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금. 살인진드기
올여름 휴가 내내 폭염이더니 지난 수요일엔 비가 내렸다. 때문에 숲도 촉촉이 젖었다. 한껏 부풀었던 여름버섯들도 더러는 터지고 녹아내리고 잔뜩 곰피었다. 검게 변하다가 먹물이 엉킨 듯 녹아내린 버섯도 있지만, 다른 버섯의 균사들이 솜사탕처럼 엉겨 핀 것도 있었다. 이제 좀 있으면 가을버섯이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다. 자연의 주인공은 쉼 없이 바뀐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가 빠르게 느껴진다.
초소에 도착하니 옷이 흠뻑 젖었다. 모자와 팔토시를 벗었다. 한 열흘 전부터 모자와 팔토시를 사용하고 있는데 햇볕도 햇볕이지만 확실히 모기와 날파리들이 덜 성가시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팔을 보니 적갈색의 진드기가 기어가고 있지 않은가? 깜짝 놀랐다. 한 달 전 옆 마을 할머니가 살인진드기에 물려 돌아가시고 나서 간혹 산길을 걷노라면 진드기 생각이 날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내 몸에 달라붙다니 진드기에게 안 물린다는 보장은 역시 어렵겠구나 싶다.
그런데 이 진드기의 진짜 이름을 찾아보니 작은소참진드기다. 이름이 참 예쁘다. 작은 소 참진드기니 살인진드기라는 혐의만 없이 그냥 객관적으로 보면 귀엽게 봐줄만하다. 하지만 역시 치사율 6%를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진드기 콤플렉스는 완성되는가보다. 나로서는 우연찮게 행락객이 버리고 간 모자를 주워 쓰고 팔토시를 착용하고 또 물리기 전에 진드기를 발견했지만 물렸더라면 또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덕분에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더 거리와 공포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점심이 되니 비올 듯 어두워진다. 제비 서너 마리가 화엄벌에 올라와 날아다닌다. 2시 무렵 소나기가 쏟아졌다. 등산객 5명이 비를 피하러 초소로 들어왔다. 천성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 했다. 그런데 한분이 우스개처럼 이렇게 전망 좋은 곳에 정자라도 세우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내가 목격하고 있는 산악 레저문화와 생태교란, 그리고 자연의 외관을 휙 보는 것보다 변화를 섬세하게 볼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연의 풍요로움은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꼼꼼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고 놀라운 것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연을 좀 더 섬세하게 보는 게 나의 관심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좀 있다 다른 분이 홍룡사 숲은 간벌을 해서 올라올 때 훤히 드러나 시원했다고 한다. 사람 눈에는 훤히 드러난 게 시원해보일지 모르지만 식림사업 후 40~50년이 경과하면서 자연림화하며 안정적으로 구축된 생태계의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라고, 지금 여기에 적응한 각종 생물들에게는 엄청난 시련기라고 말했다. 말씀하신 분도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그렇겠다고 동의를 했다.
그러고 보면 살인진드기와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인간의 한 가지 기준으로만 숲과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도무지 자연이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복잡하게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벌써 자연과 격리된 채 살아가며, 차분하게 맥락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도무지 생각을 견디지 못한다. 대부분 표피적으로 보고 판단한다. 현대인이 자연을 보는 눈이 얼마나 가벼운 지 이런 일상적인 대화 장면에서 쉽게 드러난다. 어찌할 수 없다. 부단히 보고 찾고 관찰하고 이해하며 조금이나마 맥락을 드러내고 알리는 도리밖에 없다.
비가 그치고 등산객들이 떠났다. 잠시 후 초소 뒤 덤불이 들썩들썩 한다. 보니 무슨 짐승이 다니다 내 인기척을 느끼고 방향을 바꿔 가다 멈춰 고개를 빤히 든다. 아기 멧돼지다. 봉수대 가는 임도변에서 만난 아기 멧돼지들 중 한 마리일 것 같다. 어린 것들에게 이 모든 것들이 새롭다. 그래서 어미 같으면 감히 엄두도 볼 낼 장소를 이렇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며칠 전엔 역시 봉수대 등산로에서 어미 멧돼지와 부딪힐 뻔했다. 소나무를 가운데 두고 서로 엇갈렸다. 어미가 잔뜩 경계한 음성으로 짖었다. 나도 잔뜩 긴장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여름 번식철에 멧돼지는 무리에서 벗어나 새끼를 낳고 각기 생활하는 것 같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다른 동물들처럼 다시 무리를 이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