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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9월 25일 수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잠언의 저자는,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시라고 주님께 간청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 잠언의 말씀입니다. 30,5-9
5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7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일상적인 생활 태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특별히 복음을 선포하러 떠날 때의 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떠날 때, 인간적인 준비와 계획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빈손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지니고 가는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힘과 권한”(루카 9,1)입니다.
그 힘과 권한이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게 합니다. 다른 어떤 준비는 없습니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면, 그 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전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순간에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서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 머물라는 말씀도, 더 좋은 곳을 찾아 옮겨 다니지 말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라는 뜻입니다. 음식도 준비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러 떠날 때 그를 맞아 주는 이가 있다면 그렇게 주어지는 상황을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더 좋은 집, 더 나은 대접을 찾아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오늘 복음의 말씀을 꼭 글자 그대로 따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오로 사도만 하더라도 필리피 신자들 말고는 다른 이들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았고 자기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하며 복음 선포의 일이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주님께서 주신 “힘과 권한”이나 그분께 받은 파견의 자리는 없습니다. 파견은 내 계획과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힘과 권한”을 지니고 어떤 상황 속에 내가 던져지는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쉽게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법칙
전삼용 요셉 신부님
언젠가 한 여자 청년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남자친구가 너무 착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연락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나도 다 이해해주고 자기가 하자는 대로 다 따라주는 것이 못마땅해서 싸우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 청년은 남자가 착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내 허락 없이 어떤 남자도 만나지 마라, 응? 오빠가 전화하면 재깍재깍 받고!” “오늘은 오빠가 먹자는 거 먹고, 오빠가 보고 싶은 영화 보자.” “내일 시간 좀 내라, 바다나 보러 가자.” 이런 남자를 소위 나쁜 남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살아보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자는 이상하게도 이런 나쁜 남자에게 끌리게 됩니다. 항상 저자세로 다 이해만 해 주고 상대의 편의만 봐주려고 하는 남자는 왠지 매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거미는 이미 자기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들에겐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거미줄을 쳐서 더 큰 먹이를 잡을지가 관심사입니다. 착한 남자는 이미 걸려든 하루살이와 같고 나쁜 남자는 걸려들지 않는 잠자리와 같습니다. 이미 잡힌 하루살이에게는 관심이 줄어들고 잡히지 않은 것에 더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 그리고는 지팡이도 보따리도 돈도 여벌 옷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냥 자신을 받아들이는 집에 들어가 신세를 지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집은 제자들에게 옷과 음식과 돈을 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그 고을을 떠나면서 경고의 표시로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먼지’는 가장 보잘것없는 것 중의 보잘것없는 것의 표징입니다. 이렇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먼지와 같은 당신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은총을 나누어 주려고 하였지만 받으려 하지 않았기에 나는 당신들로부터 더럽혀진 나 자신을 씻어버립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먼지로 남아있게 되는 것에는 더 이상 내 책임이 없습니다.”
선교하다가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툭툭 털고 나와 버리십시오. 그들은 저자세로 계속 자신을 대해주기를 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지, 그들에게 비굴해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만큼하고 아니면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들도 이런 자세에서 우리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시도하는 데에서 집착이 사라지려면 알아야 하는 것이 ‘평균 성공의 법칙’입니다. 앨런 피즈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에 ‘평균 성공의 법칙’이 나옵니다.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모든 활동에는 평균 성공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생명보험 영업하던 시절 그는 1:56이라는 평균 성공이율이 적용됨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에게 “보험에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면 56명당 1명은 “네”라고 대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질문을 하루에 168번 하면 보험 계약을 하루에 3건씩 체결하게 되고, 그러면 보험 영업의 세계에서 상위 5퍼센트에 들게 됩니다.
앨런 피즈는 이를 아버지로부터 배웠다고 합니다. 그가 11세 때 집집이 다니며 고무 스펀지를 개당 20센트에 팔았습니다. 그때 평균 성공 비율은 10:7:4:2였습니다. 그는 학교가 끝나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방문판매를 하였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10곳마다 7곳이 문을 열었고, 그중 4곳이 나의 준비된 상품 소개를 들어주었으며, 그중 2곳이 고무 스펀지를 샀습니다.
다시 말해 10곳당 평균 판매액이 40센트였습니다. 그는 1시간에 평균 30곳을 돌았고, 2시간 동안 평균 12개를 팔아 평균 2달러 40센트의 판매실적을 올렸습니다. 1962년 당시 11세의 호주 소년에게 2달러 40센트는 큰돈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문을 두드리는 10집당 40센트씩 번다는 것을 알고는 문을 열지 않는 3곳과 그의 말을 듣기도 전에 관심 없다며 문을 닫는 3명과 구매를 거절하는 2명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10곳을 두드리면 40센트를 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평균의 법칙을 모르면 다음에 일어날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게 됩니다. 10대 시절 앨런은 방과 후에 무작위 전화 영업으로 냄비와 팬, 리넨과 담요를 팔았습니다. 이때도 당연히 평균의 법칙을 활용했는데, 활동 30여 일 만에 발견한 평균 성공 비율은 5:3:2:1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5명 중 3명이 그를 만나는 데 동의했고 3개의 약속 가운데 제품 소개까지 성공하는 경우는 2번이었으며 2명 가운데 1명꼴로 물건을 구매해주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법칙을 쓰는 이유는 성공에 집중하여 실패가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앨런은 나중에 보험 영업사원이 되는데 이를 이용하여 가장 빠른 기간에 호주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보험회사 직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할 만큼 하시고 유다에게 “이제는 네 할 일을 하여라.”라고 하시며 그를 놓아버리십니다. 그를 영원한 지옥으로 넘겨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마지막으로 베푸는 하나의 경고요 초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는 그리스도께 후회하고 돌아왔다면 그리스도는 기쁜 마음으로 유다를 맞아들이셨을 것입니다. 은총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총을 받고 세상에 전해주기 위해서 파견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주는 사람에 합당한 자세를 지닐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본당 주일학교에서 ‘필드트립(Field Trip)’을 준비하였습니다. 학생들은 4시에 모여서 필드트립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차량봉사를 해 줄 형제님들도 함께 했습니다. 저도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필드트립에 참가했습니다. 이번 필드트립의 장소는 텍사스 레인저스 구장이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메츠와 양키즈 구장에 가곤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야구장으로 향했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몇 년 전에 ‘돔’구장을 신축했습니다. 야구장은 덥지 않고 쾌적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응원했고, 텍사스 레인저스는 9회 말에 점수를 내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1점차로 이겼습니다. 이런 필드트립이 좀 더 발전하면 필드필그림이(Field Pilgrim) 될 수 도 있습니다. 야구장, 농구장에 가서 학생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좋습니다. 주교좌성당이나, 성지에 가서 학생들이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3년간 ‘필드트립’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필드트립 장소는 ‘갈릴래아’ 호숫가 주변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2000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숫가 언덕에서 ‘행복선언’을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를 축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을 치유해 주셨고,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필드트립을 통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많은 ‘필드트립’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저를 보내 주셨습니다. 5년 전에는 ‘가톨릭평화신문 미주지사’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에파타와 탈리타쿰’을 이야기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이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기 바랬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을 통해서 절망 중에 있는 사람은 희망으로,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빛으로, 근심 중에 있는 사람은 담대함으로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팬데믹이라는 큰 장애물이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제 발의 등불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함께 필드트립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난 2월 13일, 저를 이곳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필드트립의 장소는 다르지만 제가 해야 할 소명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제자들에게 주셨던 소명과 같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제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너무 부유하게도, 너무 가난하게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부유하면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가난하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이곳에서도 제 발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필드트립’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멋진 필드트립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루카 9,1)
우리 님 그러하시듯
끊어진 것을 잇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잇습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흩어진 것을 모으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모읍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씻어냅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굽은 것을 바루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바룹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메마른 것을 적시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적십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엉킨 것을 푸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풉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모난 것을 다듬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다듬습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쓰러진 것을 일으키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일으킵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무른 것을 돋우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돋웁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부족한 것을 채우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채웁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멈춘 것을 움직이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움직입니다
우리 님 그러하시듯
죽은 것을 살리는
우리 님 주신
힘과 권한으로
온 누리를 살립니다
오늘의 성인
성 알베르토 (Albert)
활동년도 : +1214년
신분 : 총대주교
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같은 이름 :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이탈리아 베르첼리(Vercelli)의 주교인 성 알베르투스 히에로솔리미타누스(Albertus Hierosolymitanus, 또는 알베르토)는 파르마(Parma)의 저명한 가문 출신으로 신학과 법률을 수학한 후, 롬바르디아 모르타라의 성 십자가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1184년 그의 나이 35세 때 보비오(Bobbio)의 주교로, 그 다음에 베르첼리의 주교로서 사목하였다.
그는 외교적인 수완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와 프레드리히 바르바로사 황제의 중재자로 선출되기도 했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서는 북이탈리아의 사절로 임명되었다. 1187년경 사라센인들이 예루살렘을 재공격할 때, 신자들과 이슬람교 신도들로부터 공경을 받던 성 알베르투스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선임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성 알베르투스에게 다가오는 라테라노 공의회(Council of Laterano)에 공헌하도록 요청하였으나, 그는 결국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성 피르미노 (Firminus)
활동년도 : +4세기초?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아미앵(Amiens)
같은 이름 : 피르미누스, 피르민
성 피르미누스(또는 피르미노)는 에스파냐 나바라(Navarra)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태어났고, 성 호네스투스(Honestus)로부터 신앙을 배웠으며, 프랑스 툴루즈(Toulouse)의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11월 29일)의 제자로 성장하여 그곳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프랑스 지방 전역을 돌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 후 그는 아미앵에 정착하여 그곳에 성당을 지었다. 어떤 경로로 순교하였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는 아미앵에서 순교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또 그렇게 공경을 받고 있다.
성 세르지오(Sergius)
신분 : 신부, 수도원장, 설립자
활동지역 : 라도네즈(Radonezh)
활동연도 : 1314-1392년
같은이름 : 세르게이, 세르기예프, 세르기오, 세르기우스, 세르지우스
러시아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로스토프(Rostov)에서 태어나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5세 때에 그는 모스크바 통치자들의 로스토프 침략을 피하여 정처 없이 온 가족이 떠나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모스크바(Moskva) 교외인 라도네즈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1335년 부모와 사별한 세르기우스와 그의 형 스테파누스(Stephanus)는 마코프카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세르기우스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은수생활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다.
이때부터 제자들이 몰려들자 세르기우스는 후에 유명해진 ‘삼위일체 수도원’을 세워 원장이 되었고, 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타타르족의 침략 이후 사라졌던 러시아에 수도 공동체를 재건한 것이다. 그 후 그는 헤르쟈크 강변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던 중 모스크바의 대주교 알렉시스(Alexis)를 계승하도록 요청받았으나, 자신의 소명은 수도생활이라고 판단하고 강력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있었던 그는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조국 러시아의 일치를 위해 제후들의 통합과 일치를 요청하였고, 마침내 모스크바의 디미트리 돈스코이(Dimitri Donskoi) 왕자가 타타르족과 싸워서 러시아를 해방시킬 때 두 명의 수도자를 파견하였다.
이 승리 이후 그의 명성은 더욱 퍼져나갔고, 러시아 왕가의 협조는 매우 관대하여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짓게 되었다. 1378년 그는 모스크바 대주교 임명을 끝내 사양했고, 또 1392년에는 자기 수도원의 원장직도 사임한 후 6개월 만에 서거하였다.
성 세르기우스는 묵상을 즐겨 하고 항상 기도하는 영성적인 사람으로서 러시아 최초의 신비가로 불려지기도 한다. 1422년 7월 5일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노브고로트(Novgorod)에서 시성되었으며, 그 후 그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성당이 세워졌고, 진정한 수도자의 소명을 실현한 성인으로 공경받으며 '천상의 사람'이라고 불렸다. 그가 세운 삼위일체 수도원은 아직까지도 러시아인들의 종교적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첫댓글 쉽게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법칙-전삼용 신부님 강론 좋아요~~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