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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트리 골프 리조트 - 톡 쏘는 맛도 매력적인 '사막의 오렌지' | |
![]() 피닉스(Phoenix).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500년을 넘게 살다 스스로 몸을 불태운 뒤 그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전설 속의 새. 미국 애리조나주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피닉스는 전설을 도시 이름으로 삼았다. 미국프로농구(NBA) 피닉스 선스(SUNS)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여름철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다. ![]()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로 이어지는 10번 국도. 도로 주변엔 찢어진 타이어의 잔해가 즐비하다. 펑크 정도가 아니라 아예 휴지 조각처럼 너덜너덜하다. 애리조나의 사막에서 느낀 감정은 ‘신비함’보다는 ‘두려움’이 먼저였다. 이곳에서 만약 타이어가 찢어진다면 ‘피닉스’의 밥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느덧 캘리포니아를 지나 애리조나다. 주 경계선을 넘자마자 차창 밖의 풍경이 바뀐다. 캘리포니아에서 흔히 보던 야자수는 온데간데없고, 삼지창 모양의 선인장이 가로수 대신 늘어서 있다. 사막을 지나는 승용차가 어느덧 ‘낙타’로 변해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 옛날 애리조나 카우보이들은 사막을 건너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막을 건넌 끝에 다다른 오렌지 트리 골프 리조트. 이름처럼 첫인상부터 경쾌하다. 도로에서 느끼던 두려움 따위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사막 위에 자리 잡은 크림색 2층 건물의 리조트 사이로 18홀 코스가 들어서 있다. 이름과 달리 오렌지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옮겨 심은 야자수와 선인장 사이로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다. 리조트 코스답게 1번 홀부터 페어웨이가 널찍널찍하다. 산악 지형에 들어선 코스처럼 굴곡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난도를 높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해저드를 많이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다. 코스 주변에 자리 잡은 집 한쪽엔 노부부가 그늘 밑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인 눈에 띈다. 한낮의 나른함과 편안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선인장 사이로 펼쳐진 페어웨이를 걷다 보면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비교적 쉬운 코스여서 스코어가 잘 나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훌륭한 골프장의 조건은 뭘까.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치가 아름다워야 하고, 디자인도 다양해야 하고, 모든 골프 클럽을 빼놓지 않고 골고루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야말로 골프 코스를 평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일 것이다. 독특한 분위기가 없는 골프장은 향기 없는 꽃이다. 페블 비치가 가시 돋친 장미라면 오렌지 트리 골프장은 달콤하고 신선한 오렌지다. 가끔은 톡 쏘는 맛도 매력이다. 워터 해저드를 끼고 있는 9번 홀과 18번 홀이 그렇다. 17번 홀(파 5).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우리 일행은 페어웨이 한쪽 주택의 울타리에 새겨놓은 문구를 발견하고 크게 웃었다. ‘만약 이전 홀에서 양 파(8타) 이상을 기록했다면 망설일 것 없이 레이디 티로 가시오(If you took on 8 or more on the last hole feel free to move to the ladies tees now).’ ‘겁쟁이처럼 퍼트를 한다면 버디는 꿈도 꾸지 말 것(There are no birdies when you putt like a turkey).’ 토리 파인스처럼 장엄하지도, PGA웨스트처럼 까다롭지도 않았지만 오렌지 트리 코스는 유머가 넘치는 이 문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훌륭한 골프 코스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이런 분위기는 경치가 아름답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18홀을 마치고 나니 선인장 가지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진다. 클럽하우스 앞마당에선 턱시도 차림의 신랑과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부가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다. 이 골프장의 분위기처럼 그들의 앞길에도 편안함과 즐거움이 넘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골프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애리조나의 사막을 다시 건너기 위해선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피닉스의 뜨거운 열기에 못 이겨 타이어 곳곳에 균열이 생긴 참이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애리조나의 석양을 마주하고 사막을 달리다가 스피커의 볼륨을 한껏 높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주제가 ‘콜링 유(Calling You)’가 흘러나왔다. 영화에서 나왔던 사막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
첫댓글 페블 비치가 가시 돋친 장미라면
오렌지 트리 골프장은 달콤하고 신선한 오렌지다.
가끔은 톡 쏘는 맛도 매력이다.
워터 해저드를 끼고 있는 9번 홀과 18번 홀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