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중국선종의 법계조작과 그 배경
종교계 특히 불교에서 법계보 문제가 일어나는것은 여러가지 이유중에서 일반가정에서 嫡子와 출계문제이다.즉 말하자면 나를 기준으로 누가 누구의 자식이냐 하는 것이다.
불교계는 결혼한 사람들이 모여 자식을 낳고 승가를 이루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出家,受戒,法弟의 인가를 싸고
사제 및 동문관계의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즉 누구에 의해서 출가 했는가? 출가후 누구에게 受戒하고 恩師가 누구인가? 法弟일 경우 법을 준 스승이 누구인가에 따라 전통에 따른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속세의 세력다툼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정중무상>의 경우 당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기전에 이미 신라의 群南寺에서 득도하였지만 사천성에 도착하여 德純寺를찾았는데 이곳에서는 <검남지선>이란 스님이 원로였다. 무상은 처적과 <지선>에게 사사하였으며 <宋高僧傳>중에서 아마도 실질적인 스승은 지선의 제자인 處寂 이었던것같다. 처적으로부터 사사를 받고 사제지간이 된다. 한편으로 <無相禪師>의 제자로 馬祖禪師와 無主禪師(714-774)를 든다.그런데 마조는 무상과 같이 처적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스승과 같이 스승의 스승으로 부터 가르침을 밭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보면 마조와 무상은 사제관계가 아닌 것으로 볼수도 있다 그러나 무상과 마조는 나이 차이가 무상이 마조보다 25세가 많다.<무상>이 마조를 머리 깎인것은 아니지만, 덕순사의 스승은 무상이었던것으로 보인다. 마조는 이전에 여러 사찰을 돌면서 구법을 하였지만 무주는 무상의 <三句설법>을 듣고 자신이 배운도리가 추호도 흔들림이 없음을 확인했던 것뿐이다.
결국 중국에서는 정통성,적통 싸움이 승가에서도 일어난다.
실제 마조는 이런 백그라운드하에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조사선의 새로운 祖로 추앙을 받기에 이르렀다.그래서 중국은 법계도를 만든다. 실제 한국선종은 법적계보보다 인적계보를 더 중요시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후대에 이르러 마조 스스로 남선종의 혜능의 문하에 들어갔다면 이는 중국의 경우 혜능-남악-마조의 법통이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넓은 땅과 다양한 문화의 중국은 이러한 換父逆祖의 예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리적 협소성으로 인해 불가능하다. 이런 고로 스승의 계보를 충실히 지키는것은 한국이 더욱 충실히 지켰다고 하는것이 타당하다.
당나라시기에 禪宗불교는 광동성 광주를 중심으로 남조의 <혜능대사>, 하북성을 중심으로 하는 북조의 <신수
대사>가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조작을 가한쪽이 남종선이었기에 역설적으로 실질적인 勢는 북종선이 우세하였다고보는 것이다. 주 선종이 남북으로 위치하여 세를 위한 다툼이 있을 때 서쪽에 위치하였던 신라승 무상의 정중종은 오히려 객관자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 현종이 사천지방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는 그곳에서 정중종의 <무상선사>를 접견하였을 정도이었다.
다시말하면 무상의 법제자인 마조를 남종선으로 끌여들여 마조의 막강한 제자를 법통체제에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신화조작의 핵심인물은 荷澤神會(685~760)였고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마조를 끌어 들였던것이다.이리하여 6조는< 현창> 7조가 <신회>가 되어버려 정중종의 창시자이자 마조의 법승인 신라승 <무상>은 법통에서 빠져 버리게 된다.
하택신회는 법게의 혁명가이자 조작자였지만 중국전래의 禪을 훼멸시킨분이며 중국적인 성을 창안한 사람이고 가사전법이라는 거짓 역사를 꾸며내고,<六祖法寶壇經> 줄여서 <육조단경>을 조작하여 혜능의 원래 가르침을 조작하였는데 이것이 1920년 스웨덴 고고학팀의 돈황문서 발견으로 육조단경은 원본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규봉종밀은 선에의해서 깨닫는 방법의 메소돌로지중에서 頓悟漸修(갑자기 깨닫고 점진적으로 수행함)방법을
<정중신회>에서 <하택신회>로 조작하고 하택신회의 문중에 조작되어 와 있는 마조도일의 홍주종을 공격하기위해 <마조>를 <정중무상>의 法系라고 밝힌다. 이런 법계조작도 궁극적으로 보면 인도의 선종1祖인 사라붓다의 제자 마하가섭의 인도식 선종이 중국화하면서 노력하는 와중에 발생된것이라 보면된다.
즉 <하택신회>가 광동인 <혜능>을 세워 6조로하고 5조<홍인>을 이은 정통으로 한 것이다 ,둘째 혜능 -신회-남악에 이어 마조를 법통으로 햇는데 마조는 실은 <정종종> 창시자 신라인 <무상>의 제자였던 것이다.
2.중국의 선종은 신라승 무상의 정중종 ,신수의 북종선, 혜능의 남종선등 3가지 이다.
실제적으로 돈황문서에서 밝혀진대로 신라승 <무상>을 정점으로하고 지선-처적-무상-마조를 잇는 법계가 정중종의 정통을 주장하는 중공학자 서여의 주장이다. 당이 망하면서 이러한 頭陀行 (승들이 걸식을 하지않고 북방식으로 自耕自食)하는 전통이 신라로 넘어가고 고려로 이어지면서 조선까지 이어져 내려온 현재의 禪宗의원류인 것이다.
당말 무이산을 중심으로한 “江西禪脈이 모두 동국으로 넘어가는가“라는 말은 百仗禪師가 道義스님을 보고 한말이다.”앞으로 중국이 선불교를 잃었을때 장차 이력을 동국에 물어야하는가? 이말은 여만이 무염을 보고 한 감탄사이다. 따라서 무상을 정점으로 하는 <정중종>이 정통이라는 주장은 이래서 힘을 받는다.
결국 신라의 입당 구법승들은 자신들 보다 훨씬 일찍 대륙에서 일가를 이룬 선배 <정중무상>의 법통을 이으러유학을 간 꼴이된다. 당시 신라의 고승은 당 유학파 의상대사,토종인 원효대사,대륙 사천성에서 선맥을 세운<무상선사>의 세부류와 당의 북종선,남종선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중공의 불교는 한국의 법맥과 전통에 못미친다. 서기 4세기부터 대륙을 풍미한 중국불교는 1960년대 부터 공산당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했고 지금은 한국과 교류에서 옛 법맥을 다시 세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영자(심제=도불원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