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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사 신간 소개 _335●5494
버섯살이 곤충을 연구하는 일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그것도 혼자서 걸어간다는 건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니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버섯살이 곤충 연구자가 없습니다. 아니, 세계적으로도 연구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곤충 하나 연구하기도 어려운데 버섯까지 줄줄이 꿰어야 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더구나 버섯살이 곤충은 굉장히 비싸게 굴어 좀처럼 얼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버섯 하나에 사는 주인이 누군지 알아내기까지는 시간도 정성도 무지 듭니다. 그 비싼 얼굴을 보여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지요. (중략)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아니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몇 달을 키웠는데 ‘꽝’이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런 일은 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그래도 버섯을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내 아이 돌보듯 날마다 정성을 들입니다. 그러다 운 좋으면 녀석들의 사생활을 훔쳐 볼 수도 있으니까요.
평생 버섯살이 곤충과의 동행을 꿈꾸는 저자의 글에서_
버섯에 오는 곤충에 관한 국내 첫 기록!!
버섯에 기대 숨어 살아가는 곤충들의 사생활을 낱낱이 파헤친다.
"숲 속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읊은 유명한 시구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곤충학자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느 학자도 가지 않은 길, 버섯에 오는 곤충을 쫓는 정부희 선생이다. 스스로를 ‘인문학 골수분자’라 인정했던 그가 우연히 만난 곤충의 매력에 흠뻑 빠져 단지 곤충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불혹의 나이에 대학원(생물학과)을 들어가 이학박사가 되었다. 그러곤 수많은 먹이 중에 유독 버섯을 먹고 버섯에서 한살이를 하는 버섯살이 곤충과 동행하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만나온 버섯살이 곤충을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이는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을 펴냈다. 저자의 오랜 꿈인 우리 버섯에 사는 한국의 토종 곤충을 정리하는 일의 첫걸음인 이 책에서는, 그동안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았던 버섯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국 토종 곤충들의 한살이를 밝히고 있다. 버섯에 오는 곤충에 관한 기존 연구 결과물이 없는 상황에서 저자의 표현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간과 함께 쌓아온 귀중한 자료들이다. 한 종 한 종 마치 자식을 기르듯이 소중하게 관찰하고 연구한 버섯살이 곤충들의 종별 생태 기록과, 저자가 직접 찍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사진들을 함께 실었다.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고 귀한 자료인 만큼 학술적 가치가 크지만, 저자는 그 가치를 영문학 전공의 경력을 살려 흥미로움으로 포장했다. 버섯에 오는 곤충에 관한 국내 첫 기록이지만, 저자의 솔직하고 담백한 문체는 곤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동안 아무도 밝히지 못한 버섯살이 곤충의 생활사를 다룬 국내 첫 버섯살이 곤충기(昆蟲記)는 이렇게 세상 빛을 보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곤충의 먹이식물 버섯
버섯살이 곤충과 만나려면 먼저 버섯을 만나는 것이 필수코스다. 저자는 곤충도 곤충이지만 아름다운 버섯들과 데이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전한다. 비가 한소끔 지나간 습습한 여름날, 숲 속이나 들길을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버섯들이 얼굴을 내민다. 기다란 자루에 우산 같은 갓을 쓴 버섯들이 숲 바닥을 점령하고, 나무 위에는 반달 같은 갓을 활짝 편 버섯들이 다닥다닥 피어난다. 말 그대로 버섯 잔치가 한창이다. 버섯은 나무에 나는 버섯과 땅 바닥에 나는 버섯이 다르다. 흔히 땅에 나는 버섯은 갓 아랫면에 빗살 같은 주름살이 있다고 해서 주름버섯류라고 하는 데 비해 나무에 나는 버섯은 갓 아랫면에 주름살 대신 관공이 있어서 민주름버섯류라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민주름버섯류 중에 간혹 주름살 모양인 것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곤충도 나무에 주로 나는 민주름버섯류를 좋아하는 종이 있는가 하면 땅에 나는 주름버섯류만 먹는 종도 있다. 민주름버섯류는 나무처럼 딱딱하고 질겨서 잘 썩지 않아 수명이 다 되어도 버섯살이 단단해 분해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떤 버섯은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버섯은 일 년 이상 걸리는 것 있다. 이렇게 단단한 버섯을 먹는 곤충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할밖에. 민주름버섯류에는 대부분의 딱정벌레목 곤충과 나비목의 일부 곤충(곡식좀나방과)이 찾아와 둥지를 튼다. 버섯이 분해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한살이가 약 40~80일로 꽤 긴 딱정벌레류가 눌러앉아 살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먹이 식물인 버섯이 쉬이 썩어 내리지 않으니 성충은 안심하고 알을 낳고, 애벌레는 마음껏 버섯밥을 먹으며 자란다. 버섯이 땅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에 자리를 잡아 박테리아나 균들의 공격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분을 많이 품어 버섯살이 연해서 잘 부스러지고, 포자를 날리고 나면 금방 썩어 녹아내리는 주름버섯류에도 찾아오는 곤충이 있을까? 난버섯이나 금빛비늘버섯처럼 간혹 나무에 나는 버섯도 있지만 거의 땅에서 자라는 주름버섯류는 아무리 오래 살아 봤다 일주일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버섯의 수명이 이렇게 짧으니 곤충들이 눌러앉아 한살이를 할 수 없다. 그저 푸짐한 밥상만 받을 뿐. 그러나 그 틈을 노리는 곤충들도 있다. 한살이 기간이 비교적 짧은 파리류나 입치레반날개 같은 반날개류 일부가 바로 주인공이다. 대신 그들은 모든 과정을 속성으로 진행한다. 버섯의 갓이 피기도 전에 미리 와서 알을 낳고 애벌레 기간을 짧게 버섯에서 지낸 뒤 땅 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된다. 척박한 자연에 자신의 한살이를 맞추며 종족을 보존해 가는 모습을 보면 곤충을 미물이라 일컫는 것이 미안해진다.
버섯에 사는 곤충은 얼마나 될까?
"도대체 그 작은 버섯에 곤충이 산다면 얼마나 산다는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숲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버섯에 오는 곤충은 버섯 종만큼이나 다양하다. 버섯을 찾는 곤충의 종은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딱정벌레목이 많다. 150개 과(科)가 넘는 딱정벌레목 곤충 중 20퍼센트가 버섯과 곰팡이를 포함한 균류를 먹고 산다고 하니 약 28개 과(科)에 속한 곤충이 버섯살이를 하는 셈이다. 곤봉 모양 더듬이와 계란처럼 긴 타원형 몸매가 특징적인 버섯벌레과(Erotylidae) 곤충, 몸길이가 2밀리미터 남짓으로 굉장히 작지만 긴 원통 모양의 몸매를 지닌 애기버섯벌레과(Ciidae) 곤충이 버섯살이 곤충에 속하고, 이들 외에 고목둥근벌레과(Corylophidae), 무당벌레붙이과(Endomychidae), 애버섯벌레과(Mycetophagidae), 애버섯벌레붙이과(Tetratomidae), 반날개과(Staphylinidae)의 일부 밑빠진버섯벌레류, 알버섯벌레과(Leiodidae), 곡식쑤시기과(Cryptophagidae), 거저리과(Tenebrionidae) 일부, 애버섯벌레붙이과(Tetratomidae) 일부, 긴썩덩벌레과(Melandryidae) 일부 등도 버섯에 오는 곤충들이다. 아직 밝히지 못한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저 그 규모가 놀라울 뿐이다.
버섯은 곤충들에겐 최고의 낙원이다. 맛있는 밥상이자 자손을 잇는 산란장이요, 귀한 집이기 때문이다. 애기 손바닥만도 못하게 작은 버섯, 종이 몇 장 겹쳐 놓은 것처럼 얇은 버섯, 나무껍질처럼 질긴 버섯, 사람들도 벌벌 떠는 독버섯은 물론 사람의 손을 타 바닥에 내버려진 버섯 속에도 경이롭게 생명이 숨 쉬고 있다. 한 마리도 아닌 수십 마리가 함께 그 버섯 속에서 잠을 자고, 먹고, 싸고, 아기를 키우며…… 그렇게 일생을 보낸다. 버섯살이 곤충은 한평생 살아가는 데 그저 버섯 한 조각이면 족하다. 더는 욕심내지도 않는다. 그런 소박한 그들의 밥상을 인간은 재미 삼아 때로는 별미로 욕심을 낸다. 저자는 버섯살이 곤충에게 버섯은 없어서는 안 되는 삶터이니 그들에게 양보해서 오래도록 그들과 동행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꺼내놓았다. 앞서 걸어간 이가 아무도 없는 길을 열며 나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힘들고 버겁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버섯살이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어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거울 때가 많습니다. 저 혼자뿐이라 섣불리 내려놓을 수도 없으니 죽으나 사나 버섯곤충과 평생 동안 같이 놀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저자 역시 예쁜 곤충들과 만날 때의 기쁨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간다고 했다. 가끔은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저자는 오늘도 여전히 숲에서 들길에서 버섯살이 곤충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이제 저자가 소망하는 대로 그가 버섯살이 곤충과 평생을 동행할 수 있도록 산과 들을 찾는 우리들이 도울 일만 남았다.
지은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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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희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서른 즈음에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고 전국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우리 자연 속 생명에 눈을 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우리 식물(특히 야생화), 새, 버섯 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길동자연생태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자연과 곤충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늦은 나이에 곤충,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딱정벌레목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대가의 가르침을 받으려 성신여자대학교 생물학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석사학위를 받고 이어 박사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버섯살이 곤충’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고 「한국산 거저리과의 분류 및 균식성 거저리의 생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까지 거저리과 곤충과 버섯살이 곤충에 관한 논문을 20편 넘게 발표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남대학교 동물계통분류연구실에서 박사후과정 국내 연수를 밟았다. 지금은 한국응용곤충학회, 한국곤충학회, 한국균학회, 한국생태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건국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고려대학교 곤충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등에서 주관하는 전국환경조사, 자생종 발굴사업, 전국해안사구 정밀조사, 각종 환경평가 등에 참여해 활발하게 곤충조사를 하고 있다. 왕성한 연구 작업과 함께 곤충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도 관심이 커서, 여러 환경 단체가 주관하는 다양한 환경 관련 프로그램에서 곤충 생태에 관한 강연을 하며 ‘곤충 사랑 풀뿌리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외에 『곤충의 밥상』, 『곤충의 유토피아』, 『곤충 마음 야생화 마음』을 펴냈으며, 학술저서로 『한국의 곤충_딱정벌레목:거저리아과』이 있다.
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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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
1부_ 나무에 나는 버섯을 먹는 곤충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버섯에서 사는 산호버섯벌레
불로초, 영지를 먹고 사는 살짝수염벌레류
멋쟁이 멋진주거저리의 안식처 삼색도장버섯
단단한 삼색도장버섯을 먹어 치우는 5밀리미터 크기의 둥근쌀도적
황갈색시루뻔버섯의 습성을 이용하는 세줄가슴버섯벌레
가시투성이 넓적가시거저리가 사는 집, 아까시재목버섯
덕다리버섯 속의 빨간 보석, 르위스거저리
표고도 먹고 덕다리버섯도 먹는 노랑테가는버섯벌레
무지갯빛 영롱한 줄무당거저리를 품은 단색털구름버섯
조개껍질버섯 속에서 평생을 사는 톱니무늬버섯벌레
송편 속 대신 송편버섯에는 동양무늬애버섯벌레붙이가 들었고
콩버섯 단칸방에 살림 차린 회떡소바구미
2부_ 땅에 나는 버섯을 먹는 곤충
말뚝버섯류에 말뚝 박는 파리들
어여쁜 노란난버섯을 먹는 깜찍한 가시다리깨알버섯벌레
숲 속의 요정, 노란망태버섯을 좋아하는 파리류와 대모송장벌레
여러 가지 버섯 요리를 즐기는 달팽이류
젖이 흐르는 배젖버섯 밥상에 둘러앉은 납작버섯반날개
가을 파티를 벌이는 검은비늘버섯과 제주붉은줄버섯벌레
방귀 뀌는 좀말불버섯만 쫓아다니는 방귀무당벌레붙이
우산버섯에 둥지 튼 주름밑빠진버섯벌레
멋들어진 삿갓외대버섯과 혹가슴검정소똥풍뎅이
콧물 흘리는 끈적긴뿌리버섯에 모인 초파리류
황소비단그물버섯에서 짧은 생을 사는 극동입치레반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