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의 첫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우들에게 보내는 인사말입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 문안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요, 또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빕니다.
당시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편지를 쓸 때, 발신자의 이름을 먼저 밝히고 그 다음에 수신자의 이름을 쓰고 인사말을 전한 다음에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바울과 함께 인사말을 전하는 소스데네는 이 편지를 쓸 때 바울과 함께 일했던 동역자로, 고린도의 유대교 회당장이었던 사람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인사말에 이어 몇 마디 덕담을 나누던 바울은 곧바로 고린도 교회의 분열상을 지적합니다. 11~14절을 보겠습니다.
1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의 편에 알게 되었습니다.
12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게바 파다" "나는 그리스도 파다" 한다고 합니다.
13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14 내가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보와 가이오 말고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준 일이 없음을 감사합니다.
고린도교회에 적어도 네 개 이상의 파벌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본문입니다. 그리스도파,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가 있었네요. 게바는 베드로고, 아볼로는 사도행전 18장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계 기독교인으로 고린도에서 전도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한국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하지만 초대교회의 모습이 그렇게 바람직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돌아가야 할 곳은 초대교회가 아니라 복음의 원형, 즉 예수님의 삶과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이고, 그 복음의 원형을 교우님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랍니다.
유대인에게 그리스도, 즉 메시야는 주변 강대국을 제압하고 이스라엘의 부흥을 가져오는 다윗왕국의 계승자이어야지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일 수 없었기에 거리낌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사형판결을 받고 죽은 사람을 종교의 창시자로 믿는 건 어리석은 선택으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바울은 강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의 중심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학자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 십자가와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가 이해하는 십자가는 인류에 대한 대속입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이 이해하는 십자가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의 상징이며, 가난한 자와 포로된 자, 눌린 자, 애통하고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신 예수님 자신의 선언을 목숨을 다해 지켜내신 약속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기독교가 해석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시체가 벌떡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이 해석하는 부활은, 예수님의 의로운 죽음이 그대로 땅에 묻혀 사라질 수 없었기에 제자들의 가슴에 뜨거운 소망의 불길로 되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합리적이고 상식에 부합하며 현대과학과 모순되지 않는 해석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해석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교우님들이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