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기적적인 힘을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불가능한 일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네, 당연히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자녀를 사랑하시고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진정으로 당신께 청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들의 인생에 직접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의 방식대로 개입하는 분은 아닙니다. 당신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 방식은 우리의 방식보다 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완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오늘의 경험을 살펴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필리스티아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고, 지금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른 이유는, 서로가 일치해야 할 시점에 서로 갈라졌고, 하느님을 모시고 살 시점에 우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들이 지은 죄가 너무 큽니다. 기적만이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매달립니다. 그래서 계약의 궤를 앞세우고 전쟁터로 나갑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계약의 궤에 달려 있다고 믿은 그들은 하느님의 기적에 의지한다고 생각하면 전쟁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앞세운 것은 그들의 신앙이 아니라,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대패했고, 계약의 궤도 빼앗깁니다. 하느님께서 적군에게 포로가 되신 것입니다.
온 누리를 만들어내신 주님께 필리스티아 군대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들도 그래봤자 하느님께서 만드신 무익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든지 당신께서 지으신 세상에 계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과는 다르게 하느님께서는 늘 당신의 거처에 계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댓가는 불신과 서로 간의 미움으로 갈라진 일을 봉합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사무엘이 했던 일은 계약의 궤를 찾아오는 일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하느님께 돌리게 하고 서로 일치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계약의 궤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으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십니다. 필리스티아 군대가 알아듣도록 표징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질병이 그 표징이었습니다. 질병을 겪으면서 하느님의 엄위를 알아들은 그들이 계약의 궤를 다시 이스라엘에 보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기적의 힘이 아니라 그분을 믿습니다. 그분을 믿기에 기적적인 힘을 알게 되는 것이지, 기적을 보았기에 그분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면, 저 역시 가끔씩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그분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시는 것을 더 바라고, 그분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더 달콤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패배는 오히려 이스라엘을 신앙으로 이끌고 서로 간의 사랑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분의 계획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잘못 갔던 길을 고통으로 정화하면서 제대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서 그들 사이에 이루신 기적이었습니다. 인간의 힘과 욕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시편 38,18)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