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질 받은 바위
하루는 사냥꾼이 산에 왔습니다. 사슴 가죽 모자를 쓰고, 호랑이 가죽 조끼를 입었습니다. 손에는 활을 들고, 등에는 화살통을 메고 있었습니다. 그는 짐승을 발견하면, 화살을 시위에 메기지 않고 빈 활을 쏘았습니다.
“아이코, 깜짝이야, 화살이 없었잖아!”
짐승들은 달아나다가 멈춰서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사냥꾼은 골짜기 저 골짜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화살 하나로 두 마리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너희를 죽이는 건 싫다. 누가 순순히 잡혀 가면 활을 쏘지 않겠다.”
잡혀가는 것을 좋아할 짐승은 없었습니다. 짐승들은 모두 자기 집에 숨어버렸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 내가 가진 화살 20개를 모두 쏘겠노라! 내 화살은 굴 속에 숨은 짐승도 맞출 수 있다.”
사냥꾼은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숲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사냥꾼의 말이 진짜라면 수 십 마리가 죽을지도 몰랐습니다. 짐승들은 모두 움츠러들었습니다. 사냥꾼을 멀리서 바라보던 금빛 털을 가진 원숭이 한 마리가 나섰습니다.
“내가 가야겠어. 누군가는 잡혀 주어야 숲속 짐승들의 피해가 적을 거야.”
금빛 원숭이는 동료들이 말렸지만 뿌리치고 사냥꾼에게로 걸어나갔습니다. 사냥꾼 얼굴이 펴졌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원숭이로구나.”
사냥꾼은 금빛 원숭이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흠, 말을 알아듣는 원숭이라? 내 곁에 두고 심심할 때 보리라.”
왕은 사냥꾼에게 금은을 듬뿍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처음에는 금빛 원숭이를 묶어 놓았습니다. 금빛 원숭이는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왕은 금빛 원숭이가 특별히 똑똑한 것을 알고 풀어주는 것은 물론, 왕의 곁에 두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금빛 원숭이는 왕이 말하지 않아도 왕이 필요한 물건을 먼저 갖다 주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자, 금빛 원숭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고, 사람처럼 수저를 사용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자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금빛 원숭이는 왕이 더울 때 부채질을 해 주었습니다. 왕이 잠을 자다가 이불을 차 버리면 다시 덮어주었습니다. 왕이 목욕을 할 때는 등을 밀어주었습니다. 왕이 글을 쓸 때에는 먹을 갈아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똑똑하고 성실한 원숭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왕은 금빛 원숭이가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살피러 나갈 때에도 데리고 다녔습니다.
한 번은 값나가는 옷을 입은 노인이 왕이 지나가는 길에 엎드려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요즘 도둑이 너무 많습니다.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제발 도둑을 잡아 가두어주시기 바랍니다.”
“잠을 못 잘 정도로 도둑이 많단 말이냐? 그거 큰 문제로구나. 그래,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느냐?”
“아직 잃어버린 것은 없사옵니다. 그러나 이웃에 도둑이 들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덜 떨리옵니다.”
왕은 한숨을 쉬며 노인과 금빛 원숭이를 번갈아보며 말했습니다.
“한갓 짐승에 지나지 않는 금빛 원숭이도 그 이유를 알고 있을 터, 어찌 인간인 네가 그걸 모른단 말이냐. 원숭아, 네가 답을 해 주거라.”
“왕이시여, 그것은 저 분의 욕심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금빛 원숭이가 대답하자, 노인은 부끄러워했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다. 번뇌를 끊어야 하느니라.”
며칠 후, 왕은 다시 성밖을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왕 앞에 엎드렸습니다.
“왕이시여, 나와 제 친구는 둘다 소금 장수입니다. 친구는 나보다 시커먼 소금을 팔았는데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내게 자랑합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몇 대 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나를 관아에 고발하는 바람에 저는 옥살이를 했습니다. 불공평합니다.”
왕은 한숨을 쉬며 소금 장수에게 말했습니다.
“한갓 짐승에 지나지 않는 원숭이도 그 이유를 알고 있을 터, 어찌 인간인 네가 그걸 모른단 말이냐. 원숭아, 네가 답을 해 주거라.”
“왕이시여, 그것은 저 분의 성내는 마음 때문입니다. 질투 때문에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금빛 원숭이가 대답하자, 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다. 그런 게 모두 번뇌이니라. 번뇌를 끊도록 하라.”
왕궁으로 돌아오자, 왕은 사냥꾼을 불렀습니다.
“이 금빛 원숭이는 사람보다 낫도다. 그동안 내 시중을 충실히 들었고, 사람들의 허물도 깨우쳐주었다. 그 보답으로 이제 금빛 원숭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고 싶다. 무사히 데려다 주기 바란다.”
왕은 사냥꾼에게 노잣돈과 마차를 내주었습니다. 사냥꾼은 금빛 원숭이를 마차에 태워 길을 떠났습니다. 사냥꾼은 마부처럼 마차 바깥에 앉고, 금빛 원숭이는 사람처럼 마차 안에 탔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소문으로 듣던 그 금빛 원숭이구먼. 원숭이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더니 저런 대접도 받네그려.’
마차가 성문을 나왔습니다. 사냥꾼의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이렇게 멋진 금빛 원숭이를 도로 풀어주기가 아까웠습니다.
‘금빛 원숭이를 잘 이용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사냥꾼은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렸습니다.
‘원숭이를 시장으로 데리고 가서 재주를 부리게 할까? 사람들이 돈을 많이 던져주겠지?’
사냥꾼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야, 한번에 많은 돈을 벌 수 없을까? 맞아, 아주 먼 나라 임금님께 바치면 더 많은 상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소문도 여기까지 나지 않을 거고.’
사냥꾼은 슬며시 마차 문을 잠그었습니다. 그리고 마차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사냥꾼이 말했습니다.
“사실은 왕이 너를 버린 것이다. 너처럼 멋진 금빛 원숭이를 산에 버리다니! 내가 더 멋진 왕궁으로 데려가 주마. 훨씬 좋은 왕궁이란다. 산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사냥꾼의 말에 금빛 원숭이가 점잖게 대꾸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풀어진 실처럼 엉켜있습니다. 어리석은 마음 때문입니다. 어리석음이 당신 자신을, 그리고 남들을 속일 수 있을까요? 부디 어리석음을 깨달으십시오. 밝은 양달로 나오십시오. 번뇌에서 빠져나오기 바랍니다.”
사냥꾼은 아무 말 못하고 금빛 원숭이를 고향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금빛 원숭이가 돌아오자, 원숭이들이 그를 에워쌌습니다. 금빛 원숭이는 평평한 바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원숭이들이 질문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요?”
“나는 바라나시 왕궁에서 지냈다.”
“인간들 음식은 맛있나요?”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우리처럼 바나나를 날 것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우유와 곱게 갈아서 향료를 뿌리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금빛 원숭이는 인간들의 결혼식, 인간들의 글씨, 인간들의 노래도 차례차례 대답해 주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원숭이가 물었습니다.
“인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그건 묻지 마라. 안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말씀해 주세요. 정말 궁금합니다. 듣고 싶습니다.”
원숭이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재촉했습니다. 황금원숭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인간들은 밤낮 욕심을 채울 생각을 한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뻔히 보이는 어리석은 짓을 밥 먹듯 한다. 늘 고민하고 늘 불안하다. 많은 인간들은 번뇌를 끊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번뇌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이 말을 듣던 원숭이들이 얼른 귀를 꽉 막았다.
“이제 그만 말씀하세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습니다.”
원숭이들은 금빛 원숭이가 앉아있던 바위를 손가락질하며 뒷걸음질쳤습니다.
“우리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여기서 들었습니다.”
원숭이들은 개울로 내려가서 귀를 씻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원숭이들은 그 바위를 피해 다녔습니다.
<본생경 제219화> 비방의 전생이야기
<생각하기>
<작가 소개> 충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 교직에 오래 있으면서, 교육심리학 박사를 취득하고, 주프랑스 교육원장, 서울시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역임했다.
추리 모험 장편 동화 <고려보고의 비밀>로 한국안데르센 대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장편 동화 <홍사>, <유적박물관>, <논리야, 넌 누구니?>, <창의력 계발 프로그램 총5권(공저)> <한자인정교과서> 등을 집필했으며, 초등학교 도덕, 국어, 사회 교과서 개발에 참여했다.
첫댓글 평안하시죠? 수고했습니다.
더욱 건필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