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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淨岩寺) 정암사(淨岩寺)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 줄기의 함백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이며, 오대산 상원사 사자암, 양산 영축산 통도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있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서 636년(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년)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정골사리(頂骨舍利), 치아(齒牙), 불가사(佛迦裟), 패엽경(貝葉經) 등을 전수하여 귀국, 동왕 14년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그 중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였다고 전해진다.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 하여 정암사(淨岩寺)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며, 일명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했다.
문화재자료 제32호 적멸보궁 (寂滅寶宮) 정암사 적멸보궁(정암사에서는 '적멸궁寂滅宮'이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다.)은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영조 47년(1771)에 고쳐 지은 것으로 미루어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이곳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정암사에 수마노탑을 세워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적멸보궁에서 '예불대참회문'으로 89분의 부처님을 칭명하며 108배로 참회하고 회향하였습니다. 화엄경의 핵심 보현행원품이 들어 있는 ‘예불대참회문’으로 89분 부처님 명호를 칭명하며 108배한 공덕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예불대참회문은 성철스님, 광덕스님 두 분 큰스님이 그냥 자의적으로 만드신 게 아니고, 보적부의 <불설결정비니경>과 <보현행원품>에 근거해서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불설결정비니경>에 나오는 89 분의 부처님을 108 예참을 하는데 넣으시고, 그리고 게송 일부를 참회문 후반부의 앞쪽에 배치하시고 나머지는 모두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게송으로 예불대참회문을 마감하셨습니다. 이참(理懺, 진리로 참회하는 것)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름으로써 진리에 귀의하게 하고 진리로 우리의 잘못을 깨끗이 하시려 한 것(禮懺)으로 보입니다. 정화(淨化)하여 청정(淸淨)하게 하려는 것은 '이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여래지 보살님이 법보시하여 배부한 법요집입니다. 우리 ‘백팔고찰순례단’은 순례 당일 첫 번째 순례 사찰의 사시불공에 동참하여 사시불공후 예불대참회 108배를 하는고로, 그간 ‘예불대참회문’을 인쇄한 기도포와 소책자를 제작하여 배부한 바 있으나, 시간이 많이 흘러 소지하고 있는 분이 많지 않아 다시 제작하려고 기획하던중 여래지 보살님이 큰마음을 내어주어 천수경, 금강경, 예불문 등을 추가로 수록하여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요집을 순례단 회원님들과 동참하는 모든 분들이 신행 길잡이 삼아 가일층 수행정진하여 모두가 다함께 청정원을 원만히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본 ‘신행법요집’을 법보시하여 주신 여래지 보살님과 부군인 덕천거사님께 감사드리며 이 법보시의 인연 공덕으로 가정이 길상하고 사업이 흥성하며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지혜와 복덕이 함께하기를 발원합니다.
적멸 보궁 옆에는 자장율사의 주장자라 전하는 주목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주목은 약 1,300년 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평소 사용하던 주장자(지팡이)를 꽂아 신표로 남긴 나무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 일부가 회생 성장되고 있어 마치 자장율사의 옛모습을 보는 듯하다. 부산에서는 접하기가 드문 점심공양에 나온 강원도 정선 향토음식 곤드레 나물밥입니다. 곤드레는 향명이고 국명은 고려엉겅퀴이며 학명은 Cirsium setidens (Dunn) Nakai라고 합니다. “한치 뒷산에 곤들레 딱쥐기 마지메 맛만 같으면 고것만 뜯어다 먹으면 한해 봄 살아난다." 정선아라리의 한 자락입니다. 강원 정선은 논이 극히 적어 봄이면 산에서 나는 나물이 춘궁기를 넘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보물 제410호 수마노탑 (水瑪瑙塔)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塔身)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감실(龕室)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탑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안상(眼象) 등은 모두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塔誌石)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암사에 있는 여러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아래는 이번에 배부한 16페이지 분량의 사찰안내서와 버스내에서 시청하기위해 준비한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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