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0-12-14 03:06 최종수정 2010-12-14
남아공 유치원 세운 원불교 김혜심 교무… 7회 졸업생 배출
지난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빈민촌 라모코카에서 아침부터 꽹과리·징·북·장구 소리가 울려퍼졌다. 신명난 곳은 '라모코카 원광유치원'. 7회 졸업식을 맞아 유치원에서 사물놀이를 배운 동네 청년 10여명이 축하 공연을 했다.
이 유치원은 원불교 김혜심(65) 교무가 2003년 세웠다. 김 교무는 이날 난생처음 검은 사각모와 가운을 입은 꼬마 졸업생 23명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건넸다. 아이들은 그에게 "두멜랑, 꼬꼬김" 이라고 인사를 했다. 수투(Sutho)족 말로 '안녕하세요, 김 할머니'란 뜻이다.
김 교무의 아프리카 봉사는 1995년 시작됐다. 이를 위해 원광대 약학대 학장직도 내놓았다. 그는 "소록도에서 8년간 한센인 의료 봉사를 했었는데, 아프리카는 소록도보다 훨씬 열악했다"며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남아공 이웃 나라 스와질란드에 '선샤인(Sunshine)' 쉼터를 세우고 에이즈 환자를 돌봤다. 해발 1100m 카풍아 마을에 보건소와 여성개발센터도 지었다. 김 교무는 "해외 원조 등 받는 데만 익숙해진 어른들의 의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며 "어린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마침 2002년 요하네스버그시(市)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라모코카의 추장이 그에게 "유치원을 세워달라"며 1만5000㎡(약 4500평)의 땅을 내놓았다. 김 교무는 허허벌판에 붉은 벽돌을 쌓아올려 유치원을 세웠고, 마을 전체의 배움터가 됐다. 한국에서 컴퓨터를 기증받아 청소년과 부인들에게 가르쳤다. 2004년부터는 청소년 태권도교실도 열고 사물놀이도 가르쳤다. 주민들과 '텃밭 일구기'운동에도 나섰다.
김 교무가 심은 씨앗은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컴퓨터 교육을 받은 주부가 취직했고, 태권도를 배운 청소년들은 국가대표가 됐다. 라모코카 사물놀이패는 남아공월드컵 때 '검은 악마'로 활동하며 대한민국팀을 응원했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우수 농작물을 재배한 주민을 시상하는 행사도 열렸다. 김 교무는 상품으로 손수레와 삽 등을 건네면서 "이러면 더 열심히 농사일을 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주민 보시멜로(61)씨는 "유치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길과 공동묘지도 청소한다"며 "처음엔 보고만 있던 어른들도 이젠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장기 자랑에 열중인 아이들을 바라보던 김 교무는 "진짜 열매는 이 아이들"이라고 했다. "졸업반 이름이 햇님반(sunshine class)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남아공과 아프리카를 비추는 태양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하고 싶어요." 사물놀이패가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만세! 꼬꼬김 꼬꼬김 꼬꼬김 만세!"라고 외쳤다. 그는 지난달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통령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