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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지척이 천리
대구 50사단.
환희는 입대 전에 전문 특기병을 지원해서 정해진‘방송 병’보직이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이젠 군인으로 탈바꿈을 했다.
하지만 ‘엄마’라 부르던 아이가 장성하여 어느 날부터 갑자기 호칭을 바꾸어‘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거나 못하는 것처럼
마음은 여전히 ‘송이 바라기 소년’으로 멈추어 있었다.
첫 휴가를 20여일 앞두고 박하순 교수님께 편지를 했다.
‘20일경에 첫 휴가 나갑니다. 그동안 별 볼일 동아리는 다녀갔는지요.’
그 속에는 송이가 다녀갔는지를 묻는 말이 내포되어 있었다.
답장에는 동아리 회원들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대신 만족을 얻은 것은 휴가 기간에 '개기 월식'이 있을 것이라는 것과 기쁜 일이 있는데 그건 그때 알려 준다는
알쏭달쏭한 말로 끝으로 맺었다.
“뭐지? 유성이 이모님께서 임신?”
환희는 휴가를 나오자마자 천문과학관으로 달려갔다.
만나는 직원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아버지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기쁜 일이 뭘까? 송이와 별 볼일 동아리는 다녀갔을까’
궁금증으로 가득 찬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노크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살짝 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던 해설사는 활개를 치며 일어났다.
환희는 거수경례를 했다.
“강철.”
“어 환희야~ 휴가 나왔구나. 반갑다.”
해설사는 환희를 끌어안기도 하고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얼굴과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말했다.
“구릿빛 피부의 씩씩한 군인으로 생각했는데 옷만 바뀌었지 전과동이네 하하하.”
“예. 방송 병이라서 요.”
“아주 편한 보직이구나.”
환희가 말했다.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사단 급이라서 계급이 높은 분들이 많고 고참도 많아서 긴장 백배에다가 뭘 잘못했다고
지적할지 눈치를 살피며 지낸다는 것이 제 성격과 맞지 않아서 그게 힘들었어요.”
“하긴 그렇다. 너는 아이 때부터 영특해서 칭찬만 받고 살았지, 남의 눈치를 보는 일이 없는 눈치 제로지대에
살다 갔으니 엄격한 군대에선 많이 힘들었겠다.”
“예. 맞아요. 군대에서는 시냇물처럼 살수 없더라고요.”
“하하하 이건 완전히 환희의‘시냇물론 실종 사건’인데?”
환희는 은하마을 앞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을 보며 자랐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은 물 같은 마음, 별을 보고 자라서 별처럼 아름다운 생각만 가득한 환희 행동은 늘 칭찬이 뒤를
따랐으며, 칭찬 듣기가 일상이라 더 잘해서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까봐 눈치를
보며 행동할 일도 없이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는 소년이었다.
중2때였다.
모범적인 생활과 행동에 직원들이 칭찬을 하자 박 하순 해설사가 말했다.
“환희야 너는 날마다 칭찬을 들으니까 부담 되겠다? 칭찬을 들으려면 하기 싫어도 더 노력을 해야 하니까?”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왜?”
박 하순 해설사의 말은 우문이었고 환희의 말은 현답이었다.
“은하마을 시냇물이‘졸졸졸’소리를 내며 흐르는데 지나가는 관광객이‘정말 깨끗하다~’하고 칭찬을 하면 시냇물이
칭찬을 들었다고 갑자기 ‘더 칭찬을 들어야지’ 하고 태도를 바꾸어 더 예쁜 소리로‘쫄쫄쫄...’흐르지는 않잖아요?”
“어? 그야 그렇지.”
“시냇물은 흐르던 데로 변함없이 졸졸졸 흐르기만 하면 되죠. 칭찬과 상관없이.”
“아이구야~니 시냇물 론을 들으니 내가 순수하지 못한 어른처럼 보여 부끄럽구나 하하하.”
지금 환희의 군 생활은 은하마을 시냇물과 천문대와 과학관의 평화로움의 조약돌 사이로 졸졸졸 흐르는 물이 아니라
엄격한 규율 안에서 상관들 눈치를 보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쫄쫄쫄’ 흘러주어야 하는 쫄병이었다.
환희는 궁금했던 기쁜 일이 무얼까 질문이 떠올랐다.
“교수님 기쁜 일이 뭐에요 저 궁금해서 죽을 뻔 했어요 이모님께서 아기를 가졌지요?”
“헐~ 너는 그게 가장 큰 관심사였냐?”
“예. 이모님께서 의사로 활동하시는 것도 좋지만 이젠 아기도 있어야하고 교수님도 아이들을 예뻐하시는데.....”
“하하하. 노 답이다.”
박 하순 교수는 노 답을 뒤로 하고 정답으로 옮겼다.
“너는 우주 천문하고는 아주 인연이 많다. 다음 주에 개기월식을 하는데 이렇게 때를 맞춰 휴가도 나오고.”
“와우 오랜만에 눈치 안보고 살맛나는 밤이 되겠네요. 하하하.”
환희는 웃다보니 월식이라는 말에 송이가 생각났다.
언제나 해달별이 천기누설을 하면 송이가 나타났었다는 공식 때문이었다.
“환희야 그래서 내가 특별히 준비한 기쁜 소식을 말해줄까?”
“기대기대 하하하.”
“이번 개기월식에는 천문대와 과학관을 모두 무료로 개방하고 별자리 탁본 찍기 등등 여러 가지 부대 행사를 하는데
그중에 더 기쁜 소식은?”
“뭔데요?”
박 교수는 환희의 궁금증을 부채질하려고 뜸을 들이다가 환희의 눈이 커지자 비로소 말했다.
“너에게 상의도 없이 ‘별 신동의 별자리 그리기20’ 특별 강의를 공지로 올렸는데 어때 기쁜 소식이지?”
“예. 오랜만에 저도 한몫 거들어야지요. 갈 데도 없으니 강의를 하며 휴가를 보내겠습니다.”
별자리 그리기는 사흘 후 3시와 6시 두 차례로 한 시간짜리였다.
환희는 송이가 이 강의를 한번 들어 보고 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또 기 승전 송이였다.
'송이가 올까?'
환희는 아버지와 함께 퇴근해서 집으로 왔다.
백구인 보송이와 훌쩍 자라 반송이가 된 백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보송아~ 반송아 잘 있었냐? 많이 컸네~”
입 맞추고 쓰다듬고, 개 이름을 불러도 송이 생각이었다.
긴 밤. 아버지와 긴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환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출근을 하고 예전처럼 천문 과학관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점심시간. 해설사는 환희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천문 대장님이랑 이모한테 휴가 왔다고 전화 해야지?”
“아 예 감사합니다.”
환희 아버지가 말했다.
“환희야 교수님께서 너무 불편하시니까 내가 핸드폰을 하나 해야겠다.”
“예. 아빠 그래야 될 것 같아요.”
해설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쩌다 한번 쓰는 건데 괜찮아요. 정 불편하시면 번호 드릴 테니까 사무실 전화로 하세요.”
“아~ 그건.....”
“아이구 환희 아버님. 전화정도는 사용 하셔도 돼요~볼펜 한 자루 종이 한 장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쓰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딱 둘뿐일 겁니다.”
“아니에요 아는 사람이 없고 전화를 할 일도 없어서 안 샀는데 환희를 봐서 사야겠어요.”
이틀 후.
게시판을 본 사람들은 오랜만에 별 신동을 보려고 아이들 손을 잡고 정오부터 모여 들었다.
어른, 아이, 청소년.별 바라기들이 모여 들고 오랜만에 환희의 특강이 빛났다.
‘송이가 올까? 장희와 경북은? 별 볼일 동아리는?’
하루종일 떠올렸지만 그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드디어 개기 월식 날이 왔다. 별을 좋아하는 별 바라기들의 월식 잔치의 날.
환희는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포토 존을 몇 차례나 다녀왔다. 하지만 여전히 송이와 별 볼일 동아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관측 돔으로 갔다.
해설사의 별자리와 월식 해설을 듣고 재해석하며 해설사 데칼 코마니가 되었다.
“보름달이 어두워지면 붉은 색으로 변합니다.
개기월식 전에 ‘슈퍼 문’이 드러나는 천체의 숨바꼭질을 잠시 후에 보실 수 있습니다.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은 지구 대기에서 굴절된 약간의 햇빛이 비추기 때문이며, 개기일식은 최대8분정도인데
개기월식은 보통40여분으로 일식보다 월식이 긴 까닭은 지구 그림자가 달그림자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환희의 얼굴은 월식이 시작되자 붉어진 슈퍼 문이 되었다.
송이가 올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 까닭이었다.
송이와 환희의 숨바꼭질은 끝내 찾지 못한 체 끝나고 말았다.
송이를 만나지 못한 쓸쓸한 귀대를 했다.
그 후에 복무 중에 일어났던 2월20일 오전 0시54분 월식도. 7월17일 새벽5시15분부터 7시까지 부분 월식도.
9월14일 보통의 작은 달보다 14%나 크게 보이는 슈퍼문이 뜬 날에도 별 볼일 동아리와 송이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해설사의 답신을 받았다.
보현산 위에 뜬 해와 달과 별의 정기도 송이를 끌어당기지 못했다.
송이는 도대체 어디로 숨은 것일까.
별 볼일 동아리 중에 인수는 경북대 사회과학대학 신방과에 합격했다.
인수 아버지는 유명 기자 출신으로 신문사 사장이며 사회적으로 덕망이 있는 분이다.
아들 하나를 둔 아버지는 아들이 천문 대기학과를 가는 것보다 자신의 뒤를 이어 기자를 하기를 원했다.
그 열망에 첫해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방과를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이듬해 재수를 한 합격이었다.
아버지는 첫 수능 두 달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친구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으라고 반 협박을 했다.
학교와 공부뿐, 합격해서도 대기학과 앞도 지나다니지 말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처음엔 아버지가 너무 지나치게 사생활까지 간섭을 한다며 반발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현재 사회적 지위나 강압적 지시를 제외하곤 모든 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버지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아버지가 내 앞길을 더 잘 아실거야. 대를 이어 기자를 한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차두리가 유명한 축구선수 아버지를 두었기에 차두리가 되었잖아?”
그렇게 공부 외에 아버지에게 물려받는 지식이 보너스가 되리라 생각하고 충실한 아들로 길들여졌다.
아버지의 길들이기는 가끔 신문사의 고참 기자에게 아들에게 한수 가르쳐 주라며 수습기자처럼 데리고 다니라고했다.
그러는 사이에 적성을 찾았다 싶을 만큼 성장을 했지만 아버지는 아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공휴일.
인수는 아버지 몰래 일을 벌인 일이 생각나서 고민을 하다가 늦잠을 잤다.
아침 일찍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일어나 앉았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아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인수야.”
인수는 촉이 왔다. 저렇게 다정하게 부를수록 뒤에는 엄청난 일이 항상 있었다.
예상은 현실로 다가왔다.
“인수야, 너 사흘 동안 영천 보현산에 가서 오랜만에 별도 보고.....”
인수는 보현산 이야기에 오랜만에 가 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포커페이스를 했다.
아버지께서 당근을 주시는데는 모종의 큰일은 벌이시는 스타일이라 무섭기까지 했다.
약간의 근심으로 물었다.
“아버지 그리고 다음은요?”
“응~거기 정각리와 옥계마을 삼거리 구 도로에 산나물 시장이 있는데 드라이브스루가 생기게 된 유래를 네 실력을
발휘해서 취재 해 봐라.”
아버지는 꼭 그런 식으로 테스트를 했다.
인수는 학업과 아버지에게 배우는 학습을 병행하기가 힘이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똑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터득한‘스펙 쌓기’가 현제의 나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취재 경비는 분에 넘치게 후하게 쥐어 주셨다.
인수는 아버지의 당근을 받고 영천으로 향했다.
2년도 넘어 처음으로 찾는 보현산 천문 과학관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주차된 차들이 제법 많았다.
오랜만이라 감회에 젖어 경관을 살피다가 벤치 앞에서 과학관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디서 본 듯한데 누구더라....”
아주머니는 눈길을 피했지만 아는 사람이라서 피한 것은 아닌 듯싶었다.
“누구더라 저 뒷모습은.....”
그때 떠오르는 장면은 오래전에 불루문을 보려고 송이 아버지 차를 타고 갔을 때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송이 엄마였다.
송이 엄마라는 생각에 이르자 반가움에 불렀다.
“송이어머님~ 저 인수에요.”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송이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송이 엄마는 손을 떨고 있었다. 전부터 그랬는지 부르는 소리에 놀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얼굴빛이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었다.
놀란 인수가 멈칫하자 송이 엄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수는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저 송이 어머님 어디가 불편 하세요?”
“아 아니 조금...”
“그러시면 잠깐 편하게 앉아 계세요 제가 안에 가서 마실 물 좀 사올게요.”
인수는 달려가서 물을 사왔다.
송이 엄마는 벤치에 기대앉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인수가 온 기척에 눈을 떴지만 건네주는 물은 사양하며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물보다도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무척 궁금하신 것 같았다.
“어디서 나를 보았어?”
“예. 송이아버지 버스를 타고 불루문을 보러 함께 오셨잖아요.”
“아. 그랬구나.”
송이 엄마는 여전히 손을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다.
인수는 송이 엄마가 예전과 달리 이상했지만 왜그러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능 두 달 전부터 별 볼일 동아리에 나가지 않아서 송이 아버지의 교통사고 소식을 알지 못하는 인수였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송이 엄마가 말했다.
“나...송이 아버지를 보고 싶은데 저 안에 있으니까 나 좀 데려다 줄 수 있어?”
“예? 아버님하고 송이가 저 안에 있어요?”
“아니 송이는 집에 있고.”
“아~ 그래요~”
대답은 했지만 인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흐릿한 눈과 불안한 시선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보였다.
“제가 손을 잡아 드릴께요.”
“응.”
송이 엄마는 손에도 힘이 없었다.
혹시라도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았다.
송이 엄마는 움찔 놀라더니 곧바로 어깨도 내주었다.어깨도 떨고 있었다.
어떤 불안함에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살짝 놀라 솜털이 일어섰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터라 안으로 직진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송이 엄마는 내부를 빙 둘러 보더니 이번엔 밖으로 나가자고했다.
인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이해가 되지 않고 불길한 생각에 발길을 재촉해서 벤치에 앉혔다.
“고마워. 근데 나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어?”
인수는 점점 이상했지만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생각에 취재를 미루기로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 대구로 가셔야지요?”
“아 아니야~ 저 아래야.”
“예? 대구 아니에요?”
“응.”
“아 그러세요~ 저기 영천택시가 있는데 제가 불러 올게 잠깐만 기다리세요.”
둘은 택시를 탔다.
송이 엄마는 숄더백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기사에게 보여 주려고 내밀자 기사가 말했다.
“아 됐습니다. 아까 제 차를 타고 오셨잖아요. 그리로 가면 되죠?
“예.”
택시는 드리이브 스루를 지나 옥계마을의 끝자락에 왔을 때 핑크대문 집이 나타났다.
기사가 물었다.
“저 집은 1년 전인가 그때 리모델링을 하던데 집 주인이세요?”
송이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말이 없던 게 아니라 잠이 들었고 잠뿐 아니라 코까지 골았다.
인수는 송이 엄마의 손에서 떨어진 포스트잇을 주어 바라보았다.
넘겨보니 모두 같은 그림으로 핑크 집 대문이 그려져 있고 주소와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인수는 그때야 알듯했다.
송이 엄마가 건강상 심신이 허약해서 길을 잃을까봐 송이가 그려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핑크 대문집 앞에 도착했다.
“어쩌지? 깰까 말까 완전히 잠이 드셨네?”
인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1분만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조심스레 대문 안을 살펴보았지만 인기척이 없고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때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열리며 백구와 함께 사람이 나왔다.
“누구세요~”
“어? 송이야 나 인수야 인수.”
“어? 인수야 무슨 일이야 어떻게 알고 왔어?”
“응 과학관에 갔다가 엄마를 만나서 모셔왔는데 저기 택시 안에서 주무시고 계셔.”
“뭐라고 또?”
송이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문을 벌컥 열었지만 엄마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송이는 인수에게 업어서 방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인수는 송이 엄마를 안방에 눕혀 놓고 대문과 같은 온통 핑크의 벽지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송이는 엄마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르마를 타고 자기 머리에서 적색 이니셜 별 머리핀을 뽑아 엄마의 옆머리에
꽂아 주었다.
인수가 말했다.
“엄마에게도 잘 어울린다. 코스모스 꽃에 별을 단 것 같다. HS 이니셜?”
송이는 대답대신 방에서 나가며 별채마루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송이와 인수는 커피 잔을 두고 식탁 탁자에 마주 앉았다.
“오랜 만이다 인수야.”
“응 그 그래 근데 어떻게 된 일이야?”
“내 인생이 바뀌었지?”
“어? 그 그래 잘은 모르지만 그런 거 같아.....수능 전부터 못 보았잖아.”
“그렇구나. 우리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몰라?”
“응. 지금까지 별 볼일 동아리 친구들도 한 번도 본적이 없으니까.”
“그렇구나. 지금 내가 이렇게 여기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송이는 교통사고와 이후에 달라진 환경과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 놓았다.
엄마는 가끔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고 착각을 일으키면 대구에서 천문대까지 오려고 집을 나가거나 길을 잃어서
아예 이사를 왔다고 했다.
엄마가 이사를 와서는 천문대나 과학관을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왔는데 오늘은 갈 때부터 너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며 주차장에서 엄마 모습이 어땠는지를 물었다.
“응. 손을 떨고 안색이 변하고 힘이 없어 보이고....너희 아버지가 안에 있다고 가자고 하시더니 바로 나오셨어.”
“응 또 그랬구나.”
“왜 그러시지?”
“사실은 환희 아버지가 우리 아빠하고 많이 닮아서 멀리서라도 보는 것이 낙이었어. 남편을 잃은 실망감에 닮은
사람을 보고 위안을 얻으시는 것 같은데 돌아 가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끔은 환희 아버지를 남편이라고 착각해.”
인수가 말했다.
“환희 아버지는 허상이잖아. 엄마가 허상에 사로 잡혀 산다는 것이 때론 좋을지 몰라도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 하는데?”
“응 맞아....엄마의 정신 건강이 회복되거나 만약에 더 나빠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아 그때가지 꼭 비밀로 해줘
부탁이야.”
인수는 한 가지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알았어. 예전에 장희 엄마와 경북이 아버지가 만났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가 장희한테 혼 난적이 있던 이후로
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하하하.”
“헐. 그게 충격 이었나 보네 하하하. 근데 지금은 뭐해?”
“야~ 근데 아이러니다. 우리 아버지 알지? 그거 하려고 신방과에 들어갔다.”
“기자? 하하하.”
“오늘은 아버지가 산나물시장 드라이브 스루를 취재해 보라고 해서 수습(?)기자 초보로 왔다. 하하하.”
둘은 참으로 오랜만에 유쾌한 웃음을 웃었다.
송이는 환희가 들려주었던 환희 엄마 여왕별꽃님이 개설한 드라이브스루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우 네 덕분에 기사를 쉽게 쓰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하하하하.”
“너는 여전히 교회는 다니는구나? 우린 지금 사정이 좀 그래서 못 다니고 있어."
인수는 집을 나와서 과학관으로 갔다.
박 하순 교수님을 만나고 송이 아버지를 닮은 환희 아버지를 만나서 화들짝 놀랐다.
환희 엄마 여왕별꽃님의 일대기를 수첩에 빼곡히 담아 피시 방으로 갔다.
아버지에게 기사를 송고하고 이틀 동안 영천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꿀맛 같은 여행을 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름대로 기사가 만족하였는데 아버지는 기사를 읽은 소감을 평소와 달리 아주 잘했다는 칭찬대신 덤덤한 표정을
지었는데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었던 이야기는 이상하게 하지 않았다.
“런던 타임스에서 크림전쟁을 취재한 ‘윌리엄 하워드 러셀’의 영향으로 나이팅게일이 종군하게 되었다.
남북전쟁도 취재하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을 취재 하는 등 종군 기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어니스트 헤밍 웨이도 종군기자의 경험을 살려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우리 아들도 기자가 되어서.....”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지않고 방으로 들어가시자 인수는 자신이 벌인 일이 생각나 불안이 엄습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서 욱하고 벌인 사건이었다.
'휴학하고 군 입대를 지원했는데 알아 버린 것이 아닐까?'
안으로 들어 가셨던 아버지가 손에 종이를 들고 나오더니 말없이 건네주었다.
표정은 싸늘했고 받아 보니 벌써 나와 버린 영장이었다.
인수는 기자라는 직업이 기자 정신을 발휘하여 쓴다고 해도 정치인과 윗선들의 편집과 입맛에 맞게 변질 왜곡 되는
것이 싫고, 또 싫은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어서 욕을 먹는 기자가 싫었다.
그래서 잠시 아버지를 떠나 다시 생각해 보자는 차원에서 군 입대를 결정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계획은 늘 끊어지지 않는 삼 겹줄인데 어쩌지?”
-다음편을 기대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