之之具矣 是欲使我 以手援天下乎)”
* [장하주(章下註)] —————
이 장(章)은 자신을 곧게 하고 도(道)를 지키는 것이 세상을 구제(救濟)하는 것이니, 도(道)를 굽혀 남을 따르는 것은 다만 자신의 지조(志操)를 잃음이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此章 言直己守道 所以濟時 枉道徇人 徒爲失己)
* [이루장구·상](제18장) — [君子不敎子] 부모가 자녀를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
07-18-01 公孫丑曰 君子之不敎子何也
02 孟子曰 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則反夷矣
夫子敎我以正 夫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則惡矣
03 古者易子而敎之
04 父子之間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莫大焉
01 공손추가 말했다. “군자가 아들을 가르치지 아니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02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모양새가 좋기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바른 도리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인데, 바른 도리를 가지고 가르쳤는데도 그 도리가 행해지지 아니하면 성을 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성을 내는 것으로 이어지면 도리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손상된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도) ‘선생님(여기서는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바른 도리를 하는 것으로써 가르치지만, 선생님께서 바른 도리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여기게 되면 (아버지를 존중하는 마음이 손상되므로), 아버지와아들의 마음이 서로 손상된다.
03 옛날에는 아들을 바꾸어서 가르쳤었다. 부자간에 선을 요구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선을 요구하면 (정이) 떨어지게 된다. (정이) 떨어지면 좋지 않은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勢不行也’에서 ‘勢’(세)는 ‘형세, 혹은 모양새’ ‘不行’은 ‘행해지지 않는다, 안된다.’
· ‘敎者必以正’는 ‘以A爲B’의 구문으로 ‘以正敎之’이나 ‘敎之’가 생략되었다.
· ‘則是父子相夷也’에서 ‘夷’(이)는 ‘손상되다, 상처를 받는다’ ‘상이군인(傷痍軍人)’
· ‘責善則離’에서 ‘責’(책)은 ‘요구하다, 채근하다’. ‘離’(리)는 ‘(정이) 떨어지다’
* [강 설(講說)] ——————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관계는 부모(父母)와 자녀(子女)와의 관계이다. 부모에게 자녀는 더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세상의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의 마음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다.
부모다 자녀를 ‘직접’ 가르치다보면, 자녀가 가르침을 잘 이행하지 못하면 속이 상하고 실망을 하게 된다. 이때 사랑의 마음이 손상을 입게 되므로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자녀가 부모에게 직접 배우다보면 착한 일을 가르치는 부모의 착하지 않는 면을 발견하여 실망하기도 한다. 이 때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손상을 입는다. 역시 직접적인 배움을 피하는 것이 좋다. 가장 귀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지나치게 ‘책선(責善)’하는 경우, 서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속이 상하거나 정이 떨어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지나치게 책선을 구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부모가 스스로 착하고 성실한 삶을 지속함으로써 상대가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치는 것은 부자간의 은혜를 온전히 하고 또한 가르침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易子而敎 所以全父子之恩 而易不失其爲敎)
* [주역으로 맹자 읽기] 이(夷, 상처받다)의 주역 코드 ; (36) 지화(地火) 명이(明夷)
地火 明夷
[상처받다] | 明夷, 利 艱貞. 밝음이 상처받는 형국이다. 마무리를 해야 한다. 겨울나기가 어렵다. 彖曰, 明入地中,“明夷”內文明而外柔順, 以蒙大難 (후략). 단에서 말했다. 밝음이 땅속에 들어가는 것이 명이(明夷)니, 안으로는 문명하고 밖으로는 유순하여 큰 어려움을 뒤집어쓴다. |
이 괘의 상괘는 곤괘(坤卦)이고 하괘는 리괘(離卦)이다. 마치 태양이 땅 속에 있는 격이다. 그래서 괘의 이름을 ‘밝음이 상처받는다’는 의미에서 명이(明夷)라고 붙였다. 앞의 진괘(晉卦)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상징한다면, 이 괘는 밝음이 상처를 받아 암흑기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夷)는 대(大)와 궁(弓)의 합체어로서 ‘키 큰 활잡이’란 뜻이다. 동이(東夷)족(族)이 키가 크고 활을 잘 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동이족은 어질다. 그래서 이(夷)는 ‘어질다’는 뜻도 있다. 마음을 중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동이족은 호전적인 서부의 사람들을 만나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이(夷)가 ‘상처받는다’는 뜻이 되었다. 밝음이 상처를 받는 암흑기는 태양이 땅 속으로 떨어지는 상황과 같고 겨울이 다가오는 상황과 같다.(이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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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제50강 <이루장구·상>(제1~18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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