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사태 후폭풍 우즈벡까지?
한국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은행 담당 임원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보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의 현장 점검에 착수한것이다.
이번 출장은 카자흐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하는 것으로, 약 1주일 간의 일정으로 계획돼 있다.
이번 출장은 당초 2개월 전에 계획돼 있었지만 동양사태가 발생하면서 늦춰졌었다.
앞서 카자흐스탄 금융당국은 ‘자금세탁 혐의로 BCC의 외환업무를 1개월 정지했다’는 검사 결과를 금감원에 공문으로 통보했었다.
이는 카자흐스탄 중앙은행과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지난 2월 체결한 MOU(양해각서)에 따른 조치로, 올해 초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그리고리 마르첸코 중앙은행 총재와 만나 금융감독 및 금융지식공유프로그램(KSP)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었다.
MOU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현지에 진출한 국내은행 관련 감독사항을 카자흐스탄 금융감독당국이 금감원과 공유하기로 돼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조 부원장의 출장은 지난 2월 체결한 MOU에 의한 것으로, 2개월전에 계획돼 있었지만 동양사태로 인해 다소 늦춰졌다”며 “따라서 BCC은행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금융당국과 다각적인 금융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따라 현지에 진출한 신한은행 현지법인, 현대증권 사무소의 현황도 둘러볼 예정이다.
이어 우즈베키스탄으로 이동해 현지 국내 금융회사의 현지 진출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현재 신한은행(사무소), 수출입은행(사무소), 산업은행(현지법인) 등이 진출해 있다.
(출처 = herald)
CIS 고려인 현지어 능력 떨어져
구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CIS)이 만들어진지 20년이 넘었지만 이들 나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현지어 구사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향후 주류 사회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 연구팀은 12일 ‘독립국가연합 고려인의 사회 정체성과 언어 사용 실태’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통해 “고려인 대다수가 러시아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고 현지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한 데다 현지어를 배우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조차도 적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 교수팀은 이 근거로 연세대 연구팀이 올해 6∼10월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사마르칸트), 카자흐스탄(알마티·크질오르다), 러시아(연해주·사할린) 등 3개국 6개 지역에서 고려인 1천20명을 상대로 진행한 언어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인별 언어 구사능력을 최저 1점에서 최고 5점까지 매겼을 때 6개 지역 고려인의 러시아어 구사능력은 4.6∼4.8점에 달했다.
반면 우즈베크어나 카자흐어의 구사능력은 평균 3점보다 아래인 2.09∼2.37점에 머물렀고, 현지 한인들이 쓰는 ‘고려말’ 구사능력 평균점수(2.39)보다도 낮았다.
고려말은 과거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 후손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로, 함경도 방언이나 옛 어휘 등이 많이 남아 있는 게 특징이다.
6개 지역 고려인들은 미래에 가장 잘 말해야 하는 언어로 대부분 러시아어를 꼽았지만 거주국 언어를 잘해야 한다고 답한 경우는 10%대에 그쳤다.
연해주·사할린 지역 응답자의 경우 두 번째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언어로 각각 54.3%, 67.8%가 ‘한국어’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이는 두 지역이 중앙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과 교류 경험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윤 교수팀은 분석했다.
실제 연해주·사할린 지역 응답자 중 한국 방문 유경험자는 각각 27.4%, 30.8%로 타슈켄트(19.1%), 알마티(22.3%) 지역보다 많았다.
윤 교수는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뒤 세워진 CIS 국가의 고려인들이 현지어 적응에 지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다수의 고려인이 구소련 방식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한 반면 환경 변화에는 적응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주류 사회 문화에 계속 참여하지 않는다면 결국 탈락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윤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재외한인학회가 여는 연례 학술대회에서 이 연구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기획 연재] 고려인 이주생활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2부)
(하단 기사는 조옥주(사할린한인 2세)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것입니다.)
소련시대 노동자들은 말없이 일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월급날이면 잔뜩 먹을 것을 사서는 잔치처럼 모여서 먹고 마신다. 책임자가 수소문 끝에 집에 찾아가 보면 술에 절어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일이 흔했다. 돈을 계획적으로 쓰지 못하니, 국가에서는 월급도 한꺼번에 주지 않고 2번에 나눠 지급했다. 거기다 도둑질하다 들키는 일도 많고, 이런 사람들은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니기 마련이고, 개개인의 노동경력이 모두 적혀 있는 ‘노동수첩’을 펼쳐보면 이런 것들이 다 보인다.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한 직장을 오래 지키면 훈장까지 준다.
우체국 근무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방식이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그 이튿날은 쉬었다. 우체국에서 천을 내주면 규격대로 소포자루를 만들고 이를 팔고 소포물을 접수하고 내주는 일을 했다. 당시는 모든 소포를 반드시 우체국에서 파는 소포자루에 넣어서 보내야만 했다. 중앙도시에 하나 밖에 없는 우체국이니 물량은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신이 났다. 기본급에 일한만큼 더 얻어 받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손이 재빠른 나는 하루에 300개씩 자루를 꿰매 팔았다. 부수입도 짭짤했다. 주민들은 소포자루를 사면 그 안에 물건을 넣고 각자가 실로 자루를 봉해야 했다. 어차피 내 옆에 실과 바늘이 있으니 나는 이런 귀찮은 일을 대신 해 주었다. 그럼 팁처럼 20코페이카(1루블=100코페이카)를 준다. 당시 빵 한 덩어리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월급만 해도 300루블 이상이었다. 게다가 남편도 내 이상으로 돈을 벌어왔다. 경제적으로는 풍요했다.
대학 나온 엔지니어들의 월급은 겨우 120루블 정도였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그들보다 2배를 더 받았다. 그래서 소련시대는 대학을 나온 인텔리들이 참 가난하게 살았다. 적은 월급만으로 살아야했으니까 늘 살림이 궁색했다. 사무실에서 뭘 훔치겠는가. 종이 밖에 더 있는가? 그런데 종이로 배를 채우겠는가, 옷을 만들어 입겠는가! 사겠다는 사람도 없고 바꾸자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남은 음식이나 재료를 집에 가져올 수 있으니 식비를 줄일 수 있고, 상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물건을 빼돌려 팔거나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교환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가르쳤다. ‘돈이 필요 없는 세상,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는 세상이 곧 온다’고. 그리고 ‘소련의 인민들은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다. 소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어린 우리들은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집에는 늘 돈이 없었고, 맛있는 걸 먹지도 못했고 예쁜 옷이며 신발들은 가질 수가 없었다. 또 어른이 되어서는 돈이 있어도 ‘줄’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좋은 물건이 들어오면 직원들은 아는 사람들에게만 정보를 흘린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인맥’이 절대 중요하다. 어디든 ‘아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된다.
러시아 사람들은 지금도 빼돌리고 훔치는 습성이 있다. 상점 주인은 판매원이 훔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월급 액수를 정한다. 국영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전쯤인데, 외국인과 식당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커피맛이 너무 옅다고 불평을 했다. 나는 종업원에게 커피를 통째로 가져오게 하고, 직접 한 숟가락을 더 넣었다. 그제서야 커피맛이 난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훔치는지 안다. 매번 한 숟가락씩 커피가루를 빼돌린다. 본인이 집에서 마시기도 하고 모아서 팔기도 한다. 상점에서 사는 것보다 헐값에 파니 당연히 사는 사람이 있다. 요즘도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내 친구가 치즈 한 조각이라도 끊어서 뱃속에 감추고 나와야 맘이 편하단다. ‘빈손으로 나오면 뭔가 크게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우체국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아는 사람들이 참 많이 생겼다. 주 중앙도시에 하나 밖에 없는 우체국이니 주민 모두가 내 고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해서 상대방의 수고를 덜어주면 호감을 사고, 때론 보고도 못 본 척 눈감아 주면 빚진 듯이 고마워하고. 자연스럽게 상부상조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다 보니 ‘수단 좋은 따냐’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소포를 접수하고 내줄 때는 반드시 내용물을 확인하게 되어 있다. 때로는 수상한 물건들을 보내고 받는 경우가 있다. 사할린공장에서 훔친 연어알 통조림 같은 것을 대륙에 사는 친척에게 보내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대륙에서 이리로 보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밍크 공장에서 일하는 친척이 밍크털을 한 조각씩 매일 빼돌려 집으로 가지고 온다. 1년을 이렇게 모아서 한 벌의 조각 밍크코트를 만든다. 그러나 그곳에서 팔면 금방 들통이 날테니 멀리 사할린으로 보내 팔아달라고 부탁한다. 현지에서 처리 곤란한 것들이 이렇게 우편으로 오고가는데, 이런 정황을 꿰뚫고 있는 게 나다. 당연히 내게도 ‘줄’이 생기게 된다.
러시아인들은 인내심이 강하다. 성질 급한 사람은 러시아인들을 상대할 수 없다. 도둑질도 큰도둑질에서 작은 도둑질까지, 그 방법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가지가지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국 사람이 사할린교포들을 속여 먹겠다고? 허-어-, 어림없는 소리. 이런 사람들 속에서 살아나온 우리들인데 무슨 소린가? 우릴 어리숙하게 보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요~.” -3부로 이어집니다.
(출처 = 통일뉴스)
[신간] 시인 곽재구가 들려주는
여행이야기 ‘길귀신의 노래’
“세상의 아주 먼 곳까지 사방팔방으로 도시와 사막과 바다와 산맥 속으로 펼쳐진 길들의 모습은 나를 늘 설레게 했다.”
시인 곽재구(59)가 길을 주제로 새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열림원)를 냈다.
‘포구기행’ ‘예술기행’에 이어 세 번째로 털어놓은 인생과 여행 이야기다. 이번 산문집에선 작가의 ‘청춘’을 만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사평역에서’(1981)의 모델이 된 남광주역 얘기 등 시의 탄생 비화가 흥미롭다. 입대 전날 동무들 앞에서 노래 대신 ‘사평역에서’를 낭독했던 일과 살 붙일 곳 없던 그가 친구 어머니에게 받은 돈으로 사글셋방을 전전하며 시를 썼던 모습. 홍안의 스무 살 청년의 퍽퍽했던 삶이 흑백사진처럼 펼쳐진다.
“길을 사랑했다”는 작가는 개펄에 빠져 있다.
순천만의 바닷가마을 와온(臥溫)을 추천한다.
한없이 둥근 달이 와온 바다 위에서 달빛을 뿌릴 때면 세상은 온통 눈부신 꽃밭이 된단다.
뻔한 길이 아니다. 인도 사르나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 그가 살아온 낯선 장소와 만나는 경험은 새로우면서도 따뜻하다.
(출처 = edaily)
러시아 ‘가스프롬’, 키르기스
‘키르기스가스’ 1 달러에 매입
키르기스스탄 내 매장된 천연가스 판매 및 운송과 관련해 러시아외무부, 에너지부가 작성한 <러시아-키르기스스탄 정부간 협약 비준화 법안>이 입법활동정부위원회에 의해 승인됐다.
본 계약에 의거해 키르기스가스사는 러시아 가스프롬사 100 % <자매회사>로 회사 자산과 권리를 양도해야 하며 이와 관련해 가스프롬사가 1 달러에 키르기스가스사를 매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댓가로 가스프롬사는 200억 루블(642억원) 규모를 들여 키르기스 가스 인프라 시스템 현대화 작업에 들어간다.
이외, 가스프롬사는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제시하는 관세정책을 준수하고 키르기스스탄 국내 소비량 공급을 보장하는 조건에서 계약 기간 25년으로 체결됐다.
(출처 = 러시아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