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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은 바위의 보고다. 특히 천황사 일원은 국내 최대 규모라 해도 될 만큼 암벽과 암릉이 숫하게 솟아 있다. 그중 시루봉은 월출산에서 가장 인기 높고 고전적인 암장이고, 매봉은 월출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장 웅장한 대형 암장으로 꼽힌다. 또한 시루봉 좌측에 있는 연실봉은 등반자가 적어 교육장으로 적합하고, 시루봉 우측의 형제봉은 크랙 위주의 고전적인 등반루트가 개척돼 있다.
암릉 코스도 여럿 있다. 그중 전남의대산악회가 80년대 초반 개척한 사자봉 암릉은 월출산을 대표하는 암릉으로 꼽힌다. 광양 그루터기산악회가 개척한 ‘그루터기의 혼’이나 형제봉길과 같은 암릉이 있으나 원칙적으로 등반이 허용되지 않는다.
제3피치 등반 후 8m 자일하강
월출산은 바위산답게 영암벌에서 바라보아도 온통 바위꽃을 피우고 있다. 벌판 위에 융기한 산이어서 더욱 웅장하게 느껴진다. 산 앞으로 다가서도 역시 바위 일색이다. 월출산 구조대 사무실(탐방안내소)을 지나 바람골로 들어선다. 12월 초, 중부권 높은 산은 벌써 희끗희끗한데 월출산은 늦가을 잿빛 그대로다. 그런데도 오전 8시를 넘어서자 등산객들의 함성과 감탄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역시 명산다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람폭포·구름다리 갈림목에서 바람폭포쪽으로 향하다 왼쪽 샛길로 들어선다.
“그냥 밀어붙여. 어지간하면 암벽화가 밀리지 않을 거야.”
페이스를 올라선 다음 잡목지대에 이어 평범한 암릉을 약 30m 오르면 등반 중 유일한 하강지점에 닿는다(개념도상 제3피치 종료지점). 짤막한 하강구간으로 클라이밍다운도 가능하지만 막판에 발이 바닥에 잘 닿지 않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잡목 우거진 암릉을 20m 오르자 암릉 상의 침니 2개가 나타난다. 좌측 침니가 짧기는 한데 폭이 애매해 길더라도 폭이 넓은 우측 침니를 택했다. 하늘이 보일 정도로 뻥 뚫린 침니다. 정효준씨가 침니에 완전히 들어선 다음 배낭을 안전벨트에 매달고 오르지만 무게 때문에 배낭이 늘어져 성가실 수밖에 없다.
바람골 일원 암봉군 한눈에 조망
사자봉리지는 북사면에 위치해 하루 중 잠시, 그것도 상단부 일부에만 빛이 든다. 그런 상황에서 조용하던 날씨가 바람이 몰아치면서 변한다. 어제와 그제 추위와 강풍 속에서 덕유산 산행을 마쳤던지라 어지간한 날씨는 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12월의 겨울바람은 이내 손을 시리고 뻣뻣하게 한다. 침니 밑에서 기다리는 사이에 가슴까지 떨려온다. 그런데도 김병석씨는 “한여름 시원한 바람을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며 웃는다. 문종국씨 역시 떠는 내 모습에 빙긋 웃는다. 두 사람 모두 히말라야를 비롯한 세계 오지에서 등반을 펼쳐온 이들답게 어지간한 추위는 추위 같지도 않은가 보다.
바위꽃 정점에서 등반 마무리
제9피치 종료지점에서 암릉 우측으로 2m쯤 내려서면 하강포인트가 마련돼 있다. 정효준씨의 말대로 제9피치 하강포인트를 무시하고 가로질러 암릉을 타고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월출산에서 등반열정을 불사르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목숨을 잃은 고 오종락씨의 추모비가 쓸쓸히 서 있다. 그는 K2 원정을 한해 앞둔 98년 중국 사천성의 미니아콩카에 도전, 세계 초등의 기쁨을 누렸으나 하산길 안초크 빙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월출산 그루터기의 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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